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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으로 살아남기
독립서점으로 살아남기
  • 김지연 | 예술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8.3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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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서점 일단멈춤
학교 앞이나 동네의 작은 번화가마다 서점이 있었던, 아주 가까운 과거가 있다. 지나는 길에 잠깐 들러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었고, 찾는 책이 없을 때는 주문을 부탁하고 전화번호를 남겼다. 친구와 책을 매개로 대화를 나눴고, 단골서점 주인에게 재밌는 책을 추천받았다. 
 
관계 안에서 또 다른 책들이 발견되곤 했다. 손에 닿는 종이의 사각거리는 느낌, 묵직한 무게로 전해오는 책의 물성이 익숙한 시간들이었다. 이야기와 관계가 있던 동네서점들은 대형서점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1996년 5,378개까지 증가했던 국내 서점 수는 이후 계속 감소했고 2015년에는 1,559개까지 줄었다(한국서점조합연합회 참조). 책을 사려면 대형 브랜드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을 찾아야 했고, 모두들 서점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다양한 주제의 독립서점들이 신선한 매력으로 청년층의 관심과 사회의 이목을 끌고 있다. ‘독립서점’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현재는 포털 사이트에 검색만 하면 독립서점의 실험적인 운영방식을 전하는 기사와, 책방을 열고 원하는 삶을 찾았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정말 보이는 것처럼 독립서점의 현재는 장밋빛일까. SNS에서 유명세를 누리는 것만큼 흑자운영도 쉽고, 서점 주인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행복하고 낭만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지난 7월, 상암동의 서점 북바이북이 매물로 나왔다. 북바이북은 책과 주류 판매의 콜라보, 작지만 강한 큐레이션으로 점차 알려졌고, 광화문과 판교에 지점을 내며 성장세를 이어가던 곳이었다. 한편 비슷하게 성장해가던 서교동의 북티크 역시 오프라인 서점을 없애고 온라인 서점과 독서 모임 운영에 주력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두 서점은 독립서점 붐이 일기 전부터 시작했던 곳이라 아끼는 단골도 많았고, 독립서점 중에서는 꽤 규모 있는 공간들이었기에 이들의 새로운 소식이 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왔다.
 
높은 공급률, 할인에 익숙해진 소비자들
 
 소비자들은 2014년 말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책값 상승을 뚜렷하게 느꼈기 때문에, 그만큼 서점들의 주머니가 넉넉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 두 서점의 사례처럼 서점 운영은 여전히 어렵다. 게다가 높은 임대료 등 국내 자영업자들이 고질적으로 겪는 문제들은 서점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손님이 많은 카페나 치킨집 영업도 쉽지 않은데, 잘 팔리지도 않는 책을 들여놓은 서점 운영이 쉬울 리 없다. 
 
 소규모 서점 운영을 어렵게 하는 문제 중 하나는 공급률이다. 공급률이란 출판사가 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가격의 정가 대비 비율을 뜻하는데, 공급률이 70%라면 서점은 정가 1만 원인 도서를 7천 원에 들여오고, 판매 시 3천 원의 이익을 남기게 된다. 그런데 온라인 대형 서점들의 공급률이 60~70%인데 비해, 도매상을 한 번 더 거치는 소규모 서점들은 보통 70% 이상, 많으면 85%의 공급률을 적용받는다. 
 
정가와 공급률은 출판사에서 정하는데, 굳이 소규모 서점의 이익구조를 배려하지는 않는다. 계속되는 출판업계의 불황 때문에 파이 자체가 작은 탓이다. 또한, 도서정가제에서는 10%의 할인과 5%의 적립까지 허용되는데 온라인 서점들은 모두 기준치까지 할인과 적립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이다. 게다가 전처럼 할인쿠폰을 지급할 수는 없지만, 이벤트 상품권과 제휴카드 할인을 수시로 제공한다. 작은 서점에서는 불가능한, 자본력과 공급률의 차이에서 나오는 여유다. 
 
