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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받아 휴가 가는 꿈
‘기본소득’ 받아 휴가 가는 꿈
  • 안영춘/편집장
  • 승인 2010.08.06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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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르 디플로’ 읽기]

프랑스의 바캉스는 ‘악명’ 높다. 한국인의 식습관을 문제 삼는 브리지트 바르도의 조국에서 이때만 되면 유기견이 넘쳐난다는 얘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도 때아닌 고충을 겪었다. ‘쟁이’의 오감에는 프랑스판이 미세하지만 내리 두 번 헐거웠다. 바캉스 탓이라고 짐작만 한다. 여기도 한여름이지만, 우리는 한국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 말고도 프랑스 콘텐츠의 구성을 세공하는 데까지 비지땀을 쏟아야 했다. 프랑스판과 한국판의 관계는 위상학적 시각을 보탤 때라야 온전하게 읽힐지 모른다. 그들이 부러웠다.

8월호 특집 ‘빈부의 위태로운 동거’는 프랑스 콘텐츠의 카테고리를 재구성한 것이다(1, 6~15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부자들 얘기와 몰도바 출신 파리의 가정부 스텔라 얘기, 프랑스 시골로 이농한 도시 빈민의 얘기, 남성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알제리 여성 노동자의 얘기는 애초 흩어져 있었다. 미드 <가십 걸> 얘기는 드라마에 대한 한담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한데 모이니 ‘메타 메시지’가 구성됐다. 부자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든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해서든, 가난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들의 필요는 일국 경제의 울타리를 훌쩍 넘어선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부자가 필요하지만, 갑과 을의 위상과 역학 관계는 공고하다. 종교는 그런 현실을 승인하는 이데올로기 장치로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한다. 바티칸 교황청은 ‘세계화’, ‘성장’, ‘발전’ 같은 이 시대 최고의 검색어로 회칙을 만들어 자본주의 천년왕국을 선포한다(3면). 그리고 ‘기부’라는 종교의 유구한 도덕률을 첨언함으로써 신학과 경제학을 통섭한다. 영원한 자본주의가 종교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할 테니 말이다. 다국적 자본이 가톨릭을 믿는 남미 나라에서 신의 어린 양들을 내쫓은 뒤 신의 대지를 파헤치고, 신의 영역으로 믿어왔던 생명을 레고처럼 조립하려고 하지만, 바티칸엔 십자군 원정 같은 오래된 모순어법의 현재진행형일 뿐이다(18~21면, 30~31면).

한국판 특집은 ‘소득보장제도의 새 패러다임’으로 꾸려봤다(24~26면). 아직 우리 귀에 선 ‘기본소득’은 정작 아주 오래된 미래의 꿈이자 현대자본주의의 실천적 모색이기도 하다. 미국 독립전쟁의 탁월한 선동가 토머스 페인이 주창했고, 현대 신자유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이 정교한 이론 작업을 했으며, 미국 알래스카주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르 디플로> 한국판은 기본소득의 이상적 풍경을 그려보고, 현실적 타당성도 검토해봤다. 결론은, 100년 전 사회보장제도 도입이 그랬듯 모두에게 필요한 제도라는 것과, 2010년 무상급식 도입이 그렇듯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의 바캉스를 부러워하며 8월호 제작에 매달린 우리가 지금 희망을 얘기하자면 굳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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