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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이 있는 경제, 핵이 없는 경제
핵이 있는 경제, 핵이 없는 경제
  • 이승무 순환경제연구소 소장
  • 승인 2018.03.0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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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의 경제학
경제신문에서는 경제를 사람들이 먹고 살고 있는 현상 그대로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본래 경제의 어원이라고 할 수 있는 동양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이나 서양의 오이코노미아는 모두 무질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상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용어였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경제를 ‘나라를 잘 다스리는 도구가 되는 실용 학문’의 의미로 사용해 왔다.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가 그런 말이다.
 

핵을 합리화하고자 애쓰는 주류 경제학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미 현실 속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완전히 부정하는 일이 극히 드물며, 오히려 그 존재 근거를 밝히려고 노력한다. 즉 주류 경제학의 특징인 물리 역학적 균형 체계 안에서 어떤 사물의 성립과 존속, 그리고 그 가치까지 설명하려 애쓴다.
 
마약이나 살상무기의 제작과 판매, 그 밖의 범죄 행위들까지도 경제학자들은 수요-공급으로 설명하려 애쓴다. 세상사람들 사이에 아무리 나쁜 평판을 가진 것이라도 주류 경제학자들은 그것을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비경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공상적인 이념의 세계가 아닌 지구상의 현실 세계에서는 적어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핵에너지에 대해서도 주류 경제학자들은 똑같은 태도를 취한다.
 
더구나 주류 경제학자들은 핵이 가진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사실 경제학자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조차 핵이 가진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기란 쉽지 않다. 흔히들 핵에너지를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자연방사능이 존재하며 또한 핵물질에서 방출되는 방사능은 병원에서의 의료검진과 자연과학 실험에 사용된다. 이렇게 볼 때, 하나의 경제체제에서 방사능 물질(즉 핵물질)의 존재를 완전히 없애버린다는 것은 실현 가능한 대안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핵에너지와 핵무기는 과연 경제적인가?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가 문제로 삼는 핵과 방사능은 의료용 또는 교육·연구용이 아니라, 에너지원과 살상무기용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에너지원 및 살상무기용으로서의 핵을 놓고 경제학은 당연히 다음의 두 가지 의문에 대하여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핵에너지를 활용한 산업 체계와 핵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산업 체계 중 어느 것이 더욱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체계인가? 그리고 둘째, 핵의 파괴력에 의존하는 군사무기 체계와 핵의 파괴력에 의존하지 않는 군사무기 체계 중 어느 것이 국가의 입장에서 더욱 경제적인가?
 
여기서 산업 체제 및 군사무기 체제라는 용어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산업 체제 또는 군사무기 체제는 당연히 일국(一國)적 범주의 개념이며, 우리의 경우 한반도 남쪽의 대한민국을 말한다.
 
둘째, 일국적 개념으로서의 산업 체제 및 군사무기 체제는 다른 나라들을 산업적, 군사적 경쟁상대로 가정하고 있다. 셋째, 동시에 또한 산업체제 및 군사무기 체제는 그 체제가 생존하는 숙주(宿主)가 되는 나라의 국토환경과 생태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즉 산업체제와 군사무기 체제가 탄생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체제에 자원이 공급되어야 하고 또한 그 체제로부터 발생하는 오염이 흡수되어야 한다.
 
핵에너지 및 핵무기에 의존하는 체제의 경우 핵물질의 공급과 핵폐기물 오염의 흡수를 위하여 국토환경 및 생태계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물론 이 점은 주변 경쟁국의 산업 체제 및 군사무기 체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산업체제 및 군사무기 체제의 효율성 - 그 기준은?
 
핵을 사용하는 산업 및 군사무기 체제를 그 자체의 - 고립적인 - 성능 및 효율성만을 기존으로 판단한다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산업 및 군사무기 체제가 만약 다양한 대내외적 희생을 바탕으로 자라나고 진화하는 시스템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만약 산업 체제가 국민을 윤택하게 해주고, 군사무기 체제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본래의 목적에 벗어난다면, 그것들의 경제적 측면 역시 비판적으로 조명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한 나라만이 아니라 지역과 대륙 또는 세계의 관점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나라가 직접 핵에너지 또는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서도 다른 나라에서 개발된 핵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경제적으로 최적의 해법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타국의 군사무기 체제에 의존하여 그 나라의 핵우산 하에 들어가는 것, 또는 타국의 핵에너지에 의존하는 산업생산 체제와의 교역을 통해 혜택을 보는 것 역시 간접적으로는 핵에너지와 핵파괴력을 이용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타국의 핵우산 또는 핵에너지에 의존하여 그것을 사용하는 국민국가와 국민경제가 치러야 하는 반대급부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는 자국이 직접 핵발전소를 보유했건 아니건 관계없이, 핵에너지에 의존하는 글로벌 산업생산 및 소비활동의 덕을 보고 있다. 그리고 핵에너지를 이용하는 나라들은 공교롭게도 북반구(적도 북쪽 지역)에 대부분 분포되어 있다.
 