 그래서 서점주들은 공급률의 평등과 완전정가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며 충격 완화를 위해 10% 할인과 5% 적립을 허용했지만, 정가제 아닌 정가제 때문에 시장구조가 여전히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서점은 가격도 마진도 스스로 정하지 못하고 출판사와 도매상이 정해준 대로 따라야 하는 구조인데, 높은 공급률로는 온라인 서점의 할인과 적립에 대응하기 어렵다. 소비자들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책과 같은 문화 콘텐츠는 충분한 가격을 지불해야 창작자가 정당한 이익을 얻고, 그것이 다시 좋은 콘텐츠의 창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뒤틀린 시장구조 덕분에 오랫동안 할인에 익숙해져 있다. 서점들의 노력만으로 소비자의 인식과 시장구조를 바꾸기는 어렵다. 
 
책은 팔리지 않고, 이야깃거리만 무료 제공
 
 독립서점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광고비를 받고 매대를 판매하는 대형서점과 달리, 온전히 서점원의 판단과 취향, 지역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고려한 북큐레이션을 제공하고, 상담을 통해 개인의 취향과 상황에 맞는 책을 추천하는 등 새로운 판매방식을 시도하기도 한다. 또 SNS를 이용해 잠재고객들과 열심히 소통하며 책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식음료나 문구 판매, 각종 행사와 강연 등으로 수익구조의 다변화를 노린다. 또한 독서모임과 북토크, 낭독회 등을 열며 같은 취향을 지닌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 형성에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독립서점들은 책을 위해 수익구조를 다변화했지만, 정작 책은 팔리지 않고 부수입으로 서점을 유지하는 주객전도가 일어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서점주마다 온도차가 있겠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아서 폐업을 결정하는 서점도 늘고 있다. 카페에 책을 가미해서 북카페라는 명목하에 음료와 분위기를 파는 것은 가능하지만, 책을 파는 것은 어렵다. 대부분의 고객은 음료값은 선뜻 지불하지만 책은 무료로 읽기를 원한다. 코엑스의 별마당 도서관에 사람들이 몰리며 주변 매장의 매출액은 30% 이상 증가했지만, 정작 모두들 무료로 책을 읽는 탓에 같은 코엑스 내의 영풍문고 매장은 절반으로 축소되고 말았다는 이야기에서, 콘텐츠의 대가를 경시하는 우리나라 사회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책 자체에 무관심한 문화도 한몫한다. 교육이나 입시를 위한 획일화된 방식의 독서를 주로 경험했을 뿐, 자신만의 취향을 발전시키는 독서습관을 기르지 못한 성인이 대부분이다. 서점이나 서재에 환상은 가지고 있지만, 거기서 무얼 골라 읽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유명한 책만 팔리고 나머지는 사장되는 현상이 심화된다. 미디어셀러를 책이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의 굿즈처럼 소비하는 문화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독립서점뿐 아니라 출판업계 전부의 문제다.
 
 한편 대부분의 독립서점들은 SNS 계정을 운영한다. 매일 사진과 글을 올리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SNS가 없다면 존재조차 알리기 쉽지 않은 독립서점의 특성상 꼭 필요한 일이다. 이들의 팔로워 수는 적으면 수백 명에서 수천 명, 많으면 몇만 명이 넘기도 하는데, 그에 비해 실제 서점을 찾는 손님은 터무니없이 적다. 그 이유는 독립서점이 서점으로서만 기능한다기보다 꽤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이는 재화보다 공간의 분위기를 소비하는 요즘의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책보다는 독립서점이 풍기는 지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에 끌려 서점을 방문한 이들은 대부분 서가를 구경한 뒤 사진만 찍고 떠난다. 이는 다른 업종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는 상황이지만, 음식점과 카페는 입장해서 사진을 촬영하려면 주문과 계산을 해야 한다. 하지만 서점은 책을 구경하고 사지 않아도 그만이다. 그 와중에 유명인들이 하나둘 독립서점에 뛰어들면서, 그들의 유명세에 눌려 이야깃거리로 회자되는 것도 예전 같지 않다. 
 
