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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18.12.03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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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사는 16세 소녀 왕모의 출가 이야기

2018년 12월 12일 개봉 예정

1. 왕모의 세 가지 질문

김한석 감독의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한국, 2018)는 히말라야 4300m 고산지대에 사는 16세 소녀 왕모의 출가 이야기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2017년 9월 5일부터 15일까지 총 4부작으로 KBS에서 방영한 <순례>를 극장에 맞게 80분으로 재편집한 것이다. 2017 코리아 UHD 어워드 대상과 2019 휴스턴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할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히말라야 집에서의 생활, 출가에 대한 결심, 출가 이후의 순례길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궁금한 점은 바로 왕모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 이유이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 왕모가 자신에게 던지는 세 가지 질문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사는 걸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2.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사는 걸까?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에서는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만년설이 덮인 히말라야 산, 깨끗한 시내물이 흘러가는 녹색의 초원, 무수히 박힌 별들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의 은하수, 흰 눈 위에 찍힌 동물 발자국 등. 그리고 자연, 동물과 벗 삼아 살아가는 색다른 생활 모습을 보여준다. 가파른 산위에서 양을 치는 왕모, 열매를 따먹는 어린 동생들, 보리를 수확하는 부모, 풀을 뜯어먹는 양들, 그 양을 호시탐탐 노리는 눈표범, 왕모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머밋 등. 영화를 보는 내내 현실생활에서 항상 보는 자동차, 버스, 오토바이 등 운송수단을 거의 보지 못한다. 이렇듯 영화를 보는 동안 청정지역의 아름다운 색채와 한국의 시골과도 다른 생활 모습에 눈을 빼앗기게 된다.

 

하지만 왕모 가족의 생활로 좀더 들어가 보면 자급자족의 고난한 삶이 펼쳐진다. 왕모의 가족은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먹거리로 인해 걱정한다. 부모는 양을 키우고 보리를 수확하면서 가족이 많아 먹을 것이 얼마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엄마는 39살임에도 불구하고 고생스러운 삶으로 인해 얼굴에 깊은 주름이 새겨져 50대처럼 보인다.

첫째인 16세 왕모는 어린 시절 도시에 가서 가정부를 하였는데 학교에 보내주지 않아, 친구들은 모두 고등학생인데 혼자만 중학생이다. 그리고 낮에는 부모를 대신하여 동생들을 돌보고, 밤에는 눈표범으로부터 양들을 지키기 위해 잠을 자지 못한다. 둘째인 15세 릭진은 밥을 잘 먹고 교육을 받기 위해서 부모가 출가를 시켜 스님이 된다. 셋째인 14세 파드마는 미래에 좋은 직장을 확보하기 위해 호텔에서 무보수로 일을 한다. 집에서 음식을 먹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한국의 수제비같은 츄때기가 특별한 날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으로 등장한다.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는 왕모의 히말라야 집에서의 생활을 그려나감에 있어서 스타일적으로 두 가지 대비를 보여준다. 우선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펼쳐 보이는 익스트림롱숏과 생계의 어려움을 드러내는 클로즈업·내레이션이 대비를 이룬다. 엄마의 깊게 패인 주름, 파드마의 찢어지고 닳아버린 신발 밑바닥을 클로즈업으로 강조한다.

다음으로 히말라야 집에서의 소녀 왕모와 수행을 하는 스님 왕모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며 대비시킨다. 감독의 설명처럼 왕모는 입을 줄이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교육을 더 받기 위해서, 즉 행복하게 살기 위해 출가를 결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상에서는 동생들을 돌보고 가사일을 돕고 5km를 걸어 통학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16세 소녀 왕모의 행복한 모습과 출가한 이후 웃음을 잃어버린 스님 왕모의 모습을 교차편집으로 대비시킨다. 이러한 감독의 대비적인 연출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사는 걸까?


3.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에서 왕모가 출가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계와 교육을 위해서 일찌감치 출가한 남동생의 영향인가? 가장 친한 친구인 까르장의 출가가 미친 영향인가? 까르장과 함께 간 불교서원 축제의 영향인가? 아니면 엄마의 생각처럼 가난 때문인가? 그 이유에 대해서 왕모가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까르장이 출가하는 장면과 그로 인해 왕모가 고민하는 장면을 부각시켜 다루고 있다.

