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페론 유령’ 벗어날까

2018-12-31     르노 랑베르 |

2015년 11월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당선되자 금융계는 열광했다. 오랫동안 국제시장이 외면했던 국가에서 기업 CEO 출신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그는 다보스 포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3년 후, 아르헨티나를 휩쓴 새로운 경제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원조’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파이낸셜 타임즈>에 의하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릴’(1) 것으로 기대됐던 대통령 취임자는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또다시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아르헨티나 특유의 숙명에 걸려들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경제성장곡선은 때로 급격한 변화를 보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상승했다가 하강하는 곡선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경제성장곡선의 파동은 매우 강렬하다. 2002년 10.9% 하향, 2003년 8.8% 반등, 2007년에는 7.7%로 정점을 찍고 2009년 0%, 2011년 다시 7.9% 상승, 2012년에는 겨우 1% 상승했다. 지난 60여 년간 아르헨티나는 4차례의 채무 불이행, 26회에 이르는 IMF와의 구제금융 협상, 그리고 극도의 인플레이션을 두 번 겪었다.

1983년, 경제학자인 마르셀로 디아망은 20세기 초부터 나타난 이런 반복되는 위기를 분석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불안정은 지금으로서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두 분야의 정치적 갈등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설명된다. 그는 아르헨티나가 국가라기보다는 일종의 시계추라고 본다. 좌우로 흔들리는 시계추의 움직임에 따라 마크리의 대선, 그의 경제 정책의 실패, 그리고 2019년 대선의 쟁점이 설명된다. 

혼란한 상황의 한쪽은 아르헨티나의 식민지 시대와 함께 시작된 농축산업 분야다. 이 분야에서는 가축들이 번식하는 것을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남미의 놀랍도록 비옥한 팜파스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수출 덕분에 수익은 계속해서 넘쳐난다. 이런 부를 독점하는 과두제 대지주들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면서, 스스로를 유럽인으로 여긴다. 그들은 유럽에 자녀를 보내서 교육시키고, 의복과 가구, 사상을 유럽에서 들여온다.

다른 한쪽은 대지주들과는 구별되는 도시의 서민들로서, 대부분 피부가 거무스름하다.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20세기 초 남미의 다른 지역들보다 일찍 등장한 제조업과 더불어 출현했다. 비옥한 토지 덕분에 농업 분야가 경쟁력을 갖춘 반면, 산업은 심각한 수준의 정체돼 수출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공장기계 같은 생산설비 조달을 위해서는 외화가 필요하다. 달러와 파운드를 긁어모을 유일한 분야는 농업이다.

 

아르헨티나의 시계추를 움직인 페론 대통령

그러나 어떤 이윤도 남지 않고, 그저 가난한 이들이나 부지런히 일하는 산업에 참여할 것인가? 이탈리아 카라라산 대리석, 무라노 크리스탈, 프랑스산 조각품 같은 유럽산 자재들로 건축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저택에 거주하는 과두제 대지주들에게 이런 생각은 오랫동안 웃음거리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이 등장했다. 육군 대령이었던 페론은 1943년 노동복지부 장관을 거쳐 1946년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때부터 아르헨티나의 시계추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르헨티나 인구는 30년도 지나지 않아 2배로 증가했고, 50년 동안 4배가 증가했다. “노동력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농업 모델로는 더 이상 인구 증가와 추가 고용에 대처할 수 없었습니다.” 역사학자인 마리오 라포포르의 설명이다. “1930년대에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 최대 농산물 수출국가들 중 하나였지만, 국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경제학자 브루노 수사니가 덧붙인다.(2)

