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자들이 지닌 뜻밖의 권력

2018-12-31     피에르 랭베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원형 교차로에서 시위를 벌이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시위 참가자들은 보건, 교육과 같은 기초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은 가을에 대대적인 시위를 벌인 것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사회운동에서 소외된 계층을 대표하는 세력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노란 조끼를 입은 여성들이 원형 교차로를 행진하면서, 자신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위를 벌인다. 간호사, 간병인, 보모들은 그동안 음지의 여성 노동자들을 가려왔던 장막을 헤치고 나와 밝은 형광색의 옷을 걸쳐 입었다. 여성이자 노동자로서, 평균 노동시간의 2배에 가깝게 일하면서도 늘 박봉에 시달리는 그녀들이, 오래돼 구멍이 숭숭 뚫린 사회복지체계를 고발하고 나섰다.

종사자의 대부분이 여성인 교육, 간호, 사회사업, 청소 등의 분야는 사회적 약자들을 책임지고 있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자유사회를 실질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핵심분야다. 이와 같은 기초 서비스들이 중단될 경우 국가는 마비될 수밖에 없다. 누가 노약자, 유아, 아동, 청소를 책임질 것인가? 이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경찰과 임원들이 나섰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경찰학교에서는 노인을 씻기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20세기 들어 가사, 종교, 자선 분야에서 유급노동 분야로 넘어온 이런 일들은,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지 않는 한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수요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계속해서 고된 노동과 적은 대가를 강요한 끝에 결국에는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호텔의 메이드, 기차역의 청소부, 간병인, 요양시설 직원들(Ehpad), 의료계 종사자들은 2017년 말부터 차례로 파업을 이어가고 있고, 그 파업의 결과는 대부분 성공적이다.

정기적으로 가족에게 일정 금액을 벌어다 주는 아버지로 대표되는 서민 또는 노동자는 20세기 노동자 계급을 상징하는 이미지로서 워낙 강력하게 각인돼 있어, 우리는 노동자 계급을 당연히 남성과 연관시키곤 한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이야기할 때 누가 선뜻 여성 노동자를 떠올리겠는가? 여성 노동자는 마치 사라진 사회적 종(種)처럼 언론에 의해 묘사되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5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의 여성화는 지난 반세기 동안 일어난 수많은 변화들 가운데 가장 획기적인 변화로 꼽힌다. 이 변화는 특히 사회적 피라미드 구조의 가장 아래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전체 노동자 및 피고용자의 51%가 여성이다. 1968년 이 비율은 35%에 불과했다.(1) 5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남성 노동자의 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1968년에는 1,330만 명이었고 2017년에는 1,370만 명이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여성 노동자의 수는 710만 명에서 1,290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다시 말해 지난 50년 동안 새롭게 일을 시작한 사람들, 그것도 열악한 근무조건과 평균 임금보다 1/4에 불과한 저임금을 감수하면서 노동시장에 뛰어든 사람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뜻이다. 의료 및 사회복지 분야와 교육 분야의 여성 노동자 수는 1968년에는 50만 명이었으나, 2017년에는 200만 명으로 4배로 늘었다. 심지어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여성 교사들은 제외한 수치다.

 

여성 노동자들의 조직화도 가능할까

19세기에는 산업 프롤레타리아 세력이 노동운동의 전략을 좌지우지했지만, 종사자의 대부분이 여성인 기초 서비스 분야가 급성장하고 그들의 잠재권력도 함께 성장함에 따라 사회적 갈등이 발생한 현 상황은, 아직까지는 정치활동, 또는 노조활동으로 발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안팎으로 압력이 세지면서 표면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첫 번째는 ‘이 분야들이 최근에 뜻밖에 획득하게 된 권력을 어떤 조건 하에서 행사할 수 있을까?’이고, 두 번째는 ‘이 분야들에서 과연 하나의 집단을 조직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사회적 동맹을 결성해 다른 분야들까지 행동에 동참시킬 수 있을까’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이 가설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기초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지위와 근무 조건도, 근무 공간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란 조끼’ 운동이 확산되지 못한 이유는 내부적인 분열 외에도 통합 요소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도 크다. 우선, 다수의 힘과 공동의 적부터 분석해보자.

