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 북한관련 도서 3종, 삼서삼색(三書三色)

2018-12-31     김형근 | 서울셀렉션 대표

 

흑백TV 시대가 가고, 컬러TV 방송이 시작된 해는 이미 40년이 다 돼가는 1980년이다. 대학생이었던 어느 날 어머니가 사 오신 대한전선 컬러TV는 흑백TV와는 모양부터 달라서 앙증맞고 쿨했다. 텔레비전이 요물단지라는 말은 당시에도 있었지만, 컬러로 보는 TV는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다. 같은 걸 보는데 색깔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컬러TV가 나오고 김치를 만들 때 전국적으로 빨간색 경쟁이 붙어서 고춧가루를 더 많이 쓰게 됐다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였다. 필자는 컬러TV를 보면서 흑백TV로는 어떻게 보였던가를 자꾸 생각해보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다. 정들었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데 대한 죄의식도 좀 있었던 듯도 하다.  

한반도 북부에 존재하는 북한도 우리에게 어느 순간 컬러TV가 됐다. 지난해 겨울,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남북 간의 접촉과 교류, 두 차례의 정상회담은 북한이라는 동일한 대상을 향한 한국인들의 시각에 엄청난 변화를 줬다. 철책 뒤에서 우리와 무관하게 영원히 자기들만의 세상을 살아갈 것 같던 북한 사람들이 우리의 동포이자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한반도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제 현관에 온 손님처럼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떤 말투를 쓰는지, 매너는 어떤지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플레전트빌>이라는 영화도 있었다. 줄거리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억압되고 통제된 영화세트 같은 세상에 살던 사람들이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흑백TV 같던 영화 화면이 총천연색으로 변하게 된다는 설정의 영화다. 개인의 인권이 억압받고 통제되고 있는 북한 사람들에게 더 어울리는 사례이긴 하지만, 한반도 남쪽에서 살고 있는 오늘 우리들의 대북관에도 교훈을 준다. 우리는 북한을 모르니까, 북한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아니 북한을 모르도록 혹은 오해하도록 강요받은 점도 있으니 북한은 우리의 관심사가 되기 어려웠다. 우리에게 북한은 6·25 기록영화처럼 흑백 영상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이제 막 ‘북한’이라는 컬러TV를 켠 셈이다.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눈길이 다양하고 다채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혹은 <플레전트빌> 영화 속 사람들처럼 북한에 대한 흥미를 갖고 생각을 막 표현하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머릿속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기만 하다. 북한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정말 통일대박은 가능한 건지. 우리의 통일은 소원인지, 미국처럼 연방국가로 가야 하는 건지. 해방을 기점으로 73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달라진 한반도를 과연 통합하는 게 맞는 건지. 그렇지 않아도 복잡하고 갈등 많은 이 사회에 북한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더 해서 더 복잡한 이슈들을 직면해야 하는 건지. 죄의식이 들긴 하지만 그냥 이대로 살면 안 될까 하는 생각까지...

필자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지난해 출간한 북한관련 3종 도서는 이런 복잡하고도 다양한 오늘날 우리의 생각을 여실히 반영한 결과물이다. 저자 3명의 출신과 하는 일도 당연히 다르지만, 그 생각도 너무나 다르다. 공교롭게도 저자 중 한 사람은 한국에서 대학까지 마친 미국 대학교수. 또 한 사람은 북한에서 대학을 나온 국내 언론인. 나머지 한 사람은 순수 국내파 전직 언론인 출신 작가. 그야말로 삼인삼색, 삼서삼색이다.

지난해 초 출간한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문범강 저)는 북한미술은 세계 어느 곳의 미술 못지않게 뛰어난 미술이므로 한반도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한다. 한 마디로, 북한의 다른 건 몰라도 북한미술 조선화는 한국화(혹은 동양화) 차원에서 보면, 중국화(중국의 동양화)보다도 훨씬 앞서있는 세계 최고의 단계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미국 조지타운대 미대 교수다.  

이 책에는 저자가 지난 6년간 9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해서 채집하고 모은 만수대창작사 간부 인터뷰 등 북한미술의 생생한 현장이 실려 있다. 주로 북한의 통치이념 선양과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그려지는 대형 집체화 20여 점 등 도판 300여 점과 아울러 북한미술계의 계보 등 남한에서는 접할 수 없는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정보와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저자는 북한미술 전시나 강연에서 ‘과연 사회주의 국가에서 진정한 의미의 미술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조선의 내부상황이 외부세계의 상황과 비슷한 여건이 형성될 수 없기에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폭넓은 인식을 지성이라 부를 수 있고, 예술에 관해서도 같은 인식이 적용돼야 공정하다고 본다.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사물의 고유미를 발견할 수 있다. (…) 조선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과는 다른 미술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미술엔 묘미가 있다.”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 134쪽)

