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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킬러의 보디가드>, 코미디로 재정의하는 ‘선과 악’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 코미디로 재정의하는 ‘선과 악’
  • 신영빈
  • 승인 2018.04.12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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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킬러의 보디가드> 해외판 포스터
 
‘악’은 왜 악한가. 비교적 단순한 근거만으로 우리는 악을 정의하곤 한다. 특히 미디어에서는 선과 악의 극히 피상적인 부분만을 표현하며 단편적인 정의를 고착화하는 경향이 더욱 강하다. 절도와 강도, 폭행과 살인을 비롯한 반사회적 파괴 행위를 벌이는 개인 혹은 집단이 영화 속에서 ‘빌런’으로 정의되는 흐름에 따라본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관객들에게 손가락질 받게 된 빌런은, 반드시 그가 저지른 악행에 상응하는 보복을 받는다. <나 홀로 집에(1990)>에 등장하는 도둑은, 실제로 절도 미수에 그치는 경범죄자임에도 어린 주인공에게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무차별적이고도 잔혹한 응징을 당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악한 존재가 제재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그런 섣부른 정의를 경계하는 작품도 다수 있었다. <맨 인 더 다크(2016)>가 절도범의 초조한 심경을 공포의 소재로 녹여낸 데 이어, 애니메이션 <메가마인드(2010)>는 역설적이게도 악당을 주인공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다크 나이트(2008)>의 인기 빌런 ‘조커’도 어릴 적 트라우마를 통해 악의 이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킬러의 보디가드(2017)>에는 보다 고차적인 트릭이 활용되고 있다. “왜 악당일까?”를 소극적으로 묻던 이전의 시도보다 “악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저돌적인 질문을 던진다.
 
악의 재정의, 킬러의 보디가드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2017)>는 청부 살인업자 다리우스 킨케이드(사무엘 L. 잭슨)와 그를 경호하게 된 경호원 마이클 브라이스(라이언 레이놀즈)의 이야기를 플롯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개인의 자유와 절대적 악의 존재에 대해 논하기를 관객에게 주문한다. 그 과정에서 극단적인 두 정부의 형태를 대치시키며, 공공선으로 포장되는 가치의 순수성을 의심하기까지 한다. 세계 최악의 독재자를 두고서도 법적 증거가 없어서 단죄하지 못하는 국제기구 대신, 청부 살인업자라는 무법자적 존재를 통해 독재자를 처단하는 통쾌한 전개에서 보이듯이 말이다.
 
세계 최악의 독재자 블라디슬라프 두코비치(게리 올드만)의 국제 사법재판을 앞두고, 민간인을 학살하며 체제를 보존하려 했던 그의 잔혹한 범행을 증언할 증인이 줄줄이 사라진다. 재판에 꼭 필요한 증인으로 지목된 킨케이드를 국제사법재판소까지 옮기면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이 코미디 장르의 골격을 이룬다. 킨케이드를 찾아서 지켜내려는 인터폴과 그를 찾아내 사살하려는 두코비치 세력 간의 대립이 첨예하게 그려지지만, 인터폴 내부에 두코비치의 정보원이 자리하고 있는 탓에 킨케이드는 AAA급 경호원 마이클 외에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 킬러와 보디가드
 
코미디, 클리셰 해체를 꾀하다
 
객석에서는 끊임없는 실소가 터져 나온다. 어딘가 어색하다고 느낄 법한 비일상적인 상황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신선한 충격이 전해오기 때문이다. 극중 상황과 인물들의 관계를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보편적인 코미디와는 차이가 있다.
 
객석의 분위기를 판가름하는 요소는 대개 ‘정보량의 차이’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흔히 공포영화에서는 관객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언제 어디서 갑작스런 요소가 튀어나올 지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다. 영화 <큐브>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는 시간과 장소, 인물에 대한 이해조차도 방해하면서 긴장감을 끌어올리곤 한다. 이처럼 관객은 극중 상황을 충분히 인지할 때 안도감을 느낀다. 다음에 벌어질 일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때, 편안한 미소가 지어진다.
 
코미디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 ‘웃음 공식’이 <킬러의 보디가드>에서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적용됐다.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되, 뜻밖의 결과물을 내놓으면서 근본적으로는 관객을 당황시키기 때문이다. 킬러와 보디가드가 등장하지만 각각의 이면적인 모습을 묘사하고, 공적 신뢰도가 있는 인터폴을 조력자의 요소로 집어넣지만 이내 허술한 경비 태세였음을 보여주는 등 사건이 뜻밖의 방향으로 틀어지는 전개를 지속함으로써 웃음을 준다. 마냥 마음 놓고 폭소할 수 있는 코미디가 아닌, 풍자적 코미디에 가깝다.
  