1946년 5월 28일, 페론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교역 진흥청(IAPI)’을 창설했다. 이 기관은 국내경제를 개편하고 대외무역을 국유화하기 위해 설립됐다. 그러나 경제학자인 호세 스바테야와 파쿤도 바레라의 상세한 설명에 의하면, IAPI는 보다 폭넓은 영역에 관여하고 있다. 상업 부문에서는 수출용 곡물을 생산자로부터 구입했다. 재정 부문에서는 공업 생산에 필요한 자본금 취득을 위해 기금을 제공했다. 국내 시장의 규제와 관련해서는 팔고 남은 재고품들을 구입해 몇몇 주요 식료품 가격과 산업 분야의 이윤율을 정했다.(3)

동시에 페론 대통령은 대규모의 소득 재분배를 실시했고, 의료보험을 시행했으며, 유급 휴가, 퇴직 연금, 산재보험, 여성 투표권을 도입했고, 교육과 주택보급을 확장했다. 몇 년 만에 페론 대통령을 향한 지배층의 증오는 견고하게 다져졌고, 이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1955년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다. 그들은 IAPI를 폐지했고, 노동자 계층이 성장하고 결집하는 데 공헌한 산업 기반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페론은 이미 민중들에게 지배층에 맞서 투쟁할 힘을 주었고, 정세는 이미 변한 후였다.

지난 70여 년간 아르헨티나의 시계추는 농업과 공업, 즉 과두제 대지주들과 페론이 ‘민중’이라고 부른 이들 사이를 반복해서 오갔다. 1955년, 1966년, 1976년에 규칙적으로 쿠데타가 발생해 공업 발전의 혁신적인 시도들을 가로막았다. 1983년 민주주의 시대가 복귀했으나, 이번에는 신자유주의가 과거 군부독재의 로드맵을 강제하는 역할을 맡았다. 심지어 1989년에서 1999년 사이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임기 하에서는 페론주의 소수파 중 일부가 신자유주의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번 위기는 과거에 반복된 단순한 위기들 중 하나가 아닙니다. 이번이 마지막 위기가 될 것입니다.” 마크리 대통령은 2018년 이렇게 선언한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정치는 마치 백지상태의 연속인 것처럼 보인다. 1976년 군사정권 하의 경제부 장관인 호세 알프레도 마르티네스 데 오스는 이미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이번 일은 단순한 변화가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지난 몇 년간 겪었던 수많은 변화들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아르헨티나의 정치, 경제, 사회 부문에서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습니다.”(4) 약 30년 후, 좌파 페론주의자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2003~2007)은 독재 시대는 물론, 민주주의로 복귀한 이전 대통령들까지 망라한 ‘어두운 시대’와의 결별을 약속했다: “우리는 1976년에 시작돼 2001년 내부에서 폭발하면서 우리를 파탄으로 이끈 악순환에 종말을 고하고 있습니다.”(5)

 

 

곡물 보호덮개는 농장주를 투기꾼으로 만든다

대규모 농장 경영주들을 대표하는 기관인 아르헨티나 농업협회(SRA) 다니엘 펠레그리나 회장은 우리를 협회 사무실로 맞아들였다. 어쨌거나 회장은 낙관적인 모습이었다. 협회 건물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보행자 도로변의 현대식 건물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석재로 된 건물 정면에 꽃문양으로 장식된 넓은 창들과 돌출형 발코니가 보였다. 거대한 출입구가 조금씩 열리자 양옆으로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포치가 나타났고, 우리는 포치를 가로질러 현관에 이르렀다.

그러자 마치 거인들을 맞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계단으로 시선이 쏠렸다.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계단을 올라가면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20m 높이의 천장으로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계단 아래쪽에는 쏟아져 내리는 빛 가운데 청동 흉상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1866년에 SRA를 설립한 호세 마르티네스 데 오스의 흉상이었다. 그는 1976년 군사정권 시절 경제부 장관의 할아버지였다.

