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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는 개헌이란?
우리가 바라는 개헌이란?
  • 곽노현 | 전 서울시 교육감
  • 승인 2017.12.0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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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개헌추진 의지가 확고하다. 후보 시절에도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국민투표를 치르자는 제안으로 다른 후보들의 동의를 이끌어냈고, 그 입장은 현재까지도 변함이 없다. 문 대통령은 전면개헌이 어렵다면, 합의된 내용만으로 부분개헌을 추진하자고 할 만큼 촛불개헌에 적극적이다. 

반면,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지방선거일 개헌국민투표 일정부터 수용하지 않을 태세다.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일반기류와 달리,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이 선호하는 것은 혼합형 이원집정부제(1)다. 현재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개헌저지선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양당이 반대하는 이상 어떤 개헌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치권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정부 형태에 대한 합의 불발을 점치며 개헌에 냉소를 보내는 이유다.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헌법을 만드는 과정 속에 국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개헌논의는 국회개헌특위를 중심으로 전개될 뿐 좀처럼 일반국민 속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쯤이면 국회의원 지역구나 시·군·구마다 주요정당이 개헌민회와 공론조사, 모의시민의회 등 다양한 시민참여방식을 줄지어 선보이며 개헌논의와 합의수준을 높였어야 마땅하지만, 개헌공론화작업에 나서는 정당은 여야를 막론하고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일부 관련학계와 시민사회가 헌법의 다양한 구성요소에 대해 훌륭한 문제의식과 연구조사에 기초해 촛불개헌 추진에 힘을 쏟고 있지만, 개헌논의는 아직도 국회개헌특위의 밀실에 갇혀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작별할 때
 
지난 한 해 개헌논의를 통해 정부형태와 관련한, 몇 가지 총론적인 사회적 합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크게 보면 국가공동체의 권력구조 개헌에는 4차원이 있다. 각 차원과 관련해 의미 있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됐다. 첫 번째는 권력구조 문제와 관련해 국가와 (대의)정부에 대해 주권자에게 어떤 권리를 남기느냐의 문제다. 현재로서는 기본권과 참정권이 있을 뿐 입법, 행정, 사법에 대한 결정권한이 전무하다. 주권자들에게 선거권 외에도 국민발안권, 국민표결권, 국민소환권 등 직접 민주주의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큰 방향에는 이견이 없다. 촛불시민혁명의 성공과 디지털시민참여기법의 발달로 일반시민들은 이 부분을 특별히 열망한다. 
 
권력구조의 두 번째 차원은 국민으로부터 대표권한을 위임받은 국가권력 중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간의 수평적 권력구조다. 일반적으로 권력구조라 할 때는 바로 이 차원의 권력구조, 즉 정부형태를 가리킨다. 나는 지난 30년의 헌정경험은 물론이고 촛불혁명 기간을 거치면서 현행 대통령제의 문제점에 대해 좀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 그 압축적 표현이 ‘제왕적 대통령제’다. 제왕적 위상을 가지는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의 권한과 법관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큰 틀의 사회적 합의가 있다. 4년 중임 대통령제와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가 대안으로 경합 중이지만 다수 여론조사결과는 4년 중임 대통령제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알려준다. 
 
권력구조의 세 번째 차원은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수직적 권력구조다. 지금까지도 지방정부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라는 공식 표현을 쓰는 데서 잘 드러나듯,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자치단체’가 이끄는 수준이다. 재정자립도와 재정권한은 물론 입법권한, 조세권한, 조직권한이 대단히 취약해 중앙정부의 승인과 허가, 보조와 지원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2할 지방자치’ 구조다. 입법, 재정, 조직, 과세의 모든 측면에서 최소한 ‘4할 이상 지방자치’로 대폭 강화해야만 시민복리와 행정혁신을 도모하고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균형발전을 강화할 수 있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마지막으로, 권력구조의 네 번째 차원은 국가권력과 사회경제권력 간의 권력구조다. 헌법의 사회경제기본권 편과 경제 장에서 규정한다. 관건은 국가와 시장이라는 양대 경제 권력이 분업과 협업으로 공동선과 공익, 사회정의와 평화, 국민경제의 혁신과 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경제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한다는 데 있다. 노동보호와 토지규제를 강화하고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을 진흥하며 적정분배와 경제력조화에 필요한 적극적인 경제민주화조치가 필요하다는 큰 방향에서 사회적 합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시민 개개인, 특히 청년과 노인의 구체적인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경제헌법에 대한 강렬한 요구와 열망이 있음에도 현재 이 부분에 대한 개헌논의는 매우 부족하다.  
 