핵에너지의 산업적 이용과 핵무기 제조 원료의 확보는 동일한 과정이다.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원료만을 확보한다는 것은 그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핵에너지를 낭비하는 셈이 된다. 역으로, 핵에너지의 산업적 이용만을 추진하고 핵연료봉을 재처리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임시적 보관 형태를 의미할 뿐인데, 그것조차 일국에 국한할 때나 성립되는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핵폐기물이 핵무기 제조 원료로서 국제적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만약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동남아시아의 제3세계 국가들이 핵에너지와 핵무기를 완전히 추방하고 “핵이 없는 경제블록”을 형성할 수 있다면, 이들은 핵으로부터 자유로운 산업과 군사무기 체제를 달성하게 된다. 이처럼 핵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역 블록이 형성되고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이 이 블록에 가담하게 될 때 핵 없는 세상이 점차로 실현되게 된다.
 
 
핵에 기반한 산업 및 군사무기 체제의 비효율성
 
그렇다면 핵에 기반을 둔 산업체제 및 군사무기 체제에 내재된 문제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먼저, 핵 기반 산업체제는 그 비용이 싸건 비싸건 전기 에너지 형태를 취한다. 그런데 전기 에너지는 화석연로 에너지에 비해 대기오염과 소음, 진동 같은 환경오염을 적게 발생시키며 따라서 언뜻 보기에는 친환경 에너지로 보인다. 이것은 전기를 사용하는 철도를 석유를 사용하는 자동차와 비교해 보면 명확해진다.
 
게다가 가정용 전기가 아닌 산업용전기는 그 발전원가보다도 낮은 까닭에, 그 어떤 산업체도 전기모터 대신에 디젤 엔진을 가동하여 생산 활동을 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오늘날 산업이 진화하여 도달한 발전 단계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전기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핵 발전을 통해 얻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이렇듯 핵 발전을 통해 얻어지는 전기 에너지가 친환경적일까?
 
게다가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전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발전소는 산업시설과 주거시설 근처에 있지 않다. 발전소는 산업과 인구가 적은 곳, 즉 해안가 등에 자리 잡는다. 특히 핵발전소는 더욱 그러하다. 그 결과, 핵 발전의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만들어지는 발전 폐열은 산업 및 주거의 목적으로 전혀 이용되지 못한다.
 
석유와 석탄을 때는 화력발전과 다른 핵 발전의 고유한 특징이 있다. 즉 핵 발전의 모든 과정에서 방사능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까닭에, 산업 및 주거 지역으로부터 멀리 고립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우라늄광의 생산(탄광), 우라늄의 농축 및 연료봉 제조 설비, 핵반응로를 가동하는 발전시설, 그리고 핵 쓰레기를 버리는 지역 등은 모두 한결같이 산업 및 주거 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야한다. 게다가 그들 서로도 서로 분리되어 각각 따로 존재해야 한다.
 
석탄이나 석유는 그 정도는 아니다. 탄광 또는 유전지대 인근에는 석탄과 석유를 에너지 또는 원료로 하는 공업이 발달한다. 또한 석탄·석유 화력발전 시설 인근에는 산업 및 주거단지가 형성되어 그 폐열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원자력은 국제적으로 원료의 채굴과 가공을 별개의 장소에서 한 후에, 연료봉을 국제적으로 수입하여 발전을 수행하고, 그렇게 생산된 전기를 장거리 송전로를 통해 먼 곳에 있는 산업·주거 지역으로 보내야 하며, 또한 다 쓴 폐연료봉을 별도로 지정된 특수 구역에 보관해야 한다. 그 폐연료봉을 다른 산업에 이용할 방법이라고는 핵폭탄 제조 밖에 없다. 거기서는 더 유독한 핵쓰레기가 또 생겨나기 때문에 쓰레기를 재활용해서 양이 줄어드는 부분은 미미하고 질적으로 더 큰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핵에너지의 이용 단가를 높이는 요인이다. 그런데도 핵에너지를 ‘저렴한 전기에너지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처럼 핵에너지에 의존하는 산업 체제는 언뜻 보기에는 깨끗하고 더구나 높은 경쟁력 및 생산성을 구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쟁력과 생산성이 낮다.
 
