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경제민주화는 기업민주화, 직장내 민주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기업민주화, 직장내 민주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 김영석 민주노총 건설기업노조 삼부토건지부 사무국장
  • 승인 2018.02.19 18: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벌 총수 일가와 주주 자본주의를 넘어, 민주적 이해당사자 지배구조로 이행해야

복고적 권위주의 정권의 광폭한 역주행으로, 보다 더 넓은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이들의 한숨 소리가 깊다. 정치민주화마저 난도질당한 처지에 경제민주화까지 드러내 얘기하려고 하니 마음이 무척 무겁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보면 생계의 문제는 우리 곁에 바싹 잇닿아 있고, 우린 그 절박한 생계의 문제를 정치적 논제로 삼아 미래의 삶을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그려 나가야 한다.

선거철이 돌아와 다시 경제민주화 이슈가 여기저기서 논의되고 있다. 동반성장이니 포용적 성장이니 하면서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소상인 간의 불공정한 이익구조 문제 해결을 내세우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규직-비정규직 청년들간의 불평등한 소득구조의 문제를 부각시키기도 한다. 물론 긴요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보인다.

그렇지만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문제의 해결은 재벌 대기업에게 공정거래법과 같은 기업 외부의 제3의 힘으로 강제한다고 해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대자본의 태생적 속성상 현재와 같은 기업의 지배권력 구조로는 대·중소기업간, 총자본·총노동간 동반성장이나 포용적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우선 땅콩회항, 남양유업 밀어내기와 같은 특권적 자본주의 권력이 생겨나는 근원을 해체하고 통제해야만 한다. 그런 후에라야 우리 서민 대중들이 바라는 아득한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림들이 비로소 눈앞에 펼쳐질 수 있다.

 

 

재벌 일가의 지배권력 독점과 주주 자본주의를 넘어, 민주적 이해당사자 지배구조로 이행해야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성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고 규정한다.

또한 제119조 2항(이른바 경제민주화 헌법 조항)에서는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합의 선언하여, 시장 지배 권력의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여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평등한 삶을 향유할 것을 약속하고 있지다. 하지만 헬조선의 작금의 한국 사회는 재벌 가문들에게 부와 권력이 심각하게 편중되어 각 경제 주체들간의 불균형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으며, 이런 경제적 불평등은 세대간 계층간의 온갖 사회 경제적 부조리와 비효율성을 야기하여 조화를 바탕으로 한 경제성장은 현실과 동떨어져 요원하기만 하다.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흔히 회자되는 경제민주화는 재벌계 대기업의 횡포를 방지하여 각 경제주체들간의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여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경제기반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제민주화를 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 문제 또는 대기업의 독과점적 시장지배구조 문제 개혁에만 국한시켜 계열기업간 상호채무보증 해소, 지배대주주의 책임성 강화, 소액주주권 강화, 경영투명성 확보 등을 중심으로 기업에 대한 외부적 통제수단을 기초로 한 주주권 강화 방향의 개혁과제만을 주장하고 진행해 왔다.

하지만 안타깝지만 이런 방향의 개혁은 대기업의 약탈식 이익 독점을 제한할 수 있는 근본적 치유책이 될 수 없다. 기업의 일방 당사자일 뿐인 주주의 배만 더 불려주는 결과만 초래한다. 무엇보다도 대기업의 약탈적 경제 지배는 기업 내부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재벌 가문 지배주주의 황제식 지배권과 비민주적 기업경영지배체제에 기인한다. 대기업은 주주만이 아니라 종업원, 채권자, 협력업체, 소비자, 정부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기여와 헌신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그럼에도 황제식 지배주주가 그 권력을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이를 전횡해 왔기 때문에, 그 밖의 이해당사자들은 결국 약탈과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는 곧 기업 내부 권력의 민주화 즉 직장내 민주화이고, 기업의 민주화는 경제권력을 지배하는 대기업의 경영권에 대한 지배권을 개인 기업주(대주주)의 사적 지배로부터 기업의 실질적 자산가치를 구성하는 각각의 이해당사자들에게 골고루 분산시킴으로써 이들 모두에게 권한과 이익이 공정하게 분배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만이 아니다. 대기업이 주식 발행을 통해 생산적 자산에 투여하는 자금조달은 미미한 수준이다. 또한 상장기업 주식은 지배주주의 보유지분이 적고 소수주주들은 단순한 투자수익만을 배분받을 뿐이다.

반대로 고도의 산업사회, 지식정보화사회에서 숙련된 노동자들은 이제 단순한 생산도구가 아니다. 그들은 오랜 근무경험을 통해 습득한 지식과 기술로 기업의 미래 성장과 존립을 좌우하는 핵심적 자본이 된지 오래다.

