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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영화제 리뷰] <더 스퀘어>, 예술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이봄영화제 리뷰] <더 스퀘어>, 예술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 성진수(영화평론가)
  • 승인 2018.10.11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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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현대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인 크리스티안은 출근길에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데, 미술관에 도착해 지갑, 휴대폰, 커프스 버튼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소매치기 일당에게 당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티안은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기 위해 동료의 제안에 따라 도둑맞은 휴대폰 위치 추적을 통해 알아낸 아파트의 모든 집에 훔쳐간 물건을 되돌려놓으라는 협박편지를 넣는다. 크리스티안은 그 편지 덕분에 잃어버렸던 물건을 되찾지만 아파트의 주민 한 명으로부터 예상하지 못했던 반격을 받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소매치기 건에 신경 쓰는 동안 만들어진 미술관의 새 전시 ‘더 스퀘어’의 홍보 영상 때문에 크리스티안은 사퇴 압력까지 받는다.

<더 스퀘어>의 이야기는 승승장구하던 한 인물이 일상에 끼어든 작은 사건으로 인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지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것은 이미 다른 영화들에서 무수히 반복되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 다시 말해 이 영화를 다른 영화와 구분 짓는 것은 이 영화가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쳐진 미술관에서 시작해서 서민 아파트의 복도에서 끝난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크리스티안이 서 있는 공간의 다름을 통해 영화를 읽어 나가면 <더 스퀘어>는 주인공이 겪는 중심 사건과 주변의 사건들을 도구로 미술관의 높은 담벼락을 부수어가는 영화, 즉 예술과 현실의 경계 지우기라는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가 된다.

 이런 단순화에 대해 불만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이야기 외에도 사회 곳곳을 포착한 스냅사진 같은 장면들을 촘촘하게 배치하고 있는데, 그 스냅사진들은 주변에 대한 무감각, 상품에 의한 삶의 획일화, 자본주의 계급 사회, 난민, 편견, 불관용, 그리고 위선과 폭력 등 영화의 배경인 유럽(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이 직면한 문제를 관객이 직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피할 수 없는 체험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술과 현실의 관계, 이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예술에 대한 성찰에 보다 집중하고자 한다. 이 주제는 인물의 직업 설정이라는 표피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영화 전체를 관통하면서 반복되고 있는 중요한 모티프이며, 앞서 설명한 현실 스냅사진의 배치와도 관계되어 있다.

현대 미술관이 배경인 만큼 이 영화에는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등장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면서 영화 속 미술관에서 소개하는 새 작품 ‘더 스퀘어’, 여러 돌무더기 전시물인 ‘YOU HAVE NOTHING’, 신뢰와 불신으로 나뉜 문을 이용한 전시물 등 소개되는데, 가장 파격적이고 문제적인 작품은 올레그 고로진이라는 이름의 극중 예술가가 펼치는 퍼포먼스이다. 이 퍼포먼스는 후원자들과 저명한 예술가들이 모였음직한 미술관의 만찬 때 행해진다. 이 퍼포먼스에서 올레그는 사냥감을 찾는 야생 동물을 연기하며 만찬장을 돌아다니는데, 사냥감이 되지 않으려면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거나 군중 속에 숨어서 다른 사람이 사냥감이 되기를 기다여야 한다. 만찬 참석자들은 야생 동물처럼 움직이며 파티 참석자들을 툭툭 건드리는 이 퍼포먼스를 처음에는 재밌고 흥미롭게 즐긴다. 하지만 올레그는 진짜 야생 동물이 된 듯 사냥감 찾기를 멈추지 않고 파티 참석자들은 그의 사냥감이 되지 않기 위해 미동도 없이 숨죽이고 긴장하면서, 이 퍼포먼스는 진지한 현실이 되어버리고 결국 한 여자가 실제 사냥감처럼 머리채를 붙들려 끌려가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도와달라는 여자의 비명에도 움직이지 않던 사람들은 한 남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올레그를 여자에게서 떼어놓자 그제야 달려들어 올레그를 중지시키는데 동참한다.

인간의 야생적인 면모, 혹은 정글 같은 현대 사회를 성찰하는 것이 목적으로 보이는 이 예술행위는 아이러니 한 면을 갖고 있다. 만약 이 퍼포먼스의 규칙에 따라 모든 사람이 진지하게 동참한다면 반드시 한 명은 사냥감이 되어 그 여자처럼 실제적인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 만약 사냥감, 즉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이 퍼포먼스를 중지시키는 현실적인 개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퍼포먼스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예술 행위가 완성될 수는 있는 것인가?

또 하나의 중요한 작품 ‘더 스퀘어’를 보자. 이 작품은 ‘신뢰와 배려의 성역으로 이 안에서는 모두 동등한 권리와 의미가 있다’는 설명을 달고 있다. 이기심으로 가득한 정글 같은 현실 사회를 비판하고 선의와 배려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듯 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미술관에서 만든(혹은 승인한)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홍보 영상은 이 의미 있는 작품 또한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린다. 이처럼 영화는 영화 속 예술 작품들을 균열내고 무의미화시켜 나가는데 이는 관념적인 세계에 갇혀 있는 예술 행위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드러내는데 복무한다. 영화 속에서 관념적인 예술이 무너진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크리스티안이 경험하는 미술관 담벼락 밖의 현실 세계다.

 이 글은 지금 이 영화가 예술을 부정하거나 예술의 무가치함을 설파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혹은 모든 예술이 어떤 관념적이고 예술적인 차원의 변형 없이 현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폭로하는 일에 복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 세계로부터 차단된 예술의 영역, 오늘날 예술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어떤 영역이 가지는 한계를 <더 스퀘어>가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 영화가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그 예술이라는 영역의 한계에 대해 성찰하는 영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 곳곳에 과도하다 싶을 만큼 배치된 현실의 스냅사진들은 바로 그런 예술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영화에 대한 이러한 해석이 결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을 축소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고립된 예술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현실을 비추고 성찰하고자 하는 예술의 중요한 가치로 되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 이봄영화제
상영 : 2018년 10월 16일 (화) 오후 7시 영화 상영 및 해설
장소 : 이봄씨어터 (신사역 가로수길)
문의 : 070-8233-4321

글: 성진수
영화평론가, 제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신인평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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