▲ 무려 인터폴 AAA급 경호원의 자태. 그리고 이내 작전은 실패한다.
 
공권력과 의외의 모습
 
실제로 국가와 공권력을 상징하는 시그널이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사법재판소는 서사의 최종 목적지이자, 극적 긴장감이 가장 심화되는 장소다. 뜻하지 않던 증인이 등장하자, 두코비치는 플랜B를 실행에 옮긴다. 국제사회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의지일까. ‘Reset Logistiek’라는 문구가 적힌 거대한 트럭이 사법재판소로 들이닥치는데, 경찰은 바라만 볼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다. 진입로를 막고 있는 경찰차는 순식간에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결국은 재판소 앞에 모인 군중들 쪽으로 트럭이 들이닥치곤 이내 컨테이너에 들어있던 폭발물이 터진다. 부상자를 구조하기 위해 출동한 응급헬기마저, 두코비치의 하수인에게 탈취당하고 만다. 옥상으로 도망치는 두코비치, 복도로 탈출하는 부국장 푸셰(조아큄 드 알메이다)를 저지하는 것 역시 공권력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공권력에 대한 존재감은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다. 신속한 서사 전개 때문이라는 추측이 무색하게도 지나치게 무기력하게 묘사된다. 특히 암스테르담 운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방 장면에서는, 네덜란드 경찰관이 킨케이드를 쫓던 인터폴 요원들을 막아서는 답답한 모습도 그려진다. 재판 마감을 코앞에 둔 중요한 시점에 이런 혼선이 빚어지는 장면을 통해, 감독은 형식과 제도에 얽매여 정작 눈앞의 책무를 지켜보고만 있는 비효율성을 풍자하고 있다.
 
상명하달식 보고 체계는 영화 내내 갈등 해결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인터폴만 보아도 그렇다. 스파이 문제로 기습 공격을 받은 직후에도, 킨케이드와 함께 잠적한 루셀 요원(에로디 영)을 끊임없이 회유하려 한다. 고위급 요원으로 가장 가까이에서 정보를 유출하는 스파이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킨케이드가 머물던 안전가옥의 위치가 발각된 것도, 푸셰가 카소리아 국장에게 보고 통화를 올리던 중이었다. 이에 대항하듯, 루셀은 인터폴에서 해직된 마이클에게 도움을 청하기에 이른다.
 
민주적 가치에 뿌리를 두는 법체계도 극중 갈등을 촉발하는 데 일조한다. 당장 증인이 등장하지 않으면 두코비치는 무혐의로 풀려날 위기에 놓인 상황이지만, 혐의를 입증할 방법론적 제약은 근본적으로 제도의 한계에서 기인했다. 결국 두코비치는 사법재판소 재판장이 아닌 옥상에서 최후를 맞는다. 킨케이드가 두코비치를 벼랑 끝에 몰아세우는 뜻밖의 장면은, 통쾌하지만 한편으로는 관객에게 상황의 아이러니를 체험하게 한다. 보편인 상황에서 악으로 간주되는 킬러가 최악의 독재자를 밀어버리는 장면으로 극중 갈등이 해소된다.
 
▲ 악마 같은 새끼들을 죽이는 사람이랑, 그 새끼들을 지키는 사람 중 누가 더 사악한가.
 
무엇이 선하고 악한가
 
“높이 계신분께 여쭤봐. 누가 더 사악한지. 악마 같은 새끼들을 죽이는 사람이랑, 그 새끼들을 지키는 사람 둘 중에서”
“전 선량한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킨케이드는 남다른 살인 철학을 가진 인물이다. 청부를 받아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선량한 사람에 대한 살해 청탁은 늘 반려하곤 했다. 두코비치가 자기 정치 라이벌을 해하고자 그를 고용하려던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킨케이드는 민간인 학살을 지시하는 두코비치의 모습을 보고 요청을 단칼에 거절한다.
 
