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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식물도감' ― 운명의 사랑을 주웠습니다!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식물도감' ― 운명의 사랑을 주웠습니다!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18.09.03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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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거 문화와 음식 문화
 
<너는 펫>(2011)에서 은이(김하늘)는 상자에 담긴 인호(장근석)를 발견하고, 충실한 펫이 되겠다는 인호의 부탁으로 주인과 펫의 관계를 맺으며 동거를 시작한다. 이 영화처럼 최근 소설, 만화, 영화에서 인간을 줍거나 펫처럼 취급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개봉한 일본영화 <식물도감>(Evergreen Love, 2015)에서도 상자에 담긴 채 자신을 주워달라는 이츠키(이와타 타카노리)와 그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 살게 해주는 사야카(타카하타 미츠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여성이 노숙자 남성을 ‘줍는’ 이야기와 인스턴트 혼밥 문제를 통해 젊은 세대의 동거 문화와 음식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2. 로맨스물의 컨벤션과 신데렐라 콤플렉스
 
<식물도감>의 원제는 <植物図鑑 運命の恋、ひろいました(식물도감 운명의 사랑을 주웠습니다)>이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야카는 눈 오는 추운 겨울날 집 앞에서 배고파하는 이츠키를 발견하고는 집으로 데려온다. 사야카는 그가 해주는 밥을 먹고는 감동하여 자신의 집에서 반 년 동안 살도록 허락해 준다. 반년이 끝나갈 무렵 이츠키를 사랑하게 된 사야카는 이츠키가 떠날까봐 불안해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이 영화는 평범한 여성과 명망가 집안 남성의 로맨스물을 통해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플롯은 만남, 변화, 이별, 재회 등의 과정에서 남성의 영향으로 여성이 변모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 만남에서 여성이 집이 없이 노숙하고 있는 남성을 거두어 자신의 집에 살게 해준다. 이후 남성은 요리와 식물에 대해 가르쳐줌으로써 그녀의 생활을 바꾼다. 이별 후 그녀는 힘들어하지만, 그가 남긴 레시피를 보고 혼자 요리를 해먹게 된다. 마지막에 남성도 순수하고 밝은 여자의 영향으로 자신의 길을 찾게 되었다고 말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마치 『왕자와 거지』처럼 노숙자인 줄 알았던 남성이 명성, 재력, 재능을 갖춘 훈남이며, 집에 얹혀사는 남성이 집주인인 여성을 교화시켜 남성의 생각을 따르게 한다는 점에서 로맨스물의 장르적 컨벤션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이때 여성은 남성의 영향을 받아 삶의 의미를 아는 인간이 되어간다는 점에서, 여성을 수동적으로 그리고 있고 남자는 지나치게 미화되어 있다.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왕자와 거지 이야기와 신데렐라 이야기를 적당히 섞어놓고 있어 식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로맨스물의 컨벤션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관객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고 있다. 
 
3. 청년 실업 문제와 상보적 관계의 동거
 
최근 소설, 만화, 영화에서 불가피한 사정으로 동거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타나는데 남성과 여성의 경우가 다르게 나타난다. 우선, 남성의 경우에는 자신이 관심이 있는 여성 혹은 복수하고 싶은 여성에게 접근해 그녀의 빚을 미끼로 강제적으로 자신의 집에 동거하게 만든다. 재벌 혹은 부유한 남성이 여성에게 빚을 없애주는 대가로 자신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게 한다. 동거를 통해 냉혹한 남성이 따뜻한 여성에게 감화되어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변화한다. 
 