“우리는 신뢰를 회복했습니다.” 2018년 7월 28일 제132회 농업 박람회 개막식에서 대통령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기 전에 펠레그리나 회장은 열광적으로 말했다. 에두아르도 두알데 임시 대통령이 2002년에 도입한 수출세를 마크리 대통령이 폐지하지 않았던가? 수출세는 1950년대 중반에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안된 조치로서 ‘원천징수’라 불렸다. 첫째는 농업부문이 국가재정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소비자의 바구니 물가를 내리는 것이었다. 국가는 사실상 국내에서 소비하는 것과 같은 상품들을 수출했다. 물가조정 기구의 부재로 아르헨티나 정육점의 소고기 가격은 국제시장에서 유통되는 가격을 따라갔다. 이는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너무 높은 가격이었다. 원천징수(키르치네르 대통령 재임 시 1달러당 약 30센트에 해당함)는 내수 시장에서 수출 품목들의 가격을 기계적으로 낮췄다.

펠레그리나 회장은 원천징수가 사유재산제도의 원칙을 짓밟는 ‘부당한’ 장치라고 평가한다. 아르헨티나 농업협회(SRA)로서는 사유재산제도란 매우 엄격하게 다뤄야 하는 것이다. 사유재산제도는 농장 경영주들에게 거대한 권력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들이 소유한 팜파스의 크기는 권력과 비례한다. 거대한 흰색 덮개로 이미 수확한 대두를 보호한다. 이 보호덮개 덕분에 곡물을 1년까지 보존할 수 있고, 농장주는 투기꾼으로 변신했다. 그는 최상의 가격에 이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고, 달러의 가치가 가장 높을 때를 기다려 상품을 유통한다. 국내에서 외화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그에게는 더 유리해진다. 달러가 국내에 적게 유입될수록 시세는 높아지고, 농산물 수익도 올라간다.

펠레그리나 회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만났다. SRA 회장은 마크리 대통령의 2018년 7월 연설을 지지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문제가 “국가 생산력이나 경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무리한 목표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해결책은 농업부문에 대한 지원을 국가 예산에 맞추는 것이다. 2018년 9월 3일의 연설에서 마크리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달러 있습니다! 유로도 있습니다! 환전하세요!” SRA 사무실 창문 아래의 분위기는 그리 유쾌하지 않다. 국내 통화 가치가 압력을 받을 때마다, 무허가 환전 투기꾼들이 시내 한복판에서 우후죽순 생겨난다. 사람들은 그들을 ‘어린나무들(Arbolitos)’이라 부른다. 2018년 1월에서 9월 말까지 페소의 시세는 118% 추락해 이미 인플레이션으로 썩어들어간 구매력을 절단낼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 인플레이션은 50%에 가깝다.  

 

미국 달러의 20%가 아르헨티나에?

아르헨티나에서 자동차와 주택은 바로 외화로 지불된다. 무허가 환전이나 환전소, 미국 달러 계좌를 통하지 않는 경제활동은 드물다. 최근 일간지 <클라린> 2018년 10월 22일 자에 의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미국에서 유통되지 않는 달러화의 20%가 아르헨티나에 있다고 예측했다’고 한다. 한편, 경제학자 산티아고 프라스키나는 마크리 대통령의 당선 이후 시중에 유통되는 금액 중 약 1,090억 달러가 유출됐다고 추산한다. 이는 2017년 아르헨티나 국내총생산(GDP)의 약 1/6에 해당하는 액수다.(6) 예금자들이 불안해함에 따라 이런 출혈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면서 달러 유출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런 악순환에 직면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2007~2015) 전 대통령은 2011년 환전 규제를 통해 달러화의 유출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마크리 대통령은 투기 목적의 투자자들에게 천문학적인 이자율을 제공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2018년 10월에 이자율은 70%에 가까워졌다. 어제 빌린 돈을 상환하려면 또 다른 대출을 해야 하는, 일명 눈덩이 효과가 자리 잡게 됐다.

