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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왜 여성의 성(性)을 유린하는가?
전쟁은 왜 여성의 성(性)을 유린하는가?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9.27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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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10주년 기념 초청 연극 <전쟁터로서의 여성>
▲ <전쟁터로서의 여성> 공연 스틸컷. 사진제공=앙벨리 튀르쿠와즈 극단

“지옥, 그곳은 ‘왜’라는 질문이 없는 곳이다.”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삶아 남은 이탈리아의 화학자이자 작가인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말했다. 동족이 굴뚝의 검은 연기로 사라지는 일상을 겪으며 살아남은 자의 아픔을 시로 남겼던 그가 경험한 전쟁의 참상은, 보스니아를 할퀴고 간 내전이 남긴 흔적들과 다르지 않았다. 전쟁 중 유린당한 여성의 성도 마찬가지였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이 창간 10주년을 맞아 초청한 원어 연극 <전쟁터로서의 여성>(La femme comme de champ de bataille)은 전쟁에서 여성의 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어떻게 파괴되는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10월 18일부터 20일(18~19일 오후 7~10시, 20일 오후 2~5시, 오후 7~8시 40분)까지 총 4회 한국 공연을 예정하고 있는 이 연극의 대본은 실제 보스니아전을 취재했던 <라디오 프랑스> 국제부 기자 출신 마테이 비스니에치가 썼다. 동유럽 출신의 그가 민족주의적 광기가 여성을 전쟁의 노획물이자 성적 배설의 도구로 삼은 참상을 연극 <전쟁터로서의 여성>에 담은 것은 보스니아 내전 현장에서 기자로서 느낀 무력감을 살풀이해 배출해버려야 한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보스니아에서 싸우는 모든 전투원들을 뒤따라가 이 미친 살육을 중지하라고 설득할 수 없었기에.

▲ <전쟁터로서의 여성> 공연 스틸컷. 사진제공=앙벨리 튀르쿠와즈 극단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라도반 카라치, 라트코 믈라디치, 스레브레니차에서 수천 명의 이슬람교도들을 학살한 세르비아의 폭도들, 그리고 유럽의 20세기 말을 슬픔에 잠기게 한 모든 극단주의자들…. 마테이 비스니에치 작가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의 참혹함을 목도하면서 이렇게 질문한다. 어떤 메커니즘이 정상적인 사람을 야수나 난폭한 짐승으로 변하게 하는가? 우둔한 사람들을 더 우둔하게 만드는 자들은 누구인가? 소위 문명화됐다고 말하는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떻게 집단 전체를 정신 잃게 만들 수 있는가? 어떤 지리적,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음모에 의해서, 어떤 오해나 비겁함에 의해서 보스니아의 비극이 현실이 됐는가?

<전쟁터로서의 여성>의 무대를 들여다보자. 두 여배우가 극을 오롯이 이끌어 간다. 집단 강간을 당한 보스니아 여자 도라(루실아 세바스치아니 분)와 강간당한 피해자를 돕기 위해 온 아일랜드 출신의 미국 심리학자 케이트(마리-피에르 코타르 분)가 두 주인공. 그녀들 사이에 대화가 실종된 극 초반부는 일련의 모노드라마 혹은 진짜 귀머거리들의 대화로 칭할만하다. 침묵으로 벽을 쌓는 도라와 환자 관찰 차트를 읽는 케이트의 대화는 언어를 통한 둘의 소통이 불가능함을 그대로 노출한다.

무언증 걸린 도라의 발화(發話)가 의미하는 것

극의 중반부에 접어들며 결국 케이트는 무언증(無言症)의 도라가 말을 하게 만든다. 도라 역과 더불어 연출을 맡은 루실라 세바스치아니는 도라가 말을 한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도라가 케이트에게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그녀가 관객에게 비밀을 털어놓도록 하는 것이다. 말하기를 받아들인 도라가 관객과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말을 하고, 자신을 마비시켰던 것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신 밖, 그러니까 케이트와 관객들에게서 해독제를 찾는다는 것. 세바스치아니는 말한다. “이 시점에서 모든 정신분석적 행위는 소위 카타르시스라고 부르는 고전적인 정화 이론과 만나게 된다. 사람들은 말을 하면서, 자신의 밖에서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치유된다. 그들 자신이 스스로 하나의 대상이 되고, 또 타인을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주체로 상정함으로써, 자신들을 파괴한 정신적 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프쉬케의 심층을 파헤친 모놀로그를 선보였다고 평가받는 세바스치아니는 뼛속까지 더럽혀지고 상처 나고, 강간당한 한 여자를 한 여자를 표현해내기 위해 그녀가 겪었을 모든 폭력과 그녀가 느꼈을 원한의 심연을 들여다봤다. 냉정한 심리학자와 술주정뱅이 사이를 불안정하게 오가며 깨질 듯한 연약함을 표현한 마리-피에르 코타르의 연기 역시 세바스치아니의 연기와 훌륭하게 조응하며 합을 맞춘다.

