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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미터>: 거대한 식인상어가 집어삼킨 인간의 욕망
<47미터>: 거대한 식인상어가 집어삼킨 인간의 욕망
  • 서곡숙 | 영화평론가
  • 승인 2017.07.3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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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를 영화용어로 재탄생시킨 <죠스>(1975) 이후로, 물에 잠긴 수상연구소(<딥 블루 씨>), 전복된 배(<더 리프>), 상어 다이빙 안내(<다크 타이드>), 쓰나미로 물에 잠긴 대형마트(<베이트>), 멕시코 해변에서의 고립(<언더 워터>) 등 다양한 상황에서 식인상어의 공격을 받는 영화들이 계속 제작되고 있다. 7월 19일에 개봉한 <47미터(47 Meters Down)>(2017)는 이런 식인상어 영화의 갈등과 서스펜스 측면에서 장르적 변주를 보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소심한 본성과 변화에의 욕망, 
내면갈등의 외면화

<47미터>는 애인 스튜어트와 헤어진 리사가 친구 케이트와 함께 멕시코 해안으로 휴가를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리사는 헤어진 애인에게 과시할 목적으로 익스트림 스포츠인 상어체험을 결심하게 된다. 상어체험을 하러 가는 배 위에서, 새로운 모험으로 흥분한 케이트와는 달리 리사는 멀미와 구토를 하는 등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 불안해한다. 허술해 보이기만 한 샤크 케이지에 찝찝한 마음으로 들어간 리사는 아름다운 바다 속 풍경과 바로 옆에서 나타난 상어로 인해 흥분을 느끼며 열광한다. 하지만 곧이어 사고로 케이지가 47미터 바닥에 추락하게 되고, 리사가 충격으로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자 케이트는 계속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한다. 

이 영화에서 소극적인 리사와 적극적인 케이트의 갈등은 사실상 리사의 내면적인 갈등을 외면화한 것이다. 식인상어영화의 정전이 되는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는 상어의 공격으로 해수욕장을 폐쇄하자는 브로디 서장과 주민의 수익을 위해 폐쇄할 수 없다는 보간 시장 사이의 공적 갈등, 상어를 증오하는 퀸트 선장과 상어를 사랑하는 후퍼 박사 사이의 사적 갈등, 배와 바다를 무서워하지만 상어 퇴치에 나서야 하는 브로디 서장의 내면적 갈등을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죠스> 이후로 가장 흥행에 성공한 레니 할린 감독의 <딥 블루 씨>(1999)에서도 불법 DNA 조작 등 연구에 집착하는 수잔과 연구지연을 이유로 연구소를 폐쇄하려는 러셀 사이의 공적 갈등, 연구를 위해 상어를 풀어준 수잔과 상어에 공포를 느끼는 다른 연구원들 사이의 사적 갈등, 연구 성과물인 상어를 살릴지 죽일지 고민하는 수잔의 내적 갈등을 차례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47미터>는 고지식하고 소극적인 평소 자기 모습 그대로 살고 싶다는 욕망과 모험을 즐기며 적극적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고민하는 리사의 내면적 갈등에 특히 집중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식인상어영화의 내러티브에서 드러나는 갈등의 양상과는 다소 차별적이다.  

<47미터>가 기존 식인상어영화와 다른 점
 
희생자의 죽음에 대한 의미와 영향에서도 다소 차이가 난다. <죠스>에서 희생자의 죽음과 부상은 갈등과 문제 해결의 역할을 한다. 남성을 유혹하며 나체로 바다에 뛰어든 여성의 죽음은 은폐되지만, 어린 소년의 죽음, 현상금을 노린 어부의 죽음, 상어의 공격을 받아 기절한 자신의 아들 등으로 서장은 시장에게 맞서 해안 폐쇄와 상어사냥꾼 고용을 관철시킨다. 또한 샤크 케이지에 탄 후퍼 박사의 실종과 상어에게 잡아먹힌 퀸트 선장의 죽음으로 혼자 남게 된 브로디 서장이 “웃어라, 이 망할 자식아!”라며 상어의 입 속에 있는 가스통을 총으로 쏘아 폭파시키는 용기를 보여주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반전이다. 

<딥 블루 씨>에서도 처음에는 짐의 죽음으로 인해 갈등하고 불안해하지만, 러셀, 제니스, 톰의 죽음으로 서로 협력하고 상어에 대처할 용기를 내게 된다. 특히, 자신이 만든 괴물인 상어가 ‘깊고 푸른 바다(deep blue sea)’로 나가려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 손에 상처를 내 피를 흘리며 “네가 아무리 똑똑해도 짐승에 불과해. 엄마한테 와!”라며 스스로 미끼가 되는 수잔의 죽음은 상어를 처치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이렇듯 식인상어영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두 편의 영화에서 인물들의 죽음은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47미터>에서 인물의 죽음은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며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 여주인공들을 구하러 온 하비에르의 죽음으로 케이블을 연결해 케이지가 다시 위로 올라가지만, 곧바로 케이블이 끊어져 다시 47미터 바닥으로 추락하고 리사가 다리를 다친다.

