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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갑질고리', 사과는 면피기능?
끊이지 않는 ‘갑질고리', 사과는 면피기능?
  • 최주연
  • 승인 2016.04.20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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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이 지난달 25일 대림산업 건물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장에서 수행기사에게 가한 폭력과 폭언에 대해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공식 사과했다.
지난달 3월은 몽고식품, 대림산업, 현대비앤지스틸, 미스터피자 등 대기업 경영진의 ‘갑질’ 논란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갑질의 행동양상은 다양했지만, 대부분 수행기사나 경비원 등 그들을 가까이서 ‘보필’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모욕감을 불러일으키는 폭력과 폭언이 수반된 학대였다.

논란의 시작과 끝은 항상 같은 패턴이었다. 학대가 언론에 의해 들춰지고 그것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걷잡을 수 없는 정도가 되면 성난 여론의 ‘화기’를 잠재우기 위해 침통한 표정을 지은 가해 경영진이 사과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TV나 신문지면에 보도가 되면 모든 상황은 끝이 난다.

사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표정의 심각함만큼, 사과문에 담긴 단어들만큼 진정성 있게 반성하고 시정하느냐가 중요하다. 대기업 오너들이 발표한 사과만큼, 보도된 뉴스만큼 문제개선이 이뤄졌다면 ‘갑질’이 이처럼 빈번하게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창궐하듯 갑질이 들끓는 것을 보면, 사과의 '진짜' 기능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피해자 멍든 마음에 사과는 특효약?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도 지난달 3월 수행원들에 대한 갑질로 논란이 된 후 공식 사과한 경우다. 그는 수행기사들에게 백미러와 룸미러를 접고 운전하라 강요하고, 주행 중에 폭언을 하거나 뒤통수를 때리는 등 수행원들에게 학대를 일삼았다.

그는 지난달 25일 대림산업 건물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장에서 “상처를 받은 모든 분들께 용서를 구한다”며 공식 사과했다. 그리고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사과드리겠다”며 피해자를 ‘직접’ 찾아 사과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진정성이 골고루 전달되지 않았던 걸까? 이해욱 부회장은 사과 후 피해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취했고 피해 수행기사 일부는 답장하지 않았다.

지난 19일 한 언론 매체에서는 대기업의 ‘갑질논란’, 특히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의 전 수행기사를 인터뷰해 공식사과 이후의 상황을 보도했다.

운전기사 A씨는 “그때 일로 트라우마가 생겨 출발할 때 RPM이 저도 모르게 4000씩 가 있다”며 심리적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어 그는 “직접 찾아와서 사과하지 않고 문자메시지 하나 보내 ‘만나서 얼굴 보고 사과하고 싶다’했지만, 문자메시지로 연락하는 것이 진정성 있는 태도인지 의심이 들어 답장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또한, “이후에는 별다른 연락이 오지 않았고, 이후에 회사 측과 만나기로 했는데 갑자기 취소해서 ‘장난하나’ 싶어 답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인터뷰에 응했다”고 인터뷰 참여 의도를 밝혔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공식사과 이후 전 수행기사 분들에게 문자로 연락을 취한 이유는 운전을 생업으로 하시는 분들이기에 통화가 불편할 수 있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하며 “문자에 답한 분들을 대상으로 통화를 하고 직접 만나기도 했다. 최대한 진정성 있게 행동하려 하신다”고 사과 진행상황을 전했다.

한편 운전기사 A씨는 이해욱 부회장이 보낸 문자를 공개했다.

“원 씨, 어떻게 지내요? 나 이해욱이에요. 지금 일할 지도 몰라 문자드려요. 그동안 나 때문에 상처 받았을 텐데 이번 일로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진심으로 미안해요. 시간 알려주면 만나서 얼굴 보고 직접 사과하고 싶은데 연락 좀 부탁해요.”
 
기업인 갑질 ‘예방’ 위한 형벌 강화 필요
   
▲ '초특급 갑질 매뉴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현대비앤지스틸 정일선 사장.
재벌 3~4세들의 지위와 특권을 남용한 일탈행위는 무뎌질 만큼 익숙한 뉴스 소재가 됐다. 공노비가 해방된 지 200년, 신분제가 폐지된 지도 100년이 넘은 21C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전히 전근대적 신분제 사회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기업 경영주의 윤리의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것은 한가로운 문제해결 방식일 수밖에 없다. 혹자는 ‘경영일선에 나서기 전에 윤리의식을 기르고 공동체생활과 타인을 배려하는 경영수업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미 경영일선에 나선 재벌 3~4세는 어떻게 ‘교화’시켜야 하는가. 이미 높으신 분들에게 딱 들어맞는 도덕수업 혹은 교재라도 있다는 말인가.

갑질의 주체들에게 가해지는 형벌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것도 문제다. 운전기사 폭행으로 논란이 있었던 몽고식품 김만식 전 회장에게 700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을 비롯해 ‘면벽근무’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두산모트롤, ‘초특급 갑질 매뉴얼’로 논란을 일으켰던 현대비앤지스틸 정일선 사장도 아직 처벌되지 않았다.  2014년 '땅콩 회항' 사건을 일으킨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도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끊이지 않는 갑질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그 예방을 위해서라도 제도적 형벌 강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시민과 소비자의 연대적 감시와 관심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갑질-논란-사과-갑질-논란-사과-갑질-…’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은 어느새 힘 있는 자가 마음 놓고 권력을 휘두르기 좋은 나라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갑질 경영인이 더 이상 타인을 학대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장치, 정의로운 ‘칼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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