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을 횡단하는 시베리아 열차

[Voyage & Photo]

2010-10-08     클라브지 슬뤼반

항상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은 사진작가 클라브지 슬뤼반의 일련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여행. 근 2년 전부터 시작된 이 여행의 단편들은 서로 중복되고 보충되면서 완성돼간다. 베이징에서 울란바토르를 거쳐 모스크바로 향하는 열차 안의 사람들과 주위 경관을 지켜보면 항상 인간적인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홍지앙은 말하려다 말고 창 너머로 시선을 느리게 돌리며 담배를 피운다. 저절로 떨어지는 담뱃재를 내버려둔 채. 그러곤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려는 순간 철로를 따라 이어진 도로 위에 오토바이 한 대가 나타난다. 승객은 모두 지형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오토바이 뒤로 미친 듯이 흩날리는 구름 같은 먼지를 지켜본다. 사이드카가 달린 오토바이는 갑자기 나타났다가 일언반구도 없이 고비사막으로 사라져버린다. 승객들은 각자 객실의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시선을 원래대로 바로잡는다. 홍지앙이 오른쪽 바깥으로 힐끔 눈길을 돌리니 630km를 표시하는 하얀색 표지가 보인다. 울란바토르에 도착하려면 4시간 이상 걸린다. 승객들은 차라리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차피 곧바로 중단될 테니 말이다. 승객들은 다시 생각에 빠져든다.

젊은 여성인 옌리는 중국 남부 광둥성의 한 마을에 사는 부모에게 18개월 된 딸을 맡겨두고 와서 그런지 지금 어린 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통통한 볼이 인상적인 사오타이라는 여성은 러시아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울란우데란 도시에서 다시 시작될 학교 생활에 기뻐하고 있다. 한편 베이징에서 출발할 때  교수라고 소개하며 다른 사람이 더 이상 자신에 대해 물어볼 수 없게 한 한 남성은, 대낮인데도 위쪽 간이침대를 접지 않고 그 위에 스포츠 가방 4개를 늘어놓고는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열차가 흔들릴 때마다 그는 가방의 내용물을 즉시 살피러 갔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지반이 요동치면 같이 흔들려 풋내기 승객들은 기차가 이번엔 정말 탈선한 것 아닌가 확인하기 위해 일어서곤 했다. 병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몽골말 욕설이 이어진다. 교수는 흩어진 것을 바로잡고 나서 제자리로 돌아가 낡은 구식 명품 선글라스를 쓰고 미동도 않은 채 앉아 있다. 그는 심지어 중국 세관에서 그의 가방 4개를 열어 술 10병이 들통 난다고 해도 교수로서의 신분을 의심받을 것 같지 않다. 교수는 세관원 앞에서 선글라스를 계속 써도 괜찮을 만큼 위엄을 풍기는 외모를 지녔다.

시베리아의 침울함과 황폐함을 떠나온 열차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탑승하는 이주노동자와 밀수입자로 북적대기 시작한다.

생각에 잠겨, 침묵에 빠져

통역사로 일하는 홍지앙은 “안녕하십니까. 멋진 양말을 신은 여러분께 이렇게 인사드립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사실 이들은 자신의 양말이 멋있어서가 아니라 홍지앙과 처지가 같아 그와 말동무가 되는 영예를 얻게 된 것이다. 홍지앙은 모스크바 공항에서 두 번 추방당한 경험이 있는 탓에 이번엔 육로를 통해 러시아에 잠입한 것이다. 홍지앙은 러시아에서 돈 벌기를 원한다.

“중국에 있는 당신의 공장에는 몇 사람이나 일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생각에 잠긴 한 사업가는 담배를 피우며 오랫동안 창문을 응시한 뒤, “글쎄요. 생각보다 더 많습니다”라고 작은 소리로 말한다.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진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언뜻 보인다. 건축 당시 100만 명에 달하는 중국 백성들의 생명을 삼켜버린 만리장성.

