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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에세이 당선작] 잠들지 못하는 백만 명의 양치기들
[이달의 에세이 당선작] 잠들지 못하는 백만 명의 양치기들
  • 전진영
  • 승인 2017.02.01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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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쉽게 잠들지 못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양을 백 마리 세라고 시켰다. 난 꼭 오십 몇 마리에 가서 몇 마리를 셌는지 잊어버렸다. 다시 한 마리부터 돌아가서 양을 셌다. 오십 몇 마리까지 세는 일을 서너 번 반복하면 잠이 들었다. 어릴 적의 나는 한 번도 양을 백 마리까지 세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백’은 나에게 엄청난 숫자였다. 도달할 수 없는 것, 다가갈 수 없는 것, 저 멀리에 있는 것.


 성인이 되니 이 증상을 불면증이라고 했다. 양 백 마리를 세는 것은 다른 이유로 어려워졌다. 양 한 마리가 울타리를 넘을 때마다 내일 할 일, 내가 한 말실수부터 지하철에서 읽은 기사의 내용까지 온갖 잡념들이 고개를 불쑥불쑥 쳐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학생이 돼서도 양 백 마리를 세지 못했다. 다음 날 벌게진 눈으로 한숨도 못 잤다는 나에게 사람들은 한마디씩 조언을 하곤 했는데,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예민해서 그래”였다. 내가 뭐가 그리 예민하지. 너는 사소한 것에도 화를 불쑥 불쑥 내니까. 너는 어떤 기사만 봐도 잘못됐다고 불편하다고 하니까, 밤에도 뒤척이고 그러는 거지···따위의 말을 들었다. 

 불면증이 기적적으로 치유된 때가 있었다.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몸을 노동현장에서 소진하면 밤 열한 시에도 기절하듯 잠에 들 수 있었다. 대신 ‘백’이라는 숫자도 대단한 것이 아니게 됐다. 인턴 월급으로 백만원이 넘는 돈이 통장에 찍혀 있어도 그러려니, 여행을 간다고 이백만원을 한 번에 소진해도 그러려니 했다. 숫자에 무감각해졌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무감각해졌다. 덜 예민해진 것은 철이 든 것이라고 생각했고, 드디어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또래보다 일찍 인턴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나를 부러워하는 눈들도 있었다. 그래서 돈을 좀 벌어본 척, 상사한테 욕을 좀 먹어본 척, 세상 쓴 맛은 혼자 다 본 척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3개월 간 인턴 생활을 마치고, 막 복학했을 때다. 학교에서 같은 과 선배들을 초청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기자 생활을 하는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통계청에서 자료를 받았어.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사망했는지 연도별로 좌르륵 적혀있거든. 이유도 엄청 다양해. 한국인은 어떤 암으로 많이 죽는지, 자살은 어느 연령대가 제일 많이 하는지. 그런데, 딱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더라고. 이상하게 선박사고로 사망한 자의 수가 많은 거야. 선박사고 카테고리에 10대의 사망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연도가 있는 거야. 나는 그 숫자를 그냥 숫자로 넘길 수가 없었어···.”

 선배의 말은 주기적으로 마음을 쿡쿡 찔렀다. 양 백 마리를 못 세던 내가 삼백이 넘는 숫자에 이토록 덤덤할 수가 있나. 특정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제는 지겹다고 사람들이 말할 때, 내 또래 노동자가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누군가가 사회체제 안에서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때, 슬픈 죽음이 아무렇지 않게 통계로 올라가 하나를 더한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면 소름이 끼쳤다. 

 나 역시 직접 숫자가 됐다. 광화문에 나갔을 때다. 목도리를 꽁꽁 싸매고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꼬리뼈로 스미는 냉기를 온몸으로 견뎠다. 백만 명이 모였다고 했다. 나도 숫자 하나를 더한 셈이다. 높은 사람들이 비리로 저지른 액수는 내가 받던 월급 백만 원의 백배를 넘는 것으로, 감히 체감조차 불가능한 숫자였다. 청문회에 나온 사람들은 백이면 백, 자신들은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수를 더한 백만은 이들을 대적할 수 있는 숫자가 됐다. 백만 명은 나와 같은 불면증을 앓는 사람들일 것이다. 어두운 권력의 비리 앞에 같이 잠들지 못하는 예민한 사람들일 것이다. 잠에 들어 잊어보려고 양을 세다가도 불쑥 치미는 허탈감과 분노에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잠들지 못하는 내가 위로받는 시간은 동이 틀 때였다. 카톡이 오지 않는 시간, SNS에 알림이 뜨지 않는 시간, 교회 십자가 불이 꺼지는 시간, 밝은 아침 해 때문에 마지막 남았던 아파트 형광등이 꺼지는 시간. 나와 같은 시간에 잠드는 다른 것들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았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비판의 목소리도 가할 수 없는 사물이라는 사실에 한번 더 위로받았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나와 같이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백만 명이나 됐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촛불 ‘혁명’이라고 부르는 일을 만들었다.

 새벽 세 시에 맞은편 건물의 불빛을 보면서, 불이 켜진 창문 하나가 온전히 건물의 어둠을 밝히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해가 뜨고 불이 꺼지면 혼잣말로 ‘잘 버텼어. 드디어 임무를 완수했구나.’하고 뱉곤 했다. 어두운 시간이 지나고 해가 뜰 때, 그래서 촛불을 끄고 잠을 잘 수 있을 때도 똑같은 말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대한민국에는 백만의 양치기들이, 양을 세다가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거린다.  

글·전진영
이화여대에서 언론정보학과 철학을 공부하며, 기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간은 언론고시실 51번 책상에서 보낸다. 사랑하는 것은 전혜린과 롤랑 바르트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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