대기업의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관들 또한 이제 단순한 대부업자가 아니다. 바로 선 은행이라면 담보물이 아니라 기업의 제반 역량과 미래가치를 보고 자금을 투자한다. 이제 건전한 기업의 목적은 주주의 단기적 이윤극대화가 아니라 장기적 계획에 의한 안정적 성장과 이를 통한 이해관계인 모두의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재벌가문과 주주를 넘어서 기업의 이해관계인들이 모두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이해당사자 기업지배 권력 제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사회인 것이다.


지배주주의 무소불위 권력행사로 생존권은 박탈되고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과거 국가주도 경제발전 과정에서 특혜성 금융과 제도적 지원으로 성장한 재벌 총수 지배 하의 대기업은 그 동안 권위주의적 정치 권력으로부터 금융적 수단과 정경유착 등을 통해 외부적 통제와 견제를 받아왔지만, 정치적 민주화 과정을 통해 독재 정부가 한 때 해체된 이후로는 총수 일가의 절대적 지배권을 견제했던 유일한 권력이 제거됨으로써 총수 일가의 경제권력 집중은 한층 더 심화되었다. 이로 인해 골 깊은 황제식 경영은 기업을 둘러 싼 이해당사자들 간의 자본주의적 대립과 갈등구조를 점점 더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은 기업 사회라고 불릴 만큼 현대사회에서 그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일반적으로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회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주주는 기업경영에 대한 전제적 권력을 행사한다. 생사여탈권을 쥔 그들에게 찍히면 종업원은 맘대로 해고되고 협력업자는 한 순간에 퇴출당하기 일쑤다. 필자가 한 기업의 노동자로 20년을 살아오면서 직접 목도한 것도 많다.

기업 총수 일가의 권한과 전횡은 범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주주총회는 총수가 미리 짜놓은 각본에 의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이사와 감사를 선임하고, 이렇게 구성된 이사회와 감사는 그들을 선임한 지배주주인 총수일가에게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임원들의 불필요한 이의제기는 자리보전을 힘들게 할 뿐이다. 대부분의 이사회 결의사항들은 총수와 총수 일가들의 협의만으로 밀실에서 결정되고 이사회의 구성원과 기타 임원들은 단지 결정사항에 대해 요식행위만 실행한다. 1조원에 이르는 부실사업들에 대한 투자들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결국 기업회생절차에 이르러 회생을 도모하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이 장기간의 부실화 진행과정에서 힘 있는 거대 채권은행들은 지배주주의 독점적 경영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해 준 대가로 알짜 담보물을 취득했지만, 종업원, 상거래채권자, 협력업체, 소액 채권자 등 수 많은 이해당사자들은 이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받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대기업 계열기업 사이에 모회사와 자회사의 모든 자산은 지배주주와 그 혈족들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이 때문에 계열사간 자금대여, 담보제공 등은 어떤 고민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해당 회사가 아주 큰 위험을 부담하는 이사회의 결의임에도 그 계열회사의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의 권리나 이익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오직 지배주주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니 아무런 잘못과 거리낌이 없이 모든 것이 실행된다. 내부 고발이 없으면 그 위법성과 책임성은 드러나지 않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한반도에 무소불위의 독재적 세습권력은 북쪽에 하나만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기업 내에 이런 독점적 권력구조의 존재로 인해 기업내 민주주의는 자라날 틈이 보이지 않는다. 조직구조는 경직되어 부서 간 수평적 의사소통은 저절로 단절되고, 오직 황제적 권력을 중심으로 한 단선적인 상명하복의 수직적 의사전달 구조만 작동한다. 능력 있고 성실한 인재들은 한직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고, 임원들은 최고 권력자의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만 움직인다.

기업내 중요 정보들은 회사의 성장과 경제사회적 기여가 아니라 최고 권력자에 대한 보고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종업원들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능력은 발휘될 여지가 없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이러한 지배구조로 인해 노동자들은 능동적 참여와 헌신으로 기업의 혁신과 성장에 기여하기를 포기하고 또박또박 월급만 받거나 회사가 어려워지면 자신들의 망한 책임 없음을 선포하고 생존권 사수 투쟁으로 치닫는다. 강성한 기업지배 총수는 강성노조와 강성채권자들을 창조적으로 생산해 내고, 그 지배 총수가 치사하기까지 하다면 이해당사자들은 더욱 더 치사해져야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기업구조에서는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해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인간형은 생산되지 않는다. 장기간의 독점적 지배구조 체제가 탄생시킨 너무나 자연스런 풍경들이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 즉 기업민주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주, 경영자, 종업원, 채권자, 협력업체, 소비자 등은 기업의 안정적 활동과 성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에, 기업경영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이를 직접 감시해야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 또 기업은 이런 각각의 이해당사자들과의 협력적 관계를 통하여 기업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만 변화, 발전하여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나아가서는 거시적 관점의 경제민주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대기업 이사회는 주주총회를 지배하는 1인 기업주의 독점적 권력에 장악되어 기업경영은 지배 대주주와 그 혈족들의 사익을 우선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배주주가 이사회, 감사위원회 등 기업 내에 존재하는 모든 기관의 권력을 전횡함으로써 다른 이해당사자들의 적정 이윤을 약탈하고, 나아가서 불투명한 부실불법경영으로 회사의 자산을 빼돌려 기업을 결국 파탄시키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우리 헌법의 이념과 가치에 어긋나는 이러한 비민주적 독점적 기업지배권은 어디로부터 부여된 것일까?

