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호 구매하기
반환 20주년, 홍콩을 압박하는 중국
반환 20주년, 홍콩을 압박하는 중국
  • 장자크 강디니 | 독립연구자
  • 승인 2017.09.28 11:0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2017년 7월 1일, 중국 인민해방군 20개 중대가 주둔한 홍콩에서 캐리 람 신임 행정장관(행정수반)이 성대한 취임선서를 마쳤다. 람 장관의 취임식은 중국의 홍콩반환 20주년 기념식과 맞물렸으며, 시진핑 중국 주석은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이 자리에 참석했다. 축하행사를 마무리하며 시진핑 주석은 중국이야말로 홍콩의 주인임을 분명히 밝혔다. “중국의 주권과 안보를 위협하는 모든 행위, 중국 기본법(헌법의 일종)을 문제시하고 중앙정부에 도전하며 중국본토에 대한 잠입, 혹은 파괴 행위를 위해 홍콩을 이용하는 모든 행위는 한계선을 침범하는 행위로, 절대 허용할 수 없다.”(1)

그로부터 한 달 전, 중국 공산당의 3인자이자 홍콩-마카오 공작 협조소조 조장 장더장은 이미 베이징에서 뜻을 한층 명확히 전달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홍콩이 보유한 높은 수준의 자율성은 중앙정부에 대적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되면 안 된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9년 베이징에서 발생한 톈안먼(천안문) 사건의 피비린내 나는 진압을 기리기 위한 연례 추도집회는 예정대로 열렸다. 이번 2017년 6월 4일, 빅토리아 공원의 너른 부지에서 연사들은 애국심을 고취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중국이 “반혁명적 폭동”이라 일컫는 이 톈안먼 사건에 대한 자국의 판결을 번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민주파 시민단체 및 진영을 포괄하는 ‘중국의 애국주의적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홍콩연대’ 부대표 초우 항텅은 홍콩인들이 이제 말할 수 없게 된 이들을 대신해 의사를 표현하고, 의사표현이 금지된 이들(본토의 중국인)을 대신해 애도를 표하며, 살아남은 이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로 몇 시간 전, 홍콩연대의 대표 앨버트 호는 “우리는 보편적 가치들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도록 투쟁해야 한다”고 밝혔다. 1997년부터 2016년까지 홍콩 입법회 의원직을 지낸 호 대표는 오늘날 홍콩 민주당의 주요한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현 상황은 덫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나는 ‘일국양제(一國兩制)’(3)라는 표현을 옹호하는데, 이는 쌍방에게 득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이 뼛속까지 중국인이라 느끼는 동시에, 홍콩만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법치정부를 고집한다.” 한편 라우 산칭은 1981~1991년 트로키츠주의 투쟁가로서 젊은 시절을 중국 감옥에서 보냈다.(4) 현재 그는 홍콩 최대의 범민주당인 시민당에 소속돼 있다. “중국에 비해 홍콩이 지닌 특수성이 있다면, 민주적 권리들이 실질적으로 실행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비선발과정이 없는 보편적 직접선거를 얻어내기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라우 산칭 자신은 개인적으로 피해자이긴 했지만, “‘위대한 중화제국’을 재건한 중국정부에 감탄하는바”이며, 특히 홍콩과 인접한 광둥성과의 공동 투자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반면, 인권변호사이자 투쟁가 키트 챈은 그다지 낙관하지 않았다. “현 정세는 부정적이다. 무엇보다 홍콩 경제가 중국발 투자에 점점 더 의존하면서, 그만큼 해외 투자분이 줄어드는 상황이다. 홍콩 우산혁명 당시의 진압이 강화되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공포심이 스며들었다.” 우산혁명에는 수많은 청년이 참가해,(5) 2014년 9월 27일부터 12월 15일까지 정부청사 앞을 점거했다. 이 시위의 목표는 중국정부가 홍콩 행정장관 후보의 예비선거를 진행하는 것에 반대하고 완전한 직선제를 요구하기 위함이었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지난 8월 16일, 우산혁명의 주역 네이선 로, 알렉스 차우, 조슈아 웡은 고등법원으로부터 각각 8개월, 7개월,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지난 1심에서 사회봉사활동 시간 및 징역 3주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 이에 검찰이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며 항소를 제기했던 것이다. 이 세 사람은 앞으로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사회 분위기가 점점 더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네이선 로는 조슈아 웡과 함께 2014년 ‘데모시스토당’이라는 신당을 창당했으며, 지난 2016년 9월 4일 총선에서 역대 최연소 입법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로 주석은 지난번 <르몽드>와의 만남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우산혁명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우리는 비폭력주의를 지향했고, 1989년 톈안먼 운동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이목을 홍콩에 집중시켰다. 나는 상황이 그토록 빨리 흘러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데모시스토당은 중산층을 옹호하는 기존의 민주정당들에 비해 서민층에, 우리 아버지 같은 노동자 계급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이다. 홍콩의 경제 전망이 그리 밝지 않기 때문이다.”