그렇다면 자연의 법칙에 도전하며 해발 5천m 고도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운행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을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을 달리는 열차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방송이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 곳곳에서 감미롭게 울리는 동안, 각 객실에서는 플라스마 스크린으로 이 철로 구간 건설과 환경 생태계의 조화를 설명하는 설계도가 나타난다. 스크린을 끄거나 방송으로 나오는 소리를 줄일 수는 없다. 방송에서는 탑승객이 산소마스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감미로운 소리가 또 흘러나온다.

이 열차의 승객은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국경 통과가 마냥 신나는 경험인 사람들, 두 번째는 국경 통과에 생존이 걸린 사람들이다. 전자에는 철도광, 공부를 중단한 학생, 약간 술에 취한 채 즐거워하는 미국인, 그리고 블레즈 상드라르의 <시베리아 횡단의 산문>을 지닌 사람들이 포함되는데, 이들은 모두 상드라르의 작품을 읽는 것이 ‘신비스러운’ 시베리아 횡단 여행을 실제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감명을 준다는 것을 여행 막바지에 인정하게 된다. 후자는 다시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가방 내용물만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값비싼 물품, 기념품, 개인 의복을 가지고 좀더 나은 세계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국경을 넘어 소비재를 운송하며 일정 이윤을 붙여 되팔려는 목적 하나로 위험을 무릅쓰고 기차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다. 돈을 벌면 위험부담을 지는 것도 보상이 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가기 위한 세 번째 도전

객차 안 분위기는 유람 여행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여하튼 서로 진실하게 이해하는 분위기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서로가 서로의 여행 목적을 이해하는 것 같다. 국경에서 끝없이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잡담이 이어졌다. 즉 세관 통과 수속을 밟는 시간, 각종 밀매자를 적발하는 시간, ‘보기차’(앞뒤 두 대의 차대 위에 차체를 올려놓아 자유롭게 회전하는 차량)의 교체 시간에 해당하는 순간들이다. 몽골과 옛 소련 전 지역에서의 궤간은 중국보다 좀더 넓다.

객차 안에서 어쩔 수 없이 꼼짝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옌리가 밤의 정적을 깨며 말한다. “러시아 사람들은 일단 술에 취하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데 정말 그런가요?” 질문을 받은 외국인이 단정적으로 답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간파한 옌리는 자신은 모스크바로 들어가서 시장, 그리고 아마도 건설 현장에서도 통역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러시아어로 설명했다. “어쨌든 시장에서 일할 것은 확실해요.” 옌리가 러시아인이 술에 취하자마자 저지른 행동에 대해 자기 마을에서 들은 애기를 옮기기 시작했을 때 중국 세관원들이 도착했다.

국경에서의 끝없는 기다림

국경 통과 때는 모든 사람이 범죄자가 된다. 다양한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객실 안에 줄지어 나타나는 동안, 밖에는 기차를 따라 쭉 늘어선 보초 군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초록색 외투로 몸을 감싼 군인들은 100m 간격으로 배치돼 겨울밤 내내 영하 25도의 혹한 속에서 부동자세로 모든 수상한 움직임을 감시해야 한다. 추위에 얼어서 선 채로 잠이 드는 바람에 피사의 사탑 모양이 된 몸이 다시 눈에 띄게 기울면서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고는 간신히 자세를 바로 하는 군인들도 종종 보인다.

세관원이 떠난 뒤에도 승객들은 손에 아직 여권을 쥔 상태이기 때문에 이들의 대화 주제는 비자로 옮겨진다. 비자 261타입은 상업비자로, 러시아에서 최대 3개월간 체류를 허용하며, 비용은 700달러다. 비용이 1천 달러고 1년간 연속 체류가 가능한 노동비자는 얻기가 훨씬 어렵다.

기차가 흔들리면 대화는 갑자기 멈춰진다. 기차가 다시 출발하는 매 순간은 승리의 순간으로, 역에서 열차가 정차하는 시간에 비례해 승객들의 환호도 커진다. 그러고는 각자 침묵을 지킨다. 머리로는 다음에 지나칠 국경과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를 생각하면서.