노동력의 유지와 재생산을 담당하는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자 계급부터 중산층까지 포진돼 있으며 일단 그 수가 엄청나다(그래프 참조).(2) 기업에 소속돼 일하는 여성 노동자(여성 청소부들은 18만 2,000명으로 집계된다)도 많지만 특히 개인 가정에서 직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부 50만 명, 보모 40만 명, 그리고 그 외에 가사업무를 담당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11만 5,000명 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은 더 많다. 간호조무사 40만 명, 보육교사 및 의료-심리 보조사 14만 명, 행정직원을 제외한 서비스 담당자가 50만 명 이상이다.

여기에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 분야의 남성 노동자들도 추가된다. 그리고 낮은 임금과 불규칙한 근무 시간에 시달리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보건, 사회, 교육 분야의 ‘중간’ 직업인들도 있다. 더 많은 임금을 받고, 교육수준이 높은 이 직업군에는 간호사(40만 명), 초등 및 중등 교사(34만 명), 보육교사, 사회문화 분야 활동 강사, 특수교사, 재활치료사, 의료기술자 등이 포함되며, 현재 약 200만 명이지만 그 수는 점점 더 늘고 있다.

물론, 공공병원의 간호사와 개인 가정에 고용된 불법체류자 신분의 간병인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그러나 남성들까지 합하면 총 경제활동인구의 1/4 이상에 달하는 이 분야 종사자들은, 공동의 서비스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입장에 있으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공통점을 공유한다. 첫 번째로 의료, 사회복지, 교육 등 사람과 관련된 이 서비스들의 특성상 대체가 불가할 뿐만 아니라 해외 이전이나 자동화의 가능성도 작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인적 교류가 요구되고 케이스 별로 각기 다른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이 분야들은 모두 긴축정책의 영향을 받고 있다. 학교에서부터 요양시설에 이르기까지, 근무조건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고 그만큼 갈등도 점점 늘고 있다. 세 번째로, 제철소 없이는 살 수 있어도 학교, 병원, 어린이집, 양로원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이 같은 공통점은, 기초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프롤레타리아, 의료·사회·교육 분야의 중등직업군, 중등교사와 같은 일부의 지적 직업군을 아우르는 잠재적인 사회적 동맹의 탄생 배경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동맹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장애물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극복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어떤 정당, 노조, 조직도 여성과 서민이 대부분인 이 분야를 전략의 중심에 놓거나, 그들의 걱정거리를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하거나, 그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수호하지 않았다. 사실, 가장 의식이 깨어있고 가장 잘 조직돼 있는 철도·항만·화물·전기·화학 분야의 노동운동 주동자들조차, 사회적 투쟁이 자신들을 통해서는 이뤄지지 않을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고, 이는 2018년 철도개혁을 둘러싼 갈등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40년 전부터 정치권은 그들의 요새를 무너뜨리고, 지위를 무력화하고, 기업을 민영화하고, 직원 수를 줄였다. 또한 언론은 그들의 세계를 과거의 산물로 치부했다.

반대로,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와 공공 서비스 분야의 경우 별다른 조직도 없고 투쟁의 역사도 짧지만, 그들에게는 노동자 계급이 오랫동안 추구해왔던 그 무엇, 바로 미래가 있다. 현대사회의 상징인 실리콘밸리의 다국적 기업들과 디지털 플랫폼들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동안, 노동계 역시 대대적인 여성화가 이뤄지는 ‘파격적’인 현대를 맞이했다.

