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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향의 시네마 크리티크] 기적을 기다리는 자들의 오래된 미래 - ‘블레이드러너 2049’
[이수향의 시네마 크리티크] 기적을 기다리는 자들의 오래된 미래 - ‘블레이드러너 2049’
  • 이수향(영화평론가)
  • 승인 2017.10.1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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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도착한 미래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는 한 편의 영화가 어떻게 시간의 저항을 견디고 살아남아 재평가되고 다시 회자되어 마치 유기체처럼 존재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1982년 개봉 당시의 혹평과 흥행 실패, 1992년 감독판의 출시와 재평가 그리고 SF영화의 정전으로 이미 확고한 명성을 얻은 이후 나온 2007년 최종판의 변천 과정은 내용상의 차이보다는 이 영화가 영화사에서 가지는 위상의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 겪었던 제작상의 어려움, 제작비 절감을 위해 <샤이닝>이나 <스타워즈> 등의 남는 필름과 촬영 세트 등을 얻어 썼다는 일화들이나 개봉 당시의 혹평으로 급작스럽게 편집이나 연출 상의 제약이 가해졌다는 회고 등은 이제는 걸작이 가지는 드라마틱한 변천 과정의 양념처럼 덧붙여져 이야기되고 있다. 요컨대 <블레이드 러너>는 90년대까지 암암리에 존재를 드러내던 한국의 '씨네필' 즉, 영화를 보는 행위를 지적인 수행 작용으로 판단하여 한국 영화사상 가장 특이하게 존재했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관객 일군에게도 종종 '저주받은 걸작' 상위 리스트에 꼽히던 영화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SF영화의 고전의 반열에 올라 이후에 나온 많은 영화와 감독들에게 시각적 충격 효과 혹은 세계관의 측면 등에서 영향을 미쳤다. 
 
이 영화는 SF장르이면서도 <스타워즈>나 <E.T.>가 보여주는 우주와 미래에 관한 시야의 확장이나 흥미로운 접근 대신 30년 후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보여준다. 어둡고 안개가 깔린 도시, 네온사인이 빛나는 건물이나 거리들 사이로 다국적의 인간들이 마치 좀비떼처럼 살아가고 있는 미래의 모습은 1980년대 초, 강력한 산업 부흥책인 레이거노믹스의 흐름에 서 있던 당대 미국 관객에게도 꽤나 이질적이고 당혹스러운 경험을 선사했던 것이다. 즉 유토피아를 기대하며 우경화되던 미국에 너무 빨리 도착해 버린 디스토피아적 서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이던 ‘2019년’이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실이 되어버린 현재, 이 영화는 유기체처럼 다시 생장하고 확장하여 <블레이드 러너 2049>로 귀환했다.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우울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전작의 설정이나 세계관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시간이 흐른 만큼 인물의 세대교체와 리플리컨트의 진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먼저, 리플리컨트-블레이드 러너의 관계에 대한 설정은 전작과 동일하다. 리플리컨트(Replicant)는 일종의 인조인간으로 겉으로는 인간과 거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며 주로 인간의 노동력의 대체 수단으로 사용된다.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리플리컨트들을 쫓는 경찰을 의미한다. 
 