다음으로, 여성의 경우에는 자신에게 집을 제공해주는 대신 자신을 주워달라는 남성(=노숙자) 혹은 펫으로 살게 해달라는 남성의 부탁으로 동거하게 된다. 중산층의 여성은 동정이나 연민으로 남성을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한다. 동거를 통해 일에 빠져 있거나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여성이 가사일을 잘 하는 남성 혹은 애교를 부리며 따르는 남성에게 감화되어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변화한다. 남성과 여성의 경우 모두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있는 집주인이 동거로 인해 자신에게 고용되거나 얹혀사는 인물에게 감화되어 자신의 결핍을 느끼고 변화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노숙자나 고용인이 집주인에게 경제적으로는 도움을 받지만 정서적으로는 오히려 도움을 주는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직면한 생계 문제에서 집을 제공하고 음식을 나누는 협력 관계에서 문제의 해결 지점을 찾고 있다. 이렇듯 남녀의 동거 이야기와 사람을 줍는 이야기 모두 집주인의 변화라는 비슷한 플롯 구조를 보이며 젊은 세대의 동거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식물도감>에서도 사야카가 노숙자 이츠키에 대한 동정과 연민으로 동거를 시작하게 되며, 이후 이츠키의 웰빙 음식을 먹게 되면서 삶의 의미와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의 플롯 구조와 유사한 측면을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두 가지 점에서 특이한 면모를 보인다. 첫째, 남성이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웰빙 요리에 대한 능숙한 솜씨로 인스턴트 음식만 먹던 여주인공을 변화시킨다. 이때 여성이 직장에 가서 생활비를 벌어오고 집을 제공하는 대신 남성이 집에서 따뜻한 밥을 차린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남녀의 역할에서 벗어나는 전도된 상황으로 인해 극적 재미를 창출한다. 둘째, 직장과 집이 있는 여성이 노숙자 남성에게 베푸는 관계였지만, 이후 남성이 부유하고 능력 있는 남성으로 변모하여 평범한 여성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신분과 능력을 감춘 남성이 노숙자인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준 여성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에서 유리구두처럼 여성에 대한 시험 관문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렇듯 집을 가진 여성과 밥을 차리는 남성이라는 상보적 관계를 통해 최근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 문제와 노숙자 문제를 남녀의 로맨스 플롯으로 풀어내고 있다. 
 
4. 웰빙 음식과 인물의 긍정적 변화 
 
영화나 드라마에서 음식은 인간관계 특히 남녀의 사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격식에 차린 귀족풍의 음식에 숨막혀하는 인물에게 간편하고 편안한 서민풍의 음식을 먹게 함으로써 자유를 느끼게 한다는 플롯이 가끔 등장한다. 이때 시리얼, 햄버거 등의 미국의 인스턴트 음식이나 패스트푸드는 식사의 예의범절과 허례허식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자유의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많은 영화들에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건강을 상한 주인공에게 여주인공이 차려주는 따뜻한 밥은 사랑의 매개체가 된다. 최근 인스턴트 음식이나 패스트푸드의 유해성이 강조되면서 웰빙 음식과 집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를 소재로 한 영화들도 계속 나오고 있다.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여주인공이 고향으로 내려가 친구들을 위해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웰빙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으며 우정과 사랑을 이어나간다.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요섹남에 대한 선호로 인해 능력 있고 매력적인 남성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여주인공을 감동시키는 설정으로 여성 시청자나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식물도감>은 여성의 독신생활과 남성과의 동거생활을 인스턴트 음식과 웰빙 음식이라는 이분법으로 보여줘 대조를 강조한다. 여성의 삶은 남성과 만나기 이전과 이후가 이분법으로 나뉜다. 이츠키의 영향으로 사야카는 인스턴트 음식, 패스트푸드, 외식, 혼밥에서 벗어나 웰빙 음식, 도시락, 집밥, 함께 먹는 밥을 경험하게 된다. 아버지가 죽고 엄마는 재혼하여 혼자 사는 사야카는 매일 인스턴트음식, 외식, 혼밥을 먹으며 외롭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 사야카에게 이츠키는 웰빙 음식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직장에서 존재감 없고 항상 질책 받던 사야카는 정성이 담긴 밥의 힘으로 부당한 일에 대해서 상사에게 따지고 계약을 성사시키는 등 자신을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으로 변모한다. 남성의 삶도 여성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가 이분법으로 나뉜다. 사야카와의 교감을 통해 이츠키는 화도가의 후계자에서 잡초를 사랑하는 사진작가로 변모한다. 하지만, 그 차이를 영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영향은 미비하게 다루어진다. 
 
