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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스토리> ― 윤회를 거친 보물찾기, 그리고 떠난다는 것의 긍정성
<고스트 스토리> ― 윤회를 거친 보물찾기, 그리고 떠난다는 것의 긍정성
  • 권혜윤
  • 승인 2018.02.0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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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나간 연인이 유령이 되어 곁을 지킨다는 <고스트 스토리>의 줄거리는 90년도 로맨스 영화인 <사랑과 영혼>을 떠올리게 한다. 한 자리를 맴돌며 연인을 기다리는 유령의 모습은 사실 우리가 흔히, 그러나 은밀하게 소망하는 기이한 로맨스의 한 종류이다. 그러나 <고스트 스토리>에서는 연인이 일찍이 영화에서 퇴장하게 되면서, 기대했던 로맨스는 무거운 고독함으로 대체된다. 영화는 그 이후 진행되는 긴 시간의 기다림을 담아내지만, 사실 이 영화는 기다림이 아닌 ‘떠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고스트 스토리>는 그것을 불친절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영화는 그것을 대사나 해설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배경음악이나 영화에서 스쳐 지나가듯 보여주는 문학작품과 불교적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1. 카메라의 시선과 음악의 내레이션 역할

보통 유령이 출몰하는 판타지 영화에서는 유령의 존재를 인식하는 영력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가령 <사랑과 영혼>에서처럼, 그런 인물들의 도움을 받아 유령이 자신의 미련―우리나라의 언어로 말하자면 ‘한’을 풀고 떠난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고스트 스토리>에서의 이불보를 뒤집어쓰고 커다란 검은 눈구멍을 가진, 동화 속 삽화 같은 유령은 살아있는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다. 이 소통 불가능성은 생과 사, 그 사이를 떠도는 유령의 존재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어준다. 

영화 내내 침묵을 지키는 고독한 유령과 대사가 거의 없는 조용한 등장인물들을 대신하여 영화는 음악과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그들의 감정을 표현한다. 영화는 M(루니 마라)이 슬픔에 빠져 파이를 먹어치우는 장면만 대략 5분 동안이나 롱 테이크로 끈질기게 담아냈는데, 이 장면은 여러 관객이 영화를 중도 포기하게 했다. 누군가의 단조로운 일상을 5분 이상 지켜본다는 것은 요즘같이 빠른 템포로 생활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고역일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그러한 이유로 인해, 관객들은 화면의 중앙에서 파이를 먹는 M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기보다는 화면의 구석에서 우두커니 서서 그녀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유령 C(케이시 애플렉)의 입장에서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비록 여러 장면에서 유령은 화면의 구석에 밀려나 있지만, 우리는 이미 그가 겪었을 오랜 기다림을 간접적으로 함께 느꼈기 때문에, 유령과 동일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몰입의 방법으로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관객들이 유령이 느낄 세월의 괴로움을 공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 다른 방법으로, 감독은 음악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감정들을 짚어낸다. M이 C를 마음으로 정리하고 이 집을 마침내 떠나기 전에, M은 C를 회상하며 그가 만들었던 노래를 듣는다. C가 작곡한 이 노래(Daniel Hart-I Get Overwhelmed)는 영화에서 딱 두 번, 영화의 초반과 후반에 등장하는데, 두 번 모두 인물들이 ‘떠남’을 결정하기 직전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떠남’을 행할 때도,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매우 다른 빠른 박자와 밝은 멜로디를 가진 음악이 배경에 깔린다. 초반에 M이 떠날 때, 운전하는 그녀의 얼굴 위로 햇살이 비추면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후반에 C가 쪽지를 읽고 사라질 때 어두운 집 안에 문이 열리며 환한 빛이 들어오고, 마찬가지로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다시 말해, 인물들이 집을 떠나는 장면을 중심으로 영화는 음악을 사용하여 분위기를 전환한다.

