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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통령은 에이즈에 걸린 사람이길 원한다
나의 대통령은 에이즈에 걸린 사람이길 원한다
  • 송은하 | ‘지도자' 이달의 칼럼 당선
  • 승인 2017.04.28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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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내 생일은 목련꽃이 만개한 날이라 했다. 일주일이면 지고 마는 목련꽃. 그 꽃이 피어있을 그 짧은 순간에 내 생일도 스치듯 지나갔다. 봄꽃이 피기 시작하는 것으로도 부모님은 딸의 생일이 다가온다는 걸 알아채셨다. 어린 나는 설익은 꽃망울만 봐도 설렜다.

어렸을 적 살던 집 앞마당에는 목련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미끄럼틀이나 그네는 없었지만 그곳이 나의 놀이터였다. 꽃망울이라도 터지면 꽃잎을 주워 소꿉장난을 하고, 잎을 밟으며 따라 걷기도 했다. 온 몸에 목련 향이 배고 나서야 하루가 끝났다. 목련은 어린 시절 나의 선물이자 친구였다.

그러나 목련꽃 피는 날은 더 이상 내 생일이 아니다. 목련꽃이 지고 일주일은 지나야 한다. 날이 점점 더워지더니 봄꽃의 개화 시기가 점점 더 앞당겨졌다. 목련꽃과 함께한 생일은 추억으로 남았다. 이제 봄꽃이 지고 여름 같이 더운 어느 날 쯤이 돼야 내 생일이 온다.

생일 전날 받은 전화 한 통. 본가에 계신 부모님의 연락이었다. 뉴스에서 세월호 3주기 추모행사를 보고 내 생일이 생각났다 하셨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 뒤에 씁쓸함이 남는다. 생일에 무엇을 하고 보내는지 묻지 못하시고, 누구와 함께 광화문에 가는지를 물으신다. 그렇게 3년째다.

3년 전의 4월 16일, 내 생일 전날 아침에 배가 가라앉았다. 304명이 그 안에 있었다. 9명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떠난 자들을 잊지 못한 사람들이 매년 그들을 기다린다. 가방에 노란리본을 달았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내던 나도 이맘때면 그들을 기억한다. 내 생일은 더 이상 목련꽃이지 않고, 봄꽃이지 않다. 세월호다.

세월호 참사를 보고 누군가는 교통사고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감정조절 장애자’라며 유족들을 비난했다. 권력 앞에 납작 엎드린 자들의 거칠 것이 없는 말은 상실에 슬퍼하는 이들의 마음을 후빈다. 잊을 자유의 주장은 소중한 이를 잃어버린 이들에겐 무람없는 망발이다. 문득 떠난 이의 빈자리가 생각날 때가 있다. 그들이 간 봄의 어느 날이다. 그리고 내 기억과 슬픔을 왜곡하려는 누군가의 의도를 접했을 때다.

세월호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방식’이 아니라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동체가 경험한 상실의 기억은 그 세대의 가능성을 지배한다. 전쟁을 겪었던 세대가 그러했고, 수많은 동지를 떠나보내야 했던 1980년대가 그러했다. 아픈 기억은 그렇게 공감으로, 분노로 또 참여로, 개혁의 의지로 변환된다. 

아픈 기억을 극복하는 과정의 조타(操舵)는 지도자의 몫이다. 상실을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미 일어난 상실 후에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미래의 가능성을 결정한다. 우리의 지도자는 상실의 경험에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누군가의 슬픔을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애통해 하는 이들과 어깨를 겯고 슬픔 너머로 묵묵히, 그러나 단호하게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난날의 대한민국은 상실을 경험한 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는 일에 실패했다. 지도자들은 슬퍼하는 이들의 잊히지 않는 기억들을 왜곡하고 난도질했다. 기억의 조각들은 분노로 바뀌었고, 더러 무기력으로 남았다. 소외된 이들의 기억에 공감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상실을 경험해보지 않은 자들과 만드는 ‘혁신’은 상처받은 이들을 또다시 짓밟고 지나간다. 우리는 이미 병들고 곪은, 아프고 슬픈 나와 같은, 너와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비단 세월호 뿐만이 아니다. 하루에 수십 명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또한 적지 않은 숫자가 원하지 않는 죽음에 직면한다. 아픈 기억을 공감해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무기력함은 나에게로 향하고 분노는 약자에게로 향한다. 작년 강남역 살인 사건에서 많은 여성들이 외쳤듯 “나는 우연히 살아남아 있다.”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아 내일을 꿈꾸고 10년, 30년, 50년 뒤를 꿈꾼다. 나는 우연히 꿈꿀 수 있게 됐다. 의지보다 우연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다.

이제 우연찮게 내 생일은 목련이 다 진, 세월호가 잠긴 날이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던, 나와 관련된 것 하나 없던 이 사건이 어느새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왔다. 매일, 매시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수십 번 남아있는 자들을 괴롭힌다. 발 딛고 서있는 이 사회가 언제 또 가라앉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삶이 우연이 아님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힘겹게 물 위로 뜬 세월호가 무너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스스로의 슬픔을 극복해낼 시간과 상실을 납득할 수 있는 사실이 필요하다. 안타깝게 죽은 이들과 우연히 살아남은 이들은 무너지는 세월호에서 만난다. 만나서 해야 할 것이 많다. 아직 슬퍼해야 할 것이 많다. 

그래서 나의 대통령은 레즈비언이길 원한다는 조이 레너드의 말에 동의한다. 그의 말처럼 에이즈에 걸린 대통령과 동성애자 부통령을 원한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 쓰레기 더미에서 성장해 백혈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의 소리가 존중 받는 사회를 원한다. 지도자는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의 슬픔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글·송은하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하는 활동적인 백수. 말하고 듣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 소수자가 소수자가 아닐 수 있는 사회를 그린다. ‘글쓰는 할머니’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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