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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전기, 한 손엔 ‘대지의 어머니’
볼리비아 인디오의 모순 혹은 절충
한 손엔 전기, 한 손엔 ‘대지의 어머니’
볼리비아 인디오의 모순 혹은 절충
  • 모리스 르무안
  • 승인 2010.05.10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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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한 원주민주의 뒤에선 국가지원 얻기 위한 경쟁
민족주의·인류학·생태주의 등과 만나 복잡한 변이

차별받는 집단이든, 주목받지 못하는 국가든, 억압받는 민족이든 간에 정체성을 내건 사회 결집은 모순된 양면을 내포하고 있다. 위기와 혼란의 시기에 기억의 힘과 공동체 연대는 기존 정치 활동으로는 불가능한 놀라운 결집력을 발휘한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 지대에서 살아가며 알렉산더대왕의 자손임을 자처하는 칼라시족처럼, 소수민족은 그동안 거부당해온 뿌리 찾기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기 마련이다. 더욱 다양하고 특수하고 편협한 가치관 속으로 움츠러들수록 이 흐름은 강한 분리 독립의 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사회계층을 비롯한 기존 계급이 와해(혹은 은폐)되는 한편, 지배자 간 경쟁 구도가 형성된다. 원주민이 정복자에게 느끼는 감정이 그렇듯, 희생자로 이루어진 세계는 동질 의식을 쉬이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별개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들이 사는 곳은 볼리비아, 우리가 사는 곳은 코야수요(1)다.” 라파스에서 만난 콘스탄티노 리마는 ‘투팍 카타리 원주민 운동’(MITKA)을 이끄는 지도자다. 얼굴은 꽤 호남형이지만, 그의 입에선 연방 백인 ‘카라스’(Q’aras)에 대한 저주가 쏟아진다. “대지의 여신 파차 마마는 백인에게 유럽 대륙을 주셨다. 아프리카인에게는 아프리카를, 아시아인에게는 아시아를, 그리고 우리에게는 볼리비아를 주셨다. 우리의 ‘새로운 헌법’(Reconstitutive)에 따르면, 유럽인은 모조리 사형감이다. 유럽인은 우리 땅을 침략해 가장 중대한 반인륜 범죄를 저질렀다. 물론 이것이 다소 과중한 처벌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원주민 법안의 정신이다.”(2) 또 그는 한술 더 떠 “우리 원주민은 볼리비아의 다수를 차지한다. 어찌 다수가 소수에 통합되기를 바라는가?”라고 반문했다. 요컨대 리마는 소수의 다른 강경파 원주민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옛 잉카제국 영토에 대한 원주민의 주권 회복을 희망하는 자다. 그는 황금시대의 복원을 꿈꾼다. 옛날 인디오는 아메리카 대륙(모두가 잘 알다시피 이 대륙이 처음부터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을 평화롭게 지배했다. <<원문 보기>>

 조상들도 평화롭진 않았다

그들은 평화로웠을까? 1519년, 대서양 양안을 무대로 대항해 시대의 서막이 올랐을 때, 아스테카 제국은 지금의 멕시코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콘키스타도레스’(Conquistadores·신대륙 정복에 나선 스페인 정복가들-역자)의 시대였다. 스페인 정복자는 가공할 만한 화포나 화승총, 톨레도 검(명검 생산지 톨레도에서 만든 우수한 품질의 철검-역자), 말(기다란 꼬리에 갈기가 달린 이 뿔 없는 거대한 짐승은 가히 위력적이었다) 등을 이끌고 정복길에 나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하나의 대륙을 정복하기란 역부족이었다. 때마침 토토나크족 추장이 에르난 코르테스군에 병력 400명을 지원했다. 몬테수마 황제를 무너뜨리려는 속셈이었다. 틀락스칼라 부족도 몬테수마 폐위를 목적으로 정복자 코르테스의 보병부대에 지원병 10만 명을 파병한다. 그곳에서 조금 남쪽에 위치한 현재의 과테말라 지역에서, 페드로 데 알바라도가 키체족과 분쟁 중인 칵치켈 부족과 동맹을 맺는다. 좀더 남쪽에 위치한 안데스산맥 고지대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세계의 배꼽 쿠스크가 자리한 이곳에서는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제국의 내분을 이용한다. 그는 신정제국 잉카를 무너뜨리고 아튀알파를 시살하는데 카나족, 카하차푸야스족, 왕카스족 등의 도움을 받는다.