여기에 관객들을 질식시킬 것 같은 분위기를 덧붙이는 것은, 다름 아닌 ‘출구 없는 독방’으로서의 미장센이다. 연극평론가 앙드레 보뎅은 <르 브뤼 뒤 오프 트리뷘>지에서 미장센을 두고 “배경은 전쟁터를 연상시키는 방 하나다. 덜컥거리는 두 개의 창문, 기울어진 거울 하나, 허름한 침대 하나, 낙담한 여자 연기자 둘, 얼이 빠진 듯한 분위기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말해준다”고 표현했다. 세바스치아니는 밝음과 어둠 사이를 오가는 이 불안하고 불편한 공간을 빛으로 빚어냈다. <뤼마니테>의 막심 르롤 역시 “빛은 내면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얼굴과 분리된 피부를 어루만지고 가볍게 스친다. 그것은 말로 표현되기 이전에 체험된다는 육체의 경험을 부각한다. 이 경험은 케이트가 (도라에게는) 강간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처럼 배경 장식에까지 연장돼 받침대 역할을 한다. 방구석의 후미진 곳에 있는 어슴푸레한 식탁보들, 각진 가구들에까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같은 독일 인상파 영화처럼 시공간을 재구성해 무시무시한 정신적 상처의 기억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고 짚어냈다. <전쟁터로서의 여성>의 미장센은 두 배우의 열연과 완벽히 결합해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인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전쟁이 파괴해버린 두 여자를 통해, 강간을 심리전 무기로 사용한 최초의 전쟁인 발칸 전쟁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강간은 적을 뿌리부터 죽이는 군사 전략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오자. 전쟁 중 여성의 성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극 중 심리학자로 분한 케이트가 첫 장면에서 말하는 대사는 이 연극의 제목 <전쟁터로서의 여성>과 직접 맞닿아 있다. “전쟁 중에 여성의 성은 전쟁터가 된다. 예전엔 기사의 단검이 적군의 가슴팍을 찔렀다면, 이 시대에는 병사들의 성기가 비명을 지르는 강간당한 여성의 성기 속을 찌른다.” 케이트의 정의가 직관적이라면, 보스니아전에서 유린당한 도라의 독백은 좀 더 직설적이면서도 서늘하다. 조금 길지만 그의 대사를 옮겨보자. “새로운 병사들에게 적의 여자를 강간하는 것은 승리의 기분을 만끽하는 것과 같다. 인종 전쟁 중 여성의 성은 저항을 의미한다. 병사들은 이 저항을 무력화시키려고 강간하는 것이다. 아내와 딸, 어머니, 누이들을 피난처로 보낸 후, 병사들은 적군의 아내와 딸, 어머니, 누이들의 뒤를 쫓는다. 그들은 철천지원수인 적과 직접 대면하려고 하지 않고 적들의 활력의 원천을 파괴해버리려고 한다. 적들의 활력의 원천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한때는 바로 그 적들의 이웃이었기 때문이다. 적들과 같은 작업장에서 일했고 집에도 초대를 받았었기에 적들의 모든 가족 구성원과 그 습관까지도 꿰뚫고 있다. 병사들은 쾌락을 위해서 강간하는 것이 아니다. 강간은 적을 뿌리부터 죽여 사기를 꺾어버리려는 일종의 군사 전략이다.”

마테이 비스니에치 작가가 그려낸 이 비극적인 연극은 너무 혐오스러워 때로는 감내하기 힘들 정도다. 여기서 작가는 오히려 되묻는다. 현실이란 것이 원래 혐오스럽지 않느냐고. 새로운 세계 대전도 가능할 만한 모든 요소를 지닌 이 전쟁이 점점 잊혀가는 시대, 평화로 가장된 시대에 작가는 ‘기억의 의무’로서 이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미디어와 정보가 외면한 여성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발언권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는 관객들에게 나지막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한다. “조심하라. 이 지상에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야만성은 언제든 그리고 어디서든 부활할 수 있다.”

