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안치용의 프롬나드] 첫눈에 대하여
[안치용의 프롬나드] 첫눈에 대하여
  • 안치용 / 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18.11.24 13: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환한 꿈을 꾸었나 보다. 여명(黎明) 중에 창밖이 하얗다. 밤사이 세상을 눈으로 덮어버리는 사이에 나는 이불속에 파묻혀 주중에 쌓인 몸속 풍진을 날리고 날리다, 귓가에 닿은 개 코의 킁킁 소리에 잠시 눈을 뜨고 팔을 휘저어 녀석을 쫓아버렸다.

 

침대 다리를 높여서, 개의 다리보다 높여서, 녀석의 코가 내 머리께 닿지 못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비몽사몽 중에 다짐한다. 어쩌다 그러긴 하지만 그러면 녀석이 침대에 뛰어오르지도 못할 것이고, 그러면 녀석이 내 다리 위에 걸터앉지 못할 것이고, 50여 년 1초도 쉬지 않고 피를 돌린 가여운 혈관을 압박하는 일이 없어지겠다. 몇 차례 개들이 오고 가고, 환해져야 할 시간에 방안이 어쩐지 어둑어둑하여 할 수 없이 눈을 뜨고 만다.

 

창밖은 환하다. 오랜만에 보는 다른 색감이다. 필사적으로 덮고 있던 이불을 내려놓고 침대 밑으로 발을 내딛는다. 발이 시리다. 창밖을 본다. 맞은편 가옥의 지붕에 눈이 가득하다. 그 아래로 맨가지만 남은 나무에 간신히 붙어 있는 홍시 몇 개가 가볍게 흔들거린다.

 

첫눈.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첫눈이 온다고 마음이 설렐까, 이룰 첫사랑이나 찾아야 할 첫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건만, 저 홍시가 너무 붉어 뭔지 가슴이 아릿하다. 발이 시려, 살짝 추운 기운이 들어, 응급조치를 취하며 광화문의 세종대왕이 눈 맞은 사진 같은 날씨 뉴스를 읽는다. 10cm에 육박하는 확고한 첫눈 내린 토요일, 새삼 이 나이에 굴과 시금치를 넣은 떡국을 끓여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