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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자유’ 특권 교육의 다른 이름
‘선택의 자유’ 특권 교육의 다른 이름
  • 다이앤 래비치
  • 승인 2010.10.08 16: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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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écial] 시장으로 간 교육

오랫동안 엘리트층의 전유물이던 중등교육이 서구 국가에서 대중화한 것은 1945년 이후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학위 수준이 높아졌으며 계열별·학교별, 사립과 공립 간 새로운 위계질서가 등장하면서 학업 경쟁이 치열해졌다. 미국 등 일부 국가는 불평등을 악화할 위험이 있는데도 학부모의 ‘자유로운 선택’을 장려한다(하단 기사). 일본에서는 중등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며(에밀리 귀요네, 15면),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교사의 지위를 뒤흔든다(질 발바스트르, 14면). 오늘날 중등교육의 역할을 두고 토론이 한창이다. 유럽집행위원회가 제안하듯이 중등교육이 비전문 직종에 종사할 사회 초년생들의 기본적 능력을 갖춰줘야 하는지(니코 이르트, 13면), 혹은 사회·문화적 불평등 축소를 위한 구심점이 돼야 하는지(상드린 가르시아, 12면) 등이 주요 쟁점이다.

▲ <동요>, 1962-코르네이유
나는 라마 알렉산더 교육부 장관 시절의 차관보로 1991년 조지 부시 1세 행정부에 입각했을 때만 해도 교육에서 자유로운 ‘선택’이나 교사의 책임감 고취 같은 문제에 확고한 견해가 없었다. 그러나 2년 후 자리에서 물러날 즈음에는 ‘성과보상 원칙’을 지지하게 됐다. 학생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해당 교사는 다른 교사보다 더 많은 대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나는 학력평가시험의 전면적 실시를 지지했다. 이는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학교가 어느 곳인지를 명확히 파악하는 데 유용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이런 취지를 담은 ‘학생낙오방지법’(NCLB·No Child Left Behind)이 2001년 상원을 통과해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서명과 함께 발효됐을 때 두 손을 들어 환영했다. <<원문 보기>>

하지만 오늘날 이런 정책의 구체적 결과를 관찰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누리는 교육의 질을 학업관리·조직·평가 문제보다 중시하게 됐다. 학생낙오방지법에 따라 미국의 각 주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모든 학생들의 읽기 및 수학 부문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그 결과는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분류된다. 첫째는 출신 인종이며, 둘째는 모국어, 셋째는 장애 유무, 그리고 마지막 기준은 저소득층 자녀 여부다. 각 집단에 속하는 학생들은 2014년까지 성취율 100%를 기록해야 한다. 이 목표를 향해 지속적인 발전을 보이지 않는 집단이 하나라도 있는 학교는 처방이나 제재를 받게 되며, 그 강도는 갈수록 심화된다. 첫해에는 해당 학교가 경고를 받는다. 두 번째 해에는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을 포함한 모든 학생에게 전학 기회를 준다. 세 번째 해에는 극빈층 자녀들이 무상 보충수업을 받게 된다. 5년 내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학교는 사립이 되거나 ‘차터스쿨’(Charter School·공립형 자율학교)로 전환 또는 전면적 구조조정을 하며, 폐교되기도 한다. 이때 교직원이 해고될 수 있다. 현재 미국 공립학교의 약 3분의 1인 3만여 곳이 “적절한 수준의 연간 발전”을 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학생낙오방지법, 성과 못 내

여기서 중요한 사항은 학생낙오방지법의 평가방식을 각 주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하게 했다는 점이다. 일부 주에서 학생이 목표를 좀더 쉽게 성취하도록 요구 수준을 하향조정했다. 그러다 보니 학력 수준이 향상됐다고 밝힌 주가 연방에서 실시하는 시험에는 그에 상응하는 성적을 내놓지 못했다. 미국 상원은 각 학교에서 임의로 일부 학생을 차출해 전국학력평가시험(NAEP)을 치르게 하고, 그 결과를 해당 주에서 내놓은 성적과 비교하게 했다. 그 결과, 교육의 기적을 이뤘다며 자랑하던 텍사스주에서는 10년째 읽기 성적이 제자리걸음이며, 2007년 학생의 90%가 목표에 도달한 테네시주는 전국학력평가시험에서 26%라는 초라한 성취율을 기록했다.