샤크 케이지 추락, 연락두절, 산소부족, 리사의 부상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하자, 케이트는 용감하게 케이지 밖으로 나가 배에 연락해 산소통을 공급받는다. 위험하니까 다시 케이지로 돌아가라는 무전을 듣고 서둘러 케이지로 돌아가던 케이트는 케이지 바로 옆에서 상어의 공격을 받게 된다. 무전기로 부상을 입은 케이트가 울면서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자, 계속 불안해하던 리사가 정신을 차린다. 그녀는 무전기로 케이트를 진정시키고 용기를 내어 케이지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부상당한 케이트를 찾아내 상어의 공격을 막고 배로 무사히 탈출한다. 리사가 배 위에서 “케이트, 우리가 해냈어!”라고 외치는 장면은 가장 큰 반전임과 동시에 인물이 언젠가는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충족되면서 쾌감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이는 질소중독으로 인한 리사의 환각임이 밝혀지고, 뒤이어 리사는 해안경비대에 의해 구출되고 케이트는 시체로 발견된다.

일반적인 식인상어영화에서는 갈등하던 내부가 외부의 공격을 받게 되면서 내부적으로 협력해 강력한 외부의 적을 물리치며, 사익과 원한을 추구하는 인물은 죽지만 공익적이고 희생적 인물은 생존하며, 이때 가장 불안에 떠는 인물이 상어를 물리친다는 점에서 반전의 쾌감을 제공한다. 반면 <47미터>에서는 내부적으로 협력하지만 외부의 적인 식인상어를 물리치지 못하고, 두 여성을 구하러온 하비에르와 용감하고 희생적인 여주인공 케이트가 죽게 된다. 그리고 가장 불안에 떠는 인물인 리사는 상어를 처치하지 못한 채 두려움을 느끼며 환각에 빠져있다. 이런 점에서 이전 영화들에서의 인물의 급격한 변화, 반전, 해피엔딩은 단지 장르영화가 주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47미터>는 서스펜스(suspense)와 서프라이즈(surprise) 전략에 있어서도 다소 차별적이다. <죠스>는 덜 보여주는 연출을 통한 서스펜스 전략과 상어의 갑작스러운 등장을 통한 서프라이즈 전략을 효과적으로 결합시켜 긴장감과 놀라움을 증대시킨다. 여자의 비명소리, 상어의 등지느러미, 끌려가는 다리 난간, 엄청난 충격으로 부서지는 배, 바다로 사라지는 원통 등을 통해 보이지 않는 실체인 상어의 강력한 힘을 느끼게 함으로써 긴장감을 느끼게 만든다. 또한 젊은 여자의 뜯겨진 팔, 어부의 잘린 목, 가슴과 내장이 없는 사체에 대한 검시관의 설명, 훼손된 사체를 보고 괴로워하는 후퍼 박사의 표정 등 조금씩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긴장감은 점점 더 고조된다. 그리고 실제 모형으로 제작돼 사실감을 살린 거대 식인상어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놀람과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딥 블루 씨>는 스펙터클한 영상을 통한 서프라이즈 전략을 보여준다. 상어의 이빨 밖으로 상체만 삐져나온 상태에서 비명을 지르는 제니스, 상체부터 하체까지 차례대로 상어에게 아그작아그작 씹어 먹히는 수잔 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충격적인 놀람과 공포를 선사한다.

식인상어, 그리고 공격받는 이는 누구인가

한편, <47미터>는 스릴러 부분을 강화하는 서스펜스 전략에 집중한다. 덜 보여주는 연출,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두려움, 인물의 불안한 심리 묘사, 무방비로 노출된 인물에게 다가가는 상어의 시점숏 등을 통해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47미터>에서 수영장에 피처럼 퍼지는 붉은 포도주, 불길한 예감이 들게 하는 허술한 샤크 케이지, 바다 바닥으로의 추락, 느리게 허우적거리는 희생자를 향해 다가가는 상어의 시점숏, 수경/산소마스크/잠수복/작살, 상어를 불러 모으는 손의 상처에서 나는 피, 수경 안에서 두려움에 흔들리는 불안한 눈빛 등은 <죠스> 이후로 식인상어영화에서 전형적으로 나오는 미장센이다. 그래서 관객은 식인상어영화의 장르 컨벤션에 맞는 해피엔딩 결말을 기대하고 있다가 뜻밖의 반전에 허를 찔리게 된다.

 식인상어영화는 어두컴컴하고 깊은 바다가 주는 불안감, 인간보다 강력한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 식인상어로 표현되는 인간의 욕망과 공격성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상어는 피 냄새에 민감한 후각, 강한 시력, 움직이는 물체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행동, 계속 재생되는 날카롭고 강한 이빨, 육식성, 어마어마한 양의 포식 등의 특성을 보인다. 이런 거대 식인상어의 이미지는 트렌드에 대한 예민한 대처, 급속한 환경 변화에 대한 날카로운 주의력, 자본을 확보하기 위한 돌발적인 주가 조작, 신사업 추진과 M&A를 통해 조직의 규모 확장 등 거대기업의 이미지와 오버랩 된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2016)에서 에리히 프롬은 우리가 엄청난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수동적 소비자이며 인간 본질을 생계비 벌이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한다.

식인상어의 공격에 노출된 인물들은 수동적 소비자로서 대부분 인위적으로 조장된 쉼 없이 증가하는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힘을 이용하느라 정작 자신이 인간임을 망각할 위험에 처한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닐까?  

글·서곡숙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소위 등급위원, 서울영상진흥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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