인간과 리플리컨트가 혼재된 2049년이 배경이며 리플리컨트의 구모델인 넥서스8을 폐기하기 위해 이들을 쫓는 L.A.P.D. 소속의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를 중심으로 사건이 진행된다. ‘K’는 사건 현장에서 또 다른 구모델인 넥서스6와 관련된 비밀의 단서를 찾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은퇴한 블레이드 러너인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찾기로 한다. 한편, 유전공학으로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큰 부를 거머쥐게 된 ‘니안더 월레스’(자레드 레토)는 리플리컨트를 좀 더 발달시켜서 우주 전체를 지배하려하고 이에 ‘K’가 찾는 비밀에 접근하기 위해 그를 쫓는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관객에게는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영화일 수 있다. 시작 부분에서 공간과 인물 설정에 관한 간략한 정보를 제시하기는 하지만, 이 영화의 온전한 감상에는 전작에 대한 정보 유무가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프리퀄 격인 영상 두 편(각각 5분)과 에니메이션 1편(8분 정도)이 따로 공개되어 있어 이 영상들까지 온전히 보고나야 전체적인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을 받는다. 리플리컨트들의 변천도 주의 깊게 봐야하는 요소로, 전작에서는 4년의 수명을 가진 넥서스6 모델이 등장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중간 단계이자 폐기 대상인 넥서스8 모델과 최신 모델인 넥서스9 모델-‘K’의 모델-이 등장한다. 최근에는 대중영화라 할지라도 관객으로 하여금 다소 적극적인 해석을 필요로 하는 것이 트렌드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해석보다는 지식의 차원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이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이 영화가 난해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지닌 세계관에서 기인한 것이다. 전작 <블레이드 러너>가 당대 대중 일반의 기대와 예상 가능한 상상력을 넘어섰다는 측면에서 ‘저주’받았으나 결국엔 그 덕분에 오늘날 ‘걸작’의 칭호를 받게 되었듯이 이 영화 역시 SF영화 일반에 기대하는 장르 컨벤션과 액션에 대한 기대감을 외면하는 측면이 있다. 중간에 아나 박사의 인공 정원 이미지를 제외하고는 영화의 배경은 시종일관 잿빛과 안개에 뒤덮혀 있거나 황폐한 모래사막으로 묘사된다. 도시 배경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높이 솟은 건물들과 날아다니는 자동차, 홀로그램으로 재현된 건물 외벽의 광고판 등이 사이버 펑크적인 이미지를 드러내지만, 실제 ‘K’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장소들은 도시의 슬럼가처럼 보이는 선술집, 집창촌, 낡은 아파트 등이다. SF장르에 기대하는 우주적 광활함이나 휘황찬란한 미래 도시의 상상력 대신 디스토피아(Dystopia)적 우울한 전망만이 가득한 것이다.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는 있으나 지구는 거의 황폐화되어 있으며 오프 월드(Off World-우주 식민지들)에 가지 못한 빈곤층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묘사된다는 점, ‘대정전black out’이라는 사고가 많은 정보와 기록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멸망 후의 세계를 그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Post-apocalyptic fiction)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대개의 디스토피아적 영화들이 절망적인 미래상을 제시하면서도 문제의 발생과 사건의 전개와 해결에서 전형적인 구도를 가지는 것에 비해 이 영화는 드니 빌뇌브 감독 특유의 방식 즉, 정보를 적층적으로 쌓아가는 서사로 결말에 이르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껍데기 메시아의 미혹
 
 
 