이 연극은 아비뇽 페스티벌에 초대된 「예기치 않은 일」(2014)을 비롯해 「사형수의 최후」(2016)를 무대에 올린 프랑스 극단 앙벨리 튀르쿠와즈(L’Embellie Turquoise)의 세 번째 작품이다. 이 극을 알리기 위해 극단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을 비롯해 불가리아판, 헝가리판, 크로아티아판, 그리스판과 협력관계 속에 순방 공연에 나서 갈채를 받았고 10월 한국 초연을 앞두고 있다. 인권감시단체(Human Rights Watch), 기독교 인권 수호 비정부 기구(ACAT),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인권보호 리그, 생 지디오 커뮤니티 등과 같은 인권단체와 여성인권단체가 이 연극의 후원자다.

▲ <전쟁터로서의 여성> 공연 스틸컷. 사진제공=앙벨리 튀르쿠와즈 극단

이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은 연극이 하나의 극작품으로 그치지 않고 토론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두 배우의 격정적인 몸짓과 감정의 떨림이 관객의 뇌리를 뒤흔들고 난 후, 프랑스 역사학자인 뱅상 드레이와 페미니스트 운동가인 소아드 바바 아이샤가 토론을 이끈다. 민족청소를 자행한 스레브레니차 학살의 정치사회적 의미, 민족 간 전쟁과 국수주의, 전쟁으로 인한 공동체 파괴, 허무주의의 덫, 전쟁에서 여성의 존재성 등 광기의 전쟁이 짓밟고 간 발칸반도의 갈등을 연극의 소재로 정한 만큼, 토론의 주제는 시사적이고 민감하다.

발칸 지역을 배경으로 했지만, 이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은 특정 지역의 경계를 벗어나기에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유의미하게 다가올 예정이다. 극단대표이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경영이사인 브뤼노 롱바르는 한국 공연에 부쳐 이렇게 말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아메리카 침탈,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살육,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지배 그리고 최근의 반윤리적인 국제 전쟁들은 여성을 도륙하고, 강간하고, 노획물로 여긴다. 얼마나 비극적인가? 이 연극을 통해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에 고통을 당한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여성, 인권, 국제관계, 난민 등 다양한 문제를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로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전쟁에 참여했지만 소외된 200여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연극 <전쟁터로서의 여성>에서 비로소 발언권을 획득한 두 여성의 처절한 상처는 200명의 여성의 삶이 앞서 증언한 흔적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이 두 여성이 발언하는 기억이 오늘날 위장된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울림으로 다가올까. 10월 18, 19일 저녁 7시, 20일 오후 4시 저녁 7시, 대학로 눈빛극장. 예매: 티켓링크

윤상민 기자 cinemonde@ilemonde.com


박스기사

스레브레니차 학살

1992~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UN이 ‘안전 지역’으로 선포한 피난민 주거지인 스레브레니차를 세르비아군이 침공해 약 7,500명의 이슬람 교도들을 학살한 사건. 2000년 3월 나치 전범을 처벌한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유럽에서 처음으로 전범재판 법정에 회부됐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장군 라디슬라프 크르스티치는 UN이 ‘안전 지역’으로 정한 이슬람계 도시인 스레브레니차를 1995년 7월 세르비아군이 함락시킨 직후 지휘관에 임명돼 이슬람계를 대상으로 한 ‘인종청소작전’을 수행한 혐의를 받았다. 이와 관련해 2001년 8월 2일 UN 구유고전범법정(ICTY)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1995년 스레브레니차에서 여성과 노약자를 추방한 뒤 전쟁 참여가 가능한 연령대의 보스니아 이슬람계 남자 8,000여명을 집단학살했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1995년 스레브레니차 집단 학살사건에 관련된 당시 크르스티치(53)에게 집단학살죄를 적용, 징역 46년형을 선고했다. 유럽에서 전범에게 집단학살죄가 적용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처음이며, ICTY가 집단학살죄를 적용한 것 역시 처음이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에서는 세 개의 인구 집단, 즉 보스니아인으로 불리는 무슬림(이슬람교), 보스니아 내의 세르비아인(세르비아 정교)과 크로아티아인(가톨릭) 간에 격한 영역 다툼이 일었다. 세르비아와 가까운 보스니아 동부(스레브레니차, 사라예보 등)에서는 특히 세르비아인과 보스니아인 간의 갈등이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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