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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명의 시오니스트들과 함께한 이스라엘 여행
450명의 시오니스트들과 함께한 이스라엘 여행
  • 톰 비셀
  • 승인 2016.09.3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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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성 패트릭 성당 사진>, 2010 - 워링 아보트

지난 봄, 많은 우익 비평가들이 블룸버그가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인들에게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오바마 대통령 중에 누구에게 더 공감이 가는가?”라고 묻는 해당 여론조사에서 미 공화당원들은 67:16의 비율로 이스라엘 총리라고 답했다. 이런 결과에 꽤나 충격을 받은 것처럼 가장하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러시 림보(Rush Limbaugh)(1)는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 “우리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그처럼 강력하고 도덕적이며 윤리적 명료성을 지닌 인물이면 좋을 텐데”라고 말했고, 마크 레빈(Mark Levin)(2)은 이스라엘 총리를 “자유진영의 지도자”라고 묘사하기까지 했다. 
 
나는 데니스 프레이저(3)가 진행하는 보수성향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 듣는다. 프레이저가 진보주의자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지만(일전에 “거의 모든 중요 이슈에 대한 좌파와 우파간의 의견 차는 실상 메울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우익 성향의 다른 프로그램 진행자들과는 달리 진보주의자들을 종종 프로그램에 초대해 토론을 벌이곤 한다. 그러나 그는 오바마-네타냐후 여론조사에 대해서 “악에 맞서지 않는 자들은 악에 맞서는 자들을 분노케 한다”고 점잖이 격분을 표했는데, 이러한 언사는 여론조사에 대한 반응 중 가장 관대하지 않은 편에 속했다.
 
프레이저의 라디오 프로그램 청취자들은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인데, 막상 프레이저는 유대교도다. 지난 몇 년간 종종 강한 남부 억양을 쓰는 사람들이 프로그램에 친절하게 전화를 걸어와서는, 프레이저가 그들이 태어나 처음으로 말을 나눠본 유대교도인라고 말하곤 했다. 지난 여름, 프레이저는 라디오 진행 중 ‘스탠드 위드 이스라엘 투어(Stand with Israel Tour)’라는 그룹을 인솔해서 이스라엘에 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누구나 5천 달러면 충분히 프레이저, 그리고 그의 라디오 애청자들과 함께 옵션이 모두 포함된 가이드 동행 투어에 등록해 세상에서 가장 신성하면서도 가장 치열한 분쟁지역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밝힌 여행의 목적은 이스라엘인들로 하여금 그들을 지지하는 충실한 친구들이 미국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주는 데 있다고 했다. 
 
미국의 종교적 우파들이 항상 이스라엘에 현혹돼 온 것은 아니었고, 하물며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더 그러했다. 상당 수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 운동 창시자들은 자신들이 반 유대주의자(Anti-Semites)임을 뻔뻔히 드러내곤 했다. 1933년, 라디오 설교자 찰스 풀러(Charles Fuller)는 청취자들에게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상대로 사악하고 고의적인 반란”을 도모하는 자들이라고 말한 바 있고, 그 밖의 초기 근본주의 지도자들은 열성적으로 <시온 장로 의정서(The 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4)를 배포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수십 년간 미 보수주의에 전혀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들이 처음으로 지지한 미 대통령은 존 F. 케네디로, 그는 민주당 소속이었다. 
 
