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안치용의 프롬나드] 그림자와 함께 먼 산을 바라보다
[안치용의 프롬나드] 그림자와 함께 먼 산을 바라보다
  • 안치용 기자
  • 승인 2017.02.11 15: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치용의 프롬나드] 그림자와 함께 먼 산을 바라보다

서사는 하늘 아래 공간에서 일어난다. 사실 서사라고 할 것이 없었다. 너와 나 사이에 무언가 생겨났음을 갑자기 알게 된다. 펼쳐진다기보다는 첨부된다는 느낌이었기에, 사태는 힘들어간 꼬리뼈처럼 분별하기 힘들어졌고 노출된 항문이 신경 쓰였다. 괄약근에 집중하는 것으로 노출이 외면되지 않았다.

 
이메일의 첨부문서가 클릭을 기다리듯, 그것은 비(非)서사적 수줍음을 다소곳이 주장하였지만 분명 사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메일의 본문은 간략하고 건조한 게 행정명령이라도 되는 듯 심상하였다. 다만 메일의 수신자에겐 한눈에 뺑끼임이 드러났다. 겉보기에 클릭 여부는 나의 선택에 속한 일이었으나, 나에게 클릭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걸 애초에 알고 있었다. 첨부된 펼쳐짐이 결국 은폐되지는 않을 터였다.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때 이후로, 어쩌면 탄생 이전부터, 너에게 나는 첨부되었다. 길을 나설 때 나는 너를 찾지 않았지만 하늘 아래서 나는 언제나 너를 동행하였다. 우리의 여정은 예외 없이 무채색으로 점철되었다. 동행이 모면된 어느 원죄의 시간에서만 유채색의 공간이 아주 잠깐씩 날름날름 열렸다.
 

하늘이 무너지는 날에서야 우리의 동행이 완료되리라는 예감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하늘이 무너지는 날까지 너와 동행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란 생각 또한 지독한 사랑의 증상이겠다. 그러나 이 모든 정언명법은 아마도 사랑의 모독이리라. 아 나는 운명의 사랑이란 서사를 동행하지 않는다. 하늘이 주저앉을 운명이든 아니든 나는 너에게 펼쳐진다. 땅이 하늘에 파랗게 첨부되었음이, 하늘이 땅에 하얗게 첨부되었음이 부인되지 않을 뿐,

 

 

글ㆍ안치용 지속가능성과 CSR에 관심이 많다. 한국CSR연구소장이며,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을 대학생/청소년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안치용 기자
안치용 기자 carmine.draco@gmail.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