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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드라이버>(Baby Driver, 2017)
<베이비 드라이버>(Baby Driver, 2017)
  • 남지우
  • 승인 2018.04.10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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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영화’라는 베일을 걷어내면 보이는 ‘결핍’에 관하여

 

 

1. <베이비 드라이버>는 단순한 음악 영화가 아니다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의 최대 장기는 ‘음악’이다. 이 작품이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향편집상과 음향효과상 부문 모두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사실은, 앞선 명제가 참임을 증명해낸다. '벨바텀스'(Bellbottoms)(1)가 흐르는 오프닝을 시작으로, 퀸, 사이먼 앤 가펑클 등이 만들고 부른 노래 서른 곡이 폭발적인 드라이빙을 빼곡하게 채워나간다. 러닝타임 내내 흐르는 비트와 리듬은 범죄 현장에서 탈주하는 자동차들의 연료가 되며, 시종일관 객석을 들썩이게 하고 주인공에겐 숨결을 불어넣는다.

감독 에드가 라이트가 ‘넣고 싶은 노래를 먼저 생각한 뒤에 해당 노래에 맞춰 장면을 구상하고 연출했다’고 밝혔을 정도로, ‘음악’은 이 작품의 핵심이자 세계관의 주원료다. 서사는 음악에 종속되며, 보는 쾌감을 넘어 듣는 쾌감이 하늘을 찌른다. 주인공 ‘베이비’역을 맡은 배우 안셀 엘고트 역시, 음악적 재능을 겸비한 덕택에 캐스팅 물망에 올라 배역을 거머쥘 수 있었다. 안셀 엘고트는 부드러운 리듬감을 온몸으로 토해내는 연기를 선보인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음악을 사랑하는 감독과 배우가 협업해 탄생시킨 웰메이드 ‘음악 영화’라는 사실을 모든 요소들이 설명해내는 듯 보인다.

다만, <베이비 드라이버>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것이 이룩한 탁월한 음향-음악적 성취에만 고여있음이 아쉽다. 짜릿한 카체이싱과 기가 막히게 정박을 이루는 음악의 조화에 찬사를 보내는 평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음악이 선사하는 리듬감에만 기대어 직조된 것은 아니다. <베이비 드라이버>의 세계관은 “청각의 결여”를 찾아내는데서 시작되고 완성될 수 있음에 주목해본다.

 

2. 청각의 ‘극화’를 넘어서는 청각적 ‘결핍’

이 영화를 리듬의 세계로 추동하는 것의 배후엔, 등장인물들의 결핍이라는 요소가 숨어있다. 영화에서 결핍, 그 중에서도 청각적 결핍을 드러내는 인물은 주인공 ‘베이비’와 베이비의 양아버지 ‘조셉’이다. 양아버지는 언어장애를 동반한 청각장애인이다. (조셉을 연기한 배우 CJ. 존스는 실제 청각장애인이다) 베이비와는 수화로 의사소통을 이어간다.

베이비는 어릴 적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지겹도록 성가시는 이명을 얻었다. 순우리말로 ‘귀울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명은, 외부로부터의 청각적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도 소리가 들린다고 느끼는 질환이다. 때문에 베이비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하루 종일 꼽고 다니며 귓가의 소음을 쫓아낸다. 영화는 베이비의 이명을 실감나게 전달하는데, 배경 음악이 삽입되지 않은 장면에서는 미세한 삐-소리가 영화 매 순간을 휘감도록 연출했다.

주인공 부자가 겪는 청각 기능의 결핍은, 베이비가 벌이는 음악쇼보다 더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청각의 상실에 고통 받는 캐릭터를 전제했기에, <베이비 드라이버>의 음악은 정당성을 얻고 더 활기를 띌 수 있었다. ‘벙어리’라고 놀림 받는 베이비와 실제 ‘벙어리’인 아버지의 무언은 영화의 공기를 다 채우지 못한다. 언어와 청력, 소리가 상실된 영화의 공기를 음악이 다시금 채워나가며 활력와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인물을 통해 감독 스스로의 부족함과 결핍을 충족시키고자하는 에드가 라이트의 열망이다. 베이비가 앓는 ‘이명’ 증세는 라이트 감독이 실제로 지닌 고질병이라고 밝혔고 또한 본인스스로가 음악의 열렬한 팬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의 청력 결핍을 음악으로 다시금 채워 넣는, 이른바 ‘베토벤 서사’는 <베이비 드라이버>의 캐릭터 구축을 설명하는 핵심이다.

영화는 보다 더 시끄럽고-보다 더 강렬한 리듬의 음악을 선곡해 장애를 지닌 인물들의 결핍을 마법처럼 따스하게 어루만진다. 113분의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은 어쩌면 베이비의 아이팟에서 흘러나오는 신명나는 ‘음악’에 몸을 맡긴 채 흥겨움만을 느낀 것이 아니라, 그를 고통케하는 ‘이명’을 함께 느낀 것 일지도 모른다. 같이 이겨냈는지도 모른다.

 

3. ‘자발적 귀머거리’와 사회성의 ‘결핍’

베이비는 원치 않는 범죄에 가담하는 대신에, 사회적으로 ‘자발적 귀머거리’가 되기를 택한다. ‘박사’(케빈 스페이시)의 진두지휘 하에 강도짓을 꾸미는 벙커에서 베이비는 작당모의 내내 이어폰을 끼고 팀원들과의 소통을 거부한다. 이러한 베이비의 태도에, 팀원들은 “쟤 모자라냐” “너 벙어리냐” “쟤 이름이 ‘BABY'인 이유는 아직 말을 못해서야”라며 베이비의 존재에 의문을 품는다.