비극적 동맹과 암울한 분열, 그리고 종말. 검, 십자가, 선교사, 교황칙서 등이 온갖 지옥의 참상을 몰고 온다. 원주민은 정복되거나, 쫓기거나, 굶어죽는다. 이들은 노예로 전락하거나, 광산 강제 노역이나 농촌 부역 등에 동원되면서 경제적인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이용된다. 아메리카 대륙에 국가가 들어설 때까지 원주민은 살아남는다. 그들 특유의 저항과 항거, 집요함 덕분이었다. 그들의 독립성은 스스로를 비시민 계급으로 옭아매었다. 원주민을 위한 국가정책은 기껏해야 강제적 동화가 전부였다. 백인과 메스티소(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역자)는 선의든 뭐든 ‘원주민의 사회 동화’를 부르짖었지만, 실은 이 모두가 국가의 정치·경제·상공업·서비스 등을 얻기 위한 주도권 쟁탈전에 불과했다.

원주민은 인구학상 수적으로 우세했지만(3) 소수자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저항의 힘을 형성하기 위해 원주민의 객관적 조건(문화적 특성, 소속 공동체, 소속 영토)과 주관적 조건(소속감)을 모두 끌어들여야 했다. 이들은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그렇다고 늘 인종이라는 틀만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1992년 ‘500년에 걸친 흑인, 서민, 원주민의 저항’이라는 제목의 대륙 캠페인(4)에서 “우리 원주민은 서민이나 학생, 노조운동과 연합해야 한다”고 아나 야보가 힘주어 말했다. 칠레 마푸체족 여성인 그녀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와 잘 알고 지낸 인물이다. 그로부터 2년 뒤 치아파스 지역에서 등장한 사파티스타는 원주민과 다른 계층의 결집 의지를 더욱 체계적으로 천명한다. 그는 “우리 희망 행진의 표적은 메스티소가 아니다. 자본에 물든 인종이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피부색이 아니다. 돈의 색이다. (중략) 우리는 원주민을 위해 투쟁한다. 하지만 오로지 원주민만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가난하지만 미래를 위한 존엄성을 가진 모든 이를 위해서 우리는 투쟁한다”(5)고 했다.

 인디오·서민 연합, 영원한 논쟁

 

▲ <무제>, 2009- 장샤를 블레
지금의 ‘라틴’아메리카는 본래 인디오의 땅이었지만 지금은 메스티소가 다수를 차지한다. 물론 어느 계층보다 원주민이 가장 소외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진보나 교육, 시민권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원주민 외 계층이 수천만 명에 이른다. 더욱이 요즘은 혼혈에 혼혈이 거듭되면서 인종 간 구분이 모호하다. 사회학자 이봉 르 보는 “산촌, 농촌, 도시 그 어디를 근거지로 하든 원주민은 개방된 사회에 편입해 다양한 계층과 접촉하며, 국가나 세계의 동력 역할을 한다”(6)고 한다.

 

원주민 운동에서 인디오와 서민의 연합은 영원한 논쟁거리다. 한편에서는 차이를 존중한 사회 동화를 주장하고, 다른 편에서는 인종성에 근거한 자주적 발전을 부르짖는다. 1960∼80년대에는 전자의 주장이 우세했다. 그런 연유로 인디오운동은 대부분 농민운동으로, 더 광범위하게는 서민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7) 하지만 이런 흐름이 빈번히 난관에 봉착하자, 인디오는 다시금 인종성으로 고개를 돌린다.

가속화된 세계화로 주요 사회 주체가 분열되면서 새로운 판도가 형성됐다. 정당에 대한 피로도와 불신, 힘 잃은 좌파, 대안이 될 만한 사회정책의 부재로 지역·지방 중심 세력이 재등장한다. 전통적 조직 형태 때문에 다른 계층에 견줘 와해가 심하지 않던 원주민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새로운 사회 결집의 동력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들은 저항을 거듭하면서(물론 거센 억압을 견뎌내야 했다) 시장 세계화로부터 국가를 지켜냈고, 사회 전체가 진보하는 데 기여했다(언제나 양자가 서로 상호적인 것은 아니다).

