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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를 이 법정에 세웠습니까?
누가 우리를 이 법정에 세웠습니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승인 2016.07.2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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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법 위반 사건 김정훈 전 전교조위원장 1심 최후진술
지난 7월 11일 월요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17호에서 2014년 세월호 교사선언과 세월호 청와대 게시판 교사 선언, 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투쟁에 대한 국가공무원법 위반 사건 33인에 대한 1심 결심 공판이 진행됐다. 검찰은 공소 의견에서 전교조가 세월호 사건과 전교조 법외노조를 연계해 '반정부 투쟁'에 나섰다고 했다.
검찰은 피고 김정훈에게 징역 1년 6월을 그리고 나머지 피고에게는 징역 1년, 징역 10월, 벌금형 등을 구형했다. 오는 8월 26일 1심 선고가 내려진다.
 
아래는 33인을 대표한 김정훈 전 전교조위원장의 1심 최후진술 전문이다.

 

   
▲ 김정훈 전 전교조위원장

 

국가공무원법 위반 관련 1심 (20160711)
최후 진술
김 정 훈

 

재판장님
 
누가 우리를 이 법정에 세웠습니까?
99%의 민중이 개•돼지라는 생각을 지닌 교육부 정책기획관과 같은 사람들이 세운 것은 아닙니까. 역사 왜곡을 정당화하고 신분서열까지 세우고자 한 사람들이 국가 권력의 상층부에서 1%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참으로 황망한 일을 겪고 있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그 존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가르쳐 온 사람들이 이 법정에 섰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가 있고, 언론 출판 집회 시위의 자유가 있고, 결사의 자유가 있다고 배웠고 가르쳐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 때 민주주의의 가치가 정의롭게 빛나고, 화해와 공존이 가능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사회정의에 따라 노동권을 명백하게 보장하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들은 그 민주주의 헌법 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입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현재 법외노조이자 헌법노조입니다.
4.19교원노조, 1986년 교육민주화선언을 이어받아 1989년 1500여 해직 교사의 희생과 함께 탄생한 노동조합입니다. 당시 정권에 의해 불법으로 규정 당했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 선생님들과 40만 교원들은 199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합법화의 순간을 환호로 맞이했습니다. 비록 여러 가지 제약이 있는 교원노조특별법이지만 이제 참교육과 교육민주화를 위한 길에 발을 딛기만 해도 탄압받는 시대는 지났다는 기쁨이었습니다. 전교조는 무한 경쟁교육의 지옥에서 아이들을 살려내고자 했습니다. 전교조는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함께 그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육자의 소명을 다하는 실천 활동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교육마저도 상품화하며 탐욕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정부의 교육정책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우리는 우리 제자들이 시들다 못해 스러져 가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경쟁과 서열은 탐욕의 도구입니다. 선생이라면 누구나 이에 대해 아파하고 아프다고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그 아픔을 모아내고 민주적인 교육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정당한 지원과 교육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그래서 전교조는 창립 이후 그 권리와 의무를 다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런데 아파서 상처를 치료하자고 했더니 오히려 때립니다. 맞아서 아프다고 해도 다시 때립니다. 그것이 전교조가 처한 정권 앞의 현실입니다. 전교조는 학교와 학교의 교육공동체인 사회의 아픔과 치유를 위해 문제 제기와 실천 행동을 해왔습니다. 학교 안 밖의 참교육 실천 활동과 서명, 선언, 집회 등 최소한의 표현 행동들입니다. 그때마다 정권은 탄압으로 일관했고 해직교사는 그 분들입니다. 급기야 현 정권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법 밖으로 밀어냈고,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는 대법원의 판단을 남겨놓고 민주주의와 노동기본권의 가늠자가 되어 있습니다.
 
국민들은 노동을 합니다. 노동하는 국민이 노동자이고, 국민은 법에 의해 노동자의 권리 행사가 집단적으로 보장되는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해직교사 9명이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를 법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교육노동자들은 교육노동자로서의 존엄이 있고 그 의지에 따라 자신들의 노동조합을 지킬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전교조를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입니다.’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 속에서의 전교조 역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하는 전교조의 소명이 더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의 긍지와 노동기본권이라는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를 가르치는 선생님들마저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는 실종된 것입니다.
 
민주화 이후 교수님들이 서명을 하고, 시국선언을 하고, 집회를 해도 정권이, 국가가 처벌을 가한 경우가 없습니다. 어떤 공무원일지라도 정부의 입장에 동의하면 그 어떤 집단 서명도, 선언도, 집회도 처벌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정권 앞에 우리는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합니까.
 
