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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집단지성, ‘박정희 모델’에 종말 고하다
광장에서 집단지성, ‘박정희 모델’에 종말 고하다
  • 백낙청 전 서울대교수
  • 승인 2017.01.0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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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 2016-권재원
현 상황은 시민혁명의 국면이다. 개인적으로 ‘2013년 체제 만들기’ 등 ‘대전환’을 주장해왔으나 시민혁명을 예견하지는 못했다. 헌재 판결, 특검 수사 등 국민의 직접행동이 분명한 응답을 요구하는 문제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탄핵가결 후 추운 날씨에도 전국적으로 계속되는 집회는 232만 명이라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로 국회의 탄핵가결을 강제한 12월 3일의 6차 집회에 못지않은 의의를 지닌다 하겠다. 
 
이는 앞으로 더 난해한 문제를 두고도 시민참여가 지속되리라는 예상을 가능케 하며, 이번 혁명이 ‘미완’으로 끝나지 않을 개연성을 높여준다. 이것만으로도 세계사적 의의를 지니는 대사건이다. 강경한 요구를 하면서도 시종 평화적이고 질서정연했을 뿐더러, SNS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소통과 축제의 마당을 형성했으며 다양하고 창의적인 참여방식을 개발했다. 과거의 평화혁명(예컨대 89년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에 비해 규모가 훨씬 큰데다 (군사독재를 무너뜨린) ‘87년 체제’ 하의 혁명이라는 점에서 특히 각별하다.  
 
그러나 검찰개혁, 재벌개혁, 선거제도개혁, 공정인사, 부패척결, 피해자구제 등 다음 단계의 과제들은 하나같이 숙의(熟議)와 입법의 과정을 요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촛불혁명이 대중의 동력을 보존하면서 이 과정에 어떻게 적응하고 진화하느냐에 따라 혁명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박정희모델’에 
확실한 종말을 고하다
 
이런 상황일수록, 우리가 극복하고자 하는 사회체제 내지 ‘모델’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박근혜 탄핵과 더불어 ‘유신시대’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는 주장으로부터 ‘박정희모델’은 경제성장을 절대시하는 모델이므로 이를 극복하는 일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주장, 또 경제성장 자체보다 국가주도의 발전국가 모델이므로 대안적 모델을 만들어냄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시대가 가능해진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언설이 분분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신정권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집념이 강했고, 이제 그런 시도에 확실한 사망선고가 내려졌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로 유신체제는 1979년 부마행쟁과 10.26 사건(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으로 붕괴됐다. 물론 전두환 정권에 의한 아류 유신독재가 6월항쟁 때까지 이어졌으나, 이후 유신시대를 되살리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경제성장 추구는 자본주의의 일반적 속성이므로 그것과 ‘박정희모델’을 동일시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성장의 수많은 길을 단순화할 뿐 아니라, ‘박정희모델’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폐단도 따른다. 실제로 1970년대 이래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신자유주의도 여러 면에서 발전국가 모델과 상충한다. 반면, ‘박정희모델’을 국가주도의 발전국가 또는 ‘개발독재’ 모형이라고 말한다면 한결 흡사하다. 하지만 그 성립조건으로 반드시 꼽아야 할 사항은, 한반도의 분단과 남북의 대결상태 그리고 지구적 차원의 냉전체제라는 현실이다. 그러한 배경 없이는 독재정치와 경제성장의 결합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5.16쿠데타 공약 제1조만 봐도,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라며 도탄에 빠진 민생을 건지는 것과는 일견 거리가 있는 구호를 내세웠고, 7·4공동성명 등 남북화해를 지향하는 듯한 조치도, 철저히 박정희 자신의 권력보전과 개발독재국가 강화에 이용됐다.
 
