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바람이 켠 촛불] 34. 마지막
[바람이 켠 촛불] 34. 마지막
  • 지속가능 바람 기자
  • 승인 2017.01.01 1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지훈

 

마지막은 묘하다. 한 순간 느끼는 모든 감정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겠지만 마지막은 특히 그렇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데에서 느끼는 부담이나 초조함 따위가 만들어내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누군가나 무언가와 헤어지는 데 대한 반응이거나.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건가 싶은 일이 막상 끝나면 시원섭섭하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졸업식이 있는 2월마다 그랬다. 이리저리 친구들을 불러 모아 사진을 찍고 꽃다발을 나눠주거나 밀가루를 던지고 나면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이른 시간에 학교 울타리를 나와서 맞는 시간이 짜릿해서 신났지만 허탈하고 허무했다.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마지막은 기대를 품는다. 12월 마지막 날이 오면 생각도 많아지고 기대도 커진다. 1년 동안 잘한 일 못한 일을 따져보기도 하고 새해에 세웠던 다짐을 12월 끝자락에서 돌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지난 열두달을 되짚다보면 고마운 일, 미안한 사람, 서러웠던 시간이 흘러 지나간다. 스치는 기억들을 붙잡고 이리저리 연락을 돌리는 시간이 지나면 이제 다짐을 할 차례다. 대개는 내가 어떻게 변해야지 하는 것들이다. 살을 뺀다든가 운동을 해서 몸을 키운다든가. 꼭 눈에 보이는 부분이 아니더라도 성격이나 습관을 바꾸겠다는 약속도 자주 한다. 이렇든 저렇든 희망을 담은 다짐이다. 주체가 나를 넘어서 더 넓어지기도 한다. 나는 제법 머리가 큰 뒤부터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바라왔다. 비상식이 점령한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 삐딱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들 바라는 게 다르니 모두 이뤄지기는 어렵다. 내가 했던 다짐이나 꿈꿨던 것들도 돌아보면 많이 사그라졌다. 다짐이야 흔히 말하는 대로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 해도 내가 바라는 세상이 멀게 보일 때는 야속하기도 했다. 소원이 성취되는 총량이라도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더러 했다. 그래서 요즘은 연말도 별다른 기대 없이 무던하게 보낸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바라는 것 없이 송구영신하기로 마음먹은 걸 기억해야 할 만큼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아서 그랬겠지 짐작만 할 뿐이다. 아니면 내가 바란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그게 서글퍼서 작심하고 잊기로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랜만에 새해를 맞으면서 기대를 하게 됐다. 매주 십만, 백만이 쌓여 천만이 외친 목소리에 내 기대를 더했다. 누군가에게 불행일 것을 기대해야 하는 처지가 퍽 유쾌하지는 않다. 그의 슬픔에 기뻐할 수 있다는 게 반갑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와의 마지막을 바란다. 내가 바라는 마지막은 시원섭섭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대통령 박근혜의 마지막을 기다린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바람 대학생 기자단이 11월 27일부터 매일 연재하는 [바람이 켠 촛불] 기획기사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항 중인 촛불에 동참합니다.

 

 

동지훈 / 바람저널리스트 (http://baram.news / baramyess@naver.com)

지속가능 바람 (baramyess)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감에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젊은 사업가들, YeSS는 나눔과 배려의 세상을 조명합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지속가능 바람 기자
지속가능 바람 기자 baramyes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