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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설날의 개목욕과 관음증, 조윤선
[안치용의 프롬나드] 설날의 개목욕과 관음증, 조윤선
  • 안치용 기자
  • 승인 2017.01.28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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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설날의 개목욕과 관음증, 조윤선

설날이라고 다를 게 없다만, 떡국 한 그릇 먹고 나잇값을 하려고 둘러보니 개들이 빈둥거리며 소파에 누워있다. 겨울이라고 한동안 씻기지 않아서 행색이 초라하다 싶어 큰 맘 먹고 개 목욕에 돌입하였다.

개들에겐 웬 날벼락. 물 좋아하는 개는 드물다. rabies 바이러스가 개에게 있다가 사람에게 옮아오면 공수병이라 하는데, 물을 무서워하는 징후가 개를 연상케 한다. 사람과 사는 개 역시 어느 정도 체념하고 목욕을 받아들이지만 목욕이 좋을 리 없다. 예컨대 나와 사는 개들은 목욕하자고 부르면 절대 제 발로 걸어오지 않는다. 인신(?)을 구속하여 강제로 압송하기 전에 제 발로 목욕탕 문턱을 넘지 않는다.

대형견이 아니지만 소형견도 아닌 중개 두 마리를 씻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한참 동안 몸을 구부리게 돼 목욕탕 문을 나설 때 허리가 뻐근하다. 나이가 더 많이 들면 개 키우는 게 버겁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니, 설날이 맞나 보다.

그래도 노고의 보람이 뚜렷하다. 목욕탕을 다녀온 개들의 때깔이 확연히 달라졌다. 샤방샤방, 정확하지는 않으나 뭐 그런 느낌에 근접할까? 원래 털이 많고 윤기가 흘렀던 걸리버의 미모는 목욕 후에 자연해졌다.

최근 어느 매체에서 조윤선 전 장관의 사진을 연속으로 게재해 행색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는 보도에 대한 비판을 어느 정도 수긍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비판에 썩 동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보도 행태는 분명 황색 저널리즘에 가깝고 대중의 관음증에 영합한데다 여성 정치인을 성상품화했다는 원론적인 저열함까지, 무척 불편하다. 그렇지만 조 전 장관이 권력에 영합하며 꽃길을 걸은, 비싼 애완견 느낌의 여성 정치인이란 점을 감안할 때, 유기견처럼 볼 품 없어진 그의 전락에 대해 대중이 느낀 음험한 쾌감은 업(業)이 아니었을까.

불행히도 현대 사회의 정치는 철인이 하는 정치가 아니다. 당연히 대중 또한 철인일 수 없다. 어떤 대중정치인은 연예인과 비슷하게 대중의 관음증에 부합하는 방식의 이미지를 조성하며 생존한다. 전체적으로 관음증의 피해자이지만 개인적으론 관음증의 부역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관음증은 현대의 정치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형식의 하나이다. 만일 어떤 정치인이 최소한의 철학이나 신념 없이 정치를 단지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치환해버리면, 더불어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위해 자발적으로 ‘애완의 삶’으로 뛰어 들어갔다면, 결정적으로 실족했을 때, 그에게는 낱낱이 까발려질 치욕만이 예비된다.

다행히 나의 개들에겐 어떤 자발성이나 선택이 주어지지 않았기에 적어도 치욕은 없다. 어쩌다 하기 싫은 목욕을 감내해야 하는 불편 정도. 아는지 모르지만 개 목욕은 나도 힘들다.

 

글ㆍ안치용 지속가능성과 CSR에 관심이 많다. 한국CSR연구소장이며,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을 대학생/청소년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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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기자
안치용 기자 carmine.draco@gmail.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