먼저 현행 상법의 규정이다. 대기업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결합체로서 그 지배권력은 각 이해당사자들간의 이익을 조화롭게 반영하여 행사되어야 함에도 회사의 지배구조를 규정하고 있는 우리 상법은 경제민주화를 바라는 시대적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유지하고 지배주주가 기업을 사유화하여 이해당사자들을 약탈적으로 지배하는 기업구조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행 상법의 관련규정들이 다음과 같은 취지와 목적대로 개정되어야만 한다.

첫째, 상장회사 및 대기업에 있어서 주주권과 경영권=지배권은 필히 분리되어야 한다. 물건을 배타적으로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는 다른 소유권과 달리 주주권은 기업의 일정한 수익을 배분받고 주주총회를 통해 일정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일 뿐이다. 출자한 주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기여로 성장한 기업이 지배주주만의 배타적 지배하에 놓이게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 주주를 비롯한 각 이해당사자들의 이익들은 경영지배권을 행사하는 자를 통하여 상호 조절되는 것이어야 하며, 오직 기업의 장기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 이 모든 이해관계들이 조화되어야 한다. 현행과 같이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독단적으로 전횡할 수 있는 구조라면 장래 지배구조의 세습과정에서도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경영자 풀 또한 직계혈족에게만 제한되어 무능 부실경영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둘째, 대기업, 상장회사 및 그 계열회사의 임원이 기업과 관련된 배임, 횡령 등의 범죄로 인해 금고 또는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에는 즉시 그 지위를 상실하며, 형 집행이 끝난 날로부터 일정기간이 지나지 않은 자에 대해 임원 재선임을 금지하는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배주주가 관련 범죄행위로 주주권까지 임의로 제한받는다면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지나치게 침범하는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처음 언급한 주주권과 경영지배권이 분리된 지배구조라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이런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대기업의 총수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러 엄중한 처벌을 받았음에도 <우리 경제가 위축된다>느니, <기업경영이 어렵게 된다>느니 하면서 유전무죄·유권무죄를 부추기고, 건전한 여론까지 호도하는 행태들은 금방 사라질 것이다.

셋째, 이사회는 주주뿐만 아니라 기업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의사가 직접 전달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상장회사 및 대기업은 기업 내외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결합체이기 때문에 주주들에게만 이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기업활동의 핵심 이해당사자들의 참여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현행 상법은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사외이사 또한 지배주주가 직접 선택하여 임명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들은 주요사항을 결의하는 이사회에서 지배주주를 조금도 견제하지 못한다. 회사와 이해관계가 없는 사외이사를 선임하여 거수기 노릇만 하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회사의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인 종업원대표, 협력업자 대표, 채권단 대표, 소비자단체 등을 중심으로 이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업의 사회경제적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감시 감독할 이사를 선임하는 게 낫다. 이 때 민주적 선거로 당선된 종업원대표가 없다면 산별노조를 참여시키고, 협력업자 대표가 없다면 산업별 협력업자, 노동단체를 참여시키면 된다.

넷째, 상장 대기업의 경우 현행 상법이 도입하고 있는 집행임원 제도를 의무화시켜야 한다. 상법상 이사회는 업무집행과 업무감독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어, 스스로 수행한 것을 스스로 감시하는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사의 업무집행을 감사하는 감사위원회 또한 이사회의 이사로 구성된다. 이런 구조로는 업무집행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그렇다면 대기업의 각 이해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한 이사회는 집행임원을 별도로 선출하여 업무집행을 의무적으로 위임하고, 이사회는 집행임원의 업무를 감시 감독하는 기관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다. 상장회사 및 대기업에게 집행임원제도를 강제함으로써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기업내 경영지배권이 형성된다면 기업경영의 합리성과 효율성 또한 더욱 좋아질 것이다.