기업 CEO였던 대통령은 처음에는 국제 금융시장의 호의를 기대할 수 있었다. 금융시장은 그들의 품으로 돌아온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귀환을 환영했다. 그러나 그는 절제를 몰랐다. <파이낸셜 타임즈> 2017년 10월 19일 자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마크리 대통령 당선 이후 아르헨티나 정부는 다른 어떤 신흥국들보다 많은 돈을 빌렸다.”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 재임시절 경제부 장관이었던 악셀 키실로프는 “2년 동안 빌린 돈이 약 1,000억 달러에 달한다”고 확인해줬다. 2015년 아르헨티나 국내총생산(GDP)의 40%에 해당했던 부채는 2018년 한 해 동안 20%나 상승하더니, 이제는 75%를 넘어섰다.

“현 정부의 정책은 1990년대 통용되던 방안들로부터 비롯됐습니다. 그 시절에는 금융 세계화로 주변국들이 금융자본을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키실로프 전 장관이 말을 이었다. 2015년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8차례에 걸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고, 이는 투자자들의 발길도 돌리게 했다. 곧 국가부채는 급속히 증가해 가장 모험적인 투자자들조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을 청하게 됐고, 570억 달러라는 IMF 역대 최대 금액의 원조를 받아냈다. 1990년대 말의 아르헨티나의 경험을 통해 그리스인들은 자신을 기다리던 악몽을 보고 나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키실로프가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만약 국가 예산을 삭감하고 이자율을 높인다면, 이는 경제의 목을 조르는 것입니다. 인플레이션과 부채가 늘어나는 것처럼, 실업자가 늘어나고 빈곤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닙니다.”

자유주의자들이 긴축재정에 대처하는 방식은 추가적인 긴축 처방일 것이다. 2018년 10월 친정부 일간지 <클라린>은 마크리 대통령의 예산삭감을 ‘전대미문’이라고 표현했다(2018년 10월 23일). 교통 및 에너지 보조금의 폐지(혹은 삭감)는 생활비의 갑작스러운 증가를 야기했다. “상당수의 은퇴자들은 이제 가스비 납부에 퇴직연금의 절반이나 지출하게 됐다”고 경제학자 스바테야는 지적한다. 2017년 9월에서 2018년 9월 사이 공산품 생산은 11.5% 감소했다. 이미 침체된 경기는 긴축과 더불어 악화됐다. 2015년 12월 17일 시장에서 페소화가 요동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둔 결정으로, 페소화는 하루 만에 달러 대비 약 40% 하락했다. 그 결과 빈곤율은 1년 동안 전체 인구의 29%에서 33%로 늘어났다. 농산물 수출업자들의 수익은 24시간 만에 40%나 증가했다.(7)

2018년 10월 몇몇 국회의원들은 대지주들에게 지금까지 면제됐던 재산세를 납부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 안은 채택되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수출세(원천징수)를 다시 시행할 것을 요구했고, 마크리 대통령은 수출세가 ‘합리적인’ 선에 머무르도록 협상했다. 미국 달러화 시세의 변화와는 독립적으로 달러당 4페소. ‘각자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라고 펠레그리나 회장은 그 정당성을 주장한다.  

아르헨티나 농업협회(SRA) 방문 전날, 다양한 사회단체들과 노동조합들은 정부 정책을 규탄하기 위한 대규모 집회를 조직했다. 그러나 집회는 경찰에 의해 진압됐다. 마크리 대통령 정권이 시작되면서 경찰은 곤봉과 고무탄환 사용을 허가받았다. 우리가 집회에 대해 언급하자 펠레그리나 회장은 대부분의 대중매체에서 다루듯 시위대가 집어던진 돌멩이만을 기억하는 것처럼 반응했다. 그는 어제의 사태가 집회와는 무관하고 그저 “무정부주의적 관점으로 국가를 위태롭게 만들려는 과격 행동주의자들이 대대적으로 조직한 폭력 행위”일 뿐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2008년에 일어난 집회들에 응답하듯 말입니까?”라고 우리가 질문했다.

