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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모션(snow motion)
스노우 모션(snow motion)
  • 김혜진 | ‘눈' 이달의 에세이 당선
  • 승인 2018.01.3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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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에 24프레임, 영화마술의 비밀이다. 그리고 1초 안에 벌어지는 스물네 번의 찰나를 1초보다 길게 늘이면, 슬로우 모션(Slow motion)이라는 영화보다 영화적인 마술을 부릴 수 있다. <매트릭스>의 총알 장면과 <웰컴 투 동막골>의 팝콘 장면도 이 마술의 유명한 예다. 시간과 움직임의 예술인 영화는, 시간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눈으로 볼 수 없는 움직임을 보게끔 한다. 나는 눈송이가 하늘 꼭대기서부터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때도, 시간의 흐름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마치 세상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려진 듯이.


2년 전 겨울, 1교시 강의에 서둘러 가는 길에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10분 이상 지각하면 1점 감점, 세 번 지각하면 결석 1회. 치열한 경쟁에서 1점이 아쉬운 학점을 어떻게든 챙기기 위해, 아침잠이 많던 나는 매일 아침 폭풍같이 휘몰아가는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렇게 휘몰아가야만 끝나는 등굣길에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천천히, 한 송이, 두 송이. 그것이 아름다웠다. 강의실에 거의 다 도착할 무렵에야, 나는 발걸음을 돌려 캠퍼스를 천천히 걸으며 눈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 놀랐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날 내게는, 발걸음을 돌리는 데 적잖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나는 중고교시절 땡땡이랑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지각은 가끔 했지만 매년 개근상을 탔고, 예습과 복습은 물론 오답노트도 꼼꼼히 기록했고, 앞자리에 앉고 절대 졸지 않는 학생이었다. 나는 선생님과 부모님 말씀을 너무 잘 들었고, 명문대 졸업과 고시패스라는 인생의 청사진이 이미 그려진 인재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인재인 줄만 알았다. 신림동 생활은 누가 맞춰놓았는지도 모를 내 인생 타임테이블의 엄격함이 절정에 다다른 때였다.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자마자 골목 귀퉁이에서 만나 서로 일어났는지를 확인하는 오직 신림동에만 있을법한 기상(起床)스터디라는 것을 한 적도 있다. 

▲ <2년 전 겨울, 그날 찍은 사진>
 
벚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것을 느낄 수 없는, 숨통을 조이는 신림동에서 살기 위해서 나는, 숨구멍을 찾아야 했다.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볼수록 내가 믿어온 것과 공부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의심과 질문이 많아졌다. 나는 신림동을 나왔다. 그리고 다시 학교에 돌아와서도 일생 동안 길들여진 나에게서 벗어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어떤 특별한 계기랄 것도 없이 더디게 그러나 치열하게 이전의 나에게서 벗어나는 나날들 중 어느 아침에 눈이 내린 것이다. 나는 그날 뿌듯하게 땡땡이를 치고 언제나 바삐 걸었던 캠퍼스를 이렇다 할 목적 없이 느리게 걸었다. 

 전공에 대한 흥미라고는 전혀 없었던 학부생활을 마치고, 나는 그토록 열심히 했지만 배운 건 별로 없는 듯한 공부에 여전히 미련이 남았다. 고민 끝에 영화이론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고, 이제 1년이 지났다. 1년 전 겨울, 입학시험 면접을 치르던 날도 눈이 내렸다. 떨려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면접을 끝내고 나와, 달아오른 두 뺨에 포근하게 닿았던 눈송이를 기억한다. 처음으로 스스로 결정해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고, 그것이 잘한 결정인지 몰라 설레고 겁이 났던 그 날에도 눈이 아름답게 내렸다. 

앞서 특별한 계기랄 것이 없다 했지만, 사실 그 무렵 나는 사랑에 빠졌었다. 마음에는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근거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자신감과 태평함으로 가득한 남자였다. 그는 이전에 만났던 남자들과 달리 나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주 천천히 서로를 물들였다. 나는 불안과 조급증에 갉아 먹혔던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그는 조금의 규칙성, 작은 목표들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오늘의 노력을 일상에 새기기 시작했다.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강가에 앉아 추위에 떨며 맥주 한 캔을 나누어 마시면서 우리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두려워하기보단 기대하자고.

길어진 학업, 아르바이트, 등록금 걱정, 졸업 후에는 프레카리아트의 삶을 예정해놓고도 나는 예전처럼 원인 모를 두려움에 떨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걱정처럼 아직 어려서, 세상을 몰라서일까. 그런데도 이제는 결혼할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소리를, 이제는 나이 들어 취업도 힘들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러니. 또는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나를 잃고 변할 것일까. 내 유년시절의 원초적 기억들 중 가장 강렬하게 남은 한 장면이 있다. 제과점을 하시던 아버지가 화이트 초콜릿을 강판에 갈면서, 내게 눈이 온다고 농을 하셨다. 나는 벽돌처럼 큰 초콜릿이 모두 갈리도록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눈이 떨어지는 것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어쩌면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은 건 아닐까. 

2년 전 겨울, 그날은 이상하리만치 내리는 눈이 아름다웠다. 가끔 마음이 다시 조급해지려 할 때, 나는 아직도 그날 찍은 사진을 본다. 내리는 눈처럼, 아름다움의 순간은 짧다. 내 젊음도 너무나 짧을 것이다. 나는 다시 눈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내일을 위해서 오늘 내리는 눈의 아름다움을 차마 외면할 수 없다. 나처럼 짧은 인생에서 영양가 없이 떨어지는 눈발이나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면, 휘몰아가는 시간, 내달리는 시간이 아닌 다른 차원의 시간이 열린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슬로우 모션이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을 볼 수 있게 마술을 부리듯, 삶의 스노우 모션(Snow motion)은 덧없이 흘러가는 순간순간에 우리의 감각을 깨운다. 인생이라는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순간들이 삶 속에 들어오고, 그 마법에 걸린 순간에 우리는 진정으로 깨어있고 또 살아있다.  


글·김혜진
영상문화이론을 공부중이다. 영화비평, 에세이, 시나리오 등 다양한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살면서 즐거운 때는 벼룩시장 돌아다닐 때, 새로운 레시피를 터득했을 때, 야외에서 한잔할 때이고, 꼭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는 코르시카, 꿈이 있다면 노을이 보이는 집에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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