다섯째, 지배주주 및 소유경영이사의 감사 추천 및 선임권은 특별히 배제되어야 한다. 주주총회를 통해 기업의 실질적 경영권을 장악한 지배주주가 동일한 기관에서 자신을 감시 감독하는 꼭두각시 감사를 추천하여 선임함으로써, 감사가 이사 또는 집행임원의 직무집행, 불법행위 등은 전혀 감사하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회사 규정에도 없는 종업원들의 직무만 감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배주주가 지배하는 이사회를 위해 애꿎은 종업원들만 감시하는 꼴이다. 현행 상법은 감사 선임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만 실제 주주총회에서 회사내부 지배구조에 무관심한 소액주주들이 단결하여 경영지배권을 견제할 감사를 선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소수주주권을 강화하는 입법보다는 기업의 종업원대표, 채권자대표, 공익단체 등 다른 이해당사자들에게 그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

여섯째, 부실징후 대기업에 대해서는 채권자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이해당사자들간의 민주적, 사회적 통제권이 강화되어야 한다. 대기업의 부실화는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야기하는 문제이지만, 일부 대기업은 정부가 제멋대로 재벌의 기업지배권력만을 위해 원샷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힘없는 대부분의 한계기업들은 채권단에게 기업주의 시한부 지배권력을 보장받는 대가로 회사자산에 대한 약탈금융자본의 희생양으로 전락해 돌이킬 수 없는 파탄상태에 이른다. 이 때문에 부실징후를 나타내는 한계기업의 시의적절한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부실경영의 책임 당사자의 경영권을 엄격히 제한하고,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절할 수 있는 적절한 통제수단이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의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권한을 채권금융기관에만 내맡기는 형태로는 그들만의 이기적 행태로 기업정상화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으며, 기업은 결국 고사되고 다른 이해당사자들의 피해 또한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일곱째, 민주적 기업지배 권력구조를 도입한 기업에 대해서는 세금혜택과 금융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민주적 지배권력구조를 채택한 기업이라면 우리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적 질서에 대한 가치를 드높일 뿐만 아니라, 재벌 지배주주의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고 장기적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에 이바지하고 경제주체들간의 조화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는 법인세를 감면해 주거나 금융상의 특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아울러 국가가 직접 시행하는 사업에 우선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여야 한다.

 

 

민주적 법률로 통제된 기업지배구조는 이해당사자 모두를 이롭게 한다

보수 언론들의 영향인지 사람들은 흔히 기업은 주인이 있어야 한다는 말들을 함부로 내뱉는다. 기업주가 채찍질을 하지 않으면 회사에 도둑들만 득실거리고 머슴들은 노동을 게을리 해서 기업의 효율성과 생산성은 달성되기 어렵다는 속뜻이 담긴 듯하지만, 이는 인간의 자율성과 개인의 자유가 철저히 억압된 노예제나 봉건적 신분제 사회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엉터리 주장이다. 현실에서 목도되고 있듯이 도둑은 회사 돈을 사적 이익을 위해 마구잡이로 사용하면서도 사회 경제적 약자들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생계유지비도 보장해 주지 않으려는 탐욕스런 재벌 기업주이고, 생산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이해당사자인 구성원들이 채찍질에 맞을까봐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역할만 수행할 수밖에 없는 독점적 기업지배권의 구조적 모순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로 우리 헌법은 왕정이나 신분제 질서를 버리고 민주공화국임을 줄곧 선포해 왔다. 정치권력은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입각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해 가고 있으며, 민주화된 시민이라면 이제 왕이나 황제와 같은 한 사람의 지배권자에게 권력을 몰아주고서 그가 왕도정치를 실현해 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혼용무도한 통치자의 출현을 걱정하며 불안하게 살기보다는 법치주의를 통해 주권자인 시민의 힘으로 정치권력을 통제하며 안정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옛 체제보다 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민주화된 시민이라면 경제를 지배하는 재벌 지배권력에게 그들이 스스로 선정을 베풀어 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통제받지 않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 재벌과 금융자본은 왕정제의 전제군주보다 경제적으로는 훨씬 더 힘이 세고 더욱 더 탐욕스럽다. 재벌 일가와 주주자본주의, 그리고 이와 공생하는 금융자본주의의 폐단과 약탈이 그치지 않는다면 차라리 구체제로 돌아가 왕도를 바라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고 중소기업과 상인들의 이익이 함부로 침해되지 않으며, 소비자의 권리가 정당하게 보호되기 위해서는 언필칭 재벌 총수 일가의 독점적 지배권력 구조가 기업의 주요 이해당사자들에게 민주적 법치의 방식으로 적절히 통제되고 분산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자도 살고, 기업도 살고, 이해당사자들 모두에게 이로워서 오랫동안 함께 갈 수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