1981년,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을 공개적으로 포용했는데, 유대교도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복음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오랫동안 두려움의 대상이 돼왔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복음주의자들의 이스라엘 성지순례, 그리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 경제에 유입되는 수백만 달러는 항상 환영받았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들과 항상 거리를 둬왔다. 그러나 낙태 반대부터 무슬림에 대한 전반적인 의심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우파와 미 복음주의자들이 상당히 많은 믿음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인지한 사람이 등장하기도 했다(그가 베긴이다). 또한 1989년, 침례교도 방송인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에 의해 설립된 기독교 연합(Christian Coalition)은 시온주의적 대의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2002년에 이르러 톰 딜레이 전 하원 다수당 대표는 “유대인들과 예수를 지지하는” 기독교 연합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기독교 시온주의가 정치적으로 부상하면서 이스라엘 우파의 목적과 한데 어우러지게 됐고, 로버트슨은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 및 그의 “깡패 집단”에 대해 위협조로 비판을 가했다. 5세기 초, 성 제롬(St. Jerome)이 예수를 믿는 유대인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서 어거스틴에게 경고하길, “그들은 기독교인이 되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유대교도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1600년이 지난 지금, 미 복음주의자들은 사실상 이스라엘인이 돼버렸다.  
나는 보수주의 정치가 어떠한 연유로 앞뒤도 따지지도 않은 채 이스라엘을 지지하게 됐는지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몇 달 후 11월,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투어 첫 일정인 프레이저의 강연을 듣기 위해 이스라엘의 아시도드에 있는 레오나르도 플라자 호텔 로비로 향했다. 좋은 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강연 시작 45분 전임에도 그런 자리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전원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스탠드 위드 이스라엘 투어’ 일행 대다수가 60세 이상의 노인들이었다. 10여 개 도시에서 온 약 450명가량의 사람들이 투어에 등록했고, 인원 전체를 한 곳에 수용할 수 없는 관계로 우리는 아시도드 전역에 걸친 숙소에 나뉘었다. 아시도드는 가자지구로부터 약 20마일 떨어진 해안 도시로 2014년 가자지구 분쟁 시 하마스 로켓 공격의 주요 타깃이 됐던 도시다. 나는 뒤늦게 호텔에 도착한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면서 호텔 입구에 커다랗게 드리운 현수막을 보고는 경탄을 금치 못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그 현수막 내용은 이랬다. “성경의 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다. 프레이저가 무대에 등장하기 전, 루벤 도론이라는 제너시스 투어(Genesis Tours) 소속의 이스라엘인이 사회를 맡아 프레이저를 소개했다. 그는 벗겨진 머리에 탄탄한 몸, 부드러운 목소리를 지닌 사람이었다. “우리는 한 가지 목적으로 이곳에 왔습니다”라고 도론이 말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아멘이라는 소리가 청중 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도론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은 우리의 힘이자 용기의 원천이며, 우리 마음속의 기쁨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프레이저가 마이크로 느긋하게 다가왔다. 약 195cm의 장신에 건장한 체격을 한 그는, 옥수수 수염처럼 가늘고 하얀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카키 바지에 단추를 풀어놓은 파란색 줄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대학교 교무처장님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곳에 모인 청중 중에는 그를 흠모하는 다수 여성 팬들이 있었는데, 뒤에서 세 번째 줄에 있던, 180cm 장신에 여장부 타입의 한 여성도 그의 팬들 중 한명이었다. 
 
프레이저 강연의 포문을 연 주제는 ‘이스라엘 테스트’였다. 이스라엘 테스트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일종의 시험으로서, 그에 따르면 “사람들의 판단력을 빠르게 간파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에 대해 트집을 잡는 사람은 아주 형편없는 점수를 받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단일 군사원조 규모로는 사상 최대의 지원을 이스라엘에 제공했음에도 이스라엘 테스트 낙오자다. 존 케리는 그보다 더 낮은 점수로 이스라엘 테스트에 떨어졌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사소한 언쟁이 붙을 때마다 “마치 빛과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종종 “중간적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프레이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제가 얼마나 여러분을 자랑스러워하는지 아마 모르실 겁니다. 정말입니다. 여러분은 진정 제게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솔직히 말해서, 한 달 전 그런 공격이 일어났을 때(팔레스타인인들이 흉기로 10여 명의 이스라엘인들을 길거리에서 찌른 사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투어를 취소할지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취소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프레이저는 자신이 우리 여행에 동행하는 명목으로 그 어떤 대가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기독교인이든 유대인이든 상관없이 미국 부모들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자녀를 이스라엘에 보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세상의 도덕적 잣대가 거꾸로 뒤집혀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이스라엘에서 생활을 하고, 이 세상이 얼마나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지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면, 그들이 서구세계의 기관 중 가장 도덕적으로 망가진, 대학이라는 곳에 돌아갈 때는 그런 세상에 이미 면역이 된 상태일 것입니다.”
 
