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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나는식물로 늙어가면 좋겠다고 상상한다
[안치용의 프롬나드] 나는식물로 늙어가면 좋겠다고 상상한다
  • 안치용 / 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18.06.10 2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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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가 보아온 나이와 내가 사는 나이가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내 나이의 아버지는 며느리를 두엇 보았고, 손자 손녀도 보았다. 늦게까지 일에서 벗어나진 않았지만 일과는 별개로 노년의 삶을 사는 뒷방 노인네로 간주되었다. 내가 지금 맞이하는 과거 아버지의 나이는,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많이 달라졌다. 물론 옛날에 아버지가 현재 내가 짐작하는 것과는 다르게 느꼈을 수는 있지만(물어볼 수는 없다. 이미 돌아가셨으니까.) 객관적인 차이가 생긴 것은 분명하다.

 

얼마 전에 자동차 배터리를 갈았다. 만사가 그러하듯 배터리엔 수명이라는 것이 있어서 때로 평균보다 오래가긴 하지만, 아무튼 때가 되면 교체해야 한다. 다행히 시동이 걸리지 않은 곳이 집 주차장이어서 큰 낭패를 겪지는 않았다. 평소에 그렇게 넓게 움직이지 않지만 만일 공교롭게 어디 교외에서라도 배터리가 죽어버렸으면 많이 당황했겠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자동차를 주머니에 넣어올 것도 아니고, 어차피 보험회사 긴급출동 서비스를 이용해야 할 처지이기에 집 주차장이나 조금 떨어진 음식점 주차장이나 큰 차이는 없지 않은가.

 

여러 대의 차를 몰고, 많은 배터리를 교체한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이미 교체시기가 다가왔음을 예감하고 있었고 일이 닥쳤을 때 이런저런 상황으로 보아 배터리의 완전 방전을 추정할 수 있었다. 배터리와 세상사가 크게 다를까. 불행히도 사태의 전말을 짐작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사이 신속하게 도착한 긴급출동 서비스 아저씨는 나의 예상을 확인시켜 준 뒤 배터리 교체작업에 들어갔다.

 

방전된 직육면체의 배터리를 끄집어내자 그것을 담고 있던 사각틀이 휑하게 드러났다. 새것으로 채워지지 전까지 아주 짧은 시간, 직전까지 무엇인가로 꽉 차 있던 그 공간은 을씨년스럽게 바닥을 노출했다. 일종의 그 약탈은 누구에게 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느닷없고 무례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방전의 흔적마저 치워버린 완전한 방전. 그 완벽한 소멸은 충전으로 대체됨으로써, 즉 소멸을 소멸시킴으로써 완성된다. 잠깐의 그 빔이 옛것의 유일한 알리바이이자 가능한 유일한 현존이란 역설. 나는 어쩐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당혹해하다가 이윽고 이유 없이 잠깐 콧등이 시큰해졌다. 아주 잠깐.

 

이제 차의 시동은 잘 걸린다. 남김없이 비워내고 떠나버린, 혹은 떠나보낸 그 배터리는 잊었다. 설마 떠나버린/떠나보낸 배터리를 그리워할 만큼 이 나이에 감수성이 넘칠까. 그것은 확실히 그리움으로 남을 만한 기억이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방전된 배터리를 들어낸, 그 결정적 부재와 유일한 현존의 공간을 가끔씩 떠올리지 싶다. 그 공간과 조우한 사건과 간헐적으로 이어질 회상은, 굳이 단어로서 의미를 부여하자면 나이테 같은 것이지 않을까. 시몬느 보부아르 식으로 말해 나이는 드는 것이라기보다는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동물이 아니라 식물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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