2. 업과 윤회, 그리고 시간의 순환

반면 떠나지 못한 자는 적막함 속에 남겨진다. 홀로 남아 집에 머무르는 유령은 집을 거쳐 가는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낯선 언어를 구사하는 이민자 가정에는 분노를 느끼기도 하며, 힙스터들의 파티에서는 한 ‘예언자’의 영원한 것은 없다는 허무주의적인 세계관에 대한 일장연설을 듣기도 하며, 그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엔 아주 먼 미래의 도시로까지 오게 된다. 자신의 집이 있던 땅 위에 지어진 아주 높은 빌딩의 옥상에 서서 그는 도시를 바라본다. 그리고 유령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살을 시도한다. 그가 자살을 시도할 때, 그의 앞으로 커다란 눈 모양의 건물장식과 ‘karma(업)’라는 전광판의 글자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업이 있는 자는 윤회의 수레바퀴를 따라 생사를 반복한다는 불교의 사상처럼, 유령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개척자들의 시대로 돌아온 유령은 자신의 집이 있던 터에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만들려고 하는 한 가족을 목격한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고이 접어 돌 밑에 숨겨놓던 여자아이와 그 가족이 활에 맞아 죽는 것 또한 목격한다. 이때, M이 이사할 때마다 집안 곳곳에 쪽지를 숨겨두던 행위와 비슷하게 반복되는 여자아이의 행위는 시간의 순환성이라는 영화의 세계관을 더욱 강조해주는 더블링으로, 이러한 더블링은 영화 후반부에 계속해서 등장한다. 유사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과거의 사건들이 미래에 되풀이된다.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유령은 자신과 M을 보게 된다. 영화 초반에서부터 M은 이상한 소리가 나는 집을 소름 끼쳐 하고 싫어하지만, C는 이에 대해 크게 싫은 내색을 내지 않는다. C에게 있어 집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의 근원은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터스텔라>에서 나타난 시간의 순환 고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비일상적인, 순환론적인 시간관을 통해 영화는 왜 M이 이 집을 떠나고자 하는지 그리고 왜 C가 고집스럽게 집에 남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남자에게 M은 왜 이 집이 좋으냐고 묻자, 남자는 “추억(history)”이 있다고 장난스럽고 모호하게 대답한다. 남자는 여자와의 추억이라고 말하지만, 중의적으로 그 역사는 이 집에 오랜 시간을 걸쳐 남아있던 유령의 역사라고도 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정작 M은 곧바로 그에게 “(추억이) 별로 없어.”라고 대꾸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러한 불교 철학적 장치를 사용하여 생과 사의 순환론적인 시간관을 구축하여 유령이 어떻게 해서 다시 과거로 회귀하여 돌아갔는지에 대한 나름의 근거를 마련해준다. 

3. <유령의 집>에서의 보물, 그리고 쪽지

세계관 측면이 아닌 주제의 측면에서 영화는 문학작품을 차용한다. 영화의 가장 첫 장면에 버지니아 울프의 짧은 단편 소설 <유령의 집(A Haunted House)>을 등장시킨다. 간단히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유령의 집>은 죽은 유령 부부가 예전에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보물’을 찾는 이야기로, 현재 그 집에 사는 부부 중 아내가 내레이터로 그들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들이 사는 집은 살아 움직이고 고동치며 보물이 여기에 있다고 속삭이며, 유령 부부는 그것을 찾아 이 방 저 방을 뒤진다. 이야기의 끝에 가서 깨닫게 되는 것은 그들이 찾고자 했던 보물이라는 것은 결국 그 둘이 함께 나누었던 ‘사랑’이었고, 그것은 내레이터의 가슴 속의 빛으로 은유 된다.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인물들의 행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 작품에서 인용한 “Whatever hour you woke there was a door shutting”이라는 으스스한 문구를 첫 장면에 보여줌으로써 일단 영화는 서스펜스를 조장한다. 이후에 유령이 떨어뜨려 M이 읽게 되는 책으로 <유령의 집>는 재등장한다. 펼쳐진 이 책을 읽고 M은 남자가 작곡한 노래를 들으며 남자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그리고 오랜 애도를 끝내고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고 집을 떠난다. 하지만 아직 그녀와의 ‘사랑’이라는 보물을 찾지 못한 유령은 계속해서 집에 머문다. 그는 M이 두고 간 쪽지를 꺼내기 위해 애를 쓰는데, 여기에서 이 쪽지는 그녀가 집에 두고 간 ‘사랑’이라는 상징적인 물건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유령은 죽음 이후 영혼의 상태로 계속해서 이 집에 머무르는가, 바로 위의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유령은 죽음과 삶 사이의 경계에서 벗어나 집을 떠날 수 있게 되었을까? 유령이 피아노를 내리친 그 날 밤, 순환되는 시간 속에서 차이가 생겨났다.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 전에 등을 돌리고 누워있었던 M이 이번에는 그를 껴안고 있던 것, C가 과거와는 다르게 M에게 이 집을 떠나자고 이야기한 것이 달라졌다. 유령은 유령 자신처럼 그 집에 원래부터 계속 있었던,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도 모를 피아노를 내리친다. 