에콰도르에선 ‘에콰도르 원주민 연대’(CONAIE·Confederation of Indigenous Nationalities of Ecuador)가 압달라 부카람(1997), 하밀 마우아드(1999), 루시오 구티에레스(2005)를 대통령의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볼리비아에서는 원주민의 불만과 일반 시민의 요구가 결합해 처음에는 ‘물 전쟁’, 그다음은 ‘가스 전쟁’으로 발현됐다. 이 전쟁은 신자유주의자 곤살로 산체스 데로사다 대통령의 퇴진(2005)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후임 카를로스 메사 대통령 역시 똑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그리하여 남미 역사상 처음으로 원주민 출신 정치인 에보 모랄레스가 대통령에 선출된다. 상징적으로 모랄레스는 고대 안데스 문명 유적지인 티와나쿠에서 전통 인디오식 취임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이튿날이 돼서야 의회 취임선서를 했다. 모랄레스는 원주민을 지지 기반으로 했다. 하지만 강경파 원주민주의자이자 같은 원주민 출신의 정적 필리페 키스페와는 달리, 도시민·동업조합·협동조합·은퇴자·‘민족주의’를 설파하는 메스티소 등 다양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강경파, 내부에서도 썰렁한 반응

아메리카 대륙 밖에서는 이국적 상상력으로 토착 원주민을 바라보거나, 원주민에게 화석화된 정체성을 부여하려는 이들(사회학자, 인류학자, 저널리스트, 구호단체나 환경단체)이 원주민과 다른 계층의 결탁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양쪽 통합은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때로는 성공이나 진보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순수성에 대한 향수를 지닌 자들은 “이들이 원주민으로서 자긍심을 잃고, 다양성을 포기한 채 사회에 동화되려 한다”(8)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다. 일각에서는 “토착 원주민 사회는 특수성을 지키기 위해 계속 투쟁해야 하고, 원주민의 사회양식이 타 계층의 양식에 동화되지 않게 늘 경계해야 한다”(9)고 지적한다.

볼리비아에서는 일명 ‘말쿠’(아이마라어로 대형 독수리 콘도르를 의미)라는 별명을 가진 키스페가 “우리가 말하는 국가는 민족자결 국가다. 우리는 우리만의 지도자, 우리만의 경찰, 우리만의 군대를 가진 코야수요국의 창설을 원한다”며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 그의 아이마라식 민족주의는 인디오 사회 전반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콰도르에서는 2006년, 좌파 후보 라파엘 코레라(메스티소)에 대항해 출사표를 던진 CONAIE의 역사적 지도자 루이스 마카스도 숱한 개인적 업적에도 2%의 득표율로 당원으로부터 외면받는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것이 상처받을 만한 일일까?

원주민이라는 정체성이 사회동화주의, 인종차별, 보수주의로의 이탈에 방패막이가 돼주는 건 아니다(여기서 우리가 마카스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1993년 볼리비아에서는 카타리 분파(10)를 이끄는 우고 카르데나스가 부통령에 올랐다. 그는 한편으로는 볼리비아의 “다인종적이고 다문화적” 성격을 인정하는 헌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산체스 데로사다 대통령(초임 시절)의 급진적 자유주의 색채의 정책을 지지함으로써 원주민(그리고 다른 계층)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페루에서는 ‘촐로’(Cholo)(11)에 속하는 알레한드로 톨레도가 자신의 인종성을 내세워 2001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그는 곧 자국을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IBRD) 전문가의 손아귀에 넣어준다. 이 기구들은 호시탐탐 페루를 매력적인 사냥터로 생각해왔다.

공동체 중심주의가 특히 신자유주의 모델과 함께할 때 모호함이 발생할 수 있다. 세계은행도 이 점을 모르지 않는다. 세계은행은 2004년 이후 토착 원주민을 위한 글로벌 기금을 마련해, 소규모 사업에 쓰일 자금을 각 공동체에 직접 지원했다. 국가를 배제하고 민간 부문과 협력함으로써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원주민 운동의 거센 압력 속에(이는 정당한 압력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다인종성과 다문화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헌법을 채택했다. 어떤 경우에는 원주민(또는 아프리카 자손)에게 특별한 권리가 부여됐다. 어떤 원주민 단체도 독립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대부분(특히 아마존 저지대)이 자결권과 영토주권을 요구했다. 그렇게 각국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원주민에게 자치권을 내주었다.

산, 웅장한 폭포, 깎아지른 절벽, 천둥, 번개, 비, 대지의 여신 파차 마마, 그리고 우주와 합일되는 조화와 우주론…, 일반적으로 아메리카인디언은 서구사회보다 자연친화적인 사고방식과 우주론을 가졌다. 그들은 환경을 파괴하면 불가피하게 자신들의 생활 여건도 열악해진다는 사실을 잘 이해한다. 그러니 이들이 숲과 사바나, 습지를 파괴하고, 화학비료나 독성물질로 물과 대지를 오염시키고, 생물 특허를 주장하는 다국적기업의 침입에 그토록 반대하는 것이 얼마나 정당한 일인가? 이들이 정책의 입안·실행·관리에 참여할 권리를 요구하는 것 또한 얼마나 합당한 일인가?