홍콩전상학생연회(이하 학련) 비서장 출신인 로 주석은 자신의 친구들을 비롯해 홍콩 독립 지지자들이 느끼는 박탈감을 이해하지만, 입법회에서 범민주파 진영에 한 표를 던졌다. 더불어 그는 50년간의 일국양제 원칙 적용이 만료되는 2047년, 홍콩의 주권 지위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고립된 상황에서 벗어나 해외로 문을 열어야 한다. 바로 이를 위해 데모시스토당은 대만, 일본,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연합을 강화하고 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늘고 있는 ‘지역주의자’들
 

지난 2017년 6월 4일, 빅토리아 공원에는 11만 명이 집결했다. 730만 명이라는 홍콩 인구에 비하면 상당한 듯하나, 2008년 이후 최저수치다. 이는 2년 연속으로 학생운동이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우산혁명 이후 학련(홍콩전상학생연회)은 상당 부분 변화했고 ‘홍콩적 정체성’이라는 노선을 도입했다. 학련 구성원들은 톈안먼 사건을 비롯한 중국 본토의 역사는 ‘자국의’ 역사가 아니라고 본다.

렁춘잉 전 행정장관은 “조화, 정체성, 국가적 통일성”을 찬미하는 교과서를 사용하는 ‘국민교육’ 과목의 도입을 강요하고, 표준 중국어의 사용을 강화하고자 했다. 특히 중국 공산당을 “진보적, 이타적, 유일한” 단체로 소개하며 마오쩌둥주의의 악습과 톈안먼 사건을 묻어두려 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2011년 5월에 창립된 학생단체 ‘스콜라리즘(학민사조)’이 이끄는 학생운동이 등장했다. 당시 14세 중학생의 신분으로 스콜라리즘을 창설한 조슈아 웡은 이후 무대의 전면에서 계속 활약 중이다. 웡 현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축소된 중국 본토의 역사를 더 많이 가르치는 데에 적대적이지 않으며, 심지어는 그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데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중국정부가 사전에 작성한 판본을 거부하며, 웡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이 판본은 “두뇌 세탁”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10만 명의 서명을 모은 청원운동, 이후 대대적인 시위와 정부청사 앞에서 펼쳐진 8일간의 연좌시위 끝에 렁춘잉 전 행정장관은 계획을 철회했다. 이렇게 홍콩의 시민적 정체성이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홍콩의 현세대는 정치에 눈을 떴다. 그리고 점차 노쇠해가며 지나치게 애국주의적으로 보이는 전통 정당들에 실망한 상황이다. 청년층을 비롯한 점점 더 많은 홍콩인은 이제 자신을 ‘지역주의자(Localist)’로 규정한다. 홍콩의 정체성과 자립 보존을 강조하며, 혹자는 공공연하게 독립을 주장하기도 한다. 홍콩의 생활방식과 역사를 강조하며, 중국 중앙정부의 규제에 더욱 급진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이들은 더 많은 사회정의를 주창하는 동시에, 공적 자유 및 법치정부의 보존을 바란다. 2015년의 어느 설문조사(6)에 따르면, 홍콩 주민의 40%가 자신을 ‘홍콩인’으로(2008년 21.8%), 18%가 자신을 ‘중국인’으로 규정하며(34.4%), 40%가 혼합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대답했다. 18세~35세 중 오직 4%만이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게다가 2015년 집계 기준 5,40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 중 본토 출신 중국인 관광객은 3/4을 차지하며, 이들의 이민도 급증하는 추세(10년 만에 50만 명)다. 관광업이 홍콩 GDP 중 1.3%를 차지하는 만큼, 이 중국인 출신 관광객 및 이민자는 홍콩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이런 상황은 홍콩 주민들에게 적대감을 유발하고 있다. 또한, 홍콩에서는 본토의 중국인들이 홍콩의 병원을 비롯한 공공 및 사회 서비스를 이용하고, 교육 제도에 큰 부담을 미치며(2011년 출생해 6년 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9만5천 명의 신생아 중 절반은 본토 출신 중국인에게서 태어났다), 분유 등 특정 생필품의 고갈을 초래하고, 시민의식이 부족한 것을 비난한다.
 

