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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집의 시간들>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집의 시간들>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18.10.15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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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시간들>은 라야 감독의 집을 찍는 ‘가정방문’ 프로젝트와 사라져가는 둔촌주공아파트를 새롭게 기록한 이인규 편집장의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가 만나 탄생한 특별한 다큐멘터리다. 재건축을 앞둔 둔촌주공아파트에서 살았던 주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기록한 이 영화는 조용히 흘러가는 풍경과 함께 실제 주민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담아내 감각적이고 완성도 높은 사진집을 펼쳐보는 듯한 인상을 선물한다.

집의 기억

우리의 삶은 모두 내가 움직여 만들어 낸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중심에는 집이 있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집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쳇바퀴를 돈다. 비록 한국 사회의 요동치는 집값이 우리에게 집이란 특히 아파트란 그저 끝없이 오르는 자산 가치로 여기도록 각인시켜왔지만, 영화는 집에 대해 죽어 가던 감각 하나를 발견하게 한다. 집이란 금전 가치로 환산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삶의 모든 결들이 베여있는 공간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왜 잊고 살았을까하는 신선한 놀람도 준다.

 

영화 <집의 시간들>은 공간의 기억들을 불러일으키는 13명의 인터뷰이의 목소리와 흔적들로 구성한다. 집은 그곳에 거주했던 사람의 습관과 취향, 종교, 형편 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영화는 집을 그냥 환금 가치로만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추억과 우리 가정의 문화와 역사가 함께 하는 공간으로 인식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아파트가 고향인 80년대 청년들

70년대 후반 정부의 도시계획에 의해 전략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아파트는 지금까지 한국 중산층 주거 생활의 중심으로 공동체적 삶과 문화를 해체하거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근대적 삶의 형식을 구축해 왔다. 이렇게 구축된 아파트가 이제는 낡고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재개발되고 있다. 재개발의 의미는 단순히 공간만 허물어뜨리는 작업이 아니다. 재개발은 공간 속에 담겼던 개인의 역사와 공동의 기억들을 송두리째 뽑아내는 작업이다.

 

여태껏 아파트라는 공간은 개성이 없다, 혹은 각자 삶의 특징을 드러내 주지 못한다고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영화 <집의 시간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 집 하나, 같은 집이 없다. 그 집들마다 개인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아파트는 동일한 형태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과 그 사람이 쓰는 시간에 따라 각각의 집들은 완전히 다른 변화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게 된다. 누군가에겐 아파트가 고향이다. 개인의 역사가 담긴 공간이자 누군가의 고향인 아파트가 동일한 값으로 매겨지는 건 기억의 동물인 사람에겐 너무 밑지는 계산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야 감독은 “재건축을 앞둔 집에 대해 실제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부동산 소식과 집에 대한 애정은 자주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추억이 많음에도 재건축이 잘 되길 바랄 수도 있고 녹물 때문에 지긋지긋하면서도 아파트 녹지를 사랑할 수도 있다. 모든 집이 그러하듯이 그곳엔 다양한 형태의 시간과 애정이 있다. 곧 사라지게 될 공간이 주민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하며, 바라본다.”라는 말처럼 한 집 한 집 담담하게 담는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사실 가족만을 위해 더 유용하게 만들어진 공간 형태이다. 이웃을 향해 열려있지 않은 공간이다. 영화에서도 이웃과 함께 목소리를 섞는 장면은 없다. 그저 창을 통해 자연의 빛과 바람과 풍광을 받아들이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오래된 아파트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독한 시멘트 속에서 울창한 수풀을 이룬 수많은 메타세콰이어, 벚꽃, 오솔길, 일일이 호명하기도 버거운 수많은 존재들이 아무런 존재의 의미도 없었다는 듯 사라지게 될 것으로 기록한다. 자연은 자신의 시간대로 자신을 천천히 가꾸고 있는데, 사람이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갑자기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 사라질 것들을 그리워하며 ‘A Long Farewell’(오랜 이별)을 준비한다.

둔촌주공아파트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공동 기획자인 이인규 편집장은 ‘고향이 어디세요?’로 시작되는 질문을 통해 아파트를 누군가의 고향이자 보금자리로 바라보며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 이야기, 그리고 동네의 풍경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재건축으로 사라질 고향의 마지막 시간을 배웅한다.

 

‘개인의 역사’와 집이 모여 동네를 이룬 ‘공동체의 기억’을 한꺼번에 모두 덮어버리고도 아쉬워하지 않는 인간의 편리 추구와 계산법이 우리를 아파트 한 채 값보다 더 무가치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건 아닐까. 이 영화를 통해 집의 의미에 대해, 집의 시간들에 대해, 집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예술의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글: 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이자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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