상황이 그렇다고는 해도, 자치권 유무와 관계없이 영토는 여전히 국가의 일부에 속한다. 천연자원, 특히 석유 개발이 문제가 되면 국가는 어느 때보다 자신의 특권에 까다롭다. 공공 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국가(볼리비아·에콰도르·베네수엘라)에서 진행 중인 자원 개발과 국영화 작업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는 만성적이면서 때론 모순적 분란의 씨앗이 된다. 왜냐하면 “자원통제권을 확대하거나 ‘전통적’ 조직 방식을 인정받기를 바라는 이들이 주저하지 않고 국가의 폭넓은 개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12)이다. 이들은 저마다 상수도, 도로, 학교, 의료시설 등 재정지출이 불가피한 재화와 용역에 대한 접근을 바란다.

 원주민 출신 대통령과도 불편

아이러니하게도 에콰도르 아마존 원주민의 생존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 또한 석유다. 1970∼80년대 석유 열풍은 안데스 지역으로의 인구 이동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석유 덕분에 도시 건설 분야 등에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숲으로 유입되는 인구가 줄어들었다. 이 지역에서 급진적 성향의 원주민주의자가 가끔 산악오토바이에 앉아 가축을 지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상의 땅을 ‘외국인’이 출입해서는 안 될 금기 지역으로 인식하고, 모든 침입을 ‘정체성’ 침해로 비난하는 것은 위험한 행위다. 2008년 ‘백인’ 야당의 텃밭이자 모랄레스에 대항하는 친분리주의자 루벤 코스타스가 주지사로 있는 볼리비아 산타크루스 주정부 건물에서 구아라요족 원주민 출신의 국회의원 이그나시오 우라푸카가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대통령은 오리엔테(동부) 지역에서 케추아족과 아이마라족이 함께 살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일단 그들이 이 지역에 들어오면 자연의 여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림지대를 마구 파헤칠 것이다. 우리는 이들과 공존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 영토는 우리 것이다”라고 했다. ‘볼리비아 동부 차코 아마존 지역 원주민 동맹’(34개 부족으로 구성) 회장 아돌포 차베스는 “원주민 운동을 배반하고 사업가에게 땅을 팔아치운 형제들이 다시 야권으로 향하고 있다. 대신 이들은 주정부에 일자리를 얻고, 국가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온 정당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역사적 빚을 인정하고, 토착 원주민에 대한 개념을 국가 정체성의 근간으로 받아들였다. 2006년 창설된 서민 및 원주민 담당부의 관할 아래 어렵사리 토지구획사업을 실시해, 본래 주인인 토착 원주민에게 땅을 돌려주었다. 하지만 바리족 영토인 시레아 데 피레야의 카라냐칼에 지바로족 일부가 이주해왔다. 이 지역의 추장인 알라와이쿠는 “대통령은 우리에게 다른 부족과 함께 살라고 하지만, 우리는 원치 않는다. 바리족이 다른 부족과 살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 뜻을 존중해야 옳다”며 분개했다. 인종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 역시 추악할 수 있다. 때론 천사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법이다.

1980년대 우루아라(브라질)에서는 원주민의 입이 무언의 침묵으로 일그러졌다(이는 원주민이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근자에 발견된 고작 42명의 아라라족 원주민을 위해 80만ha에 이르는 보호구역을 조성했다. 원주민은 이 과정에서 아마존 횡단도로를 통해 들어온 2천 명의 소농을 추방하려 했다. 멕시코 치아파스에서는 1972년 66명의 가장이 대표단으로 있는 라칸도네 공동체에 60만ha에 달하는 영토를 내주려는 정부의 결정으로 이들 공동체와 사파티스타 원주민 사이에 분란이 발생했다.

