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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꽃이 피려는데 우리는 서로 미워만 한다
[안치용의 프롬나드]꽃이 피려는데 우리는 서로 미워만 한다
  • 안치용 기자
  • 승인 2017.04.06 0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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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데, 가끔 숨어서 피는 꽃이 있는데, 숨어서 피는 꽃이라고 개화가 부끄러워 숨어서 꽃 피우는 게 아니다. 못내 미워서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고 피는 꽃이라 한들, 꽃망울 여느라 까맣게 태운 설렘의 밤들이 부재하였을까. 겨울 지나 저렇게 이 꽃 저 꽃이 막 피려는데, 우리는 서로 미워만 한다.

 

아버지를 따라 엽총으로 제 머리를 쏘아 자살한 헤밍웨이는 “인간은 지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지만 패배해서는 안 된다(A man can be destroyed, not defeated.)”는 그 노인의 말마따나, 우리 미워하는 게 미워서 겨울비인 양 이렇게 차가운 봄비 아프게 내려, 화창한 봄볕 구경조차 못한 아기살 같이 가녀린 왕벚꽃 꽃잎 하룻밤 새에 진다고 한들, 피지 말았어야 할 꽃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꽃의 운명은 피는 것이며, 낙화가 두렵다고 개화를 모면할 수는 없다. 아 그러나 하룻밤 꿈이든, 봄 한 철 잘 누린 낙화이든, 낙화는, 낙화의 이념은 서럽다. 어느 가지에도 제대로 된 잎들이 보이지 않는 나무 밑동 언저리에 찬 비 머금고 떨어져 있는 꽃잎들. 차라리 피지 말 걸 그랬을까.

 

낙화와 개화에 적용하기에 “he must face eternity, or the lack of it, each day.”라는 헤밍웨이의 말이 너무 거창할까. 사랑과 마찬가지로 개화는 영원성의 실체를 사유하고, 영원성의 부재를 각성하며 영원성의 앞뒷면을 구성한다. 나무가 꽃을 피우듯이, 사람은 사랑하며, 지구의 자전을 통해 해를 맞고 보내듯, 매일 영원성을 밀고 당기는 법이다. 당연히 각자의 영원성은 타인의 기억과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는 꽃은 언제나 우리를 슬프게 한다.

 

 

글ㆍ안치용 지속가능성과 CSR에 관심이 많다. 한국CSR연구소장이며,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을 대학생/청소년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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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기자
안치용 기자 carmine.draco@gmail.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