미국인들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주제는 미국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굽히는 또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우익 복음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이유가 그들이 상상하는 세상의 종말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의 선민이 성경에 기술돼 있는 그들의 영토 전부를 다시 되찾을 때만이 마지막 경륜의 시대, 적그리스도의 출현, 환난,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귀환, 그리고 그의 최후의 심판이 시작될 것이라는 종말론적 믿음 말이다. 여러 측면에서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은 근본주의 기독교의 우드스톡(5)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최근 퓨 리서치 센터의 기독교 근본주의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백인 복음주의자 63%가 현대의 유대국가 건설이 예수의 재림(Jesus’ Second Coming)이라는 성경 예언을 실현시켜 줄 것으로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내가 투어에서 만난 그 어떤 복음주의 기독교인도 그러한 내용에 관심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투어가 진행될수록 나는 이스라엘을 사랑해 마지않는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을 끊임없이 만났는데, 그들의 애정은 이스라엘과 미국이라는 두 명의 자녀를 둔 하나님 아버지의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였다. 하나의 국가가 아닌 방종한 형제로서의 이스라엘은 역사 밖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그를 있게 한 죽음과 전쟁도, 그리고 UN, 오슬로 협정(6) 및 그 어떤 기존의 도덕 개념도 적용되지 않는 상식 밖의 사람이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이스라엘 테스트에 합격이다.
군인 한 명이 반짝이는 노란색 포탄을 품에 안고 걸어 나왔다. 이 포탄의 제조국이 미국이라는 말을 듣자 사람들은 크게 환호했다. 
 
블랙 애로우 기념관에서 우리는 지시에 따라 또 다른 젊은 이스라엘 군인 주위로 모였다. 그는 최근 이스라엘 방위군(IDF)에서 3년차 복무를 마친 군인이었다. 검은 머리에 수염을 한 그 군인은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만났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 대부분이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웨스트 뱅크에서 2년을 보냈는데, 자동차에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단순히 어리고 아무 목적 없이 행동함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그 어떤 것에도 목적을 두고 있지 않아요. 아직 미성숙한 거죠.” 그 젊은 군인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설명할 수 있는 더 나은 영어 단어를 고심하느라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자 누군가 “그들은 깡패들이요!”라고 외쳤다.
 
