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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불금' 막차 안에서 토하는 여자와 사도 요한
[안치용의 프롬나드] '불금' 막차 안에서 토하는 여자와 사도 요한
  • 안치용 / 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18.09.02 2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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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아저씨들이 진득하게 마셨다. 이른 저녁에 시작한 음주가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세 명으로 시작해서 네 명이 되고, 다섯, 여섯 명이 된다. 남들이 2차를 마쳤을 시간에 이제 누군가 2차를 가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선도하지는 않는다. 그저 눈치를 보며 서 있다. 마침내 누군가 결단을 내려 대리운전회사에 전화를 걸면 주변 사람들과 오랫동안 악수를 나누고, 그것도 여러 번 악수를 나누고 올 때처럼 한두 명씩 슬금슬금 빠져나간다. 

 

2차를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전철 막차에 탑승한다. 불금이라지만, 혹은 불금이라서, 막차엔 자리가 많다. 불콰한 내 얼굴을 내보이는 게 별로이지만, 술 냄새 풍기며 고개 숙인 자세는 더 싫어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혀 뒤통수를 전철 창 쪽에다 댄다. 눈을 감는다.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에 눈을 가늘게 조금만 뜬다. 살짝 아래로 보이는 맞은편 좌석의 젊은 여자가 무릎 위에 올린 화사한 문양의 루이 뷔통 핸드백 앞쪽으로 고개를 숙인 채 한창 토하는 중이다. 안주로 두부 종류를 먹은 모양이다. 핸드백과 구두, 노출된 다리에 하얀 토사물이 적당하게 튀었다. 눈을 감는다.

 

한참 지나 내릴 시점에 눈을 뜨니 여자는 없고, 그가 있던 자리 바닥에 토사물만 남아 있다. 하차하여 계단을 느릿느릿 오른다. 카드를 대어 삑 소리를 낸 다음 역사 통로를 걷는데, 노선 안내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익숙한 역 이름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삶의 어느 때인가 그 역 이름을 단 전철에 몸을 던져 넣곤 한 기억. 설레었던가? 설렘은 때가 되면 막차처럼 떠나지만 습관의 흔적은 저 표지판처럼 무던하게 여태껏 매달려 있다.

 

토할 만큼 마신 적이 언제인가. 술 마시는 게 지겨워지면 막차를 놓치는 법은 없다. 이 방향 저 방향 열차 끊긴 역사 안에서 노숙자들이 잠자리를 찾아 유령처럼 서성인다. 역에서 집까지는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다. 역사 안도 내 방처럼 익숙하다. 어떤 익숙함은 어렵사리 도달하고 또 어떤 익숙함은 수이 도달한다. 어떤 익숙함은 무해하고 또 다른 종류의 익숙함은 유해하다. 유해 무해를 떠나서 익숙함 중에는 결국 벗어나야만 하는 종류의 것들이 있다. 토할 만큼 술을 마시지 않게 된 이후론, 무엇이 되었든 익숙함과 결별할 때 익숙함의 감가상각 기간이 지나나기를 가만히 기다린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요한계시록 3장 15~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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