 

두드러지는 노동계의 여성화 현상

게다가 노동계의 여성화 현상은 앞으로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미국의 노동부 통계청이 발표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직업목록에는 크게 두 가지 직업군이 포함됐다. 우선 첫 번째는 태양광 패널 또는 풍력 터빈 설치사, 석유생산플랫폼의 기술자, 수학자, 통계학자, 프로그래머와 같이 전형적으로 남성적인 직업들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입주 간병인, 간호조무사, 의사보조사, 간호사, 심리치료사, 운동치료사, 마사지사와 같이 전통적으로 여성이 많은 직업들이다. 2016년 프로그램 개발자 수요는 100만 명으로 예상되지만, 그에 비해 급여가 1/4에 불과한 입주 간병인과 간호조무사의 수요는 400만 명으로 추산된다.(3)

그러나 피츠버그의 제철소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제철소의 중국 이전으로 실직한 후,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재취업하고자 할 경우 크게 두 가지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 우선, 사람들의 눈과 머릿속에, 그리고 기업과 기관에 뿌리 깊이 박힌 편견이다. 이 편견이  남성적인 근무 환경과, 가부장적 관습에 따라 대부분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사회적 서비스 업종 사이에 벽을 만든다. 또한, 직업을 바꿀 가능성을 제한하는 학업적 한계도 있다. “선진국의 남자 청소년들은 수학, 독서, 과학 3가지 기초과목에서 낙제할 가능성이 여자 청소년들에 비해 50% 높다”고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5년 5월 30일 자 특별기사 ‘The weaker sex’에서 밝혔다. 반대로 여성의 경우 교육수준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더 쉽게 여러 직업을 오갈 수 있게 돼, 노동시장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

20세기 말부터 학사학위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 유네스코의 발표에 의하면, 학사학위자 중 여성의 비율이 프랑스는 56%, 미국은 58%, 폴란드는 66%다. 2016년에는 25~34세 프랑스 여성의 49%가 2년제 대학(전문기술자격증(BTS), 기술전문대학(DUT))이나 4년제 대학(학사, 석사, 박사) 수료자였으나 남성의 경우 38%에 불과했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연구직, 명예직, 권력과 관계된 직종, 급여가 높은 직종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 졸업자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면서도 명성이나 돈과는 거리가 먼 서비스 업종에 상당수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고학력 여성의 증가는 수학, IT, 기초과학 분야의 ‘남초 현상’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 결과, 경제활동인구의 두 축인 여성과 남성 간 분야 및 계급적 차이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여성들의 경우 학력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대부분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놓여 있으며, 의료, 사회복지, 교육 분야에 주로 종사하고 있다. 남성인력들은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투기 금융과 신기술 분야에 대부분 포진돼 있으며, 이 분야에서 남성의 비중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실리콘 밸리의 신생 기업들의 IT 인력 88%가 남성이고, 증권 거래소 애널리스트의 82%가 남성이다.(5)

완전히 상반되는 이 두 세계에서 하나의 세계는 다른 하나를 지배하고, 억누르고, 파괴한다. IT 분야의 대기업들이 ‘시장’의 긴축을 강요하고 탈세를 통해 국가 재정을 갉아먹은 결과로 요양 시설, 어린이집, 사회적 서비스의 인력과 자원이 줄어든다.(6) 그리고 그들의 활동이 그렇게 공공서비스를 무력화시키는 가운데, 다른 한 편에서는 은행가, 의사결정자, 개발자들이 수많은 도우미와 보조자, 강사들을 고용한다.

일반적으로 기업 대표, 고위 임원, 전문직 종사자들은 집안일을 입주 가정부에게 맡긴다.(7) 아마 이민자 출신의 가정부가 일을 그만둔다면, 이들이 가장 먼저 타격 받을 것이다. 대학교수, 공증인, 의사, 페미니즘 사회학자는 과연 자신의 가정부에게 친절과 배려라는 도덕적 의무, 그리고 지난 세기 동안 남성이 여성에게 베푼 미덕을 상기시키며,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여성 노동자, 중간 직업군, 초등 및 중등 교사들을 포함하는 기초 서비스 분야의 동맹이, 고용주들로 구성된 상위 계층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조직화를 위한 조건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고립되고, 분산되고, 조직화돼 있지 않고, 평균 인구에 비해 이민자 비율이 높은 대인(對人) 서비스업 종사자 및 청소 노동자들의 수는 굉장히 많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많다고 해서 조직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계표에 나타난 집단이 행동하는 조직으로 거듭나려면 공동체적인 의식과 정치적 계획이 필요하다. 이제까지의 사례들로 미뤄 봤을 때 노조, 정당, 사회단체 및 운동 측이 지위와 학력 수준의 차이를 넘어서서 간호사와 가정부가 함께 공감할 공동의 이익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또한 역사적 요인, 미션, 투쟁을 규정함으로써 BFM TV나 다른 전문가들이 임의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제가 필요하다.

