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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의 미묘한 두 얼굴
레지스탕스의 미묘한 두 얼굴
  • 에블린 피에예 | 작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 승인 2010.06.07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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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제2차 세계대전이 화제에 오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나 책을 봐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런 소재의 영화와 책은 큰 성공을 거둘 때가 많다. 분명 일시적 현상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소재는 가족 이야기, 나아가 유럽 이야기며 어느 세계의 몰락이자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어려운 질문을 한다.

환상이 더해진 2차 대전의 기억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시기에 나타난 쟁점과 분쟁을 통해 가장 ‘신성화된’ 우리 인류의 공동 가치, 나아가 사조가 생겨났으며 인류를 위협하는 적으로 나치즘, 인종차별, 반유대주의가 지목되었다. 특히 이같은 인류의 적은 나치 부역과 평범한 사람들의 비겁함 탓에 제2차 세계대전 때 활개를 쳤다. 해방을 누린 시민들의 집단적 상상력에 영향을 주는 것은 ‘절대적 악’이라는 악명 앞에서 느끼는 공포일 것이다. 또 한편에서는 레지스탕스 영웅주의가 점점 공격을 받고 있다. 프랑스 전역에서 나치와 협력했다는 주장은 증명되었다. 그러나 1930~40년대에 대해서는 모순적 의견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수용소에 대한 공포는 여전하지만 수용소에 반대한 움직임은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죽음과 침묵에 사로잡힌 이야기는 어느 정도 환상이 더해져 다시 쓰인다. 한마디로 원인을 연관해 생각하기보다는 ‘처음부터 잘못된 시각’에서 출발하는 셈이다. 이런 정신이 인간에 대해 갖는 개념, 인간에게 바라는 기대감에 은밀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루이 페르디낭 셀린의 작품이 누리는 명성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셀린의 저서 <편지>(1)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요즘 어느 법률가의 개정판 논문(2)이 보여주는 것처럼 셀린의 정치 사상에는 우파적 포퓰리즘이 어느 정도 나타난다. 더구나 셀린이 반유대적인 소책자를 작성했고, 이 때문에 <편지>를 나머지 작품과 따로 떼어내 생각하는 편이 낫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특히 필리프 솔레(3)가 그렇다. 또한 셀린의 광기 어린 분노가 가득한 문체에서 미사여구를 제외하면 셀린은 단순히 ‘정당하지 않은 세계에 푹 빠진 순진한 애송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셀린처럼 세계, 타인, 민중을 그리는 방식이 비뚤어지고 감상적인 작가에게 매혹된다면 이상한 것이다. 단순히 ‘천재적’이라는 이유로 셀린에게 찬사를 보낸다면 희한한 관용이라 할 수 있다. 조나단 리텔이 <호의적인 사람들>(4)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모두 천성적으로 악하다는 확신에만 힘을 실어주는 꼴이다.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다른 내일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천재’ 셀린에 대한 희한한 관용

이런 점에서 봤을 때 ‘라디오 런던’(5)이라는 기사집의 제1권을 읽어보면 뭔가 보일 것이다. 공격적이고 생생한 필체를 자랑하는 이 기사집은 정치가 얼마나 복잡한지 보여주고 아울러 복종하지 않는 행동이 얼마나 이상적이고(‘이상’이란 우리 인간이 낡은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표현이다) 그 이상이 얼마나 집단적으로 정의되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모리스 슈만(드골 장군의 ‘대변인’이 된 젊은 기자), 조르주 보리(1938년 레옹 블룸 내각의 책임자), 에브 퀴리, 조르주 베르나노 사이에도 이견은 존재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사상의 자유’와 동일시되는 프랑스의 사상을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나치의 프로파간다에 맞섰다. 모든 저작물(사설에서 노래 가사까지)이 페탱 장군을 공격하지 말라는 영국의 강령에 따르지만 이들은 다른 목소리를 내며 프랑스가 상징하는 ‘자유’를 돋보이게 한다. 이들이야말로 프랑스 국민의 다양성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위대한 미셸 생드니, 일명 자크 뒤셴이 ‘연출한’ 미래에 상당한 신뢰를 보낸다.

“멀리 보려면 가까이서 봐야”

피에르 닥의 천재성은 오만하고 적극적인 라디오 런던의 천재성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로자 모엘>(L’Os à Moelle)의 전 편집장인 피에르 닥은 여러 번 시도 끝에 마침내 1943년 런던에 도착했고, 영국에 아첨하는 노래를 작곡했으며, 히틀러를 ‘베르히스가덴의 미치광이’로 평가했고, 영국 요리를 손발이 오그라들게 찬양했다. 이리하여 피에르 닥은 영국인 청취자의 사기를 엄청나게 높여주었다.(6) 역설적으로 전부 흥겹고 열정적이다. ‘레지스탕스’ 활동이 늘어나고 마침내 양면성이 전부 나타나는 이 복잡한 시기에는 정확히 피에르 닥을 통해 다음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멀리 보려면 우선 가까이서 봐야 한다.”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ller

작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번역위원

 

<각주>
(1) 셀린, <편지>, 앙리 고다르와 장피에르 루이가 펴냄, Gallimard-La Pläiade, 2009.
(2) 자클린 모랑 드비예, <루이 페르디낭 셀린의 정치사상>, 파리, 2010.
(3) 필리프 솔레, <셀린>, 파리, 2009.
(4) 2006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어느 나치 친위대 장교의 회상을 다루고 있다.
(5)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인들에게 말한다>, 제1권(1940년 6월~1941년 6월): 레지스탕스의 시작, 자크 페시의 소개문, 크레미유 브릴락의 서문, 112쪽의 삽화 달린 소책자 포함, Omnibus, 파리, 2010. 제2권(1941년 7월~1943년 초)과 제3권(1943년~1944년 9월)은 2011년에 출간 예정.
(6) 피에르 닥, <희한한 전쟁: 라디오 런던에서 오스 리브르(L’Os Libre)까지>, 자크 페시의 서문과 주석, Omnibus, 파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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