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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교육은 나쁘게 닮아간다
세계 교육은 나쁘게 닮아간다
  • 안영춘/편집장
  • 승인 2010.10.0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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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르 디플로' 읽기]

‘교육 개혁’이 정치 선거 때마다 모든 후보의 핵심 공약이라는 사실은, ‘어떤 교육이어야 하는가’가 우리에게 선행하는 질문임을 웅변한다. 정당마다 진단도 처방도 제각각이지만, 국민국가 근대 교육의 테두리를 완전히 넘어서지는 않는다. 국가가 요구하는 국민을 길러내야 하는 것이다. 지금 국가는 어떤 국민을 원하는가. 국가가 자본에 포섭됐다면 자본이 요구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게 곧 학교의 사명이다. 실제로 세계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학교는 그런 사명을 강하게 요구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아륀지’와 ‘일제고사’로 상징되는 효율성의 잣대를 한국 교육에 들이댄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모범 사례로 언급하고, 한국계 미셸 리가 워싱턴 DC 교육감에 올라 효율성의 잣대에 칼날을 세워 휘두르는 것을 두고, 이 정권은 우리의 오랜 대미 콤플렉스를 승화하는 개가로까지 삼고 싶어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들려오는 얘기는 사뭇 다르다. ‘차터스쿨’은 공교육의 뿌리를 뒤흔든다는 면에서는 한국 자사고와 닮았지만, 교육 효과 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하고 있다.

1991년 조지 부시 1세 때 교육부 차관보를 지내며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을 이끌었던 교육학자는 오늘 “성과주의가 미국 교육을 망쳤다”고 참회록을 쓴다(10월호 특집). 하지만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아이들을 고급 사립학교에 보냈던 오바마의 귀에는 아직 그 탄식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공교육은 수렁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줄 세우기’는 독자적인 신화 체계를 구축했다. 교사들은 경쟁에 내몰리며 과로에 시달리지만, 정작 학생들은 교사를 만난 시간이 줄어든다. 부자 부모는 좋은 학군을 찾아다니며 집값을 끌어올리고, 가난한 부모는 학교가 가정으로 아웃소싱한 교육의 일부를 떠맡는다.

미국 교육학자의 참회는 어차피 국가의 관심 밖이다. 체제는 모든 학생이 똑똑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는 체계적으로 확산되는 저숙련·저임금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교육 차별을 받는 이들에게도 보상은 필요하다. 공정성과 평등의 판타지가 그것이다. 한국에서는 고시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불야성을 이루는 고시촌은 약자의 욕망이 머무는 처소다. 물론, 현실은 남루하다. 고시촌은 용을 길러내는 개천이 더는 아니다. 고시는 기득권층의 대물림을 구조화한다. 한국판은 조선시대 과거 제도를 통해 오늘의 고시 제도를 들여다보고, 이명박 정부에 의해 호명되는 ‘서민’의 정치적 맥락을 분석했다(26면).

대통령이 양배추 반찬으로 서민의 시름을 달래는 사이에도 배춧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그런데도 왜 올해 배추 농사를 지은 농민들이 돈방석에 앉았다는 ‘미담’은 없을까. 채솟값이 폭락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농민은 있는데, 왜 자살하는 중간상인은 없을까. 그리고 왜 채솟값은 해마다 널을 뛰는 것일까. 중간상인이 아니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채솟값의 숨은 비밀을 파헤쳤다. 정부는 채솟값을 안정시키기는커녕 불안을 방조하고 있다. 대통령의 양배추는 ‘마사지’였다(30~31면).

프랑스판 발행인 세르주 알리미는 1년 전과 똑같은 제목(‘우리의 투쟁’)의 칼럼을 써서, 독자들의 기부금과 구독 권유 활동 덕에 경영이 정상화됐음을 알려왔다. 한국판은 손익 균형을 맞춰가고 있고, 그것이 다 프랑스 독자만큼이나 열렬한 한국 독자들의 연대 덕분임을 말씀드린다. 10월호는 한국판 창간 2주년호다.

글•안영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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