첫 번째 주제는, 이 집단이 가진 사회경제적인 중요성이다. 정부의 통계에서부터 언론에 이르기까지, 기초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생산의 개념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정책적으로 돌봄, 보건, 교육은 ‘비용’으로 간주된다. 일반인들이 이런 ‘관계적’ 직업군에 배려, 친절, 공감과 같은 여성적 자질들을 연관 짓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성 돌보미나 교사가 자신의 업무에서 이런 자질들을 활용한다고 해도, 그것이 그 업무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기초 서비스를 단순한 ‘비용’으로 치부하는 것, 그들의 업무를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부가 아닌 헌신적인 여성들의 호의로서 인식하는 것은, 간호조무사, 간병인, 교사의 생산자로서의 정체성을 무시하는 처사다.(8) 공동체적 삶의 기초를 마련하고 해방과 자유의 부를 생산하는 일, 기초 서비스 분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바로 이런 개념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돼야 한다.

두 번째 주제는, 노동자들 전체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문제는 인력충원의 문제다. 특히 응급실, 요양 시설, 학교에서 더욱 절실한 문제, 바로 업무를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 절실한 것이 인력충원이다. 사람들에게 철도원이나 상품 배달원의 근무조건은 사실 우려대상이지만 피부에 와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씻기는 시간을 줄인다든가, 지방에 산부인과를 없앤다든가, 정신질환 환자들을 돌보는 인력을 감축한다든가 하는 문제로 확대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모두들 경험으로 알고 있다. 서비스의 품질은 투입된 인력의 수에 비례해 높아진다는 것을. 그러나 최적의 조건에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더 많은 인력을 요구하는 일은, 의도는 당연히 선하고 긍정적이지만 그 과정은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긴축정책, 적은 자원으로도 얼마든지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 노동자들의 건강을 담보로 하는 생산성 향상의 문제를 건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사설을 늘어놓으며 직원들에게 은근슬쩍 책임을 전가하면서 예산부족의 문제를 덮기도 한다. 일례로, 여전히 많은 요양시설들이 ‘인도주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환자를 대할 때의 시선, 말투, 접촉에 있어서 시설이 원하는 방향을 규정해 놓은 일종의 ‘돌봄’ 지침으로, 직원들은 이를 통해 인도주의적 자질마저 의심받게 되는 셈이다. 환자 학대 사건이 일어날 경우 그 주된 원인을 경비절감을 위한 인력감축 때문이 아닌 직원 개인의 자질부족 탓으로 돌리기 위해 명분을 미리 마련해 놓는 것과 같다.

기초 서비스 분야에 대한 자원 확충을 요구하는 일은 이익창출과 긴축재정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에, 해당 분야와 그 종사자들은 타협이 어려운 갈등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1980년대의 자유주의 물결, 그리고 더 가깝게는 2008년의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정치인, 중앙은행 관계자, EU 집행위, 첨단기술 분야의 엔지니어 출신 기업인, 국가재정을 담당하는 고위 공무원, 논설기자, 정통파 경제학자는 한목소리로 기초 서비스 분야에 대한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결국에는 부유층의 이익을 위해 이 분야의 근무조건을 의도적으로 악화시킨 셈이 됐다. 마치 부유층이 행복해야 전체가 행복할 수 있다는 논리와도 같다. 그리고 이 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계속해서 추구하기 위해 에마뉘엘 마크롱을 수임자로 선택했다.

기초 서비스 분야의 여성 노동자들을 핵심세력으로 하는 잠재적 동맹은, 이들이 병원, 가정, 치료실에서 이뤄지는 일상적인 행동 속에서 철학과 계획을 명확하게 구현할 때 비로소 구체화될 수 있다. 보건·교육·위생, 나아가 교통·주거·문화·커뮤니케이션 분야에 공공자금을 지원하는 일은, 자유를 저해하기는커녕 자유를 위한 선결조건이다.