더구나 핵에너지는 핵연료의 원광석 채굴지대와 발전시설, 그리고 핵 쓰레기 보관시설 등이 위치한 지역에 (이들 지역은 모두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관심 밖에 있는 곳에 있는데)의 생존 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한다. 우라늄의 채광과 농축, 전력생산, 그리고 폐기를 위한 시설은 사실상 공포의 대상이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오랜 동안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멀리 떠나버리게 만드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만약 이러한 특성을 간과하고 원자력 발전소 인근에 주거지나 상공업 입지를 시도하는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장기간에 걸쳐 입게 될 것이다. 예컨대 만약 북한에 엄청난 우라늄광이 부존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채굴하여 인근에 농축 시설을 만들고, 또한 그 가까운 곳에서 전력을 생산하고, 그 근처에서 재처리 시설을 만들어 핵무기까지 생산한다면, 그리고 그런 핵산업 단지에 하나의 도시를 건설한다면, 그 도시에 살면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돈을 받아도 괴로울 것이다.
 
요컨대 원자력 발전에 기반을 둔 산업 체제는 겉보기에는 대단히 효율적이고 깨끗해 보이지만, 지역과의 공생과 물질흐름, 그리고 생명체(인간과 생물)를 위한 공간 활용의 관점에서, 게다가 에너지 효율성의 관점에서도 0점이다. 핵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폐열을 그대로 배출하여 낭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땅이 넓지도 않고 인구가 적지도 않으며, 또한 사막이 끝없이 펼쳐진 그런 환경도 아니다. 인구밀도도 높고 토양의 품질이 좋으며 식생 환경이 우수한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 그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즉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르면서) 핵에너지에 의존하는 산업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효율성도 정당성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원자력 발전과 연관된 좁은 의미의 산업체제, 즉 원자력 발전에서 이익을 얻는 이해관자들은 모두 그 에너지의 조달 체제에서 이익을 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이익집단은 핵 발전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착취당하는 대상들을 시야에서 배제시킨다. 그리고 그 피해 집단에 대한 관리와 관리비용은 국가에 떠맡기면서 나 몰라라 외면한다. 이익은 자기 것으로 사유화하고, 피해는 사회화하는 것이다.
 
 
핵에너지와 핵무기는 동전의 양면
 
핵에너지 기반 산업체제는 핵무기 기반 군사무기 체제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 남한에는 핵 발전만 있고 핵무기 개발은 없다. 북한은 핵 발전 없이 핵무기 제조만 하고 있다. 하지만 원리상 그것은 지속 불가능하다. 북한은 핵무기 원료의 지속적 생산하기 위해서라도 머지않은 장래에 핵 발전을 시작할 것이다.
 
남한 역시 폐연료봉을 발전 시설 지하에 지금은 임시로 보관하고 있지만, 언제라도 요청이 있을 때는 이를 우방국인 미국의 핵무기 제조 원료로 제공할 태세가 되어 있다. 핵 발전 폐연료봉의 재처리 설비에 관한 한, 한국은 주권국으로서 독자적으로 그것을 구축·운용할 수 없으며, 군사동맹국인 미국의 핵무기 전략 하에 포섭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미국의 핵무기 제조 과정에서 노동집약적이고 3D에 해당하는 글로벌 공정의 일부를 떠맡아 운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나라 산업의 고도화에도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 결국 한국 국방력은 자국의 독자적 지식체계 및 산업 발달 수준에 비례하는 수준도아닌 훨씬 낮은 수준으로 격하되며, 미국의 핵무기 체제에 종속되어 그것을 위한 노동력과 생태환경을 싸구려로 제공하고 게다가 미국 무기까지 팔아주는 역할을 하면서 일정 수준의 국방력을 보장받고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핵은 국민 모두가 값싼 에너지를 얻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대안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핵자원 조달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특정 계층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지역 주민과 생태 환경을 착취하고 배제하는 구조이다. 또한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체제 하에서 우리나라에 외부로부터 강요된 산업체제와 군사체제의 진화가 도달해 온 방향이다.
 
 

 

글‧이승무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원순환 거버넌스 포럼 실행위원, 기독교 환경운동연대 정책위원, 핵소위 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순환경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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