킨케이드는 스스로 250여 명의 사람을 죽였다고 말한다. 그가 살해한 주요 인물로는 교회에 무단 침입한 괴한부터, 무기 거래상 쿠로사와, 독재자 두코비치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을 죽였거나, 죽이는 데 일조한 부당한 권위자들이다. 여기서 관객은 혼란을 빚는다. 사람을 죽이기 때문에 위험하고 지독한 인물일 줄만 알았던 킨케이드에 급격하게 감정을 이입하기 시작한다. 반면 킨케이드가 죽이는 사람들의 지독한 민낯을 엿보았을 때, 킨케이드로부터 그들을 지키는 경호원들이 오히려 공공선을 위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영화적 기법을 통해 선악의 상징이 역전되는 순간이다.
 
파괴와 수호의 클리셰를 제거하는 순간은 이뿐만이 아니다. 킨케이드를 체포하고 증인으로 데려가기 위한 인터폴의 방식을 예로 들 수 있다. 그의 아내인 소니아(셀마 헤이엑)는 별다른 죄목이 없음에도 옥중에 가둬진다. 정의를 표방하면서도 목적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투옥시키는 모순적인 행태에서 모순이 드러난다. 이는 앞서 공권력의 무기력함을 언급한 것의 연장과도 같다. 단순히 무력하고 비효율적인 아쉬운 모습만이 아니라 선으로 포장되었을지도 모를 악의 가능성에 대해, 감독이 환멸을 드러내는 일종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독재자와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공권력, 킬러와 경호원. 이 두 관계 외에도 더 있다. 킨케이드를 증인으로 신청해 두코비치의 죄를 입증하는 검사와, 두코비치의 범행을 묵과하고 형식에 따라 무혐의 절차를 밟으려는 변호인의 구도가 그렇다. 무고한 피해자를 지키는 주체적인 모습과는 반대로, 되레 악한 존재를 보호하려는 변호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선악 프레임이 내쳐지고 새로운 상식을 촉구하는 풍자적 요소를, 코미디라는 장르에 결합해 해학적으로 풀어냈다.
 
▲ 킨케이드, 너 같은 놈들에겐 속죄란 없다!
 
그딴 거 신경도 안 쓴다고
 
“구원은 없어. 너 같은 놈들에게 속죄란 없다고”
“난 그딴 구원 같은 거 신경도 안 쓴다고!”
영화에서 절대악으로 그려지는 두코비치는, 재판소를 빠져나갈 퇴로를 차단한 킨케이드를 향해 독설을 퍼붓는다. 정의감에 찬 얼굴을 해봤자 여전히 시체밭을 걷는 킬러일 뿐이라며 비웃는다. 하지만 킨케이드는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그딴 구원’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되레 코웃음을 친다. 다만 그는 자신의 경호원에게 총을 쏜 것에 화가 났다며, 두코비치에 사적 제재를 가한다.
 
킨케이드를 회유해 상황을 모면할 수도 있었을 두코비치가, 자조적인 모습으로 킨케이드를 비난하며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은 다소 어색하다. 감독은 킬러에의 감정이입과 선악 프레임의 역전에 대한 반발을, 두코비치의 입장을 빌려서 풀어냈다. 선량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아무리 악한 사람만을 골라서 죽인다고 해도, 킬러는 킬러일 뿐이라는 보편적 사고를 인물 간 대화를 통해 영화에 드러냈다. 그리고 그를 밀어버림으로써, 자신의 메시지를 견고히 하고 있다.
 
코미디의 힘
 
영화가 상영된 뒤에는 다소 부정적인 감상평이 달리기도 했다. 영화 중후반부에 킨케이드에 대한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시도가 무척 인위적이라서 아쉬웠다는 여론도 있었다. 물론 인물의 입체적인 면모를 풍부하게 담아내기에는 한정적인 상영시간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진득하고도 탄탄한 스토리를 원한다면 실제로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점을 차치하고서, 은근하게 드러내는 감독의 메시지는 코미디 장르에 자연스럽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녹았다. “그래서 ‘악’은 어디에 있는 걸까?” 악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코미디에 적절히 승화됐다. 짧은 시간에 직관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재미’와 ‘웃음’의 코드가 오롯이 살아있다. 파편화된 고정관념의 위험성을 알리면서도, 인물과 사건의 단면만을 바라보는 관객의 실수를 간파하고 그에 대한 경계를 남긴다는 점에서 <킬러의 보디가드>는 영화적인 의의가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 영화 - 킬러의 보디가드 - 포토
 
글: 신영빈
사진 찍고 글 쓰는 공학도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턴기자를 거쳤다. 인권과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 동물권 이슈에도 기웃거리고 있다. 채식의 의의에 공감하지만, 애석하게도 고기를 좋아한다. 누구보다도 가비지테리언을 출중하게 실천하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 http://syb0722.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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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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