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니의 디아스포라, 귀향한 인재들의 꿈

2018-12-31     압둘 살람 디알로 외

 

빠른 경제성장과 더불어, 아프리카를 떠났던 인재들이 귀향하고 있다. 전체 인구 중 64%가 25세 미만이며, 해외 거주자가 약 5백만 명에 달하는 기니에서, ‘귀향한 인재들’은 국가경제 재건을 위한 희망이 되고 있다.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온 인재들은 부실한 사회 구조에 실망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숨 막히는 5월의 더위와 라마단 기간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코나크리 논고 사립대학 강당은 학생들로 가득했다. 300여 명의 학생들이 “고용시장의 도전과제와 채용에 적합한 인재상”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 참석하러 발걸음을 한 것이다. 아프리카 전통의상을 입은 5명의 젊은 여성 강연자들은, 넘치는 에너지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능수능란하게 영어를 사용하며 전형적인 여성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들은 “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해외에서 공부해야 한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나폴레옹 힐의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를 포함한 다양한 자기계발서 낭독을 끝으로 이들 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강연을 끝마쳤다. “여러분들의 의지만이 여러분들의 성공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박수 뒤에, 한 학생이 용기 내어 질문을 던졌다. “왜 유학생들 이야기만 하시죠? 노동시장에는 국내에서 공부한 기니인들을 위한 자리는 없는 건가요?” 강당에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실 이 강연자들(이날은 전부 여성이었다)은 공통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다. 모두 풀브라이트 장학금(Fulbright, 기니를 포함한 160개국과 제휴를 맺은 미국 정부가 지원해주는 장학금)의 수혜자들이라는 점이다.(1)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이유로 ‘귀향한 인재’로 불린다. 이 신조어는 ‘이주한 고급인력’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해외에서 유학이나 직업 활동을 한 후 아프리카로 돌아온 사람들을 일컫는다. 사실 풀브라이트 장학금 혜택 자체가 대부분의 기니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 장학금을 신청하려면 대학 4년 이수, 2년간의 실무 경험, 유창한 영어 실력이 충족돼야 한다. 이 모든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이들은 실상 일부 부유층에 한정된다. 실제로 강연자들 모두 유복한 가정 출신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출신과는 상관없이 끈기로 성공을 일궈냈고, 금의환향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누가 이 말을 믿겠는가?

“나 저 여자분 알아.” 한 학생이 조용히 속삭였다. “저분 아버지가 란사나 콩테 정부 때 요직에 계셨던 분이야.” 란사나 콩테는 1984년부터 2008년까지 집권했던 기니의 두 번째 대통령이다.(2) 다른 강연자 한 명은 부모님이 외교관 출신이다. 코나크리의 ‘귀향한 인재들’은 이처럼 비슷한 배경을 지녔다. 이들은 모두 해외에 거주할 여력이 되고 고국으로 돌아와 재정착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고국을 떠나는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는 않지만,(3) 귀국한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돌아왔는지, 또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점은 파악하기가 다소 어렵다. 우선, 귀국자들의 수는 얼마나 될까?

국제이주기구(OIM)에서 시행하는 아프리카 발전을 위한 이주 프로그램에 의하면, 주로 유럽이나 북아메리카(4)로 갔던 나이지리아 출신 356명, 가나 353명, 앙골라 349명, 모로코 290명, 수단 129명이 2008~2015년 귀국한 것으로 나타났다.(5) 한편, 2006년 개설된 ‘Talent2Africa’는 아프리카 기업과 구직자들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으로, 현재는 사용자가 1만 명에 못 미치지만 2021년에는 10만 명에 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7년을 기준으로, 1천 7백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외국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귀국한 사람의 수는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6)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귀환한 이들이 많기 때문에, 이 수치를 현실에 부합한 수치로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역 두뇌유출’ 현상은 아프리카 경제 발전과 정치적 안정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래서 모든 아프리카 정부가 해외이주의 중요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유학파들에게 장관직(주로 외교부 장관)을 수여하고 있다. 코나크리에서 만난 ‘귀향한 인재들’은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기니는 2017년 경제성장률 6.7%를 기록했고, 수십 년 동안의 경제침체기에서 벗어나 외국인투자금액이 2010년 50만 달러에서 2017년 15억 달러로 급증했다.(7) 그러나 기니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741달러로 세계 143위에 그친다.