뒤이어 장면은 바뀌고 유령은 자기 자신이 죽어 유령이 된 자신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M이 집을 떠나는 것을 또다시 본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통통 튀는 박자의 음악과 함께 유령은 그녀가 두고 간 쪽지를 문틈에서 바로 꺼내 읽는다. 빛이 가득한 문이 뒤에서 활짝 열리고, 쪽지를 확인하고 그는 하얀 천 밑에서 사라진다. 그날 밤 그는 무엇을 본 것일까? 그가 본 것은 어쩌면 <유령의 집>에서 자고 있던 여성이 자신의 가슴에서 빛을 발견하고 놀랐던 것처럼, 이 집을 떠나자고 이야기한 자신의 모습에서 그가 그토록 찾고 싶어 했던 보물을 발견한 것은 아닐까.

4. 떠남을 긍정하는 <고스트 스토리>의 환상적 서사 

종합하자면, 일단 전반적으로 <고스트 스토리>는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상식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어야 할 장면에 지나치게 긴 시간을 할애하고, 또 엄청나게 긴 세월의 흐름을 단 몇 초 안에 표현하고 건너 뛰어버린다. 게다가 사랑하는 이와 재회하길 바라는 관객들의 기대를 꺾어버린다. 더 나아가 영화는 서로 이질적인 여러 요소를 섞어버린다. 서양에서 주로 표현되는 고전적인 유령의 이미지, 기계음이 들어간 현대 팝송, 그리고 동양의 불교적 세계관을 모두 한 영화에 혼합하여 보여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은 <고스트 스토리>만의 특이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일조한다. 영화는 관객들을 이런 방식으로 불편하게 만듦으로써 관객들이 단지 눈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 멈추지 않고 기이한 감정 자체를 체험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기이한 체험 속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영원함의 낭만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영원한 기다림이라는 것은 쓸쓸한 고독과 외로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M이 파이 하나를 다 먹어치우는 장면이 인상적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유령과의 감정적 동일시를 경험한 관객들은 유령이 무엇 때문에 이토록 오랜 시간 남아있는지, 쪽지를 보기 위해 남아있는 것인지 속을 태운다. 쪽지를 읽고 유령은 마침내 해방되지만, 우리는 정말 그 쪽지 하나 때문에 남아있던 것인지 오묘한 찝찝함을 느낀다. 영화에서 보여준 불교적 메시지나 문학작품으로 힌트를 얻은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이러한 찝찝함을 해소할 수 있다. 단지 쪽지 내용이 궁금해서 영겁의 시간을 거쳐 남아있던 것이 아니라, 자신과 그녀 사이의 사랑을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사랑을 살아있을 적에 더 빨리 발견하지 못하고 ‘떠남’을 행하지 못했던 것, 그것이 C의 업(karma)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그 ‘보물’을 발견하고 집을 떠난 이후에야 비로소 그 집은 ‘유령의 집’이 아니게 되었다.


사진 출처: 네이버 – 영화 – 고스트 스토리 - 포토

글: 권혜윤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사회학을 공부하는 중인 스물네 살 대학생. 고양이를 좋아하는 고양시민이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영화 보기, 전시회 관람하기 등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겨한다. 개인적으로 꼽는 인생 영화는 <브이 포 벤데타>, <이터널 선샤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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