그 군인은 그 말을 아예 무시했거나 아니면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팔레스타인 십대들은 그저 돌만 던질 뿐이라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들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모든 아랍인들이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 청중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모두 자신이 방금 들은 말들을 머릿속에서 되감고 재생하는 동안, 정말로 머리가 기계처럼 윙윙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것 만 같았다. 그 군인은 종교도 감안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양 측의 급진주의자들이 갈등에 굉장히 많은 부분, 정말로 상당 부분 가담하고 있고, 이는 상황을 정말로 너무나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자 한 여성이(다행히 내가 탄 5호차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갔다. 40대 즈음 되어보였는데, 오버사이즈 선글라스에 보송보송한 겨울 잠바, 요가 바지, 그리고 알록달록한 스니커즈 차림을 하고 있었다. “양 측의 급진주의자들이라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유대인들을 싫어하도록 교육시키는 급진주의자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유대신앙을 가진 급진주의자들을 일컫는 건가요?”라고 그녀가 물었다. 
젊은 군인은 “네” 라고 답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런 짓은 절대 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그녀는 정신 나간 듯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당신 말은 양 쪽 다 이런 상황에 책임이 있다는 말이잖아요? 제가 맞게 이해하고 있나요? 저는 생각이 완전히 다른데요.”
그 젊은 군인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는 웨스트 뱅크의 “복잡한 지역”에 살고 있는 많은 유대인들 또한 그들의 아이들이 상대편을 증오하도록 양육하고 있다는 점을 그녀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이 말에 그녀는 격분해 양손을 모두 치켜들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절대 아니에요.” 
나의 아내 트리샤 옆에 있던 한 남성이 중얼 거렸다. “데니스 프레이저가 여기 있었으면 저 녀석을 아주 혼쭐 내줬을 거야.” 청중들이 반감을 갖자 그 젊은 군인은 마이크를 꼭 붙잡고는 아무 말 없이 서있었다. 다른 군인이 들어와 마이크를 빼앗아 잡고는 말했다. “언어 문제가 조금 있었나보네요.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프레이저는 콤비 재킷을 입고 등장했는데, 그의 어깨가 축축이 젖어 회색빛을 띠었다. 벤 카슨(7)의 책을 읽고 있던 남성이 고개를 들고 그를 보고는, “황제가 오셨다”고 말했다. 그런 와중에 20여명의 다른 기독교 성지순례 그룹이 무대 양측에서 몽환적인 목소리로 찬송가를 불렀고, 그들 주위 대리석 바닥으로 타닥타닥 비가 내리고 있었다. 또 다시 제너시스 투어의 루벤 도론이 프레이저를 소개했다. 그즈음에 보슬비가 거의 그쳤고, 도론은 비가 그친 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데니스 프레이저를 사랑하시는 증거”라고 말했다.
 
프레이저는 42번가의 신문 가판대에서 <프라우다(Pravda)>(8)를 구입해 읽으며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21세 학생이었던 대학 시절을 들려줬다. 어느 날, 이스라엘 정부 사람이 그에게 연락해서는 소련으로 가서 히브리 성서와 기도용 숄을 몰래 밀반입하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다소 위험한 일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제가 히브리어와 러시아어 둘 다 구사할 수 있어서 소련에 보내진 거죠.” 그는 당시 소련을 떠나고 싶어 했던 유대인들을 데리고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후, 소련 유대인들에 대한 강연을 시작했다. 그것이 그의 “공적인 삶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 4회 정도 강연을 했다고 한다. “미국 내 거의 모든 유대교 회당, 그러니까 그 문제에 있어서는 호주, 프랑스, 자유 진영 그 어디든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국가 내 거의 모든 유대교 회당에는 ‘소련 유대인들을 구하라’라는 사인이 걸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소련 기독교인들을 구하라’는 사인을 걸어둔 교회는 단 한 곳도 보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보다도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소련 정부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소련 기독교인들을 구하라는 사인은 없고, 소련 유대인들을 구하라는 사인만 있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민족인 반면, 기독교인들은 종교였기 때문입니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늘날 까지도 사람들은 시리아, 이라크, 그리고 기타 지역 등에서 IS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집단적으로 항의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중동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자행되는 집단 살상에 기독교인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저는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독교인에 대한 집단 살상에 화가나 미칠 지경입니다”고 말했다. 나는 이 현상을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타깃이 되는 사람들은 모두 시리아 정교회, 마론파, 칼데아 같이 분파에 속한 중동 기독교인들로, 이들은 서구 기독교인들에게는 매우 낯선 개념이기 때문에 그냥 하나같이 무슬림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프레이저는 나머지 시간을 유대교와 그 자매 신앙인 기독교간의 융합에 대해 다뤘다. 그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단언했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대부분 아랍인들이 거주하는 나사렛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과거 난민구치소였지만 지금은 호텔로 개조된 건물에서 점심을 먹었다. 꼬불꼬불한 길로 언덕을 오르니 쓰레기에 뒤덮인 산비탈이 보였다. 누군가가 우리의 가이드였던 데이비드에게 물었다. “여행에서 보는 아랍도시마다 왜 모두 쓰레기로 뒤덮여 있는 건가요?” 또 다른 사람이 질문했다. “아랍인들이 어떻게 나사렛에 살게 됐나요?” 데이비드는 유대인들이 나사렛에 대규모로 거주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나사렛은 항상 아랍 도시였고, 성지순례를 오는 기독교인들을 위해 아랍인들이 세운 도시라는 것이다. “아랍인들이 유대인들에게 빼앗은 건 아니에요”라고 데이비드가 설명하자 모두가 실망하는 눈치였다.
 