사람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책임지는 것이 개인적인 만족감으로써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나서야 한다는 오래된 역설은, 여성 노동자들을 집결시켜 전반적인 관심사의 대변자로 나서게 할 수 있는 장기정책의 밑그림이 될 수 있다. 기초 서비스 분야 종사자들이 최적의 조건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추가적인 자원을 할당함으로써, 도시 변두리 구역에 거주하는 노동자 계급에 그 혜택이 우선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서비스 사회주의인 셈이다.(9) 왜냐하면 종사자의 대부분이 여성인 서비스 분야에서 동맹이 결성된다면, 모든 서민계급, 특히 세계화의 희생양이자 한때 보수주의로 돌아설까 고민하기도 했던 남성 노동자들까지 감싸 안아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 노동자들에게 이런 역사적 역할과 보편적 임무를 부여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그러나 2016년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었던 현실적인 판단도 결국에는 틀렸지 않은가. 당시 트럼프는 탈산업화로 타격을 입은 노동자 계급의 남성들, 보수주의 부르주아 계급, 학력이 낮은 중산층을 집결시키는 독특한 전략을 구사했었다. 트럼프의 전략을 간파한 언론과 정계는, 트럼프, 베냐민 네타냐후, 빅토르 오르반에게 표를 던진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하고, 교양이 없고, 인종차별주의적인 남성 노동자 계급과, 마크롱을 비롯한 중도파 정당을 지지하는 교양 있고, 자유주의를 신봉하고, 개방적이고, 분별력이 있고, 진보적인 부르주아 계급의 대립 구도를 서구 사회의 한 단면으로서 해석했다. 그러나 이 두 양극단에 서 있는 지도자들도 시장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공통된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 단순한 대립구도에서 고려되지 않았다.(10) 이에 기초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또 다른 형태의 대립 구도를 제시해야 한다.

우선, 사회적 장벽의 한쪽에는 남성이고, 교육수준이 높고, 자유주의적인, 실리콘 밸리의 IT 기업 대표들과 금융계의 고위 임원들이 있어야 한다. 이들은 공공 자원을 약탈하고 조세 천국을 들락거리면서, 페이스북의 전 부사장이었던 차마스 팔리하피티야가 말했듯이 ‘사회적 조직을 분열’시키고 ‘사회의 기능을 파괴’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판매한다.(11)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여성 노동자 계급, 임금 노동자의 대표주자, 공동체적인 삶을 지지하고 부의 재분배를 주장하는 서비스 생산자가 있어야 한다.

 

그들의 투쟁사는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업무를 더 잘 수행하기 위해 추가적인 자원을 요구한다.” 몇 주 전부터 간병인, 보육교사, 간호조무사, 간호사, 교사, 청소부, 행정직원들은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바로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마치 이제껏 가려져 있던 한 부분이 비로소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듯했다. 임원, 지식인,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모두들 본업을 그만두고 거동이 불편한 부모와 나이 어린 자녀를 보살펴야 할 터였다. 그러나 그들의 애교스러운 협박은 실패로 돌아갔다. 의회, 사무실, 언론은 등을 돌렸다. 한 요양 시설을 방문한 총리는 파업 중이던 직원에게 침대 시트를 가는 데 1분이면 충분하지 않느냐며, 조사 결과가 그렇다고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총리의 말에 즉각 반박했고, 주변 사람들은 두 세계가 충돌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다.

그러나 혼란의 5일이 지난 뒤 정부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 보편적 공공서비스에 관한 협상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돼, 이들의 운동은 서비스 업계의 인민 전선을 의미하는 ‘제2의 인민 전선’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됐다.