“현재 아프리카는 간부급 인재들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런 아프리카의 발전을 위해 우리 세대의 희생이 절실합니다.” 코나크리에 위치한 란사나 콩테 대학(UGLC)의 티에르노 아마두 드라메 법과대학 부학장이 말했다. 그는 프랑스와 세네갈에서 학업을 마치고 기니로 돌아왔다. ‘귀향한 인재들’은 자신들이 거주했던 국가에서보다 기니에서의 생활수준이 더 높다는 점을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나아가 그들은 기니 현지노동력과 비교해 자신들의 가치를 평가하곤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유모, 요리사, 경비원을 두고 살 수 있습니다. 삶이 더 윤택해지는 거죠.” 강연자 중 한 명이 가볍게 이야기했다. 세계은행의 통계 자료에 의하면, 기니인 55%는 빈곤의 한계선 이하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고, 청년 80% 이상은 실업자이며 전체 인구의 약 80%는 비공식 고용 상태다.

귀향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2010년에 실시된 대선을 꼽을 수 있다. 처음으로 민주적 방식으로 진행된 이 대선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 있는 국민들에게도 희망을 선사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니는 1958년 독립 이후 60년간 단 3명의 대통령(아메드 세쿠 투레, 란사나 콩테, 알파 콩데)만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비전을 믿고, 나라를 떠났던 이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영유하고 가족들과 함께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음식, 언어, 문화, 종교에 대한 향수를 토로하면서 말이다.

콩데 대통령의 고등교육관련 자문을 담당했던 알파 아마두 바노 바리 UGLC 사회학자 역시 기니에서 여러 번 ‘귀향’ 열풍이 불었다고 전했다. “세쿠 투레 독재정권이 끝난 1984년, 기니로 돌아온 사람들은 꼭 부유계층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망명자였고, 투레 대통령 서거 이후에서야 길이 열렸다고 느꼈던 것이죠.” 기니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쿠 투레는 1958년 당시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에 대항했고, 반대세력을 억압하고 고문을 합법화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독재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투레의 독재정치가 끝나고 ‘역 두뇌유출’ 현상이 일어나자 경제적, 사회적인 변화도 생겨났다. “2000년대 이후로는 상황이 조금 달라집니다.” 사회학자 바리가 말했다. “해외에서 공부를 마치고 기니로 돌아온 사람들은 고위직 자녀들이었죠. 부모가 기니에서 고위직에 종사한다는 사실이, 이들로 하여금 현지 노동시장에 용이하게 진입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누렸던 것은 아니었다.

“방해세력이 많았습니다.” 드라메 UGLC 법과대학 부학장이 말했다. “그들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중간에서 훼방을 놓더라고요. 이곳 교사들 대부분이 학사학위 소지자이고, 석사가 최고 학력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나타난 고학력 유학파들을 위협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의 열망과 현지 고용주들이 희망하는 바는 대개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 ‘귀향한 인재들’은 대부분 학위가 있고, 부유한 가정 출신이다. 이들은 현지로 와서 금융, 통신, 제약, 건축분야의 매니저, 엔지니어, 간부 직책을 맡게 된다.

‘이주한 인재(고국으로 돌아올 의지 없이 해외에 정착한 사람)’와는 다르게 ‘귀향한 인재’들은 자국에서 이해받기 어렵다. 귀국에 대한 갈망과, 고국을 떠나본 적 없는 기니 사람들의 해외이주에 대한 선망이 충돌하는 것이다. ‘귀향한 인재’들은, 계획에 의한 귀국이든 아니든 주변 사람들로부터 ‘패배자’로 간주되곤 한다. ‘이주한 인재’는 가족들을 재정적으로 부양하는 역할을 맡지만, ‘귀향한 인재’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측근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심지어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수년간의 해외생활을 통해 익숙해진 관습(시간 개념, 취미 등)이 본국에서는 생소한 것들이라 이방인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2010년 대선 캠페인이 한창이던 때, 콩데 당시 후보자는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아프리카, 유럽, 미국에 유출된 기니 인재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제일 많은 도움을 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해외에서 다른 나라에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 기니에는 할 일이 천지에 널려 있습니다.”(8) 콩데 당선인도 파리에서 수십 년간 거주한 경험이 있으며, 이주한 인재들의 귀환을 우선 과제로 꼽았다.