더욱이 본토 출신의 부유층 중국인들의 고가 주택 및 아파트 구매는 이미 전 세계 최고 수준인 부동산 가격을 한층 더 올리고, 지역주민들의 내 집 마련을 막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비즈니스 분야에서 점점 더 많이 사용되며 (인구 중 5%가 구사하는) 영어를 제치고 정규 교육과정의 제1외국어가 된 표준 중국어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는 가운데, 광둥어를 보존하려는 의지가 확고해 보인다.

그렇지만 ‘지역주의자’들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이 중 일부는 중국 중앙정부를 ‘제국주의적’이라고 평가하며 이들의 간섭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바로 데모시스토당이나 무소속 의원 에디 추 호이딕의 경우다. 또 혹자는 ‘국가로서의 홍콩’에 찬성한다. 필요하다면 폭력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홍콩공화국을 창설하자는 것으로, 영스피레이션당의 바지오 렁, 본토민주전선의 에드워드 렁 틴케이, 홍콩민족당의 챈 호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종종 차별적, 심지어는 인종차별적 기미가 엿보이는 담론을 제시한다.
 

추 호이딕은 홍콩의 문화유산을 수호하자는 캠페인을 2006년 시행했고 이후 2011년, ‘토지정의연맹’을 창설해 부동산 투기와 맞서 싸우며 이름을 알렸다. 자전거와 역성장(Degrowth)의 신봉자인 호이딕은 반드시 분리독립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더는 범민주 진영을 신뢰할 수 없다고 설명하며, 자신은 두 가지 입장 사이에 위치한다고 밝혔다. “다양한 선택을 남겨놓는 국민투표를 통해 새로운 헌법질서를 재정의해야 한다. 홍콩의 정체성은 무척 복잡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여태껏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수많은 이민의 층위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비폭력주의자이며, 서민층의 지지가 필수라고 여긴다.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생활에 통제권을 지니는 것이다.” 로 주석처럼 호이딕 또한 “동남아시아 전체로 전장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6년 9월 4일, 그는 자신의 선거구인 신제에서 다른 후보들을 큰 표차로 따돌리며(8만 4천 표를 얻음) 입법회 의원으로 당선돼 ‘투표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분리독립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붙은 세 명의 또 다른 지역주의자, 네이선 로, 에드워드 유청임, 로 시우레이도 총선에서 당선됐다. 로 시우레이는 몽콕 야시장의 거리 상인들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던 대학교수다. 범민주 진영은 하락세이긴 하지만 70석 중 총 20석을 차지했는데, 이 세 사람 모두 범민주 진영에 가입했다. 덕분에 범민주 진영은 친중파 의원들이 강요할 법한 법안 제정을 막는 데 필요한 24석이라는 숙명적인 경계에 도달했다.
 

