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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예뻤는데
어렸을 때는 예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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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2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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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예뻤는데"


매 명절 꼭 한번은 들었던 말이다. 지금 들어도 그다지 유쾌한 말은 아니다만 사춘기 시절에는 듣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싫었다. 물론 들을 때마다 울지는 않았는데 딱 한 번 운 적이 있다. 중학교 입학 때였다. 얼마 없는 돈을 아껴가며, 미용실에 가서 유행하는 머리를 하고 한정판 신발을 어렵게 구하고 처음으로 틴트라는 것도 발라보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미숙하게나마 외모를 꾸며보려 했을 때, 하필 고모 집에 들렀었다. 그 날, 난 오랜만에 본 고모께 인사를 건넨 후 바로 TV를 보러 작은 방에 들어갔었다. 몇 년 만에 보는 고모가 약간 어색하기도 했고, 사춘기 시절의 난 어른들과 대화하는 게 그냥 귀찮은 애였다. 한창 TV 채널을 돌리고 있는데 고모가 사과와 떡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별 말씀 없이 내 앞에 음식을 내려놓으시고는 포크를 건네셨다. 포크를 건네받으려는데 고모가 그런 날 빤히 쳐다보신 후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는 예뻤는데’


하도 자주 들어서 나름 면역력이 생겼지만 그래도 한창 외모에 예민할 때였다. 한정판 신발은 벗었다 쳐도 틴트도 발랐고 유행하는 머리도 했는데 이런 치욕적인 소리를 듣다니. 고모는 미묘하게 변한 내 표정을 인지하지 못 하셨는지 계속 공격을 퍼부으셨다. 얼굴이 어떻게 저렇게 변하냐, 딴 사람 아니냐, 군대 가도 될 것 같다 등의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너무나도 또렷이 기억나는 멘트를 쉴 새 없이 뱉으셨다. 그 때 난 슬그머니 화장실에 들어가 흐르는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모가 너무나도 미운 날이었다.


그날을 오랫동안 못 잊었다. 고모도 꽤 오래 미워했다. 사람을, 특히나 자주는 아니어도 몇 년에 한번이라도 만나는 사람을 미워하는 건 나한테도 그리 좋지 못한 일이었다. 고모를 덜 미워하게 된 건 이모 덕분이었다. 작년 설에 이모는 또 어렸을 때의 나를 그리워하셨다. 어느 정도 초연해진 나는 “어차피 그때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답하며 넘어가려 했다. 근데 이모가 그 말에 한 마디 더 붙이시더라.


“어렸을 때는 놀아달라고 하고 먹을 것도 갖다 주더니 크고 나선 날 봐도 그냥 흥이잖아.”


난 그 말에 아무런 응수도 하지 못했다. 그냥 빙긋 웃었던 것 같다. 이제까지 들은 “어렸을 때 예뻤는데”에 내포된 그리움의 대상이 사실은 ‘내 얼굴’이 아닌 ‘내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란 생각이 들었다. 섭섭한 맘을 에둘러 표현한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괜스레 죄송한 맘이 들었다.


60·70 대선후보 지지율 그래프에서 압도적인 빨강을 확인한 후, ‘왜 아직도’라는 물음이 머리에 떠올랐을 때 이모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후에 짐작했던 것 같다. 태극기 집회에서 ‘그 때가 좋았지’의 말을 외치는 노인이 사실 ‘그 때’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그 때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태극기집회의 열기와 이를 향한 관심이 절정을 찍고 내려오고 있는 시점에서야, 차라리 ‘태극기집회가 열려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제되었던 노인의 투쟁이 관심을 끌기라도 했기 때문이다. 어떤 모습으로 비쳤든 간에, 이 때문에 사람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행동하는 노인을 주목했고 나 또한 그랬다. 밀리고 밀려나다가 한 사건을 계기로 결집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많은 노인을, 그제야.


어느 순간부터 노인은 약자와 의존적인 존재로 타자화됐다. 뉴스에서 종종 노년층의 정치를 ‘어르신의 정치’란 말로 대신한다. 1인칭이 될 수 없는 ‘어르신’은 노인의 주체성이 결여된 명칭이다. 노인은 자기결정과 참여의 주체로 생각되지 않는다. 제 의지로 태극기집회에 나온 사람마저 돈에 매수됐다고 싸잡아 그려지기도 했던 것처럼. 이로만 그치면 다행이다. 그들은 때때로 짊어져야 할 짐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고령화 시대를 넘어 초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는 지금, 가장 핫한 이슈는 ‘주체로서의 노인의 삶’이 아닌 ‘몇 명의 부양자가 1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가’다.


공간적 분리를 통해서도 노인은 배제된다. 지하철에서조차 노약자석은 양극단에 위치한다. 보호를 받는 사람과 보호를 하는 사람이 시각적으로 분리되는 것이다. 노인이 일반 좌석에 다가가면 의아한 눈빛을 받고 청년이 노약자석으로 갈 때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아예 공간에서 쫓아내기도 한다. 노인의 대표적인 모임 장소였던 종묘 공원에서조차 노인을 밀어낸 것은 상징적이다. 2008년 즈음부터 노인들은 종묘공원에서 내쫓기기 시작했다. 조선 역대 왕조의 위패가 있는 종묘공원의 성역화를 위해서, 음주가무와 고성방가를 막겠다는 이유였다. 더 이상 노인들은 종묘공원에서 바둑과 장기에 열중하고 열띤 정치 토론을 벌일 수 없다.


태극기 집회의 노출 빈도와 규모가 작아지고 있지만 노인들은 여전히 인정투쟁을 벌이고 싶지 않을까. 그들이 말하는 그리움의 대상은 '박근혜로 대표되는 과거'가 아닌 ‘그시대 그들이 쏟았던 열정과 성취 그리고 그때의 인생 자체’이기에. 자신의 존재를 자꾸 지워내고 평생의 가치들을 무시하는 것 같은 사회 때문에 그시대를 찬란하게 기억하려는 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독재 국가가 강요했던 방식으로, 그시대의 억압과 착취를 미화하면서. 경험과 기억은 다를 때가 많지 않은가.


사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어떤 것도 거저 얻은 게 없다. 노인의 열정과 성취 그리고 그때의 인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이야기에 둘러싸일 수밖에 없다.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모두가 과거를 안고 태어났다. 그 이유 때문에라도 그들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시대까지는 사랑할 수 없다 하더라도(물론 태극기 집회에서 마이크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에 포함시키고 싶지 않다.)


임다연 / 바람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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