하지만 연설 이후 이들을 위한 어떤 도움도 확인된 바가 없다. ‘재외국민들을 위한 내각’이란 외침은 의미 없는 메아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드라메 UGLC 부학장은 보수적인 국가인 기니를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이를 방해하는 사람에겐 처벌을 가해야 합니다. 현재 국가는 어떤 처벌도 가하지 않고 방관만 일삼고 있습니다. 이주했던 인재들이 고국으로 오는 일이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나는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고 귀국한 가봉인, 지부티인, 코트디부아르인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상에 가깝다. 이를 증명한 그 어떤 자료도 없기 때문이다. 2017년 14명의 기니인들이 프랑스로부터 보조금을 지급받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같은 혜택을 입은 알제리 사람의 수는 훨씬 많다.(9) 모하메드 라민 방구라 헌법재판소 부소장 역시 해외에서 학업을 마친 후 기니로 돌아왔다. “관공서에서는 유학파들을 채용하는 데 망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하메드 부소장이 말했다.

“민간 분야에서는 상황이 좀 다르지만, 모든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 고용 안정성, 복지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고 싶어 하죠.” 그는 민족적 성향이 짙은 관공서에서 ‘귀향한 인재’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특별채용 및 인맥이라고 인정했다.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은 인맥이기 때문에 현지에 지인이 꼭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돌아온 기니인들의 대부분이 민간기업으로 향한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민간기업은 학벌과 실력으로 채용하기 때문에 해외학위가 있다면 큰 이점이 됩니다.” 그는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을 구별해서 말했지만, 사실 사기업에서도 인맥은 중요하다. 이처럼 국가행정이 부패로 타락한 채 머물러 있는 한, 국가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뇌물이 관례처럼 굳어진 군대와 경찰 조직을 통제할 때만이 비로소 정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도시를 벗어나면 보건, 교육, 전기, 물 공급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기니 고용진흥청(Aguipe)은 뻔뻔하게도 국민들에게 민간기업을 알아보라고 권유한다. 4월 말에 파리에서 기니인들의 창업가 정신 및 고용 박람회가 개최됐다. 이번 박람회는 프랑스 내 기니청년협회가 기니 정부와 기니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볼로레, 오렌지 등의 대기업과 공동으로 주최했다. 박람회에 참석한 대기업들은, 해외에서 공부를 마친 인재들 가운데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청년들에게 마치 일자리의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기니 출신의 한 학생은 정부를 향한 신랄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국가 행정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기니 내 그 어떤 기관도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기업들은 그들 멋대로 행동합니다.” 그는 우려를 표했다. “정부는 해외에서 공부한 인력이 공공기관에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민간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현재로서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 국가행정의 선진화와 관련된 포럼도 개최해야 합니다. 지금 전 세계는 ‘창업가 정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0% 세금면제 혜택을 주고 해외기업들을 초청하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는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바탕으로 이뤄진 발전이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귀향한 인재’들은 기니 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민족주의의 선입견과 충돌한다. 란사나 콩테 정권이 이 문제점을 자신의 권력 유지의 도구로 잘 활용했다. 콩데 역시, 대선 캠페인 때 내세웠던 공약과는 달리, 정치 경제적으로 기니가 취약해질수록 민족주의를 더욱 내세웠다. 코나크리 거리만 걸어도 이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사안인지 알 수 있다. “민족 없는 기니, 평화를 위한 협력”이란 문구가 쓰인 벽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선거철에 일부 후보들은 자신들이 민족 대표로 나왔음을 공공연하게 밝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기니의 선거 지도를 보면 지역별, 민족별로 확연히 나뉜다.(10) 기니 사회가 ‘귀향한 인재들’에게 이토록 배타적인 것도 놀랄 일이 아닌 것이다.

풀라니족은 피해를 많이 입은 부족이다. 기니 내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민족이었지만, 이제는 희생양에 지나지 않는다. 풀라니족이 정권을 잡아 경제, 학문, 종교계에서 권력을 가지게 되면 영원히 놓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확산됐는데, 이는 세쿠 투레 전 대통령이 퍼뜨린 소문이었다. 그는 반대세력을 잠재우고자 풀라니족을 향한 음모를 꾸며 이런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프랑스에서 10년 이상 통신업계 요직에 있었던 세이두 디알로 씨는 2016년에 기니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그의 성에서 알 수 있듯 그는 풀라니족이었다. 이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행정체계 선진화를 위해 일하기를 원했었다.

“저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어요. 나는 유리한 이름을 가진 것도 아니고, 힘 있는 부족출신도 아니며, 좋은 인맥도 없다고 말이죠. 우리 사회는 그 사람의 능력보다는 출신과 인맥을 먼저 봐요.” 그가 설명했다. “사실 오늘날 정계에 있는 사람들은 란사나 콩테 혹은 세쿠 투레 정권 때 있었던 사람들의 자손입니다. 결국 저는 1년 만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고 그 누구도 저에게 일자리를 추천하거나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어요.”