2014년 5월 15일 ‘아이들을 이대로 가슴에 묻을 수는 없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과 철저한 진상 규명 및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전교조는 또 2014년 6월 24일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세월호 특별법 제정, 김명수 교육부장관 지명 철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중단‘을 요구하며 합법 집회를 열었고, 2014년 7월 2일에 다시 세월호 참사 관련 교사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7월 12일 전국교사대회를 열었습니다. 이 시기 동안 아니 그 이후 지금까지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한꺼번에 제자를 잃은 슬픔과 그 책임을 놓은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정부에 그 책임을 묻고 진상을 규명하자는 목소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몰고 가는 정부에게 그 불법성을 지적하고 그 중단을 요구하는 것조차 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함께하는 집회와 서명이 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6월 24일 집회에는 조합원 선생님들이 국가공무원법에 보장된 조퇴를 내고 참여했습니다. 개인 연가 사유까지 일일이 정부가 관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수업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미리 수업을 하거나 이후 보강 수업 조치를 하고 조퇴를 한 것입니다. 이후 허가된 집회에 참가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집회에 참여할 자유가 아니겠습니까.
 
이 법정에 선 사람들과 전교조가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고,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야한다’는 발언을 했다고 공무 외의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벌하겠다고 검찰이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입과 행동을 막는다면 교육노동자는 잘 훈련된 짐승으로 살라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유신독재 시대에 살라는 것입니다.

교원노조특별법에 의해 교사들이 사회경제적인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고 집회를 하는 것은 이미 보장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공무원법으로 교사 공무원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일이 다시 되풀이될 수는 없습니다. 교사가 연가를 신청하면 학교의 책임자는 이를 ‘허가하여야’ 합니다. 법에 보장된 휴가의 사용 권리마저 법의 이름을 빌려 다시 제약될 수는 없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1%가 지배하는 99%의 사회가 아닌 모두를 위한 행복한 교육세상을 열어나가고자 합니다. 사법부가 그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받는 세상은 사법부가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유신독재 시대로 회귀하여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야만의 시대였고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야만의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말로 가르치고 사는 교육노동자가 ‘우리 사회는 표현의 자유가, 집회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판결을 부탁드립니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기소에 대한 무죄는 아픔과 슬픔과 그리고 정의에 대한 공감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외람되지만 시 한 편을 낭송하겠습니다.

 

삼백예순다섯 날의 삼백예순다섯 날

 

그날
나는 우리는 광화문 네거리
세종로 정부 청사 앞에 있었다
길고 힘든 싸움을 예상하고 각오하고
지붕 없는 농성장을 새벽에 차렸다

 

그날
민주주의와 노동권과 교육권과
도대체 아니 아무리 저들의 정권일지라도
받아줄 수 없는 정권의 개 하수인들 생각으로
꿈쩍도 않는, 않을 것 같은 남한 땅 서울 하늘

 

아래에서 고개를 떨구거나
고개를 치켜들거나 난 우리는 전교조였다

 

갑자기 속보가 떴고
곧 전원이 구조되었다
우리는 난 시작하는 싸움의 승리를
기약 없는 승리를 다시 다짐했다

 

무너질 수 없는 전교조
쓰러질 수 없는 민주주의

 

봄꽃은 피어났으나 춥고 쓸쓸한

 

찰나
참사가 돠었다
어안이 벙벙한 채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팽목항 맹골수도 방송을 보았다
내 새끼들이 우리 새끼들이

 

농성장을 접었다
속속들이 민주노총 투쟁 일정도

 

살아있어서
그것도 선생으로 살아있어서 부끄럽고
슬펐다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선생들이라고
믿었지만 부끄럽고 슬펐다

 

참사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믿게 될 때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선언을 하고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밤길을 걸어도
봄꽃은 화사하지 않았다
바다 넘어 유채꽃 성산포도
그려지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분노의 끝이 절망인지를

 

그렇게
삼백예순다섯 날을 가슴에 저며놓고
저며놓은 삼백예순다섯 날이 다시 왔다
기억을 넘어서는 그 어떤 것을
난, 우리는 만들거나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할 것 이 다 꼭

 

그날 그 바다에 그 배에
내가 우리가 있었다면 이해봉 선생님처럼
그래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진정 그랬을, 것이다

 

에미 애비 선생이니까
저 놈들이 아 니 니 까

 

삼백예순다섯 날의 삼백예순다섯 날
다시 태어남을 노래하며
봄꽃 아프게 환하게 마주할
생명과 존엄의 땅으로
흐린 날에도 빗 속에서도 멀리 퍼져나갈

 

난, 우리는 이 싸움 멈추지
않을 것 이 다
봄꽃 피어나 저미듯

 

아로새겨 아로새겨

 

말씀 들어주신 재판부께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를 함께 지켜주시길 다시 부탁드리면서 최후 진술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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