제왕적 대통령은 국정원과 검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과 공영방송을 정권의 수족처럼 부리고, 공천권 행사를 통해 여당을 청와대출장소처럼 휘두른다. 그리고 그 힘으로 국회를 타협 없이 다수결로 밀어붙인다. 국무총리의 내각통할권과 각료제청권, 해임건의권을 무시하고 청와대비서실을 통해 내각을 직접 지휘, 통솔한다. 대법원장과 헌재소장을 임명하고 대법원장과 헌재재판관 3인을 통해 자신의 사법적 이해관계를 관철한다. 한국의 대법원장은 대법관제청권을 포함해 승진, 전보 등 법관인사전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제왕적 대법원장으로 군림한다. 제왕적 대통령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보은의지를 가지게 마련인 대법원장의 인사전권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법적으로 승인받는다.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 vs 4년 중임 대통령제
 
따라서 국민직선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하지 않으려면 국정원과 검찰 등 권력기관과 공영방송을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중립화하고, 정당 공천권을 당원과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국무총리의 헌법적 권한을 인정하고 법원장의 대법관제청권과 법관인사전권을 제3의 헌법기관에 맡김으로써 법관의 독립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 헌법은 제3공화국 헌법만 못한 부분이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대법원장에 대한 대법관제청권 부여다. 현행 헌법은 이른바 유신헌법과 5공헌법이 독재자를 위해 보장했던 각종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잔재를 말끔히 씻어내지 못했다. 개헌을 안 하면 몰라도, 하는 마당에 5년 단임 대통령제를 고수하자고 주장하기 힘든 이유다. 
 
4년 중임 대통령제 주창자들은 우리 국민에게 친숙한 국민직선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유지하되, 대통령제의 원조인 미국식 대통령제에 보다 충실하게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의회 권한을 강화하자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대독·의전·방탄 기능 이상을 기대하기 힘든 국무총리제도를 없애고, 대통령과 동일티켓 부통령제를 도입해 대통령 궐위 시에도 국민직선 부통령이 승계하게 하자는 것이다. 둘째, 미국처럼 정부가 법률안 제출권을 가지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시행령 공화국이라 불리는 현실에서, 대통령의 법률안 제출권이 없으면 대통령과 여당, 의회 간 힘의 균형이 한층 잘 잡힐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미국처럼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을 의회가 법안으로 마음껏 다듬어서 통과시키고 그것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함으로써 국회의 예산편성감독권한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현재 국회는 어떤 항목의 예산이건 정부의 동의를 받아서만 증액할 수 있는데 이것이 의회감독권의 부당한 제약이라는 것이다. 넷째, 감사원을 대통령소속으로 두지 말고 의회 소속으로 옮기자는 것이다. 대통령소속 감사원은 대통령의 중점공약사업을 제대로 감사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는 국무위원 인사청문회를 법률로 도입했기 때문에 구속력이 없다. 개헌 시 우리 국회도 국무위원, 대사, 공기업사장 등 고위 대통령임명직에 대해 인준권을 가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4년 중임 대통령제의 분권핵심은 국회강화인데 이 부분이 이번 권력구조 개헌의 핵심 컨센서스에 해당한다. 정부형태와 관해 어떤 입장에 서더라도, 4년 중임 대통령제가 주장하는 수준의 의회권한 강화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4년 중임이 허용되는 순간 대통령임기가 실제로 8년으로 연장되는 효과가 난다는 점이다. 5년 단임에 비해 대통령정책의 시간지평이 늘어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국가혁신의 관점에서는 혁신주기가 사실상 8년으로 연장되는 비효율성을 낳게 된다. 
 
