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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개가 공을 사랑하듯이 인간이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안치용의 프롬나드] 개가 공을 사랑하듯이 인간이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 안치용 기자
  • 승인 2017.01.16 2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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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개가 공을 사랑하듯이 인간이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ㆍ드라마의 대사나 유행가 가사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접할 수 있는 표현이 아마도 “사랑했지만~”일 게다.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대를 떠난다는 그런 설정이다. 현실에서도 종종 목격된다. 이 관점에서 사랑은 기이하게도 사랑 가운데서 끝난다.  

반면 시간을 거슬러 사랑의 시작 시점으로 올라가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무엇 무엇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예외적인 사랑에 관한 설명이 아니다. 불구하는 ‘무엇’의 목록은 세상만큼이나 많다. 사실 모든 사랑은 ‘~불구하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물질세계와 마찬가지로 인간세계에서 두 사람 사이의 인력이 개체들의 척력을 제압하는 아주 특별한 순간에 사랑이 발발한다. 그러나 종국에는 대체로 척력이 인력에 승리한다. 앞서 “사랑했지만”은 희미해지는 인력의 장(場) 속에서 단호하게 복원되는 척력의 알리바이로 헛되이 발설된다.

대학시절 또래 남학생이 사랑에 정통한 듯 들려준 일화. 요약하면 한 남자가 한 여자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는데, 이유는 앞니 사이에 낀 고춧가루 때문이었다. 힘든 이별의 시기가 지나고 어느 날 그 남자는 자신을 떠난 그 여자를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다. 그의 눈에 들어온 장면은 그녀가 이쑤시개를 들고 다른 남자의 이 사이에 낀 고춧가루를 다정한 모습으로 빼주는 모습이었다. “사랑했지만~”을 외치며 떠난 그녀가 “~불구하고”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러나 그 ‘불구하고’가 자신에게 해당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데는 티끌만한 고춧가루로 충분했다.

나의 개 스콜이 사랑하는 대상은 많지 않다. 일단 먹을 것이 최우선 순위일 테고, 공 또한 윗순위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공에 대한 사랑은 인력과 척력의 균형과 비슷하다. 공을 좋아하지만 공 자체보다는 자신에게서 멀어지려는 공을 쫓아가서 물고 오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고는 알다시피 물고 온 공을 다시 내 앞에 내려놓는다. 다시 던지라고 재촉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소유와 합일의 방식인 식사와 공놀이는 다르다. 해리와 결합의 무한 반복은 사랑했지만 떠나보내고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되돌리는 인간사와 닮았다. 회자정리거자필반(會者定離去者必返)이다.

공에 대한 개의 사랑은 그러나 순수하게 공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했지만~”이나 “~불구하고”가 개에게서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개는 어떤 공이든 주어지는 공에 집중한다. 그에게 던져지는 한 새로운 공과 기존 공 사이에 차이는 없다. 따라서 개가 인간에 비해 공의 관념에 더 충실하다고 볼 수도 있기에, 만일 이런 견해를 수용한다면 공에 대한 개의 사랑은 순수 사랑으로 규정된다. 그러므로 개는 언제나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이다.

인간에게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고 언제나 말할 수 있는 사랑, 그런 순수 사랑이랑 없다. 사랑은 늘 불순하고 가변적이다. “~불구하고” 사랑하게 되었지만 “사랑했지만~” 떠난다. 다르게 설명하면 나의 단호함으로 시작하여 너의 불모성으로 인해 떠난다. 반면 개에게는 시작과 끝이 항상 자신에게 귀속된다. 인간의 이런 상호성 혹은 상반은 인간(人間)이란 용어에 내포된 것이기에 불순한 사랑은 인간에게서 불가피해진다. 이렇게 말해 보는 건 어떨까. 불순한 사랑이 불가피하다고 하여서 우리가 개가 되어야 하거나 사랑하기를 멈춰야 하는 건 아니다. 사랑의 본질은 순도에 있지 않고 사랑 그 자체에 있다. 결국 우린 모종의 자괴감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로 돌아가게 된다.

 

글ㆍ안치용 지속가능성과 CSR에 관심이 많다.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을 대학생/청소년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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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기자
안치용 기자 carmine.draco@gmail.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