미스가브 암(Misgav Am)에 도착하자 입구 표지판에는 ‘세상 끝의 키부츠’라고 쓰여 있었다. 이스라엘 건국 2년 전인 1945년에 지하 민병대인 조직인 하가나(Haganah)에 의해 세워진 그곳은 키부츠들이 사라지면서 유명해졌다. 성벽 안에는 세 개의 군사정보부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 주민들은 사해(Dead Sea) 주변에서 공예 비누를 만드는 자유분방한 키부츠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들은 헤즈볼라가 수류탄을 살짝만 던져도 닿을만한 지척에 사는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농부들이었다.
 
미스가브 암에서 거주한지 오래됐다는 사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덥수룩하고 얼굴에 걸쳐 넓게 기른 그의 회색 수염은 노쇠한 버전의 요새미티 샘(Yosemite Sam)(9)을 연상케 했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 말에 기분이 나쁘시다면 용서를 구하겠습니다만, 제가 무슨 의도가 있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촌뜨기들입니다.” 바로 그 이스라엘 촌뜨기는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나 1961년,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확신이 선 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고 했다. 그는 “네 개 반의 전쟁에 참전해” 이스라엘 편에서 싸웠다고 말했다. “저는 1967년 예루살렘 해방 당시 낙하산 부대원들과 함께 했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나에게 자비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나는 내 적들을 포용할 마음도 전혀 없고, 그들을 향해 총을 쏘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습니다. 아침마다 흰색의 작은 알약을 먹으면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밤마다 정말 잠이 잘 옵니다”고 말했다. 청중들은 크게 웃었다.
 
그 이스라엘 촌뜨기는 말했다. “여기서는 일단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손에 쥐고 있으면, 그 사람이 주인인 것이죠.”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헤즈볼라들은 각오가 대단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도 마찬가지죠. 일부는 평화를 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떻게 해서든 이스라엘을 파괴시키고자 혈안이 돼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곳에서는 무고한 민간인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단지 전투원과 비전투원만 존재할 뿐이죠.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무고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항상 순수하죠.”
 
그 이스라엘 촌뜨기의 설명이 끝나자, 투어 일행들은 그곳에서 나오면서 방금 들은 이야기에 대해 서로 웃고 떠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를 인솔하던 가이드 중 두 명이 지나가며 서로 대화하고 있었다. 한명이 다른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딱 저렇게 이야기 하고 싶은데, 그러다가는 아마 잘릴 거야.”
 
하루 여행 일정의 윤곽이 이제 그려졌다. 무식할 정도로 이른 시간에 모닝콜을 받고 일어나 아침 뷔페를 잔뜩 먹은 뒤, 버스를 탄 후 이스라엘 군인을 만나고, 점심 뷔페로 배를 필요 이상으로 채우고, 강연을 하나 듣고는 모순적이게도 “휴가 중에 휴가가 필요해”라는 표현을 썼다. 다시 버스를 타고 명소를 몇 곳 둘러보고, 이스라엘 군인을 좀 더 만나고, 버스를 타고 다시 “휴가 중에 휴가가 필요해”라고 말하며, 호텔에 체크인 한 후 저녁 뷔페로 다시 과식을 하고는 침대에 떡이 돼서 곯아떨어지는 것이 일정의 전부였다.
 