‘87년 체제’가 1961년 이후의 군사독재는 종식시켰지만, 독재의 든든한 기반을 제공했던 1953년 이후의 분단체제를 흔들었을지언정 청산하지는 못했다는 진단은 바로 ‘87년체제’의 이런 본질적 속성을 지적한 것. ‘87년체제’의 이런 ‘태생적 한계’로 인해 분단체제를 본격적으로 허무는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이루지 못할 경우, ‘87년체제’는 온갖 퇴행적 증후에 시달리게 마련이었고, 다름 아닌 2008년 이후의 현실이 꼭 그랬다.
 
 수구보수세력이 한반도의 분단현실을 철저히 의식하고 틈만 나면 ‘종북몰이’ 또는 ‘안보위기’ 조성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강화해온 반면, 대안적 비전을 표방하는 많은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분단이 되지 않은 외국의 ‘선진적’ 모델을 아무 자의식 없이 이 땅에 이식하려는 현상은 실로 ‘후천성 분단인식 결핍 증후군(Acquired Division-Awareness Deficiency Syndrome, ADADS)’이라고 부름직하다. 종북몰이의 간접적 영향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번 촛불혁명의 큰 성과 중 하나는 드디어 종북담론이 약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인 듯하다.
 
‘무엇’을 해낼 이는 
결국 ‘누구’인가
 
지금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박근혜 이후 ‘누구’가 아니라, 박근혜 이후 ‘무엇’을 말해야 한다”는 지적은 옳다(김연철의 ‘세상 읽기’, <한겨레> 2016. 12.12). 그러나 그 ‘무엇’을 해내는 건 결국 ‘누구’인가. 더구나 탄핵소추가 조기에 (헌재에서) 인용되면 60일 이내에 대통령선거가 치러지고 선거에 이긴 후보는 당선증을 받는 순간 대통령이 된다. 인수위를 만들 시간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까지는 “잿밥에만 눈독을 들인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누구’ 이야기는 삼갈 수밖에 없었고, 어차피 특정 후보를 거들거나 깎아내리는 듯한 발언은 독립적인 지식인으로서 부담스럽게 마련이다. 나 역시 이런 점을 의식해서 특정인을 거명하지는 않으려 한다. 
 
하지만 시민들이 촛불혁명으로 기껏 세상을 바꿔놓았는데, 유독 다음 정권의 행방만은 낡은 시대에 만들어놓은 틀에 따라 각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고 그 중 한명에게 표를 주라고(차선이 아니면 차악이라도 고르라는 식으로) 들이미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광장의 민심이 후보선정 과정에 어떻게 개입하느냐가 문제다. 100만, 200만이 모인 군중들이 인기투표로 후보를 결정할 일도 아니고, 특정한 시민집단이 ‘시민의회’를 자임하는 것도 대표성의 문제를 낳는다. 일부 정당에서 구상하는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협치기구’ 역시 상설기구가 되는 순간 감당하기 힘든 반대에 시달릴 것이며 어차피 정당들은 시민사회를 들러리로 세우려 할 것이다.
 
답은 역시 이제까지 광장이 해온 대로, 다양하고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집단지성의 작동을 꾀하는 것이다. 일종의 ‘만민공동회’를 여는 것은 어떨까. 만민공동회는 상설기구가 아니므로 일회성 모임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딱 한 번만 열라는 법은 없으며, 한 군데서만 주최하라는 법도 없다. 만민공동회에서 유력 대선후보들이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고, 촛불정국에서 자신이 잘한 것과 잘못한 것에 대한 솔직한 자기평가를 들어봄직하다. 
 
이때 분임토의를 갖고 의제별로 ‘선호도 투표’를 한 뒤 인터넷으로 공유하는 방법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물론 처음부터 만족스러운 방식이 나오기는 힘들겠지만, ‘누구’의 문제를 두고 이런 실험을 시작하는 일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이면헌법’의 폐기, 가장 시급한 개헌
 