우리나라에 가장 적합한 정부형태는
    
국회개헌특위 소속 정부형태 시민자문위의 11인 위원 중 6인이 흔히 이원집정부제라 불리는 분권형 행정부를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대표성이나 학계대표성은 없지만 상당한 전문성을 갖춘 자문위원들의 의견분포가 이렇게 드러난 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자문위는 하원재적의원 과반수에 의해 선출된 총리가 정부수반으로서 내각을 통할하되 국민직선 대통령은 통일, 외교, 안보, 국민통합을 관장해 행정부 내에서 분권을 적극 실현하자고 제안했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질수록 행정 권력이 비대해진다. 행정부를 내치와 외치를 나눠 구성 원리를 달리하는 투톱시스템으로 운영하지 않는 이상 제왕화가 불가피하다는 전제가 작동한다. 실은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도 우리나라에선 얼마든지 독재로 흐를 수 있는 권력집중시스템이다. 대통령제의 대통령은 유일한 국민직선 자리라는 점에서 또한 국가원수와 행정수반을 겸한다는 점에서 행정수반만을 맡는 의원내각제의 수상에 비해 상징권력까지 더해지는 권력집중의 자리다.  
 
둘째, 연방제국가가 아닌 우리나라 대통령은 연방제국가인 미국의 대통령과 비교할 때 미국대통령이 자괴감을 느낄 만큼, 국민에 대한 권력이 상대적으로 막강하다. 미국대통령은 국방과 외교, 주간통상(Interstate commerce)를 담당하는 연방대통령일 뿐 50개 주에 대해 직접적 권한이 없다. 모든 주에는 주지사를 행정수반으로 삼는 독자적인 정부가 따로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미국연방대통령과 50개 주 지사의 권력을 합친 것과 똑같은 막강한 권력과 위상을 가지고 있다. 국회의 헌법적 권한을 미국과 동일하게 만들어놔도 한국의 4년 중임 대통령은 제도적, 문화적 인프라 차이 때문에 미국의 4년 중임 연방대통령과 달리 제왕적 존재가 될 운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반면 미중일러 4대 슈퍼파워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과 우리나라 특유의 분단 상황은 세계 어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도 비상한 안보, 외교, 통일 수요를 발생시킨다. 더욱이 외교, 안보, 통일 업무는 다른 어떤 국정과제보다도 상대적으로 초당파적이고 중장기적인 접근과 해법을 요구한다. 이렇게 볼 때 국민직선 대통령에게 초당적 성격의 외교·안보·통일 등 외치를 맡기고, 국회선출 총리에게 사회·경제정책 등 내치를 맡기는 혼합이원정부는 우리나라에 가장 적합한 정부형태일 수 있다. 만약 프랑스에서 발명해내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에서 발명해냈을지도 모른다.   
 
최근 성북구가 자치구 차원에서 100명의 구민이 참여하는 권력구조 개헌 공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권에 독점되고 있는 개헌논의를 시민참여 개헌으로 전환할 중요한 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성북시민들의 토론과정에서는 어떤 정부형태든 민의에 부합하고 다당제 토대를 만드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수라는 의견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우리 현실에서 권력구조 개헌논의는 고차 방정식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의 공동참여가 보장된다면, 그때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곽노현
서울법대를 거쳐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혁에 대한 연구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90년대부터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에서 활동한 바 있다.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서울시 교육감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최근 저서로는 <나비>(2012) 등이 있다.  
 
(1) 이원집정부제(二元執政府制):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권력구조. 국민이 뽑는 대통령은 외교·통일·국방 등 외치를 전담하고, 의회가 선출하는 총리는 내치를 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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