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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4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문명 대전환기…인문학의 미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4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문명 대전환기…인문학의 미래는?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11.02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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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석학 모여 대토론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욱, 이하 ‘한중연’)이 2일 개원 40주년 기념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한중연 대강당에서 열리는 이번 학술회의는 ‘문명 대전환기의 인문학 구상’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중연 개원 40주년을 맞이하여 인문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들을 초대해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는 현 상황에서 21세기 인류 문명이 겪고 있는 새로운 변화의 흐름이 무엇인지를 진단하는 자리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학술회의의 전체 주제가 “문명 대전환기의 인문학 구상”(Envisioning Humanities in the Era of a ‘Great Transformation of Civilization’)으로 설정된 이유이기도 하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비판적 지식인이며 현재는 아시아 인권문제 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하와이 대학교의 백태웅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3명의 세계적 석학이 발제자로 나섰다. 사회적 폭력과 고통의 문제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은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비나 다스(Veena Das) 교수, 라틴아메리카의 시각에서 문화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에콰도르 시몬 볼리바르 안디나 대학교의 캐서린 월시(Catherine Walsh) 교수, 독일의 정치학자로서 비교정치 및 민주주의 연구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베를린 사회과학 연구소(WZB)의 볼프강 메르켈(Wolfgang Merkel) 교수가 참석했다.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명예 회원이자 존스 홉킨스 대학교 인류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비나 다스(Veena Das) 교수가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섰다. 그녀는 갈등으로 얼룩진 20세기를 뒤로 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방안에 관하여 발언했다. 문명/야만의 이분법, 여성억압, 국가나 정부가 자행하는 제도적 폭력 등 인류가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서 두루 언급한 그녀는, 특히 200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존 맥스웰 쿳시의 문학 작품에 대한 분석으로 눈길을 끌었다.

두 소설을 통해 그녀는 “사회적, 정치적 현실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기”의 가능성을 보여줬으며, 현대인이 경험하는 잠재적이고 혼란스러운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연사로 나선 캐서린 월시(Catherine Walsh) 교수는 21세기 첫 10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에서 활동한 중요한 비판적 사유 집단으로 여러 세대에 걸친 다학문적 지식인 네트워크인 근대성/식민성 그룹(Grupo modernidad/colonialidad)의 일원이다. 현재 그녀는 이러한 운동의 일환으로 시몬 볼리바르 안디나 대학교에서 문화연구 박사과정을 주도하며 활발한 학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번 발표에서는 그녀는 에콰도르를 중심으로 인문학이 과학적 지식과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어떻게 위기를 맞고 있으며, 시장에 종속된 고등교육 기구와 대학이 사회적 필요에 부응한다는 이름으로 실용과학과 학문에 몰입한 채, 비판적 사유를 교육에서 배제하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인간성에 반하는 반환경적인 연구비를 받는 등 학문공동체는 사회적 현실과 거리두기를 ‘생존방법’이라고 여기는 인문사회과학의 ‘탈인간화’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합리적 휴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제국과 자본 그리고 서구 합리성을 보편화함으로써 탈인간화가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연사로 나선 볼프강 메르켈(Wolfgang Merkel) 교수는 독일 베를린 사회과학 센터(WZB)의 ‘민주주의와 민주화’ 연구 프로그램 소장이며,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기본가치위원회에도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유럽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연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특히 저서 <사회민주주의의 집권>(2008)은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으로 번역됐다.

볼프강 메르켈 교수는 발표를 통해 지구화 시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과 위기를 가져오는 요소들을 제시하고, 이러한 도전들 속에서 향후 민주주의가 진전될 방향에 대해 제안했다. 메르켈 교수는 21세기 민주주의에 도전하는 요인들로서 △시장 지배의 지구화(globalization)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이질성 그리고 문화적 양극화에 기반 한 우익 포퓰리즘(populism)을 지적했다.

특히 그는 “선거를 통해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어려워지면서 디지털민주주의와 같은 비의회적 정치참여가 늘어나는 동시에, 비대칭적인 정치참여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강조하며 “이러한 정치참여의 비대칭성의 대표적인 사례로 사회적 하층계급의 투표불참, 포괄정당(catch-all party)의 쇠퇴, 포퓰리즘의 강화 그리고 노동계급 조직화의 어려움에 따른 노동조합의 약화 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메르켈 교수는 “이러한 도전들은 결국 이후 민주주의에 있어서 정당성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구화 과정에서 국가와 시장 간의 불균형성이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분절되고 양극화된 그리고 변동이 잦은 정당체계의 불안정성, 더 나아가 대의제에 대한 대안의 부재, 민주주의-혼종적 레짐 그리고 독재가 공존하는 현상이 이후 예측되는 경향인 동시에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의 징후일 것이라고 진단이다.

토론자로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들뢰즈, 푸코, 데리다 등 프랑스 현대사상을 연구하는 ‘행동파 철학자’인 일본 도쿄공업대학의 고쿠분 고이치로 교수,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 문제 연구로 명성이 높은 대표적인 비판사회학자 신광영 중앙대 교수가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기후변화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지만,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진전은 인류의 생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에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에서는 냉전의 마지막 유산이 종식되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학술대회는 인류 문명의 새로운 변화상을 인문학적으로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 의의를 가졌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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