세상이 바뀌면서 헌법이 그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지, 헌법을 바꿔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은 유치한 발상이거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계책일 수 있다. 촛불혁명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헌법도 적절히 개정돼야 함은 당연하다. 문제는 국민의 요구대로 헌재판결이 앞당겨진다면 개헌을 할 물리적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 그리고 광장의 시민들이 요구한 것은 ‘헌정파괴 대통령의 퇴진’이지 ‘개헌’이 아니다. 이 점에서 전두환 정권의 ‘호헌’(=제5공화국 헌법의 고수)에 맞서 ‘호헌철폐’를 외친 ‘6월항쟁’과 뚜렷이 대조된다.
물론 개헌론자들이 고치자는 조항들은 촛불시민들이 지키고자 한 헌법 제1조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조항을 어떻게 고칠지에 대해 자기네들끼리도 합의가 안 된 상황에서 개헌을 하겠다는 것은 광장의 정치적 동력을 국회의 개헌논의로 수렴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더구나 대선 전 개헌이 가능한 물리적 시간을 벌려면 헌재가 광장의 민심을 거역하고 박근혜 씨의 소망대로 판결을 최대한 늦춰줘야 하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지금은 개헌을 말할 때가 아니다”라는 거부의사로 일관하는 유력 대선후보의 입장이 온당한가 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지금은 개헌을 할 때가 아니지만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개헌을 말하기에는 충분한 때다. 때가 오면 어떤 개헌을 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하면서 언제 어떤 식으로 그걸 해내겠다는 약속을 할 필요가 있다. 아니, 정치인들이 개헌논의를 각자의 이해타산에 따라 진행한다는 비판을 피하고 촛불혁명의 동력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막기 위해, 11월에 구성된 ‘8인 정치회의’를 다시 소집하는 게 좋지 않을까. 8인 정치회의, 또는 앞서 언급한 ‘만민공동회’를 통해 대선 전에 무리한 개헌을 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다음 정권에서의 조속한 개헌을 위해 논의를 시작하고 상호 협력하겠다는 선언을 하면 어떨까. 
 
헌법을 논의할 때 잊어서는 안 될 점은 대한민국에는 공포된 성문헌법 이외에 일종의 이면(裏面) 헌법이 있다는 현실이다(졸저 <2013년체제 만들기> pp.144~147). 통진당 해산판결 당시 헌법재판소 스스로 밝혔듯, 대한민국의 법질서는 “북한이라는 반국가단체와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운용되는 것으로서, 헌법 제1조나 10조, 11조 등이 보장하는 국민의 온갖 권리들도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따라 제약될 수 있다. 그 단적인 표현이 다름 아닌 국가보안법인 셈이다. 
 
실상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개헌은, 이 이면헌법의 폐기다. 이는 성문화된 조문이 아니므로 국회에서 개정할 성질이 아니다. 폐기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남북관계의 개선 및 발전을 통해 북한을 ‘반국가단체’로서보다 교류‧협력 및 궁극적 재통합의 대상으로 보는 국민의식의 진전이며, 두 번째는 이면헌법을 믿고 온갖 부정부패와 국정농단을 일삼는 무리들에 대한 응징과 척결이다. 그러나 첫 번째 남북관계 개선의 경우, ‘87년 체제’ 첫 20년 간 상당한 진전을 보였으나 2008년 이래 역진을 거듭했다. 그 결과 이번 촛불군중들 간에도 ‘남북관계 개선’이 화급한 과제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반면 두 번째 방법의 경우, 촛불혁명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전례 없는 진전을 기대해볼 만하다. 퇴진과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들을 옛날처럼 ‘빨갱이’, ‘종북’ 등으로 몰려는 시도들이 오히려 비웃음을 사고 있는 추세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사회개조의 성과로 나타날 때 남북관계 발전에도 새로운 계기가 열릴 것이다. 그렇게 돼야만, ‘촛불 이후’의 한국이 ‘87년체제’보다 훨씬 건강한 토대 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글·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계간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을 맡아 진보적 평론활동으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글은 12월 15일 3기 한반도평화포럼 아카데미 강의의 원고로, 한평포럼의 승낙아래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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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전 서울대교수
백낙청 전 서울대교수 info@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