그리고 불교사원 헤미스 곤파의 여름축제에 가기 위해 왕모와 까르장이 택시를 타는 장면을 엔딩으로 보여주며 끝을 맺고 있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가족에 대한 왕모의 사랑과 그리움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왕모와 까르장이 불교사원 축제에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전체 흐름에서 다소 벗어난다. 이 장면이 엔딩이 되는 이유는 왕모의 행복했던 소녀 시절의 여행과 이후 출가해서 스님이 되는 여정을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에서 스크랩북과 승려복이 이미지 면에서 대비를 이룬다. 왕모는 친구들과 연예인 스크랩북을 들여다보고,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고, 조그마한 돌멩이를 주워 공기놀이를 한다. 이러한 모습들은 우리에게는 예전 시기 소녀들의 익숙한 모습이지만, 이 영화의 전체 흐름에서는 낯설게 배치된다. 신문의 연예인 사진을 오려 스크랩북을 열심히 만들던 까르장이 갑자기 왕모에게 출가한다는 결심을 말하면서 이러한 소녀들의 즐거운 놀이는 중단된다.

한편, 왕모가 출가하겠다고 밝히자, 엄마는 반대하고 동생 쵸장은 집을 나가버린다. 가족은 쵸장을 찾아 헤매다가 송아지 우리에서 발견하게 된다. 밤에 옆에서 자는 누나를 바라보는 쵸장의 눈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왕모가 아버지와 외출하여 함께 사온 승려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눈을 클로즈업으로 들여다본다. 이때 자식들을 품 안에 데리고 있지 못하는 자신이 밉다는 엄마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이윽고 삭발식에서 잘려나가는 왕모의 머리카락, 합장한 채 이를 지켜보는 아버지, 승려복을 입고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왕모를 차분하게 지켜본다.

연예인 스크랩북은 승려의 길을 떠나면서 자신의 즐거운 소녀 시절을 마감하는 상징물로 나타난다. 까르장이 출가하면서 왕모에게 스크랩북을 건네주고, 왕모도 출가하면서 다른 친구에게 까르장이 준 스크랩북을 건네준다. 과연 이 스크랩북은 몇 명이나 되는 소녀들의 손을 거쳐 가게 될까? 연예인 스크랩북을 보며 웃는 소녀 왕모와 스님이 되어 눈 속에서 고행을 하는 스님 왕모를 계속 연결시켜 보여준다. 과거에 대한 회상과 현재에 대한 영상을 빈번하게 연결함으로써 왕모가 히말라야 집에 있는지 수행의 여정에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게 만든다. 왕모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4.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에서 왕모는 다른 스님들과 함께 수행을 떠난다. ‘패트 야트라’(발의 여정)는 모든 중생을 위해서 길을 걸으며 수행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도반 스님의 말처럼, 패트 야트라 수행에서 필요한 세 가지는 인내, 인내, 인내이다. 험난한 산을 넘으며 호흡 곤란으로 쓰러지는 스님들, 밧줄에 매달린 장치에 앉아 위태롭게 강을 가로지는 스님들, 눈으로 뒤덮인 들판에 엎드려 절을 하는 스님들, 다리가 마비되어 걷지 못해 부축을 받아 쩔뚝거리며 걷는 스님들. 왕모는 순례길이 양치기 할 때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히말라야 집에서는 거의 먹는 모습이 거의 나오지 않는 것에 비해서, 승려 생활에서는 먹는 모습이 계속해서 나온다. 왕모는 이제 더 이상 생계 문제로 힘들지는 않다. 하지만 스님 왕모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진다. 스님 왕모는 딱 두 번 웃는다. 첫 번째로 왕모는 수행 중 츄때기를 먹으면서, 엄마가 해주던 츄때기의 냄새와 소리를 떠올리며 ‘나는 이 순간 집에 와있다.’라고 혼잣말을 하며 미소를 짓는다. 두 번째로 왕모는 다른 스님들과 눈싸움을 하면서 동생들과 하던 눈싸움을 떠올리며 활짝 웃는다.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에서 교차편집은 행복한 과거와 힘겨운 현재를 대비시킨다. 산을 바라보는 소녀 왕모의 뒷모습과 산을 바라보는 스님 왕모의 뒷모습의 교차편집은 똑같은 구도와 미장센을 통해 왕모의 상황 변화를 강조한다. 현재 츄때기를 먹으며 흡족해하는 왕모의 미소와 과거 츄때기에 대한 소중한 기억에 대한 내레이션을 결합시키고, 현재 눈싸움을 하는 왕모의 웃는 모습과 과거 눈싸움을 하는 동생들의 모습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스님 왕모는가족과의 과거를 회상할 때 외에는 행복한 미소를 짓지 않는다.

