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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일방적 기성금 삭감에 삶 무너지는 하청노동자
현대중공업 일방적 기성금 삭감에 삶 무너지는 하청노동자
  • 최주연 기자
  • 승인 2017.06.14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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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산업자원통상위원회 김종훈(울산 동구) 무소속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전년 대비 70% 수준으로 기성금 지급 내용을 통고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 반대를 외치고 있는 노동자들.(사진제공=뉴스1)
 
 
현대重 “계약서대로 지급, 일방적 삭감 있을 수 없는 일”

노동자 “계약서 없다, 원청이 부르는 대로 기성금액 확정…삭감 지속돼”

 

…양측 사실 주장‧입장차 극명
 
 

고용노동부의 2016 중대재해 보고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현대중공업 노동자 11명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현대중공업은 노동계가 선정한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지목됐었고, 특히 사망사고 10건 중 7건이 하청업체에 집중됐음이 드러나며 대기업 하청업체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회자된 바 있다.
최근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에 대한 일방적인 기성금 삭감으로 논란이 일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민주화 정책 흐름과도 전면 대치되고 있는 부분이다.


 
국회 산업자원통상위원회 김종훈(울산 동구) 무소속 의원이 지난 12일 오전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기성금 삭감에 대한 정부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의원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들을 대상으로 전년 대비 70% 수준으로 기성금을 지급하겠다고 통고했다.

조선소 하청업체는 현대중공업과 같은 원청에서 받는 기성금 대부분을, 노동자 인건비로 쓴다. 따라서 기성금이 삭감되면 임금체불이나 대량해고 등으로 하청노동자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날 김종훈 의원은 “계약에 따라 도급금액이 지급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현실은 원청기업이 기성금을 일방적으로 책정해 지급한다”며 “현대중공업이 ‘갑’의 위치에서 하청업체들에 대한 일방적인 기성금 삭감에 들어가면서 하청업체들의 고통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발언했다.
 
또한 “의원실로 접수되는 민원·제보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들에 대해 공사대금의 70% 수준만을 기성금으로 지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면서 “하청업체들은 4대 보험료와 퇴직금 적립금, 세금 등을 빚을 내서 메우거나 나중을 위해 버틸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입장 차 보이는 사측과 노동자…무엇이 진실인가
 
 
김종훈 의원을 비롯한 현대중공업 하청업체는 현대중공업이 전년 대비 30% 삭감된 기성금을 지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지는 13일 현대중공업 관계자와 접촉해 입장을 들어봤다.

그는 “계약된 내용에 따라 기성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일방적으로 기성금을 삭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하며 “다만, 공정률에 따라 자체적으로 판단해 지급하고, 문제가 없다면 계약된 전액을 지급한다”고 답변했다.
 
또한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일감이 많이 줄고 울산과 군산에 가동중단 된 조선소도 있어, 현대중공업 직원도 근무시간을 줄이고 급여도 덜 받는 등 어려운 상태다. 만약, 공사대금이 적다 싶으면 입찰에 들어오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선택의 문제’라고 일축했다.
 
본지는 같은 날 김종훈 의원실에 접촉해 <계약 내용에 따라> 기성금이 지급됐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하청업체와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있는 김종훈 의원실 관계자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쳤다.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 사내망인 ‘인트라넷’을 통해 소통하며 모든 것은 구두계약으로 이뤄진다”며 “이 구두계약에서 마저 맺었던 기성금의 30%를 삭감한다고 한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증거가 될 수 있는 공식적인 문서가 없기 때문에, 문제 발생 시 ‘끌려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이 관계자에 따르면 작년부터 삭감 됐고, 현대중공업은 그 삭감된 기성금에서 최근 30%를 추가로 삭감한다고  통보했다. 하청업체들은 이러한 현대중공업의 독단적인 행동에 버티다가, 이제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면 기성금 수령을 거부하겠다고 집단행동을 결심하고 나섰다.
 

'노동자 도미노' 기성금 삭감…열악한 노동환경 조성
 
 
2015년 한 하청업체 대표가 현대중공업의 ‘하청업체 쥐어짜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청업체 대표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실태를 고발하고 정부에 대책마련을 촉구한 바 있으나, 원청의 횡포는 여전하다.

원청의 기성금 삭감은 많은 노동자 삶을 무너뜨린다. 하청업체 총수입이 줄면 해당 업체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하청노동자에게 더 낮은 임금을 지급하게 되고, 임금체불 상황까지도 내몰릴 수 있다. 또한 기성금 삭감은 작업 시간과 기간을 무리하게 단축하도록 ‘노동자에게’ 강요하고, 이것은 곧 ‘노동자에 대한’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자에 대한 저임금 지급과 임금체불, 안전사고는 개별 구성원의 위기, 노동자가 속한 가정의 붕괴, 사회 위기까지도 도미노처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기성금 삭감에서부터 시작된 이 모든 것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조성한다. 현대중공업에서 2016년 근로자 11명이 사망해 ‘살인기업’이라는 오명(汚名)을 쓴 것은 이러한 (특히 하청업체에 대한) 기업환경과 문화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나눔재단 명예이사장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나눔재단 명예이사장이 ‘젊은이들에게 작은 등불’이 되겠다며 취업 문제로 고민하는 청년들의 애로사항에 마음을 쓰고 있다고 홍보되고 있지만,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해결하지 않으려 한다면 허울뿐인 행보로 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민들의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경제민주주의’를 화두로 던지며 “경제에서의 민주주의,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대통령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시민사회 모두가 힘을 모으고, 양보와 타협, 연대와 배려, 포용하는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하청업체에 대한 일방적인 임금 삭감과 ‘쥐어짜기’는 새 정부의 정책 방향과는 완전히 대치되고 있다. 양보와 타협, 연대와 배려, 포용은 힘 있는 기업에게는 현실에 실재하지 않는 개념에만 머물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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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연 기자
최주연 기자 dodu103@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