또한 ‘귀향한 인재’들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여전히 권위적인 국가에서 살아야 한다. 2017년 국제앰네스티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안보군은 시위대에 대항하기 위해 과도한 무력을 행사했다. 또한 정부에 이의를 제기하는 기자, 인권수호자들은 모두 체포됐다. 정작 정부는 범법자들은 방관했으며, 적절한 주거권조차 보장해주지 않았다.”(11)
디아카 카마라는 미국 휴스턴에서 언론인 전문 교육을 이수하고, 2006년에 학위를 취득한 후 2011년까지 미국에서 근무했다. 란사나 콩테 대학(UGLC)의 티에르노 아마두 드라메 법과대학 부학장과 마찬가지로, 알파 콩데 대통령의 호출을 받고 기니로 귀국했다. 그녀는 코나크리에서 CBC Worlwide 기업을 창업하고, 기니에서는 처음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기니판 America’s Next Top Model”을 방영할 예정이다. 예고편에는 가난, 부패, 오염과 같이 일상에서 목도되는 불행은 빠진 채 풍부한 자연경관과 해변을 자랑하며 마치 낙원과도 같은 기니의 모습만 담겨 있다. 카마라 씨는 기니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저는 총리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에볼라 사태 이후 경제 재건에 힘쓰는 관계자들에 대한 현장보도를 담당했죠.” 이런 식의 눈감아주기 행태는 다국적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콩데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이자 입찰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프랑스 최고의 물류기업 회장, 뱅상 볼로레 사건이 그 예다.

이 ‘귀향한 인재들’을 위한 다른 길이 있기는 하다. 바로 공개입찰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법이다. 티에르노 일리사 발데 씨는 세계은행에서 자금을 조달받은 교육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독립 관리부서도 개설됐습니다.” 티에르노 씨가 설명했다. “프로젝트는 보건, 교육, 농업, 광산, 에너지, 인프라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귀국한 인력들은 전문성을 발휘하기 좋은, 이런 형태의 업무를 선호한다. 그리고 온라인 구인공고를 보면, 준비가 미흡한 국내 지원자들보다는 해외 경험자를 선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 채용 비리의 리스크가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는데, 이유는 자금조달 담당기관에 위임된 관계자들이 직접 채용 절차를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해당 직종은 고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행운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기니중앙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받고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다. 게다가 IMF와 기니중앙은행은 채무국의 부채부담을 가중하고 이들의 불안정한 재정상황을 악용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미국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와 ‘귀향한 인재들’로 인해 국가현실과는 동떨어진 개발이 이뤄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니는 올바른 발전 방향성과 정책 안정성을 제공하고 있는가? 말리, 코트디부아르, 기니비사우 같은 접경국가와 마찬가지로 선거 때마다 이의를 제기하는 반대세력과 유권자는 존재한다. 하지만 주변 국가들이 겪은 (특히 1990년대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을 폐허로 만든) 내전의 피해는 지금까지 없었다. 또한,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코트디부아르에서 발생한 반군에 의한 내전이나, 2004년까지 세네갈에서 일어난 카자망스 분리독립 운동 역시 겪은 바 없다. 하지만 사회적 분쟁은 끊임없이 발생했다. 2007년 높은 물가에 반발해 발생했던 대대적인 파업이 대표적인 예다. 이때 당시 대통령은 시민들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총리를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기니는 과거 프랑스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 역내 국가들과는 경제적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데, 프랑세파 화폐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정치적, 금전적으로 프랑스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58년 프랑스와의 관계를 끊은 후, 독립 후의 역사가 새롭게 쓰이고 있다. 프랑스는 기니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기니는 소중하게 얻어낸 자유를 지키려 고군분투했다.(12) 코트디부아르, 세네갈, 말리가 프랑스와 각각 2번째, 4번째, 6번째 무역상대국인 것에 반해, 기니는 11번째를 기록하며 프랑스와의 경제적·정치적 관계 악화가 심화됐다.