4석을 차지한 분리독립주의자 가운데는 영스피레이션당 소속의 바지오 렁과 야우 와이칭이 있다. 이 두 사람은 2016년 10월 11일, 의원 취임 선서를 하는 자리에서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라는 깃발을 흔들어 주목을 받았다. 경멸조로 ‘중국’을 발음했으며 ‘Republic of China’이라고 발음하는 대신 ‘Refucking of China’라고 발음했던 이들의 선서는 그 즉시 기각당했다. 중국에서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홍콩 기본법에 대한 제 나름의 해석을 내놓으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법으로 정해진 선서 형식에 걸맞지 않은 단어를 의도적으로 발음한 자, 혹은 불성실하거나 엄숙하지 않은 태도로 선서한 자는 선서를 거부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의 선서는 유효하지 않으며, 관련자는 지위가 박탈된다.” 홍콩 법정은 이 해석을 승인했고, 따라서 위의 두 사람은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다.

선서문을 곧이곧대로 읽지 않은 것은 이 두 사람뿐이 아니다. 범민주 진영 인사로 ‘롱헤어(장발)’라는 별명을 지닌 렁 콕훙은 노란 우산을 보란 듯이 내세웠고, 톈안먼 광장의 집단학살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책임을 추궁했다. 그뿐만 아니라 로 시우레이는 선서문의 각 음절을 하나씩 끊어가며 못 알아듣도록 발음했고, 로 주석은 ‘Republic’이라는 단어를 의문문의 억양으로 발음했으며, 유청임은 진정한 직선제를 촉구했다. 기본법뿐 아니라 항소하기가 더욱 어려운 ‘관습법’의 판례 원칙에 따라 법원이 결정해 7월 14일에 발표된 내용에 따라, 이들 또한 기소돼 의원 자격이 박탈됐다. 다음번 선거는 모든 항소의 가능성이 사라진 때로부터 21일 후에나 열릴 것이다. 그때까지는 민주진영의 의석은 20석으로 줄어들어 거부권을 행사할 수가 없다.
 

과거의 투표제도를 기반으로 선출된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는 넓은 길이 펼쳐져 있다. 19년간 영국 식민정부의 고위공무원으로 재임했던 람 장관은 별다른 변화 없이 곧바로 중국정부 쪽으로 옮겨왔다. 람 장관의 로드맵은 이미 다 그려진 듯한데, 야당 정치인들을 엄벌하기 위한 기본법 23조로 예정된 분리독립금지법의 도입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람 장관이 위험을 감수할지는 확실치 않다. 사실상 지역주의는 점점 기세가 높아지는 실정이며, 이미 서민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서민층의 지역주의를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글·장자크 강디니 Jean-Jacques Gandini 
독립 연구자.
 
번역·박나리 karsella@naver.com
연세대 불문학과 및 국문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저서로 <세금혁명> 등이 있다.
 

 

(1) François Bougon et Florence de Changy, ‘Xi Jinping met en garde les démocrates de Hongkong(시진핑이 홍콩 민주파를 경계하다)’, <르몽드> 2017년 7월 3일자
(2) Stuart Lau, “Chinese state leader Zhang Dejiang announces Beijing’s plans to tighten grip on Hongkong”, South China Morning Post, Hongkong, 27 mai 2017.
(3)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인정한다는 조건 하에, 두 개의 체제(홍콩과 대만 같은 자본주의, 본토 같은 사회주의)가 양립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표현.
(4) Lau San-ching, <Dix ans dans les camps chinois. Témoignage(중국 감옥에서의 십 년, 증언록), 1981-1991>, Jean-Jacques Gandini 서문, Dagorno - L’Esprit frappeur, Paris, 2002.
(5) cf. Nahan Siby, ‘L’été de la révolte se prolonge à Hongkong(홍콩에서 혁명의 여름이 이어지다)’=한국어판 '왜 홍콩인들은 시민 불복종에 나섰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4년 10월호.
(6) Kwong Ying-ho, ‘L’essor du localisme à Hongkong: une nouvelle voie pour le mouvement démocratique?(홍콩 지역주의의 비약적 발전: 민주주의 운동을 위한 새로운 길인가?)’, Perspectives chinoises, Hongkong, avril 2016.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을 받아보시고, 동시에 모든 PDF와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PDF와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정기구독자님이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바랍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시 종이신문 과월호를 발송 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2019-08-22 12:31:18
재미있는건 홍콩사람도 대만사람도 중국 시민권 따려고하면 중국이거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