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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결점’ 오만함이 제국의 무덤 될 것
‘무결점’ 오만함이 제국의 무덤 될 것
  • 박지연·정창호
  • 승인 2009.12.03 21: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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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에세이] 11월호 ‘아프간 배회하는 베트남 망령’을 읽고

박지연 | 행정 인턴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드디어 미국의 오만한 전쟁이 끝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에 추가 파병을 하고 미국의 전쟁 승리를 장담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보를 하고 있다. 자신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일까.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를 바랐던 가장 큰 이유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과연 미국이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 요즘 내 머릿속에 맴도는 물음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정황들을 보면 미국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까 우려스럽다.

 

탈레반이 내전의 승리로 아프가니스탄의 영토 대부분을 차지했을 때 엄격한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국민에게 강요했다. 수많은 이들이 종교·인종·사상 등을 이유로 처형당했고, 이슬람 시대 이전의 유물들은 파괴되었다. 술과 노래의 금지, 여성의 교육 금지, 우상숭배 금지. 인간의 기본권은 공포와 억압에 짓밟혔다. 그러나 정권을 잃은 탈레반은 차츰 정책을 바꿔나갔다. 그들은 정권을 되찾기 위해 국민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압적인 규제들이 완화되고, 자국 내 기본 시스템을 재구축했다. 탈레반은 미군과의 정보전쟁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미군은 최첨단 하이테크 무기를 동원해 정보 수집에 총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아프간의 민심이 탈레반으로 기우는 것과 더불어 미군의 정보 수집은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 탈레반은 자살폭탄 테러나 암살에서 우월한 정보력을 과시한다. 2007년 2월 탈레반은 체니 당시 미국 부통령이 방문한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기도 했다. 이들은 미군이나 지역민 사이에 숨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탈레반이 진화를 거듭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은 ‘제국의 무덤’이라고도 불린다. 영국과 소련은 막대한 손실만 입은 후 전쟁에서 물러나야 했다. 현재 미국은 과거 소련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9년 소련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무장했으나 아프가니스탄의 영토 일부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무자헤딘과의 싸움은 소련을 처참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8여 년 동안 막대한 비용을 전쟁에 쏟아부었다. 결과는 늘어나는 무고한 희생자와 강한 세력을 다져가는 탈레반뿐이다.

아프가니스탄전은 베트남전과 비유되기도 한다. 미국은 각각 탈레반과 공산주의자를 적으로 삼고 조직을 와해하려는 동시에 주민과 단절시키려 노력했다. 미국이 내세웠던 권력자들이 부패했다는 점도 닮아 있다. 베트남전이 아프간전의 데자뷔라는 말에 답하듯 미국은 실패의 경험을 답습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이 명실공히 제국의 무덤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려는 모양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쟁의 승리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계속해서 주둔해야 한다는 이들의 외침은 공허하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승리의 모습은 무얼까. 표면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평화와 자유이겠지만 실상은 새로운 식민 지배를 꿈꾸는 게 아닐까. 궁금하지만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이대로라면 전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장담할 수도 없을뿐더러 승리든 패배든 역사에는 오만한 제국의 잘못된 선택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창호 | 회사원

 

 

9·11 테러가 발생한 날, 나는 군대에 있었다. 어느 날, 새벽 근무를 마치고 내무반으로 들어오는데 때마침 선임병이 한 명 오더니 텔레비전을 틀었고 그 속에서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스펙터클한 장면이 망막을 때리고 있었다. 그 화면은 수없이 되풀이돼 방영됐으며 곧이어 연달아 무너지는 빌딩들이 화면을 장식했다. 요즘 ‘천조국’(千兆國·부채가 천조라는 의미), 또는 ‘천조국’(天朝國·조선이 사대한 명나라)으로 불리는 미국은 즉각 아프간을 주범으로 지목했고 이어서 테러범들의 사진이 줄줄이 떴다.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일사천리로 전쟁이 발발했고, 8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전쟁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마치 지구 한구석에서 늘 벌어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처럼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에 따른 부산물로 억울한 죽음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해에 나온 영화가 바로 <진주만>이었다. 물론 영화는 전쟁의 발발 이유나 진주만이 무력하게 폭격을 당한 요인 같은 본질적 문제는 다루지 않고, ‘우리는 그저 착하게,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데 어떤 악마 자식이 느닷없이 달려와 내 뺨을 후려갈기니 복수하지 않으면 어쩌란 말이냐’라는 피상적인 방식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급 애국주의 삼류 영화다. 즉, 볼 것은 많으나 내용이 없는 국방 홍보영화 정도 되겠다. 신기하게도 이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개봉되고 불과 석 달 후, 제2의 진주만 사건인 9·11이 터졌으니 누군가의 말대로 이 영화가 예고편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베트남전과 아프간전은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만약 9·11 테러가 미국의 자작극이라면- 아직은 의혹일 뿐이지만- 이것은 미국이 베트남전을 일으키기 위해 조작한 ‘통킹만 사건’의 진화한 후속편이라고 볼 수 있다. 아프간전쟁의 양상 또한 베트남전쟁 당시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아프간전쟁을 제2의 베트남전쟁이라 부르는 데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또한 부시와 네오콘 정권이 아프간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뒤 베트남전쟁을 시작했을 때처럼 애국의식 고취 등 다양한 선전·선동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8년간 지속되면서, 미국이 깊은 수렁에 빠져 비참하게 패망할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감돈다. 이 전쟁에서 왜 오바마 정권은 발을 빼지 못하는 것일까? 미국의 민주당은 공화당에 비해 어느 정도 진보적인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다. 게다가 미국 역사상 최초로 당선된 흑인 대통령이 미국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전쟁 종결과 군 철수가 아닌 정반대의 길을 취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이 승리보다는 전쟁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이것은 미국이 제국주의 확장에서 제국주의 포기가 아닌 현상 유지로 가닥을 잡고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프간이 지속적인 희생양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심산이 아닐까. 


[읽기 모임] 광주 읽기 모임

다 함께 메타세쿼이아길을 걷듯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읽으면 메타세쿼이아길을 걷는 기분입니다. 메타세쿼이아길은 담양에 위치한 산책로입니다. 길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빼곡히 나무만 보일 뿐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길을 걷노라면 진한 나무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게 합니다. 길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지친 마음에 위로를 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직하게 서 있는 나무들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은 믿음을 줍니다.

광주에서는 매월 첫 번째 토요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읽기 모임이 열립니다. 광주인권운동센터를 아지트 삼아 모임을 꾸려보려고 합니다. 시작은 인권을 공부하는 소모임 ‘인나’에서 <르 디플로>를 통해 국제사회 이슈를 공부해보자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편집장님께 모임에 대한 조언을 구하던 중 전국의 독자에게 광주 모임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메일로 알려주신 후 지금까지 읽기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가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새삼 광주에도 <르 디플로>를 함께 읽고 토론할 수 있는 분이 많다는 데 놀랐습니다. 토론은 각자가 흥미로운 기사를 중심으로 이야깃거리를 준비해와 전체의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생기발랄한 토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생각을 공고히 다져나가는 시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아직 온라인 공간은 마련되지 않아 참여 의사나 물음은 이메일(12garam@naver.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르 디플로>를 매개로 토론의 장을 마련해,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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