이처럼 다양한 평가 시스템에 드는 비용은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 수많은 학교에서는 평가시험을 앞두고 정규수업을 몇 달씩 중단한 채 집중적으로 평가시험을 준비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활동이 “학생들이 실력을 키우기보다 시험 잘 보는 능력을 배양할 뿐 실질적 도움은 얻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학생들이 준비 없이 시험을 치른 결과를 보면 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전국학력평가시험은 투자한 시간과 돈에 비해 성적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아무 변화가 없는 경우도 있다. 수학은 학생낙오방지법 도입 이전이 오히려 성적 향상 폭이 컸다. 읽기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의 성적은 나아진 반면 중학교 2학년 학생은 1998년과 동일한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성적도 아니고 시험을 관리하는 방식도 아니다. 평가시험을 둘러싼 ‘희생양’은 바로 교육의 질이다. 읽기와 수학이 평가시험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뒤로, 교사들은 읽기·수학 과목이 학교의 미래뿐 아니라 교사의 일자리를 좌지우지할 수 있음을 깨닫고 나머지 과목은 등한시한다. 뒷전으로 밀려난 과목은 역사·문학·지리·과학·미술·외국어·도덕 교육 등이다.

약 15년 전부터 영향력 있는 각종 재단과 돈 많은 기업 대표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또 하나의 개념이 있다. 바로 ‘자유로운 선택’이다. 이는 1980년대 말에 등장한 차터스쿨을 통해 구현됐다. 이후 150만 명의 학생과 5천 곳 이상의 학교를 아우르며 광범위한 운동으로 발전했다. 공적자금 지원을 받지만 민간기관이 운영하는 이 학교는 현행 공공시스템 규정의 상당 부분을 따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차터스쿨 중 95% 이상이 노조에 가입한 교사는 채용을 거부한다. 또한 뉴욕주 행정부가 관내 차터스쿨을 감사하려고 할 때 차터스쿨은 소송으로 맞섰다. 결국 뉴욕주는 학교를 믿고 자체 감사를 실시하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차터스쿨의 수준은 매우 불균등하다. 일부는 뛰어난 반면, 다른 일부는 처참할 지경이다. 상당수는 그 둘 사이에 위치한다. 스탠퍼드대학 경제학 교수인 마거릿 레이먼드는 유일하게 전국적 규모로 평가를 수행한 바 있다.(1) 차터스쿨의 열렬한 지지자인 월턴가(家) 재단의 재정을 지원받아 실시된 이 평가의 결과를 보면, 일반 공립학교보다 우수한 수준을 보인 차터스쿨은 17%에 불과했고 나머지 83%는 대등하거나 그보다 못한 성적을 냈다. 전국학력평가시험의 읽기 및 수학 과목에서 차터스쿨 재학생은 흑인·히스패닉계·빈곤층·대도시 등 출신을 막론한 다른 일반학교 학생들과 동일한 성적을 거뒀다. 그런데도 차터스쿨 모델은 미국 교육 시스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기적의 치료제’로 간주된다.

차터스쿨 수준도 천양지차

차터스쿨의 운영 모델은 교직원의 이직률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교사는 업무량이 과하며(주당 최대 60~70시간에 달함), 학생이 언제든 연락할 수 있도록 휴대전화를 늘 켜둬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만하다. 노조가 없는 만큼 업무 조건은 더욱 쉽게 유지된다. 교사들이 가족을 돌보는 것조차 금하는 운영방식을 전국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언론 보도는 특수한 학교에만 집중된다. 젊고 역동적인 교사들, 교복을 입고 흠잡을 데 없는 모습을 한데다 대학에 진학할 실력까지 갖춘 학생들로 가득한 ‘천국’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런 보도는 몇 가지 결정적 요소를 간과한다. 우선, 훌륭한 수준의 학교는 추첨으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자녀 교육에 열의를 가진 학부모들을 분명히 유인한다. 또 외국어를 모국어로 삼거나 장애가 있거나 거주지가 불확실한 학생의 수가 적다는 것도 공립학교에 비해 이점이다. 끝으로 ‘먹물을 튀기는’ 문제 학생들을 일반 공립학교로 전학시킬 권한도 있다.