 

이 영화는 내가 본 다큐멘터리 영화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중촬영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공중촬영 장면으로 인한 독특한 영상이 세 차례 나온다. 첫째, 잔스카르 강을 건너는 장면이다. 투명한 흰색의 얼음이 흘러내려가는 푸르스름한 강과 그것을 횡단하는 스님의 붉은 옷이 대조를 이루면서 차갑고 섬뜩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둘째, 왕모가 동생들을 안는 장면이다. 왕모가 출가하러 떠나면서 두 남동생을 껴안는 공중촬영 장면에서 주황색 옷을 입은 왕모를 중심으로 똑같은 파란색 털모자를 쓰고 있는 남동생의 머리가 좌우에 배치한다. 이렇게 완벽한 대칭의 도형이 결합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왕모 형제간의 단단한 유대를 느끼게 한다. 셋째, 얼어붙은 강 위를 걷는 장면이다.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후 다시 사찰로 돌아가는 왕모가 얼어붙은 강 위를 걷는 모습에서 속이 들여다보이는 강바닥의 다양하고 독특한 색채와 왕모의 붉은 옷이 대비를 이룬다.

카메라는 익스트림클로즈업과 익스트림롱숏을 오고가며 극과 극의 대비를 보여준다. 패트 야트라를 행하며 호흡 곤란으로 쓰러지는 스님들을 바라보는 왕모의 지친 눈, 잔인한 벌판을 온 몸으로 부딪히며 걷는 수행으로 차가운 눈 위에 엎드린 왕모의 얼어붙은 눈, 왕모를 생각하며 검은 눈동자에 남겨진 두 아이를 담고 있는 엄마의 물기어린 눈을 익스트림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또한 눈으로 뒤덮인 길을 일렬로 걸어가는 스님들의 행렬, 가파른 절벽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걷는 스님들의 행렬, 차가운 눈 위에 엎드려 절을 하며 나아가는 스님들의 행렬에 대한 익스트림롱숏을 통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패트 야트라의 힘겨운 수행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왕모에게 스크랩북을 건네고 떠나가는 까르장의 뒷모습, 할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사찰로 돌아가는 왕모의 뒷모습을 익스트림롱숏으로 보여줌으로써 인물의 왜소한 몸과 힘겨운 삶의 무게를 느끼게 만든다. 인물들은 계속해서 걸어간다. 이렇게 영화는 끊임없이 걸어가는 인물과 그 인물의 지친 모습을 익스트림롱숏과 익스트림클로즈업의 대비로 그려낸다. 왕모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5. 다시 태어나서 행복하기를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는 아름다운 영상으로 인해 오히려 처연한 슬픔을 느끼게 만든다. 이 영화는 스타일적으로 완벽한 영상미를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이렇게 완벽한 영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놀라울 따름이다. 미리 연출된 장면처럼 모든 카메라 움직임, 미장센, 구도, 조명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은 인물들의 고달픈 삶의 근원이 된다는 점에서 풍정이 된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왕모는 과거 아픈 할머니에게 건넨 말, 즉 “저 어디에도 안 가요.”라는 자신의 말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왕모는 “다시 태어나서 행복하기를”이라는 기도를 올린다. 어린 16살 소녀이자 승려인 왕모의 얼굴에서는 현실의 고달픔이 느껴진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사는 걸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 영화는 행복한 소녀 시절과 힘겨운 순례길을 대비시킴으로써 왕모가 출가하게 된 이유에 대해 더욱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래서 앞에서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우리는 왕모처럼 계속해서 질문을 되뇌게 된다.


사진 출처: 네이버 - 영화 -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 - 포토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영상진흥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 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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