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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켠 촛불] 15. 흉터
[바람이 켠 촛불] 15. 흉터
  • 지속가능 바람 기자
  • 승인 2016.12.12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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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시청역 4번 출구. 나오자마자 초를 샀다. 어둠을 밝힐 빛의 행렬에 동참할 녀석이다. 달그락거리는 종이컵이 영 불안하다. 행여나 타인의 옷에 붙어 불이 번질까 어깨 위로 초를 높게 든다.

 

사람들이 밀집되어있는 곳으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가방 안에 있던 이면지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대형 스피커로부터 나오는 큰 목소리에 따라 연신 구호를 외친다. 한참을 소리치고 난 후 촛불 파도타기를 진행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린다. “여보, 파도타기 한 대!”, “언니 파도 파도.”일렁거리는 빛의 파도를 이룰 생각에 들뜬 사람들은 물결이 오기를 기다리며 각자의 촛불을 아래로 내린다.

 

 

불씨가 잘 살아있나, 손에 쥔 촛불을 요리조리 살펴본다. 걱정과는 달리 초는 겁이 날 정도로 활활 타오른다. 어느새 종이컵 벽은 까맣게 그을려졌으며 심지는 고꾸라져있다. 종이컵 안으로 ‘달그락’의 원인인 빈틈이 보인다. 멍하니 촛농이 초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보다 초를 잡고 있던 손 검지에 갑작스러운 통증을 느낀다. 찬바람에 금세 굳어버린 촛농을 황급히 떼어냈다.

 

집회를 다녀오고 나서 전에 없던 습관이 생겼다. 검지 첫 번째 마디를 수시로 만지는 것. 딱딱하고 거친 표면의 흉터가 굳은 촛농의 자리를 대신한다.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다. 탄핵 관련 기사를 읽으며 무의식적으로 흉터를 만지고 있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흉터에 가만히 손을 대 본다. 그날의 분노로 찬 함성, 함께 따라 부르던 노래가 들린다. 세월호 유가족의 발언을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2013년 2월 25일,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로 부풀었던 국민의 심리는 절망과 분노로 바뀌어왔다. 국가에 대한 불신. 무너져버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존심. 희망으로 빛나던 초는 곧 분노로 타올라 초는 빠르게 녹아내린다. 국민의 가슴 속엔 촛농에 덴 흉터가 남았다. 홧홧한 열기에는 무뎌졌지만 그 거친 표면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시대의 아픔을 담은 이 흉터는 끝나지 않은 과제가 있노라 말한다. 헌법 재판소의 심판이 남았고 연루된 인물의 판결이 남았으며 정치 향방에 관한 논의가 남았다. 마침표를 찍기엔 아직 이르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바람 대학생 기자단이 11월 27일부터 매일 연재하는 [바람이 켠 촛불] 기획기사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항 중인 촛불에 동참합니다. 


양지수 / 바람저널리스트 (http://baram.news / baramy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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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 바람 기자 baramyes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