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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켠 촛불] 17. 파잔 의식
[바람이 켠 촛불] 17. 파잔 의식
  • 지속가능 바람 기자
  • 승인 2016.12.1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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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아침 강화도 북단 모 부대. 북한을 코앞에 둔 최전방 초소는 고요했다. 두어 살 어린 선임은 감시의 눈길을 피해 몰래 잠들어 있었고, 나는 홀로 졸린 눈을 비벼가며 차가운 금속 총열을 놓칠 새라 꼭 움켜쥐었다. 좌측 가슴 위에 달려있는 얄팍한 두 줄. 이등병을 갓 탈출한 나에게 초소 밖의 풍경은 곧 세상의 전부였다.

 

계절이 무색하리만큼 날은 제법 쌀쌀했다. 경계근무를 철수한 이후 먹는 늦은 아침. 부지런히 숟가락을 놀리던 찰나 무뚝뚝하기 그지없던 맞은편 선임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짐을 포착한다. 심상치 않은 낌새에 고개를 들어 TV를 쳐다본다. 믿기 힘든 광경에 두 눈을 의심한다. 집채만 한 여객선이 처참하게 침몰하고 있었다. 브라운관을 넘어 생생히 느껴지는 아비규환의 현장. 식사를 마친 이후 볕이 잘 드는 담벼락 아래 쪼그려 앉아 꺼내 문 담배. 그렇게 한참동안 아무 말 없이 연기를 뿜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언론을 통해 밝혀지는 희생 규모는 커졌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매일 저녁 TV앞에 앉아 뉴스를 시청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출되기를 희망했고, 나중에는 한 구의 시신이라도 더 수습되기를 희망해 보았다. 스물 초반의 장정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단체로 무기력증에 걸린 마냥 부대에는 한숨이 가득했다. 모였다 하면 상황 전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고,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에 대해 수근 거렸다.

 

그 무렵 사령관의 지시가 떨어졌다. 모든 병력은 그의 명령에 따라 태극기를 군복에 부착해야 했다. 나 역시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한 땀 한 땀 묵묵히 바느질했다. 국가의 역할과 책임이 부재된 현실에서 애국심을 종용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감히 불만을 토로할 수 없었다. 사회와 분리되어 신분상의 제약을 짊어진 이들의 한계였다.

 

‘나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는 대한민국 군인이다.’ 매일 아침 사열대 앞에 모여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고 군가를 불렀다. 참사와 연관된, 혹은 책임을 져야할 대다수의 이들은 우리의 직속상관이었다. 그들을 비난하는 것. 이는 곧 반기를 표하는 일이었다. 매일 새벽 초소에 들어가 끓어오르는 분을 삭이며 경계근무를 섰다.

 

무능력하고 부도덕한 이들을 위해 청춘을 헌납하는 일은 꽤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들에게 난 절대적 통제의 대상이었다. 괴로움을 이기다 못해 현실을 외면하고자 눈을 감았다. 나름대로 강구한 생존의 방식이었다. 입을 오므렸으며 귀 역시 틀어막았다. 그렇게 장장 14개월을 흘려보냈다. 영원할 것 같던 상처는 아물었으며, 고통 역시 무뎌졌다. 어느덧 난 청맹과니가 되어있었다.

 

이듬해 여름 난 전역했다. 제법 자라난 머리카락을 만질 수 있을 무렵, 아침 식사 도중 진상 규명 목적의 청문회 소식을 접한다. 옛 상관들은 여전히 부도덕하고 무능했다. 허나 소식을 접하는 나는 이제 평안하다. 우리 안의 삶은 안락했다. 그날의 기억은 어느덧 지겨운 세상 돌아가는 몇 소식의 하나쯤으로 치부되었다.

 

저녁 식사 이후 양치질을 하던 찰나 낯익은 흔적을 발견한다. 좌측 어깻죽지 위 새겨진 태극기. 옷장 구석에 처박힌 군복에는 먼지가 쌓여 갔지만 어깨위의 흔적은 도통 희미해지질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의 계절을 더 보냈다.

 

다시 돌아온 겨울, 눈발이 흩날리는 주말 저녁. 옛 한양 도성의 정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살을 에는 추위조차 불사하고 운집한 백만 군중의 함성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들을 따라 외치고 싶지만 소리를 내뱉지 못한다. 예부터 반역은 3족을 멸하는 멸문지화(滅門之禍)의 형으로 다스렸던가. 아직 온전히 떨쳐내지 못한 두려움이 몸 안에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그래 도망치자. 견디다 못해 자리를 뜨려 하지만, 사방이 가로막힌 탓에 옴짝달싹할 수 없다.

 

 

어느덧 누군가 건넨 태극기와 양초를 쥐고 있는 두 손. 옛 상관의 이름이 적힌 종이컵, 그 속에서 타오르는 초를 바라본다. 반복되는 군중의 함성에 초가 세차게 타오른다. 극형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의 의연함에 탄복한다. 나는, 왜.

 

허리를 곧추 세운다. 고개를 들어 옛 도성 뒤 구중궁궐을 쳐다본다. 살아남기 위해 숨겨온 야생의 본능. 그 쌓아온 울분을 토해낸다. 진심을 다해 전합니다. 당신들은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묵혀낸 말을 속 시원히 내뱉는 전역 병사의 외침은 밤새토록 계속되었다.

 

2016년 12월 3일. 코끼리는 그렇게 야생으로 돌아갔다.

 

*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코끼리는 대부분 야생에서 강제 포획된 뒤 야생성을 지우는 ‘파잔 의식’을 거친다. 파잔이란 2~3년 된 새끼 코끼리를 어미 코끼리와 분리해 비좁은 우리 안에 가두는 것이다. 파잔 의식 중 절반의 새끼 코끼리가 죽는다. 학대를 견뎌내고 우리 앞에 전시되는 코끼리는 굉장히 영리한 동물이다. 이는 곧 자신과 타인을 인식해, 자신을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바람 대학생 기자단이 11월 27일부터 매일 연재하는 [바람이 켠 촛불] 기획기사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항 중인 촛불에 동참합니다. 


김태경 / 바람저널리스트 (http://baram.news / baramy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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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 바람 기자 baramyes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