그 무렵 농업 생산자들은 ‘원천징수’ 수출세를 높이려는 법안에 반대하면서 마찬가지로 길거리로 나왔다. 농업 1차 생산물의 시세가 급등하는데 아르헨티나에서 농장 경영주들만 이득을 보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정부는 아니라고 봤다. 그러자 아르헨티나 농업협회(SRA)와 그들의 동업자들은 129일 동안 점거시위를 벌이면서 도시 중심부로의 식료품 공급을 막았다. 특히 극우파 무리들이 시위자들을 지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집회는 수많은 폭력행위들로 점철됐다.  

펠레그리나 회장은 우리의 질문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곧 얼굴을 붉혔다. “그건 전혀 관련이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했던 시위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콤바인을 몰고 행진했던 프랑스 농업인들의 투쟁 같은 거란 말입니다!” 우리는 그가 말하는 시위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식 건축’을 자랑스럽게 뽐내는 거대한 사무실의 천장 장식 아래에서, ‘회장님’의 발언은 아르헨티나 상류층에서 폭넓게 공유되는 신념을 반영한다. 즉, 유럽인들과 유사하다는 것은 문명 쪽 진영에 가담했음을 보장한다. 길거리의 ‘거무스름한 사람들’로서는 접근이 불가능한 특권이다.

 

그들에게 비장의 무기는 ‘노동조합’

지주들에게나 어울리는 경제모델을 받아들일 마음이 거의 없는 ‘거무스름한 사람들’은 페론의 집권 이래 스스로를 보호하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다름 아닌 노동조합이다. “페론 정권하에서 사회의 영웅은 군인이나 신부가 아니라 노동자였습니다.” 노동조합총연맹(CGT)의 연방노조 대표인 오라시오 길리니의 설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폭넓은 의미의 ‘노동자’입니다. 페론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모든 시민은 노동자입니다. 근로자들은 물론이고, 은퇴자들, 학생들, 실업자들 또한 현재 휴업 중인 노동자들입니다. 기업가들도 착취만 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페론의 노력들은 노동조합에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페론주의는 국가 관리주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들-페론주의자들의 용어로 ‘자유민중조직’은 임금생활자들과 경영자들로부터 분담금을 거둬들인다. 이 금액 덕분에 노동조합은 구성원들에게 탁아소, 운동 용품들, 관광호텔 등을 제공한다. 관리인 노동조합은 심지어 유일한 좌파 전국일간지인 <파히나12>라는 신문도 보유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구성원의 가족들에게까지 ‘사회사업’을 확대 시행하는 사회보장제도와 퇴직기금을 관리한다. “4천만 명의 아르헨티나인들 중에서 거의 2천만 명이 노동조합의 사회사업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조합원인 네스토르 칸타리뇨는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설명했다.(8)

항공 조종사 조합원 책임자인 파블로 비로씨가 덧붙인다. “이는 우리에게 엄청난 힘이 됩니다. 심지어 국가와 맞설 때도 우리에게는 다른 나라의 노동조합에는 없는 행동력이 있습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행동과 규율입니다.” 한 장의 사진을 찾으면서 그는 우리에게 말했다. “저희 노동조합은 ‘토탈’에서 일하는 한 달 월급이 7,000달러인 조종사들과 400달러를 겨우 버는 다른 조종사들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종종 서로 연대하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일 노동조합이므로 설사 행동에 동참하는 것은 자유라 할지라도, 그에 따른 결과는 감수해야 합니다. 2005년 우리는 총파업에 참여하기로 선언했습니다. 16명을 제외한 모든 조합원들이 참여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가 보여준 사진은 노동조합 건물 입구 바닥에 부착된 대리석판이었다. “바로 문 앞에 있어서 보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는 대리석판에 적힌 문구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2005년 7월 7일, 항공조종사 노동조합은 48시간의 전적인 업무 중지를 선언했다. (…) 우리 자녀들과 그 자녀들을 위해, 그리고 다음 세대의 모든 조종사들을 위해 (…) 우리는 여기에 조종사 공동체에 등을 돌렸던 이들의 이름을 기록한다.’ 16명의 이름이 그 뒤를 따랐다.