잠시 뒤 우울한 분위기의 오후 시간이 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철로 위를 다시 웅장하게 달린다. 푹신푹신한 쿠션의 간이침대(중국에는 딱딱한 침대와 푹신한 침대 두 종류의 쿠션이 있다)에 편안히 자리를 잡은 나는 ‘오블로모프적 무기력증’(1)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나를 망상에서 끌어내는 것은 하얀 포플러 나무나 첫 눈송이들이다.

베이징 시간에 맞춰진 러시아 역 시계

여행이 계속되면서 밖의 경치는 전혀 망가짐이 없이 서로 겹치며, 계절을 개의치 않는 다양한 영상들로 눈앞에 쌓인다. 중앙아시아의 대초원 위에서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리는 깃털 모양의 나무 줄기가 보이더니 다음에는 꽁꽁 언 바이칼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줄지은 자동차들은 전속력으로 얼음 위를 달린다. 시베리아에서는 얼음이 충분히 두꺼워서 운전자들은 울퉁불퉁한 도로보다는 매끈매끈한 표면의 얼어붙은 하천면이나 호수면을 선호한다. 나는 크라스노야르스크 플랫폼에서 큰 시계 앞에 멈춰섰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간을 물어보니, 현지 시각으로 오전 9시라고 한다. 기차역 시간은 항상 모스크바 시간으로 고정돼 있는 것이 정상인데, 모스크바 시각으로 5시인데도 왜 기차역의 시계는 정오를 가리키고 있을까? 이 문제를 풀려고 하는 사이, 아침인데도 아직 비틀거리는 한 러시아인이 불쑥 “저 시계를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오. 한 번도 제대로 된 적이 없는 고장난 시계이니까”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사실 시계는 망가진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처음부터 베이징 시각을 정확하게 가리킨단 말이오. 조만간 모두 베이징 시각으로 여기를 지나가게 될 겁니다!”라고 말하며 가버린다. 열차에 다시 올라, 객실칸에 들어간 러시아인들은 모스크바 시각으로 밤으로부터 나오고, 중국인들은 베이징 시각으로 점심을 먹기 시작한다.

글•클라브지 슬뤼반 Klavdij Sluban
사진작가 겸 저널리스트. 주요 저서로 <시베리아 횡단철도 여행기>(Actes Sud·Arles·2009)가 있다. 2009년 사진 부문에서 ‘유러피언 퍼블리셔스 어워드’(European Publishers Award)를 받았다.

번역•전지연 junjiyun@y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한프랑스대사관 산업부 과장과 통번역대학원 강사로 있다.

<각주>
(1) 이반 곤차로프는 그의 소설 〈오블로모프>(Oblo mov·1859)에서 항상 미루고 나태하며 무기력한 기질을 지닌 인물을 묘사했다. 레닌은 ‘오블로모프적 무기력증’을 러시아 국민의 내재된 병이라고 간주하며 이 고질병을 해결해야 한다고 확신했지만, 그걸 고치려는 노력 자체가 무기력한 것임을 더욱 깊게 느끼고 있었다.


[박스기사] 모스크바∼베이징, 1900

1900년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의 빅 이벤트 중 하나는 실제 크기와 동일하게 제작된 열차 객실에 앉아보는 것이었다. 방문자 5085만9955명이 직접 열차를 타는 체험을 했는데 이들은 45분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지나가는 곳의 다양한 주위 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구간에 따라 4가지 속도로 제작된 이 열차는 웬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파벨 피아세트스키가 1894년부터 1899년까지 만든 9개의 두루마리 그림은 850m에 달하는 시베리아 전경을 비롯해 실제 현지 생활 모습, 작은 기차역, 시베리아 횡단철도 근처의 신도시 건설 모습을 담고 있었다. 1개당 무게는 17∼25kg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