그날 밤, 처음 묵는 예루살렘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트리샤와 나는 우리의 가이드 데이비드와 마주쳤다. 그는,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했다. 우리는 계속 걸어가며 “내일 봐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아니오, 안녕히 계세요”하고 말했다.
우리는 발을 멈췄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10분 전에 제너시스 투어 대표가 데이비드를 따로 불러서는 5호차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 데이비드를 더 이상 가이드로 고용하지 않겠다고 투표했다는 사실을 그에게 전달한 것이다. 나는 내가 아는 한 그런 일은 절대 없었다고 데이비드에게 이야기 했고, 그는 내 말을 듣고 약간 기운을 차린 듯 보였다. 데이비드가 아내에게 전화를 하겠다며 방으로 돌아간 후, 트리샤와 나는 5호차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 한 모두 불러 모았다. 그들 모두 데이비드를 아웃시키자는 비밀 투표는 금시초문이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투어가 막바지 일정에 다다를 즈음 5호차에 올라타자 다음 날은 “감정을 자극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곧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인 야드 바셈(Yad Vashem)에 방문한다는 의미였다.
 
야드 바셈의 콘크리트 피라미드 복도를 거닐다 보면, 이스라엘이 중동 지역 내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여기에 더해서 세계 최후 초강대국의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안보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끼고 있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유대인들이 가장 잘 중동에 동화되고 다재다능했는데도 불구하고 대륙 전체가 공모하여 이스라엘을 쫓아내려 했던 것을 많은 시민들이 아직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오는 민족적 두려움은 점점 분열해가는 이스라엘 사회를 한데 묶는 요소이며,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무슬림과 기독교인, 이스라엘 시민과 점령된 주체들로 구성돼 있는 팔레스타인 사회 또한 민족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분노와 굴욕을 바탕으로 똘똘 뭉쳐 있다.
 
트리샤가 오래된 나치 선전용 영화를 보러 간 사이, 나는 소멸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야말로 이스라엘인과 미국 보수주의자들을 잇는 연결 고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스라엘인들은 과거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고,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점령의 압박 속에 무너지고 있고, 백인 보수주의자들의 문화적 우월성은 급변하는 인구의 압박 속에 와해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경에 직면하고 있는 양쪽 모두 단기적 해결책을 시도했다. 그것이 바로 광적인 종교 지지 기반의 정치적 힘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치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대중의 분노가 어젠다를 지배하게 됐고, 이제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도 없다. 같이 5호차에 타고 있던 어떤 사람이 한 말이 생각난다. “이스라엘 국기를 몇 개 샀어요. 그걸 보면 사람들은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글·톰 비셀 Tom Bissell
언론인

번역·오정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미 보수주의 방송인이자 작가, 정치 평론가로 자신이 진행하는 ‘러시 림보 쇼(The Rush Limbaugh Show)’로도 유명하다. 
(2) 미국 변호사이자 작가로,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 ‘마크 레빈 쇼(The Mark Levin Show)’의 진행자다. 
(3) 보수주의 성향의 칼럼니스트이자 작가, 강연자로 활동하며, 전국으로 방송되는 라디오 프로그램 ‘데니스 프레이저 쇼(The Dennis Prager Show)’의 진행자다. 
(4) 1903년 러시아에서 출판된 반유대주의적 책으로, 전 세계를 정복하려는 유대인의 계획을 주장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5) 1969년 열렸던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가리킴. 
(6)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를 인정하고 분쟁을 끝내기로 한 평화협정 (1993-1995) (출처 및 참고: http://www.humanrights.go.kr/hrletter/110901/pop01.html)
(7) 미 신경외과 의사로,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기도 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자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고, 가장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고 나섰다. 
(8)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대표적인 일간신문. 1912년 창간되어 1991년 소련 붕괴 전까지 공산당의 기관지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9) 워너 브라더스에서 1930년부터 1969년까지 제작한 단편 애니메이션 <루니 툰>에 등장하는 캐릭터. 작은 키에 덥수룩한 붉은 수염을 한 남자 캐릭터다.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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