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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켠 촛불] 43. 외로움을 기댈 곳
[바람이 켠 촛불] 43. 외로움을 기댈 곳
  • 지속가능 바람 기자
  • 승인 2017.01.12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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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산책을 좋아했다. 평소에 잘 하는 게 무엇인지 질문을 받으면 별 생각 없이 걷는 걸 잘 한다고 답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끊임없이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요구받는 몸과 다르게 정신은 정처 없이 노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런 생각 없이 걷게 되면 ‘정처 없는 정신’과 ‘정처 없이 발길을 옮기는 몸’이 그나마 일치하는 기분이 든다. 어쨌든 나름 이유를 설명하자면 그렇다.

  

거창하게 말을 꺼냈지만 쉽게 말하자면 외로운 것이다. 외로움은 혼자라는 말과는 다르다. 그동안 나는 혼자 있는 게 싫어서 억지로 사람들 속에 나를 밀어 넣었다. 만난 사람들 중에는 좋은 사람도 있었고 싫은 사람도 있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나는 외로운 나머지 누군가에게 잠시 동안 나를 맡겨 버렸고, 집에 돌아와서는 밑바닥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전전긍긍해하며 잠에 들기 바로 직전까지 뒤척였다. 손쉽게 누군가를 동정했고 그 사람도 나를 연민하길 바랐으며 그런 교환이 관계를 만든다고 굳게 믿었다. 아니, 교환도 아니다. 그건 나의 일방적인 밀어붙임이었다. 아무것도 되돌아오지 않자 관계에 실망하고 계속해서 다른 이에게 알량한 기대를 걸고 다시 실망하길 거듭했다.

  

한 때는 이 외로움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줄 수 있는 운명의 짝을 만날 것이라고, 보다 시간이 지나 외로움은 짊어지기보다는 안고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언젠가 나는 충분히 성숙해져서 외로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자주 ‘정처 없음’을 느끼고야 마는 것이다.

  

이렇게 진득거리고 질척이는 내가 싫어서 잠시 다른 땅으로 떠났다. 학생 신분의 이점을 백분 활용해 미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했다. 외로움을 견딜 수 없게 되자 차라리 철저히 혼자됨을 택했다. 커다란 외상이 없는 데에도 이러고 있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를 불쌍해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10개월간 혼자가 되어보니 결국 나는 사랑 받기만을 갈구했지 진실로 다른 사람을 이해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외롭다는 감정은 오히려 오만에 가까웠고 나는 주변 사람들을 재단하고만 있었다.

  

그렇게 타국에서 긴 산책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익숙했던 땅에 다시 발을 붙이자마자 익숙한 불안이 다시 나를 엄습했다. 어떤 일이든 해야 할 것 같아서 이것저것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달라진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나였던 것이다. 한국에 도착한 것은 여름이었지만 계절이 한 차례, 두 차례 바뀌자 시국은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엄중해졌다. 선출된 대통령이 아닌 사람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국가를 주물렀다는 것이 드러났다.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기득권들은 적극적으로 그 일에 가담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들이 모두 사실로 밝혀지자 사람들은 분노했다. 촛불들이 광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일상이 바빠 시위 참가를 뒤로 미뤘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2호선 신촌역,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그놈의 외로움이 도진 탓에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가볍게 ‘뭐해, 어디야?’라는 질문에 친구는 ‘가족이랑 시위 나왔어.’라고 답했다. 내 목적지는 광화문과는 완전 반대 방향인 사당 쪽이었다. 잠시 망설임이 일었다. 어느 쪽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느냐에 따라서 내 목적지는 완전히 바뀔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 친구는 엄마와 찍은 사진으로 답장했다. ‘엄마랑 광화문.’ 짧은 문구가 그 밑에 도착해있었다.

  

이전에도 몇 번 친구들과 시위에 나간 적은 있었지만 혼자 간 적은 없었다. 이 와중에도 시위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양심의 가책보다도 함께 갈 누군가가 없다는 외로움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머뭇거리다가 친구에게 답장을 보낸다. ‘나도 광화문 가야겠다.’

 

혼자 나간 시위는 여러 모로 달랐다. 밤이고 낮이고 몇 번 와본 거리인데도 낯설게 느껴졌다. 촛불을 파는 노점 중 아무데서나 촛불을 사들고 사람이 가득한 차도로 나섰다. 밤이 뒤덮은 광장은 촛불들로 넘쳐났다. 나는 그 속에서 얼굴도 이름도 그 무엇도 밝힐 필요가 없었다. 오직 촛불 하나만 밝히면 되는 것이다. 당연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광장에 나온 이유 또한 나와 다를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 사람도 외로운 사람이고,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외로움을 기댈 곳 없어 광장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자 기묘한 위안이 들었다. 다시 날이 밝아오면, 나를 포함해서 이들 모두가 광장 밖에서 정처 없어질 것을 알지만 말이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바람 대학생 기자단이 11월 27일부터 매일 연재하는 [바람이 켠 촛불] 기획기사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항 중인 촛불에 동참합니다.

문선영 / 바람저널리스트 (http://baram.news / baramy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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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 바람 기자 baramyes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