 독립서점의 실험을 구경하며 원하는 것만 얻어가려는 것은 기업도 언론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이들의 운영방식을 눈여겨보다 필요한 것만 취해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의 서비스를 구성하고, 언론은 독립서점 운영이라는 생소한 삶의 방식에만 흥미를 가지고 이를 미화해서 그리는 데만 열중한다. 서점주들은, 인터뷰를 하며 서점업의 현실과 어려운 점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도 정작 지면에는 실리지 않는다고 토로한다.(1) 입맛대로 편집한 기사를 통해 독립서점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아름다운 환상이 된다. 독립서점의 주인은 마치 예술가처럼, 원하는 일을 하며 꿈을 이뤘고 돈을 벌지 못해도 행복하다는 식으로 소비된다. 
 독립서점의 어려움을 논하면 항상 뉴욕이나 도쿄의 독립서점들을 보고 배우라는 말이 나오지만, 앞선 이야기들처럼 우리나라 서점들 역시 고군분투하고 있다. 오히려 일본의 한 편집자는 한국 서점들의 실험이 더 급진적이고 재미있다며, 이것이 일본 서점의 미래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2) 즉, 한국 독립서점들의 노력 부족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책과 콘텐츠를 구매하는 시장의 규모 차이다. 아무리 다양한 시도를 해도, 서점에 책을 구매하러 오는 소비자 자체가 일본과 미국에 비해 적다.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율은 1994년 이래 꾸준히 줄어들고 있으며, 지난해 연평균 도서구매량은 5권을 넘지 못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책은 이미 잘 팔리는 상품이 아니다. 
 
독립서점의 실험이 유효한 것이 되려면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쓰고, 책을 만들고, 팔고, 읽는다. 책은 여전히 고유한 가치를 가진다. 우리는 작은 서점들로 인해 예상치 못한 서가를 만나고,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에서는 찾기 어려웠던 보석 같은 책을 발견한다. 편리하고 효율적이지는 않을지언정, 특별한 경험임은 틀림없다. 이 특별한 경험을 지속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바꾸어야 한다. 누군가는 제도와 수익구조를 탓하고, 누군가는 무관심하고 안목 없는 대중을 탓한다. 또 누군가는 책이라는 콘텐츠 자체의 쇠퇴를 한탄하기도 하고, 자영업이 살아남기 힘든 우리나라의 구조 자체를 문제 삼으며, 서점들이 더 분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확실한 것은 어느 하나의 힘으로는 바뀔 수 없다는 것이다. 
 
 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적지만, 대부분은 평소에 모바일로 많은 텍스트를 소비하고 있다. 읽지 않는 것 자체를 비판할 상황이라기보다는, 지금 이 시대의 읽는 방식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출판업계에서도 이미 초단편 소설 등 글의 분량 자체를 줄이거나, 예쁜 디자인의 문고판으로 책의 물성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공략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콘텐츠를 읽기 편하고 가볍게만 만들 것이 아니라, 책이라는 존재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방법도 필요해 보인다. 또한, 구조적으로는 도서정가제와 공급률 문제에서 온라인 대형 서점과 소규모 서점과의 형평성을 획득해야 한다. 정책뿐 아니라 출판사와 서점 간에 조정과 협의가 필요한 문제다. 여기에는 문화콘텐츠에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려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필요하다. 도서가격 책정에 대한 불신, 그리고 ‘할인가가 정당한 가격’이라는 인식이 서서히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다. 
 
 특정한 취향의 고객만 찾아오는 곳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조금 더 자연스레 스며드는 동네서점이 되거나, 아니면 그럴수록 더욱 자신만의 메시지가 강한 공간이 돼 살아남거나, 또 다른 활로를 찾는 것은 서점 각자의 몫이다. 확실한 것은 개성 있는 소규모 상점은 그 재화를 소비하는 문화 자체에 활력을 준다는 것이다. 독립서점은 꼭 필요한 존재다.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답해 본다. 독립서점 운영은 정말 행복하기만 할까. 아니다. 독립서점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글쎄, 어쩌면. 독립서점들의 실험은 유효한 것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그것은 서점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다. 변화의 끝에 작고 개성 있는 서점들이 동네마다 들어서기를, 그곳에 들러 우연히 인생의 책을 만나는 경험을 다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김지연
문화와 예술에 관한 글을 쓰고 전시를 만든다. 홍익대 예술학과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술전문지 <그래비티 이펙트>의 미술비평 공모에서 입상했다. <샤갈·달리·뷔페>전과 <그대 나의 뮤즈>전을 기획했다.
 
(1) 로컬숍 연구지 브로드컬리 2호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책 팔아서 먹고 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브로드컬리, 2018
(2) 치누마 신타로, 아야메 요시노부,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서울>, 컴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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