 공동체 정의와 일반 정의는 만나나

사파티스타 원주민은 국가와 대화도 거절당하고, ‘정치권’(좌·우파 모두)과 관계가 껄끄러운 상황에서 파벌주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최초 원주민 대통령 모랄레스의 ‘역사적인’ 취임식에 초대받은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우리는 고위급을 만나고 다니는 데는 흥미가 없다. 우리 관심사는 오직 서민을 돌보는 것이다. 고위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우리 스타일이 아니다. 우리는 단 한 사람이 아닌, 국민 전체가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13)며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는 극도로 폐쇄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통령이 신자유주의 과거와 단절하는 동시에, 일종의 ‘원주민적 민족주의’인 ‘내적 식민주의’를 해체하겠다고 천명한 이 나라(볼리비아)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영토 조직이 논란이 되고 있다.(14) 서로 종속관계 없이 동일한 법적 지위에 따라 네 종류의 자치권(주, 지역, 시 및 원주민 자치권)을 인정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무슨 수로 공동체의 정의와 일반적 정의를 조화시켜나갈 수 있을까? 왜냐하면 ‘풍습’이라는 미명 아래 “원주민 민주사회의 저변에는 권력 유지를 꾀하거나 외부 세력에 좌우되는 노인 정부가 휘두르는 권위주의적 사회 형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15).

볼리비아가 변화를 꾀하는 동안, 과테말라에서는 원주민이 철저한 인종차별 정책으로 시름하고 있다. 키체족 출신의 리고베르타 멘추는 1992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후,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오스카르 베르헤르 대통령의 친선 대사로 전락해버렸다. 또 칠레 정부는 마누체족을 피노체트의 반테러법으로 다스리는 실정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사이마도이 지역의 바리족 추장 엑토로 에두라르도 오코보 아소크마가 “우리는 전기시설과 제대로 된 도로, 교량 등 모든 인프라 시설을 원한다. 크레올레(백인)의 기술과 우리 문화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 풍습을 포기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우리는 두 가지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콰도르에서는 3월 CONAIE가 환경운동가의 지지를 등에 업고 코레라 대통령과 전쟁을 선포했다. 코레라는 이 연대의 지지로 대통령직에 오른 인물이다. 대통령과 이 원주민 간 분쟁의 중심에는 광산 채굴, 석유 탐사, 물 관리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분석가 페드로 사아드에 따르면 “원주민는 CONAIE 지도자의 저항 호소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16) ‘아마존 원주민’과 달리, 대부분 고지대인 시에라에 사는 에콰도르 원주민은 계속해서 대통령을 지지할 것이다. 무엇보다 먹고사는 어려운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이라는 동력은 분명 신대륙 발견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저항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그 한계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진정한’ 원주민의 개념과 대치해 “원주민성은 사회적 혼혈 형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원주민성이란 생물학적 정의에 따른 것이 아닌, 이를 사용하는 상황과 주체에 따라 변화하는 모호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원주민성의 존재는 오로지 이에 대해 어떤 담화를 말하고,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17)

글•모리스 르무안 Maurice Lemoine
주요 저서로 <차베스를 대통령으로!>(Chávez présidente!·2005) 등이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각주>
(1) 잉카제국 지역명으로, 오늘날 볼리비아의 서부 지역, 페루의 남부 일부,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북부를 아우른다.
(2) 출처를 명기하지 않은 인용문은 인터뷰 내용을 의미한다.
(3) 원주민의 인구는 4500만 명으로, 라틴아메리카 전체 인구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한다. 원주민 색채가 가장 강한 나라는 과테말라·볼리비아·에콰도르·페루이며, 숫자상으로 원주민이 가장 많은 나라는 멕시코(약 1천만 명), 전체 인구에서 원주민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볼리비아(62%)다.
(4)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주년 행사에 반대해 원주민 단체가 주도한 캠페인.
(5)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 성명, 1994년 10월 12일.
(6) 이봉 르 보, <원주민 대저항>, 로베르 라퐁, 파리, 2009.
(7) 콜롬비아와 과테말라에서 게릴라 조직에 참여하기도 한다.
(8) 줄리오 지라르디·장클로드 프리츠 공저, <새로운 원주민 문제: 토착민과 세계질서>, 라르마탕 출판사, 파리, 2005.
(9) 필리프 자냉 도비녜.
(10) 18세기 반식민 저항 지도자 투팍 카타리에서 이름을 딴 운동.
(11) 도시 지역 원주민.
(12) 크리스티앙 그로, ‘인종성의 정책 및 역설’, <라틴아메리카 문제>, 제48호, 파리, 2003년 봄.
(13) 존 로스, <사파티스타!>, 네이션 북스, 뉴욕, 2006.
(14) ‘에보의 볼리비아, 민주적이고, 원주민적이고, 사회주의적인가?’, <알테르나티브 쉬드>, 3대륙 센터 및 실렙스, 루뱅-파리, 2009.
(15) 크리스티앙 그로.
(16) EL Pueblo, Quito, 2010년 3월 13일.
(17) 크리스티앙 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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