 
전작인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 가운데 여전히 가장 많은 논의를 이루고 있는 부분은 과연 릭 덱커트가 인간인지 혹은 리플리컨트인지의 여부이다. 그러나 그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인간과 리플리컨트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설정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 영화는 리플리컨트들을 노예로 혹은 통제 가능한 개체로 두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인간에게 통제되지 않고 주체적인 태도로 살고자 하는 리플리컨트들의 욕망이 갈등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전작에서 <블레이드 러너 2049>로 이어지는 영화의 세계관에서 인간과 리플리컨트가 반드시 선과 악으로 단순히 나뉘지 않으며 도리어 인류의 진화에는 리플리컨트들이 노동과 위험성을 담보하는 일 등을 감당하는 등 기능적으로 기여한 부분이 강조된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김영사, 2015)에서 인류의 빅히스토리(Big History)를 통시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호모 사피엔스 종의 일원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피엔스Sapience’를, ‘인류Human’는 ‘호모 속(屬,genus)에 속하는 현존하는 모든 종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하였다.(p.21-23) 사피엔스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 혁명을 통해 역사의 진로를 형성해왔다. 그런데 가축화된 동물에게 농업혁명은 끔찍한 재앙이었고,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 간의 이러한 괴리가 농업 혁명의 가장 중요한 교훈을 시사한다고 설명한다(p.147). 요컨대 사피엔스가 역사적 진화를 진행할수록 다른 동물들이 멸종한다는 점을 병렬적으로 제시하면서 인간의 진화가 다른 존재의 희생 아래 치러지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월레스는 종을 가르는 벽 위에 세워진 세상의 질서 유지와 노예(리플리컨트)를 통한 문명의 도약을 강조한다. 과학자인 월레스가 구상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세계에서 기술의 진보는 인간 외의 존재를 말 그대로 ‘껍데기(skin job)’-영화 속에서 리플리컨트들을 경멸적으로 비난하는 용어로 사용-로 사용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월레스는 자신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리플리컨트들을 ‘천사’로 부르면서 마치 예수처럼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로 자임하고 이들이 인류의 행복 혹은 미래적 전망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신의 목적이나 상황에 따라 ‘천사’들을 가차없이 제거하는 그의 모습은 메시아의 형상을 한 적그리스도처럼 보이는데 이는 묵시록적인 이미지의 차용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기존 SF물에서 선보인 인조인간들과 달리 가장 혁신적으로 설정된 부분은 리플리컨트들이 인간과 외모만 흡사한 것이 아니라 체액을 가지고 있으며 사고의 확장까지 가능하다는 점이다. 특히 리플리컨트들이 피와 땀이 흐르고 칼이나 총에 죽는 부분은 그들을 거의 인간과 구분 지을 수 없는 존재로 강렬하게 이미지화되며 머리에 심어진 기억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으로 운명의 향배를 결정해 가는 부분은 주체적 사고를 하는 근대의 회의하는 개인을 연상시킨다. 특히 전작에서는 ‘V-K 테스트(Voigt-Kampff Test)’를 통해 인간과 구별되는 리플리컨트의 감정적 서투름이 표현됐지만, 넥서스9의 모델들은 사랑, 안락함의 추구, 불안함, 감동 등의 감정에 따라 눈물을 흘리고 불안함을 표현하기까지 한다. 
 
유발 하라리는 자연 선택의 법칙을 깨고 지적 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해 나가는 것을 21세기의 발전 방향으로 보고, 이때 지적 설계의 방법을 생명공학(유전자 조작), 사이보그 공학(무기물과 유기물을 하나로 결합시킨 존재), 비유기물 공학의 세 가지로 제시한다.(p.565) 그러면서 사피엔스라는 종 역시 사이보그로 변하는 예가 늘어나고 있으며, 미래 기술의 잠재력은 단지 수송 수단과 무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욕망까지 포함하여 호모 사피엔스 자체를 변화시키는 형태가 될 것(p.581)이라고 진단한다. 
 
문명의 변천에 따른 역사적 발전 도식으로도 인류라는 종에 관해서 더 이상 그 생물학적 · 정신적인 고유성이 지켜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이러한 전망은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가진 문제의식과 동궤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과 리플리컨트 그 가능성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은 당면한 우리의 상황 자체일 수 있음을 이 영화는 환기시키고 있다. 
 
우리의 미래가 디스토피아적인 잿빛을 띠고 있다면 이는 식량난 같은 형태가 아니라 도리어 생태계 파괴와 같은 환경적 요인일 것이며, 이에 인류라는 존재의 고유성이 생태계의 최상위 심급으로 남아있지 못하게 될 가능성 크다는 점을 이 영화는 우리에게 시연해준다. 프리퀄 <BLADE RUNNER Black Out 2022>에서 한 리플리컨트는 자신들이 예전 넥서스 보다 오래 살게 될 수도 있지만, 수명이 곧 삶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기적’을 보았고 더 많은 ‘기적’이 도래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30년을 지나 도착한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다시금 강조하는 가치 또한 같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기능적으로 소비되고 목숨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한 껍데기 인간으로 살지 않기를 욕망하는 것은 리플리컨트를 처음 만든 타이렐 사의 광고 문구처럼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 글: 이수향
영화평론가. 201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수상하였으며, 웹진《문화다》편집동인으로 활동하며 대학에 출강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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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향(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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