1980년대 말 차터스쿨 지지 운동이 한창일 때, 그 기저에는 차터스쿨을 용기 있고 사심 없는 교사들이 설립·지도할 것이며, 교사들은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에게 다가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혁신의 자유를 누리는 가운데 이 학교들은 학생을 더욱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한편, 학생들이 졸업 후에는 습득한 지식을 지역사회 전체와 함께 누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 기관들은 공공연하게 공립학교와 경쟁을 벌인다. 일부 도시에서는 차터스쿨이 공립학교를 파산시키려 한다. 할렘가에서는, 공립학교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홍보 캠페인까지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공립학교들이 홍보용 손팻말과 책자를 제작하는 데 할애하는 500달러(혹은 그 미만)의 예산은 공립학교를 구역에서 몰아내려는 세력이 지출하는 32만5천 달러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곳곳에서 영향력 있는 자선가(헤지펀드 대표, 월턴가 재단, 엘리&에디트 브로드 재단 등)의 지원 덕분에 차터스쿨은 갈수록 늘고 있다.

공교육 해체 나선 오바마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때, 나는 이들이 학생낙오방지법을 무효화하고 건전한 기반에서 재출발할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실상은 이와 정반대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전 정부 시절의 가장 위험한 생각과 선택을 고스란히 이어갔다. ‘정상을 향한 질주’라고 명명된 이 프로그램들은 경제위기로 난관에 봉착한 주정부에 43억 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을 미끼로 내걸었다. 횡재의 기회를 얻기 위해 주정부는 차터스쿨 설립에 대한 모든 법적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 아울러 학생 성적에 따른 교사 평가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받아들여야 하며,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지 못한 학교는 ‘변화’시키거나 ‘재활성화’해야 한다. 

하지만 학생 성적을 기준으로 교사를 평가하는 것은 부조리하다. 성적은 교실뿐만 아니라 자원, 학생의 열의, 부모의 지원 등 외적 요인으로도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사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간주하는 상황이다. 부진한 학교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학생낙오방지법이 정한 것과 동일한 조치들 앞에서 눈가림하는 완곡어법에 불과하다. 성적이 빠른 속도로 향상되지 않으면 해당 학교는 관할 주정부로 이관되거나 폐교, 사립화 혹은 차터스쿨로 전환될 수 있다. 로드아일랜드 주정부가 센트럴폴스시에 있는 유일한 고등학교의 교직원 전체를 해고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아른 던컨 교육부 장관과 오바마 대통령은 이 결정을 환영했다. 최근 이들이 복직되었는데, 그 조건은 연장근무를 마다하지 않고 학생들을 더 많이 개별지도하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학력평가에 역점을 두자 주정부도 절실히 필요한 연방정부 지원금을 타내겠다는 희망을 안고 관련 법규를 개정했다. 플로리다주는 신참 교사 채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채택했고, 교사 봉급 중 절반은 학생의 성적에 연동되게 했다. 교사 연수에 할당된 예산을 철회했을 뿐만 아니라, 각 학군 예산 중 5%를 학생의 학력평가 자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학부모 및 교사는 찰리 크리스트 주지사를 설득해 결국 법안 서명을 막는 데 성공했으나, 소속 당인 공화당에서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미국 전역에서 이와 유사한 조처가 계속 등장한다.

글•다이앤 래비치 Diane Ravitch
뉴욕대 교육학 교수, 전 미국 교육부 차관. 주요 저서로 <The Death and Life of the Great American School System: How Testing and Choice are Undermining Education>(Basic Books·New York·2010)이 있다. 이 기고문은 2010년 6월 14일자 <The Nation>에 ‘Why I Changed My Mind’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이다.

번역•최서연 qqndebien@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텔레비전의 종말>(2007) 등이 있다.

<각주>
(1) <다중선택: 16개 주의 차터스쿨 성적>(Multiple Choice: Charter school performance in 16 States)>, 스탠퍼드대학 교육성과연구센터(CREDO),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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