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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촛불, 태극기, 개화
[안치용의 프롬나드] 촛불, 태극기, 개화
  • 안치용 기자
  • 승인 2017.03.18 2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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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촛불, 태극기, 개화 

 

 

지구로부터 1억5000만 Km 쯤 떨어진 어느 광장에서 태양의 거주민들이 대대적으로 촛불집회라도 열었을까, 토요일 오후 봄날의 햇볕이 따사롭다. 촛불과 태극기가 따로 모인 이곳처럼, 거기선 수소는 수소끼리 헬륨은 헬륨끼리 모이는 걸까. 수소끼리 모이면 아차 하는 순간에 헬륨이 될 수 있으니 수소집회 참가자들은 정말 조심해야겠다. 

 

오늘 가야 할 광장을 잃어버린 서울 시민들이 모두 약속이라고 한 듯 여기 산책을 나선 모양이다. 촛불을 켜들 까닭이 차고 넘친다 하여도 지금과 같은 호사스런 날씨에서는 그 까닭들을 햇빛 아래에 잠시 묻어 두게 된다. 미학적 관점을 떠나 실용적 관점에서 촛불은 에로틱하거나 처절하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처절한 실용은, '처절'이란 수사를 달고도 실용에 그친다는 측면에서 간혹 태극기 집회에서 목격되는 노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처럼 안타깝고 괴이하다. 관절이 나쁜 노년의 내 이모님들이 태극기를 너무 열정적으로 흔들었다가 앓아 누웠다는 소식이 탄핵 후일담으로 들린다. 봄날이 오는 듯 가기에 봄날인가.     

 

뚝방길에서 두어 살 아이가 나를 보고 뒤뚱뒤뚱 달려온다. 전속력이지만 아슬아슬하지 않다. 실족을 감당할 만한 속도라기보단 실족과 무관한 질주이다. 0의 속도에서도 실족은 일어난다. 중요한 건 시쳇말로 속도가 아니라 방향일까? 더 본질적인 건 걷거나 뛰려는 의지이다. 의지의 좌절이 실족이다. 그렇다면 의지의 부재야말로 실족을 모면할 현명한 방도이지 싶다. 결핍으로는 안 된다. 완전한 진공처럼, 기꺼이 개화의 무대가 되어 주는 바위처럼,  절대적인 의지의 부재가 필요하다.   

 

아이가 나를 지나쳐 내 뒤 편의 노인의 품에 안긴다. 손자를 안은 할아버지가 청년처럼 성큼성큼 걸어 나를 앞지른다. 달려갔다가 이제 누군가에게 안겨 되돌아오는 아이에 시선을 고정한 아이의 아빠와 엄마를 향한다. 두 사람 중 누가 건강미 넘치는 노인의 자식인지는 식별되지 않았다.  

 

아이가 지난 자리에 개나리 꽃이 피었다. 개화라면, 어떤 개화가 욕을 얻어 먹겠는가. 꽃망울이 터지는 사연이야 구구하겠다만 빠르든 늦든 모든 개화는 존중 받고 환영 받을 가치를 갖는다. 어떤 꽃이든 꽃이 피면 누군가 돌연 사랑에 빠졌나 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만일 개화가 사랑이라면, 그리고 선택할 수 있다면 그 종이 차라리 개나리이었으면 좋겠다. 개화가 화려한 꽃의 낙화는 심상에 애련의 상흔을 남기는 법이다. 더욱 애련한 예컨대 목련 같은 종의 낙화는 개화의 기쁨을 무상한 것으로 만든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요절한 대중가요 가수의 말마따나 너무 화려한 개화를 개화라고 부르지 말아야 할까. 

 

그건 아니다. 소리가 없어서 그렇지 식물의 개화는 포유류의 출산에 버금가는 고통을 동반하였을 터이다. 개나리가 하늘이 노래지도록 용을 써 가며 꽃망울을 하나하나 터뜨렸을 상황을 떠올리면 기꺼이 산고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게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식물의 개화는 긴 겨울을 참고 견딘 포상이자 자존의 확인이다. 질 꽃이라고 하여 핀 꽃을 탄할 수는 없다.  

 

에리히 프롬은 "fall in love"를 소유의 양식이라고 말한다. "fall"하지 말자고. 대신 우리가 "stand in love" 혹은 "walk in love"의 양식으로 존재의 사랑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개화는, (그 안에) 서거나 (그 안으로 혹은 그 안에서) 걷거나 혹은 (그 안으로) 빠지든 분명 사랑일진대, 때로 소유로서 존재하고 때로 존재를 소유하며 짧은 호시절을 만끽한다. 꽃이 피는 데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이유가 있는가 하면, 아무런 이유 없이 꽃이 피듯이, 존재하든 소유하든, 후회를 산출하든 충만을 남기든, 사랑이 있다면 좋은 일이다. 봄날에는 어떤 꽃이라도 필 자격이 있듯이 인간에겐 어떤 사랑도 허락된다. 봄날에는. 

 

개나리꽃이 흔들리는 자리 너머로 휙, 하얀 나비가 날아간다. 올해 들어 처음 목격한 나비. 네 사랑이 만개하려나 보다. 스콜의 두 귀가 나비처럼 날갯짓을 한다. 사위가 꽃 피울 준비로 수런수런하다. 올 봄을 보았으니 이제 갈 봄을 준비하자. 스콜이 앞장서 걷는다. 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글ㆍ안치용 지속가능성과 CSR에 관심이 많다. 한국CSR연구소장이며,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을 대학생/청소년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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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기자 carmine.draco@gmail.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