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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기억마저도 희미한 알제리 학살 그후 20년’
팟캐스트 ‘기억마저도 희미한 알제리 학살 그후 20년’
  • 주동일
  • 승인 2017.09.1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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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피해자들은 고통을 잊을까

 1997년 9월 22일 밤, 벤탈라. 알제의 외곽 끝자락에 위치한 이 작은 농촌마을에서 무장이슬람그룹 GIA에 의해 단 몇 시간 만에 400명이 넘는 주민이 피살됐다. 다음날, 프랑스 AFP통신 소속 사진기자 호신 자우라르는 가족이 살해당한 한 여인의 비통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기독교의 상징적 성상인 피에타상을 연상시키는 이 여인의 모습은 <벤탈라의 마돈나>로 명명되고, 전 세계의 신문에 배포돼 5년 전부터 계속돼 온 알제리의 폭력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로부터 3주 전에 일어났던 비슷한 학살사건으로 인해, 벤탈라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라이스라는 마을이 피로 물들었고 1천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 다음 달에는 오랑시의 서쪽에 위치한 시그시에서 50명이 살해됐다. 12월에는 암미 무사(윌라야 드 를리잔의 우아르스니 산지대)에서 400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1998년 1월에는 하드 체칼라(우르스니 산지대)에서 천 명 이상이 살해됐고, 며칠 후 시디 하마드(미티자 평원지대)에서 103명이 살해됐다. 군이나 지식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폭력이 자행됐던 알제리 내전의 참상은 1997년, 민간인 대량학살로 이어지면서 더욱 참혹한 양상을 띠며 알제리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 이슬람교로 인해 그렇게 고통 받았던 한 사회가 어떻게 이 정도로 그 교리들에 동화될 수 있을까? 정신분석자 칼레드 아이트 시드훔은 알제리에 있는 그의 병원에서 1990년대 비극의 여파로 고통 받는 수많은 환자들을 대한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슬람교의 종교생활로 되돌아가는 것은 알제리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라는 것.

그래도 알제리인만의 특징이 있지 않을까? “있습니다. 식민지화와 독립전쟁으로 인한 폭력에 뒤이어 발생한 20년 전의 폭력은 오늘날 모든 이들이 고통 받는 정신적 외상의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이슬람교는 마치 진통제 같은 역할을 하지요. 문제는 어떤 진통제는 강한 의존성을 수반한다는 데 있는데, 종교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 ‘약’의 판매를 정부가 부추기기 때문에 더욱 큰 문제이지요.

기사 ‘기억마저도 희미한 알제리 학살 그후 20년’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7547
고시원 방송국 팟캐스트 ‘기억마저도 희미한 알제리 학살 그후 20년’
http://www.podbbang.com/ch/11478?e=22372378

[인턴 주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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