 

베이비는 이명을 앓고 있지만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말하는 데엔 지장이 없다. (오히려 베이비는 ‘수어’라는 제 3의 언어까지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줄 아는 능력자다) 하지만 베이비는 자신이 처한 부박한 상황적 맥락 때문에, 자발적 귀머거리 혹은 자발적 벙어리가 되기를 택한 것이다. 베이비는 함께 일하는 범죄자들과 자신은 결이 완전히 다름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 이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은, 베이비의 이러한 자폐적인 위치 선정으로 발현된다.

<베이비 드라이버>(2)의 코미디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인물의 부도덕성에 웃는게 아니라 비사회성에 웃는다]는 앙리 베르그송의 명제는 베이비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그는 강도짓에 얼떨결에 가담하면서 살인, 자동차 절도 등 부도덕한 일들을 저지르지만-그의 선한 본성을 아는 관객들에게 그의 비행은 웃기기보다는 쓰라리게 다가온다. 베이비가 어서 박사의 손아귀에서, 범죄 집단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극도로 말이 없고 내성적이며, “You and I are a team”(3)이라는 대사는 자주 읊조리면서도 진짜 ‘팀플레이’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베이비의 사회성이 결여된 모습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회의 중에도, 작전 중에도 팀원들과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는 베이비. 좋아하는 여자(데보라)를 꼬실 때에야 1년 중 가장 길게 말을 하는 베이비. 자기는 말이 없지만 남들의 목소리를 몰래 녹음해 믹스테잎을 만드는 ‘오타쿠적’ 취미를 가진 베이비. 베이비의 모든 일면은 스스로의 사회성을 거세하고 음악의 독방에 스스로를 가두는 시도로 해석되며, 이렇게 탄생한 사회성의 결핍은 베이비의 청력적 결핍과 연결되며 불온전하며 우스운 영웅상(像)을 창조한다.

 

4. 결핍은 결국 결핍으로 남고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여자친구 데보라와 탈주하던 베이비는 길의 끝에서 자신을 체포하러 온 경찰들을 만난다. 그렇게도 바라던 음악과 길,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이 모두 갖춰진 첫 드라이빙에서 말이다. 재판에서 25년 형을 선고받은 베이비는 5년 후 가석방 심사를 통해 출소한다. 멋진 세단을 몰고 온 데보라가 그를 기다리고 있고, 키스한다. 권선징악, 세계는 결국 선한 것임을 재확인하고 사랑으로 마무리 짓는 방식이다.

하지만 <베이비 드라이버>의 결말은 코미디 영화의 정형성을 비껴간다고도 볼 수 있다. 해피엔딩의 탈을 쓴 ‘아이러니 엔딩’이라는 설명이 적합하다. 베이비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영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결말을 어쩌면 비극에 가깝다. 베이비의 미성숙함은 그 자신의 청각적 결핍, 그리고 그 결핍으로 인한 소통능력의 결핍으로 발현되는데, 이 결핍들을 다른 무언가로 채우는데 베이비는 결국 실패하기 때문이다. 치열한 다툼 중 ‘버디’가 귓가에 대고 쏜 총성은 찢어질듯 한 이명을 유발한다. 이로 인해 베이비가 청력을 완전히 잃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베이비의 청각을 대변하던 영화 사운드가 계속해서 뭉그러지며, 그의 청각적 결핍이 더욱 심화되었음을 암시한다. 엔딩에서 베이비는 결핍을 이겨내는 것이 아닌 더 심각한 결핍을 앓게 되는 것이다.

청각의 결여를 이겨내지 못한 베이비는, 사회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도 역시나 요원해 보인다. 베이비의 묵언 수행은 교도소에서도 계속되며, 그의 핍진한 소통 능력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베이비는 그의 연인 ‘데보라’와 있을 때만 대화하고 공감하고 서로를 느낄 수 있는, 어쩌면 미성숙한 어른으로 남는다. 베이비의 두 가지 결핍은 모두 치유되지 못한다.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는 하이스트 무비의 가능성을 한 쪽에선 음악으로, 다른 한 쪽에선 사려 깊은 캐릭터 설정으로 넓히며 ‘웰메이드’의 자격을 충족시켰다. 영화음악에 매료됨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이 영화의 속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가 탁월하다 극찬했던 신나는 영화음악과 찢어질 듯 생생한 사운드 믹싱은 모두 베이비라는 인물의 청각적 결핍에서 그 정당성을 얻어냈다는 점을 명징하게 이해해야한다.

<베이비 드라이버>엔 음악과 고요가 동시에 남았다. 음악은 무한한 결핍 앞에 무릎 꿇지 않았지만, 그 결핍을 물리치지도 못했다. 음악은 음악대로 악보를 타고 흐르고, 베이비의 결핍은 그대로 그의 인생을 타고 흐를 것이다.

 

(1)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The Jon Spencer Blues Explosion)의 노래

(2) <베이비 드라이버>는 전형적인 하이스트 무비이자, 코미디 요소를 함께 지닌 복합장르의 작품이다.

(3) 영화 <몬스터 주식회사>의 대사. 이 영화는 작중 베이비와, 박사의 조카가 좋아하는 영화로 등장한다.

사진 출처 : 네이버 - 영화 - 베이비 드라이버 - 포토

 

글: 남지우

이화여대에서 ‘이것저것’을 공부하고 경험한 지 4년째다. 웃고 글 쓰고 얘기하는 것이 좋아 교지편집위원회에서 2년 반을 머물렀다. 이후엔 연극과 영화에 빠져들면서 이데올로기 논쟁 그 너머를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정치부터 아이돌까지, 참 관심을 두지 않는 곳이 없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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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우 batango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