만약 정부와 언론이 이 현상에 대한 명확한 수치도 없이 ‘돌아온 인재들’을, 국가재건을 선전하기 위해 악용한다면, 여전히 많은 기니인들이 고국을 불법적으로 떠날 것이다. 이들은 빈곤과 부패, 정치적 압박, 위생문제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2014~2015년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에 불어 닥친 에볼라 바이러스는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이 때문에 기니는 프랑스 망명신청 건수 6위 국가로 등극했다.(13)    

 

글·압둘 살람 디알로
낭테르 파리 10대학 현대사 박사
글·라파엘 고드쇼
기자

번역·장혜진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KT, KOICA, SBS 등에서 통번역을 했다.

(1) 미국 상원의원 윌리엄 풀브라이트(1905~1995), UN 창설과 다자주의에 옹호적이었던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국제 교환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미국 국무부와, 파트너 국가와 공동으로 1년에 160개국을 대상으로 8,00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풀브라이트는 매카시즘과 베트남 전쟁을 반대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2) Gilles Nivet, ‘La Guinée, d’un putsch à l’autre(기니 젊은 쿠데타 장교, 달변-학살의 두 얼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09년 11월호.
(3) Saskia Sassen, ‘Mais pourquoi émigrent-ils?(그러나 왜 그들은 이주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0년 11월호.
(4) Larbi Amine, ‘OIM: Le Maroc 4een Afrique en matière dep lacement des “repats”(국제이주기구(OIM): ‘귀향하는 인재들’의 취업률, 아프리카 내 4위)’, Conseil de la communauté marocaine, 2015년 6월 8일, https://www.ccme.org.ma
(5) Julie Vandal, ‘Nigeria, le Far West des repats(나이지리아, 귀환하는 인재들에겐 먼 서쪽나라)’, <Radio France Internationale>, 2012년 2월 28일
(6) 마리 매콜리프 및 아드리앙 키팀보, 『아프리카 이민: 수치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 세계경제포럼, 2018년 6월 29일, https://fr.weforum.org
(7) 자료출처: 세계은행, https://donnees.banquemondiale.org
(8) Alpha Condé, “En Guinée, tout est à faire(기니에는 할 일이 천지에 있다)”, <Le Figaro>, 2010년 11월 16일
(9) 2017년 활동 보고서, OFII(프랑스 이민, 통합사무실), www.ofii.fr
(10) ‘Observer les élections présidentielles de 2010 en Guinée’, The Carter Center, 2010; Joan Tilouine, ‘Guinée: Alpha Condés ur tous les fronts avant l’élection’, <르몽드>, 2015년 1월 22일.
(11) 2017년 기니 인권, www.amnesty.org
(12) ‘Opération Persil’, dans ‘Complots. Théories… etp ratiques’(‘음모, 이론… 그리고 실행’ 중 ‘페르실 작전’), <마니에르 드 부아> no.158, 2018년 4~5월호.
(13) 2017년 망명신청자 지도, Cimade, 2018년 4월 9일, www.lacimade.org

 

볼로레 그룹에 대한 재언급


2018년 4월, 볼로레 그룹의 총수인 뱅상 볼로레 회장이 해외자금 횡령, 배임, 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은 업계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2011년, 볼로레 트랜스포트&로지스틱스 그룹은 기니 코나크리항 컨테이너 터미널 현대화 프로젝트를 수주했는데 이는 많은 논란을 야기했고, 2018년이 되어서야 프랑스 신문 ‘일면’에 게재됐다. 그러나 거의 11년 전쯤(2008년 2월 11일판) 기니 주간지 르 랭스(Le Lynx)는 편집장 술래만 디알로(직업 정신이 투철했던 기자로 잘 알려져 있다.)의 서명하에, 란사나 콩테 정부가 볼로레 그룹을 입찰 경쟁에 부치지 않고 코나크리항 사업권 양도를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자, 정부는 결국 공공조달 입찰 수주과정을 준수했다. 결국 기니 기업 네코트랜스(Necotrans)가 계약을 따내게 되었다. 그러나 2010년, 볼로레 회장과 친분이 있던 알파 콩데는 자금난에 허덕이던 네코트랜스의 코나크리항만 프로젝트 관리 권한을 박탈했고, 이에 사업권은 볼로레에 넘어갔다. 네코트랜스는 긴 싸움에 돌입했다. 우선, 아프리카비즈니스 법률조화기구(OHADA)의 중재재판소와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프랑스 최고재판소까지 이어져 결국 2018년 4월 볼로레 회장이 기소됐다. 그러는 동안, 네코트랜스는 결국 파산 신청을 했다.


글·압둘 살람 디알로
낭테르 파리 10대학 현대사 박사
글·라파엘 고드쇼
기자

번역·장혜진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KT, KOICA, SBS 등에서 통번역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