저자는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라는 북한미술 전시회를 큐레이팅했다. 이 전시에 대한 한국 관람객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필자는 전시장을 연일 꽉 메운 사람들을 바라보며, 우리 시대의 한국인들이 이제는 금기시되고 금지됐던 북한 그림을 소망하는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것을, 신선한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북한 화가 ‘리쾌대’라는 이름이나 작품 정보가 우리 시대 상식의 틀로 걸어 들어오는 느낌이다. 저자는 북한미술 작품의 모사 문제라든가 세계 미술 시장에서 상품으로서의 북한미술품의 가치와 같은 실질적인 주제들을 다루는 다음 책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사족으로 덧붙이면, 지난해 8월 이 책을 기획할 때만 해도 얼어붙은 남북관계로 인해 혹 있을지 모를 사상성 시비에 마음이 쓰였으나, 책이 나온 3월에는 갑작스럽고 획기적인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마음이 다소 편해졌다. 이어서 출간한 『압록강 블루』(이정 저)는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비관적이고 보수적이다. 남북한의 합작 애니메이션 사업을 주요 소재로 해서 넘을 수 없는 남북 간의 차이와 다름을 극명하게 드러낸 소설이다.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자신의 실제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 사업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 탓에 작가는 북한 민중의 고달픈 삶과 이로 인해 흔들리는 북한 지식인의 고뇌와 갈등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현재의 북한에 대한 기록문학이라는 점에서는 독보적이다.

소설 속에서 북한 애니메이션 감독 일현은 한국에 가서 행복한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서울 여자 혜리의 청혼을 뿌리치며 말한다.
“제가 조국에서 살아온 방식이 당에 몸과 마음을 다 의탁하고 무한정 견디는 것이었댔습니다. 견뎌내기 위해서 태어난 것 같았어요. 기러나 제가 소중히 여겨온 가치가 어느 순간 가차 없이 무너졌습니다. 몸뿐 아니라 영혼까지 산산이 부서진 사람이 됐단 말입니다. (…) 이번에는 무엇이 됐든 제 스스로 선택하갔습니다. 저 혼자서도 멀쩡히 잘 살아가고 있다는 자각이 들 때까지는 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 속에 있게 하고 싶습니다. 기래야 제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될 거라요.” (『압록강블루』, 343쪽)

디테일이 잔뜩 살아 있는 작가의 글솜씨 덕분에 소설을 읽고 나면 소설속의 장면들이 일러스트레이션처럼 머릿속에 그려진다. 저자는 소설의 제목 ‘압록강 블루’가 마치 네이비블루나 스카이블루처럼 그 고유의 색깔로 가늠되기를 원하고 있는데, ‘희망과 우울을 동시에 가진 색감’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북한이 한국인들에게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이다.

지난해 연말에 출간한 『조선 레벌루션』(주성하 저)은 제목이 주는 군사적이고 축약적인 느낌과는 달리 공상과학 소설을 떠오르게 한다. 부제인 ‘북한 2029,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통일’이 시사하듯 북한을 최첨단 산업과 기술로 새롭게 정립해서 한반도의 미래로 삼자는 것이다. 북한의 국토는 자본주의 체제와는 달리 개인 소유로 돼있지 않기 때문에 마치 도화지에 줄을 긋듯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은 물론이고, 아파트·상가·공원 등을 마음대로 저비용에 건설할 수 있고, 자기부상식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나 3D 프린터를 이용한 아파트 건설 등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오늘날의 세계 최고의 후진국 중 하나인 북한을 최첨단으로 변모시키자는 제안이다.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시대를 뛰어넘어 바로 도로 위에서 스스로 충전이 가능한 무인차용 도로를 건설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프라 따로, 도로 따로, 철도 따로 건설할 필요도 없다. 지하엔 전력망과 에너지 수송관을 묻고, 그 위에 무인차가 다니게 하면 된다. 2층에선 최대 시속 1,200km에 이르는 진공튜브열차(하이퍼루프)가 달리게 할 수도 있다. 지하에 전력망이 있기에 따로 전기선을 끌어올 필요도 없다. 3층에 이르는 이런 종합 인프라 작업의 대부분은 3D 프린터가 홀로 아주 싼 건설비를 들여서 해낸다.” (『조선 레벌루션』, 21쪽) 

저자는 아직은 가까운 미래에 정말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4차 산업혁명과 북한에 대한 비전 말고도 북한의 사법제도, 언론, 교육 등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아울러 기존 통일 시나리오의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이제는 방법론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통일을 하기 위한 여건을 성숙시키는 실질적인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북한을 사랑해서 탈북했기 때문에 남쪽에서 좋은 것을 보면 북한 사람들도 향유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저자의 평소 입장이 허언이 아님을 느끼게 할 정도로 북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듬뿍 담겨있다. 김일성종합대 출신으로 더 잘 알려진 저자는 공채로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 지난 15년간 사회부, 정치부, 국제부를 거쳤다.

글·김형근
서울셀렉션 대표