라틴 아메리카 전문가인 알랭 루키에의 서술에 의하면, 페론이 등장하기 전 “국민주권과 투표는 철저히 기존 지배층의 대표자들에 의해 좌우됐다. 이들은 내무부 장관인 에두아르도 와일드와 함께 ‘보통 선거는 보편적 무지의 승리다’라는 생각을 멈춘 적이 없다.”(9) 과두제 대지주들은 시민보다 자본가들을 선호하고, 페론은 ‘노동자’를 선호한다. 한편,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민주주의보다는 사회적 정의의 요청인 경우가 많다”고 갈리니는 평가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투쟁은 ‘책에 쓰인 사회주의’의 표준규범을 그대로 준수하는 식의 왕도를 따르지는 않는다. ‘자유민중조직’은 인기전술, 권위주의, 수직적 조직문화, 기회주의, 이기주의, 불투명성, 부패 혹은 협박 등의 결함을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항공사 노동조합의 사례에서도 그랬다). 이런 지적에 대해 우리가 만난 조합원들은 흔쾌히 인정한다. 이들은 오히려 이런 유형의 일탈이 없는 상태에서 권력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반문한다. “페론주의는 권력 쟁취를 위한 조직이지, 순수한 이데올로기 수호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스바텔라는 요약해서 말했다. 활동가들은 순수함과 효율성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반대 진영도 마찬가지다. 2018년 4월 28일 잡지 <노티시아스>의 조사에 의하면 현 경제부 장관인 니콜라스 듀호브네는 마크리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합법적 탈세를 시행했다. 대통령의 이름은 ‘파나마 페이퍼스’에도 등장한다. “취임 후 첫 몇 개월부터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은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유리한 일련의 사안들을 결정했다”라고 가브리엘라 세루티 기자는 <빅 마크리(2018)> 탐사보도에서 밝혔다. 그녀는 여러 사례들 중에서 ‘라포스트’사의 부채 탕감을 인용했다. ‘마크리 대통령 가족이 소유한 이 회사는 국가에 700억 페소(원화 약 6조4,000억 원)를 갚아야 했다.’ 마크리 차기 대통령은 선거 전에 세루티 기자에게 말했다. “우리 회사 같은 대기업에 있어 지나간 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회사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개발 사업들을 시작하겠습니까? 또 얼마나 많은 자동차를 추가로 생산해 내겠습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경제에 전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것입니다.”

 

“부패는 모든 영역에 존재한다”

그러나 신문을 보면 부패는 마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의 전유물인 듯하다. 주요 신문들(과두제 대지주들이 통제하는)은 전 대통령 문제나 전 대통령 동료인 상원의원들이 그녀의 면책특권을 박탈할지 말지를 정할 사법 절차에 관해 여러 면에 걸쳐 다루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페론주의자들의 깃털이 안데스산맥 꼭대기의 흰 눈처럼 새하얗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의당(PJ, 페론주의 정당)의 한 고위층이 우리에게 설명했다.

“부패는 모든 영역에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저와 함께 투쟁한 한 친구가 병원 책임자 자리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그가 병원에 페인트칠을 해야 할 때, 그는 저에게 일꾼들을 데려오라고 제안하면서 제가 수령할 금액의 10%를 자기에게 되돌려 달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대개 이런 식입니다.”

2019년 10월 대선을 전망하면서, 조합원 호세 루이스 카사레스는 “권력층, 법조계, 그리고 대중매체들은 부의 재분배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부패와 연결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으로서는 대선 후보가 아니지만, 마크리 대통령이 주요 정적으로 여기는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에게 투표한다는 것은 공금횡령을 승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어떤 유권자들에게는 브라질의 경우처럼 이런 주장이 먹혀들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은퇴했지만 매달 공과금을 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정기적으로 직업 활동을 해야만 하는 우고 다만스씨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사람들은 전 대통령이 도둑질을 했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녀가 몇몇 사람들에게 커미션을 요구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노동자들이 볼 때는 그녀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제공했습니다.”