(하단에 박스기사도 참조)

 

글·피에르 랭베르 Piè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Enquête emploi 2017(2017년 고용 조사), Insee(프랑스 통계청); 1974년 사회적 자료, 파리.
(2) Siggie Vertommen, ‘Reproduction sociale et le féminisme des 99%. Interview de Tithi Bhattacharya(사회적 재생산과 99%의 페미니즘. 티티 바타차리아와의 대담)’, <Lava>, n° 5, 브뤼셀, 2018년 7월.
(3) ‘Fastest growing occupations’, Bureau of Labor Statistics, Washington, DC, www.bls.gov
(4) Vers l’égalité femmes-hommes? Chiffres-clés(남녀평등을 향해? 주요 수치들), ministère de lʼenseignement supérieur, de la recherche et de lʼinnovation(고등교육/연구/혁신부), 파리, 2018년.
(5) Kasee Bailey, The state of women in tech 2018, DreamHost, 2018년 7월 26일, www.dreamhost.com  / Renee Adams, Brad Barber, Terrance Odean, Family, values, and women in finance, SSRN, 2016년 9월 1일, https://ssrn.com
(6) Renaud Lambert & Sylvain Leder, ‘L’investisseur ne vote pas(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된 정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7월호/8월호.
(7) François-Xavier Devetter, Florence Jany-Catrice, Thierry Ribault, 『Les Services à la personne(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 La Découverte, Repères 컬렉션, 파리, 2015년.
(8) Bernard Friot, ‘En finir avec les luttes défensives(기업은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7년 12월호.
(9) Pièrre Rimbert, ‘Refonder plutô̂t que réformer(공공서비스를 붕괴시키는 ‘이상한 개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4월호/6월호.
(10) Serge Halimi & Renaud Lambert, ‘Libéraux contre populistes, un clivage trompeur(포퓰리스트들과 자유주의자들의 기만적 대립)’,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9월호.
(11) James Vincent, ‘Former Facebook exec says social media is ripping apart society’, <The Verge>, 2017년 12월 11일, www.theverge.com

 

“그들은 마크롱의 말을 따르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이다.”
- 에릭 르 부쉐, <레 제코스>, 2018년 11월 16일

 

“가난한 나라는 무엇보다 더 이상 부자가 없는 나라다.”
- 니콜라스 도즈, <BFMTV>, 2018년 12월 5일

 

“노란조끼 운동의 최후의 걸작인 질서의 승리”
- 미셸 비비오르카, <BFMTV>, 2018년 12월 8일 시위에 대해

 

“많은 프랑스 사람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위기를 가속화한다. 노란조끼를 입은 많은 이들은 정부의 연설이나 조치를 이해하지 못할 때 경멸감을 느끼며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 르노 필라, 트위터, 2018년 12월 10일

 

“최저임금, 초과근무, 연금수령자, 부유층의 분담금에 대해 마크롱이 내놓은 중재안은 ‘노란조끼’의 요구사항 중에서 많은 부분을 충족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위를 촉구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는, 아마도 구매력 향상이 아니라, 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운 다른 목표일 것이다.”
- 장미셸 아파티, 트위터, 2018년 12월 10일

 

“강요당하지 않았음에도 무릎 꿇는 이들을 두고 나는 ‘멍청하다’고 부른다. 자발적 종속이나 다름없는 이 상황을 누가 전복과 저항으로 받아들이겠는가?” 
- 라파엘 앙토방은 2018년 12월 11일 트위터에서 망트라졸리의 고등학생들에 대해 많은 시위자들이 취한 연대의 행동을 두고 이와 같이 언급했다(12월 6일 망트라졸리의 고등학생 10여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검문 당한 뒤 손을 머리에 올리고 땅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 고등학생들에 대한 연대와 지지의 의미로 무릎을 꿇고 시위했다-역주).

 

“에마뉘엘 마크롱이 지난밤에 발표한 조치들은 요구 가운데 핵심적인 부분을 충족시킨다.”
- 제오프루아 루 드 베지외 프랑스경제인연합회(Medef) 회장, 2018년 12월 12일, <프랑스 라디오 방송국 유럽1(Europe 1)>.

