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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50살 남자의 스타벅스 사용법
[안치용의 프롬나드] 50살 남자의 스타벅스 사용법
  • 안치용 기자
  • 승인 2017.02.21 1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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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50살 남자의 스타벅스 사용법

 

회사를 떠난 후로 가끔 카페에서 일할 때가 있다. 카페 문을 열면서 눈대중으로 적당한 자리를 물색한다. 자리를 잡은 다음에 커피를 한 잔 시키고, 노트북을 켠다. 그 다음에 해야 하는 일은 와이파이를 찾아 그곳에 노트북을 연결하는 것이다.

 

간단한 몇 가지 숫자를 입력함으로써 나는 연결된다. 물론 핸드폰을 통해서 이미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만, 중복해서 연결을 확인한다. 화면이 커지면 연결이 커진다. 연결 속에서 세상은 늘 압도적이다. 세상은 압도적이며 동시에 반복된다. 어제의 연결과 오늘의 연결이 다르지 않다.

 

연결은 항상 비릿한 기시감을 자아낸다. 연결이 소속감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번잡한 카페에서 연결을 통해 나는 카페라는 공간을 탈출한다. 나는 저들과 다른 시공으로 일탈한다. 일탈이라고 해봐야 뾰족한 쾌감을 산출하지 않는다. 일상적 일탈과 불가피하고 자발적인 고립 속에서 식은 스타벅스 커피를 홀짝이는 무력감.

 

아무튼 나는 연결되어 일을 한다. 굽어진 목을 펴서 가끔 창밖을 바라본다. 누군가 지나간다. 어쩌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서로 황급히 시선을 돌린다. 당연히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지나갔다. 차가 지나간다. 개도 지나간다. 내가 탈 버스가 아니었다. 나의 개는 집에 있다.

 

창밖을 바라보며 어쩌면 내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50살이 넘은 남자가 노트북 모니터 너머를 힐끔거리며, 오지 않을 애인을 기다린다고 상상한다. 애인에겐 유통기한이 있다. 50살이 넘어서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을 켜놓은 남자에게 애인이란 상품은 유통되지 않는다.

 

카페는 기다림을 기다리는 공간이다. 기다림은 자유이지만, 기다림을 기다리는 건 덜 자유이다. 와이파이의 강도가 세면 나의 노트북이 기뻐한다. 약해지면, 하는 수 없다. 노트북 모니터가 없으면, 모니터 너머가 없어진다. 너머를 훔쳐보는 습관은 말 그대로 일종의 중독이다. 카페인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면 슬플 것이다. 기다림이 없는 세상도 슬플 것이다. 너 없는 세상이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글ㆍ안치용 지속가능성과 CSR에 관심이 많다. 한국CSR연구소장이며,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을 대학생/청소년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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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기자
안치용 기자 carmine.draco@gmail.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