여주인공 사야카의 심리 변화와 음식의 변화가 상응함으로써 상관관계를 나타낸다. 사야카는 이츠키가 떠난 후 다시 인스턴트 음식으로 혼밥을 하는데, 이미 그녀는 웰빙 음식으로 인한 행복감을 느낀 후라 그 상실감이 더욱 크기만 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그녀는 혼자 들판에 나가서 풀을 뜯는다. 그리고 이츠키가 남긴 레시피를 바탕으로 머위밥, 달래파스타, 고사리된장국 등 웰빙 음식을 혼자 만들어 먹게 되면서 자립심을 갖게 된다. 이렇듯 이 영화에서 웰빙 음식은 인물 사이의 교감과 생활을 위한 자립심을 의미하며, 나아가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이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특히 ‘계요등’이라는 식물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중요한 상징적 요소로 등장한다. 계요등은 만남→ 사랑→ 이별→ 재회→ 사랑 확인 등 두 사람의 관계에서 중요한 순간에 나타난다. 우선, 두 사람의 만남에서 잡초에 대한 이츠키의 사랑을 보여준다. 겨울 사야카가 집 앞에서 이츠키를 처음 만난 다음 날 안마당에서 이츠키가 사야카에게 ‘계요등(鷄尿藤)’의 의미에 대해 말해준다. 계요등은 손으로 비빌 때 나는 구린 냄새로 인해 ‘닭 오줌 냄새가 나는 덩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츠키는 ‘잡초라는 풀은 없으며 모든 풀에는 이름이 있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계요등은 사야카와 이츠키의 외로움과 사랑을 상징한다. 사야카는 부모의 빈자리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고 자신이 무능력하고 불행하다고 느끼지만, 이츠키를 만나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감을 찾게 된다. 반대로, 이츠키는 유명한 화도가 명인인 토라이 류메이라는 아버지의 자리가 너무 커서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지만, 아버지가 유예기간으로 준 반 년 동안 순수하고 맑은 사야카와 같이 살게 되면서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마지막으로, 계요등은 사야카와 이츠키의 이별과 재회를 의미한다. 8월 15일 여름 계요등에 꽃이 필 때 이츠키가 사야카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사랑을 나누고 다음날 떠난다. 반년 후 이듬해 2월 15일 겨울 계요등을 보며 사야카는 이츠키를 그리워한다. 1년 후 이듬해 여름 8월 15일에 사야카가 집 앞에서 계요등 꽃을 볼 때 이츠키가 다시 나타난다. 
 
5. 공간의 유기적 연결과 인물의 교감
 
<식물도감>은 미장센, 카메라 움직임, 쇼트 크기의 차이를 통해 공간의 유기적 연결과 인물의 교감을 표현하고 있다. 미장센의 경우, 공간을 사야카 집의 안마당, 들판, 사야카 집으로 나누면서, 세 개의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여주인공의 변화를 보여준다. 사야카 집의 안마당은 이츠키가 사야카에게 풀의 의미에 대해 깨닫게 해주는 곳이고, 들판은 이츠키가 사야카에게 풀 이름을 가르쳐주는 곳이고, 사야카의 집은 뜯어온 풀로 이츠키가 요리를 가르쳐 주는 곳이다. 그래서 사야카는 자신의 집 안에서 벗어나 안마당, 들판으로 나가 자신의 생활 영역을 확장시킴으로써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게 된다.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인물의 감정을 잔잔하게 담아내는 데 주력하며, 쇼트의 크기를 통해 자연과 인물의 교감을 표현한다. 익스트림롱숏이나 롱숏으로 초록색의 풀과 천연색의 꽃으로 뒤덮인 자연의 푸근함에 빠져 있는 인물을 담아내고, 미디엄숏으로 들판에서 자연의 푸근함과 풀의 향긋함에 빠지고 요리를 함께 만들고 먹는 인물을 보여주고, 클로즈업으로 서로간의 영향으로 변모하고 행복해하는 인물의 표정을 자세하게 표현한다. 이런 카메라 움직임과 쇼트의 크기의 차이와 더불어 잔잔한 사운드와 밝은 조명, 색채가 어우러져 전반적으로 따듯하고 행복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6. 웰빙 음식 혼밥과 자기애의 시작
 
얼마 전에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혼밥을 자폐와 연결시켜 말함으로써 혼밥 논쟁이 뜨겁게 일어났다. 최근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혼밥을 먹는 소비자를 위한 일품요리와 반조리식품의 매출이 상승하고 있고, 패스트푸드점에서도 배달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일인 가구가 많아지고 직장생활로 인해 시간이 쫓기게 되면서, 이러한 인스턴트 음식과 패스트푸드 소비가 늘고 있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쓴 신문 칼럼에서 ‘공장에서 나오는 음식이 아니라 산과 들과 바다에서 나오는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이자’는 내용을 읽고 공감한 적이 있다. 
 
<식물도감>은 베스트셀러 작가 아리카와 히로의 연애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일본에서 개봉 첫 주 흥행 1위를 할 만큼 호응이 좋았던 영화이다. 묘하고 이상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다룬 인기 시리즈물 <소름>의 연출가인 미키 코이치로 감독은 영화 <식물도감>에서는 이와는 정반대로 달달한 영상미를 보여주고 있다. <식물도감>은 남성을 줍는다는 행위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맺는 플롯을 통해, 청년 실업과 노숙자 문제, 젊은 세대의 동거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인스턴트 음식과 혼밥 문제에 대해서 웰빙 음식 혼밥이 자기애의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웰빙 음식을 통한 교감과 사랑을 상큼한 로맨스물로 풀어내고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식물도감-포토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영상진흥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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