번역·이연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마크롱 대통령의 최저임금 대책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8년 12월 10일 생방송으로 진행된 대국민 담화에서 ‘경제 및 사회적 위기 상황’(1)이라고 선언하면서 ‘최저임금 노동자의 급여를 2019년부터 매달 100유로씩 인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발표는 아무런 실질적인 효력이 없는 거짓으로 밝혀졌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 심각한 위기상황에서 핵심사안에 대해 이토록 뻔뻔하게 거짓말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2) 그의 약속은 최저임금 인상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단지 2019년 1월 1일 법 적용에 따른 1.5%의 최저임금 인상이 시행될 뿐이며, 이마저도 인플레이션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대통령 담화 다음 날, 장관들은 뒷감당을 위해 100유로 인상분 중 사실상 20유로는 2018년 집행된 사회보장 분담금이 하향조정 되면서 발생할 금액이고(따라서 이미 확정된 사실이었음), 나머지 80유로는 직업활동 특별수당의 상승분을 앞당겨 지급하는 금액(5년에 걸쳐 분할지급될 예정이었음)임을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부실한 대책이었다. 80유로는 모든 최저임금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별수당을 80유로까지 받을 수 있는 조건은 가구별 전체수입과 가족구성원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최저임금 노동자든, 거의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든 약속한 상승분을 받을 수 있을지, 혹은 전체금액을 받을 수 있을지 분명하지 않다.

대통령으로서는 터무니없이 치졸한 대책이다. 급여가 아닌 특별수당을 선택함으로써 마크롱이 속인 것은 시민들뿐이 아니다. 그는 임금상승분을 차등지급하려 하고, 사회보장수당 또한 일정 부분 깎아내리려 한다. 급여와 달리 특별수당은 언제든지 삭감될 수 있고, 실업급여 혹은 퇴직금 상승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게다가 특별수당은 단체협약에 의한 임금체계 전반에 걸쳐 아무런 파급력이 없다. 국가 수장이 ‘급여’라는 단어를 오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글·장미쉘 뒤메 Jean-Michel Dumay
기자

번역·권정아
프랑스 브레스트 대학교 심리학 박사. 공역서로 『피부자아』가 있다.

 

(1) 프랑스에서 11월 중순부터 계속된 ‘노란조끼’ 시위와 관련된 프랑스 사회의 혼란을 가리킴 - 역주.
(2) ‘엄청난 거짓말쟁이 마크롱(Macron super-menteur)’, 2018년 5월 3일, www.la-bas.org

폭력에는 폭력으로

미국 소설가 잭 런던의 작품 『강철군화(1908)』에 등장하는 사회주의 운동가 어니스트는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온 지도자들’을 맞닥뜨린다. 

어니스트가 선포했다. “이제부터 내가 당신에게 이 혁명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 ‘우리’군의 목표는 ‘가차 없이 해치워라!’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절대 작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권력과 인류의 운명을 우리 손에 넣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이 강한 우리의 손으로 말입니다! 이 손으로 우리는 당신의 정부와 궁전, 그리고 넘치는 여유와 안락함을 빼앗을 겁니다. 다가오는 미래에는, 밭에서 일하는 농부나 일에 지친 노동자들처럼, 당신들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 우리의 손을 보십시오! 우리의 손은 아주 단단한 주먹입니다! (…)

윅슨이 말을 시작한 것은 두 사람의 언쟁이 끝날 무렵이었다. 그는 갑자기 어니스트 앞에 마주 섰다.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답을 주겠소. 우리는 당신과 나눌 말이 없소. 당신이 우리의 궁전과 우리의 여유를 빼앗기 위해 당신의 손을 뻗어 무력을 행사한다면, 우리는 당신에게 진짜 무력이란 무엇인지 보여줄 거요. 당신은 포탄소리, 유탄 폭발소리, 기관총 소리와 함께 우리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요. 우리는 당신들의 혁명가들을 군화로 완전히 뭉개버리고 그 얼굴을 짓밟고 지나갈 거라오. 이 세상은 우리 것이고, 우리가 이 세상의 주인이며, 우리의 것으로 남을 거요.”    

 

번역·장혜진 hyejin871216@gmail.com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KT, KOICA, SBS 등에서 통번역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