페론주의자들로서는 이제 협상을 해야 하는 때다. 페론주의 지도층인 마리오 디에게즈가 웃으면서 설명한다. “우리는 공약을 정하지 않습니다. 정당대회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토론을 합니다. 우선 우리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적용할 공약들을 결정할 겁니다.” 정의당(PJ)이 1989~1999에 재임한 신자유주의 페론주의자 대통령이었던 카를로스 메넴의 계승자 미겔 안젤 피체토를 대선후보로 내세울지, 혹은 전 대통령이었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를 내세울지에 따라 전망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2015년처럼 페론주의자들이 분열돼 여러 명의 후보를 낼지도 모른다. 전 대통령과 그녀의 측근들이 권력을 잡은 모양새가 군주제를 연상시켜서 사람들 눈에 거슬리곤 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클라우디오 카츠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현재 상황을 보건대, 저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스에서처럼 경제 위기가 고통스럽게 장기화하든지, 아니면 2001년처럼 사회적 폭발로 악화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경험했을 때였다. “안타깝게도 두 번째 시나리오가 더 낫다고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의 경우에서처럼 혁신적인 인물의 등장과 함께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은 국내외 정세에 달려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상황이 받쳐 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1989년 위기로 인해 우파 정부는 훨씬 더 우경화된 정권으로 교체됐습니다.”

설사 마크리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장기집권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가 시행한 정책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이미 헬리콥터를 타고 피신했을 겁니다!” 상당수의 페론주의자들, 특히 조합원들은 ‘모양만 다를 뿐 여전히 똑같은 권력이 자리 잡을 정치적 위기를 저지할 만한’ 때를 준비할 것이다. ‘우리가 매번 부딪힐 때마다 실패했던 장애들을 한 번에 제거하기 위해서’ 시장 경제를 너무 위태롭게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는 가운데, 비상사태에 작동할 시나리오들이 준비되고 있다. 대외무역을 국영화하고, 대중매체들과 법조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이런 정치는 아르헨티나라고 해서 다른 나라들보다 더 쉽게 시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취재원 중 한 명이 대답한다.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자유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서 민주주의를 밀고 나가지 못한다면, 10년이나 15년 후 또다시 같은 상황에 처할 것입니다.”  

 

글·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권정아
프랑스 브레스트 대학교 심리학 박사. 공역서로 『피부자아』가 있다.

(1) John Murray Brown, ‘Mauricio Macri, Argentina’s new president‘, <Financial Times>, London, 2015년 11월 23일.
(2),(5)  Bruno Susani, 『Le Péronisme de Perón à Kirchner. Une passion argentine(페론주의: 페론부터 키르치네르까지, 아르헨티나의 열정)』, L’Harmattan, coll. ‘Horizons Amérique latine’, Paris, 2014.
(3) Facundo Barrera et José Sbattella, ‘Regulación del comercio exterior y apropiación de rentas. Pasado y presente de la medida’, dans Pablo Ignacio Chena, Norberto Eduardo Crovetto et Demian Tupac Panigo(sous la dir. de), Ensayos en honor a Marcelo Diamand. Las raíces del nuevo modelo de desarrollo argentino y del pensamiento económico nacional, Miño y Dávila editores, Buenos Aires, 2011.
(4) 안드레 군터 프랑크(André Gunder Frank)에서 인용, 『위기: 제3세계 Crisis: In the Third World』, Holmes & Meier Publishers Inc., New York, 1981.
(6) Santiago Fraschina, <Dibujovne>, Página 12, Buenos Aires, 2018년 10월 21일.
(7) 판매수익은 달러로 계산되지만 결제는 페소로 이뤄지기 때문. 
(8) 평균 10명 중 4명의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으며, 협상결과는 관련 분야의 전체 급여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9) Alain Rouquié, 『Le Siècle de Perón. Essai sur les démocraties hégémoniques(페론의 세기. 패권주의적 민주주의론)』, Seuil, 파리,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